발바닥을 보다
연일 전국이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낮의 열기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식지 않는다. 에어컨을 켜 놓고도
열대야에 잠을 설치는 밤이 계속된다.
어젯밤도 그랬다. 더위를 견디지 못해 에어컨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러 번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사용한 리모컨이라 수명이 다했나 싶었다. 혹시 배터리 때문일까 싶어 늦은 시간 마트까지
다녀와 새 건전지로 갈아 끼웠지만 결과는 같았다. 리모컨은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본체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직접 눌러 보세요."
별수 없었다. 침대 위로 올라서려고 한쪽 발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내는 수건 한 장을 가져와 하얀 침대 시트 위에 펼쳤다.
"그 위로 올라가요."
처음에는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시선을 따라 내 발바닥을 내려다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발바닥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마치 숯을 밟고 온 사람 같았다. 아니, 과장을 조금 보태면 악마의 발바닥이라 해도 믿을
만큼 시커멓게 먼지가 묻어 있었다.
우리 집은 거실과 방바닥을 매일 닦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걸레질을 한다. 그런데도 발바닥에는 이렇게 먼지가
묻어 있었다. 고층 아파트 중간층이라 창밖으로 흙먼지가 날아들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는 어느
새 바닥에 차곡차곡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발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목욕을 하고 발톱을 깎을 때 잠깐 볼 뿐이다. 그때는
이미 깨끗이 씻은 뒤라 먼지가 묻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내 발바닥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 길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짧은 순간, 문득 오래된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도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우리는 남의 잘못에는 쉽게 눈길이 간다. 작은 흠도 금세 찾아내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허물은 좀처럼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고, 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 발바닥도 그랬다. 늘 나와 함께 다니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깨끗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먼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욕심도, 교만도, 편견도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날마다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발밑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만다. 그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람은 대개 가족이고,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날 밤 내게
는 아내의 수건 한 장이 거울이 되어 주었다.
결국 에어컨은 본체의 스위치를 눌러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더위는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그날 밤 내 마음속에 오래 남은 것은
시원한 바람보다도 내 발바닥의 검은 먼지였다.
앞으로는 가끔 발바닥을 들어다볼 생각이다. 단지 먼지가 묻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혹시 내 마음에도 눈에 보이
지 않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함께 살펴보기 위해서다. 작은 발바닥 하나가 그날 밤 내게 준 깨달음은, 한여름 에어컨
바람보다 훨씬 시원하고 오래가는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