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에서 내려놓은 것
문화유산이 꼭 궁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탑이나 화려한 단청만이 세월의 증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 냄새가 배어 있는 작은 공간 하나가 때로는 거대한 역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 순천 선암사의 측간과 영월 보덕사, 합천 해인사 국일암의 해우소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화장실이 문화유산이라니, 얼핏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조금도 낯설지 않은 소식
이었다.
선암사는 여러 번 찾은 절이다. 매화가 필 무렵이면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새벽길을 나서곤 했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산사에는 은은한 매화 향기가 번지고,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아침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꽃을 찾아간 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절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뜻밖에도 해우소였다.
그날도 잠시 측간에 들렀다. 나무 기둥에는 오랜 세월의 손때가 배어 있었고, 마룻바닥은 수많은 발걸음을 묵묵히 받아낸
듯 반들거렸다. 벽은 바람이 드나들 만큼만 열려 있었고, 아래로는 깊은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절집이
아니라 어린 시절 살던 시골집 뒤란으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통시'라고 불렀다. 뒷마당 한쪽에 있던 작은 초가 지붕 아래의 통시. 밤이면 호롱불 하나 들고 가야 했고,
겨울 새벽에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 또한 살아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도 그것을 불편이라 여기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태어난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알고
살았던 시대였다.
절집에서는 그 공간을 '측간'이라 불렀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은 '해우소'라는 더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절집다운 이름이다.
몸속의 찌꺼기를 비우는 곳이면서 마음속 번뇌도 함께 내려놓는 곳. 생각해 보면 사람은 무언가를 버릴 줄 알아야 살아갈
수 있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욕심을 품기만 하면 병이 되고, 슬픔을 쌓아두기만 하면 삶이 무거워진다. 해우소는
배설의 공간이 아니라 비움의 공간이었다.
이름은 시대를 따라 바뀌었다. 통시가 있었고, 뒷간이 있었으며, 측간이 있었다. 근대에는 변소라 불렀고, 오늘날에는
화장실이라 한다. '변소'는 기능을 말하는 이름이고, '화장실'은 몸을 단정히 하는 공간이라는 생활문화를 담은 이름이다.
그러나 '해우소'만큼은 다르다. 그 이름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다. 몸의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거기에 마음을 씻는 의미까지 더해 놓았다.
나는 오래된 사찰을 찾아갈 때마다 해우소를 한 번쯤 들여다본다. 문화재를 구경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법당은 엄숙하지만, 해우소는 솔직하다. 누구나 드나들고,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머물다 가는
곳이다. 신분도, 재산도, 명예도 그 문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가장 평등한 공간이 있다면 어쩌면 해우소일 것이다.
이번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예고는 오래된 화장실 몇 채를 남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 스며 있는 생활의 지혜와
검박한 삶,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 그리고 비움을 통해 다시 채움을 배우려 했던 선인들의 정신을 함께 지키자는 뜻일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수세식 변기가 들어오고,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며, 향기가 나는 화장실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만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매화가 피는 봄날, 선암사를 찾게 된다면 나는 매화나무 아래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해우소
앞에도 발길을 멈추려 한다. 그곳에는 내가 잊고 지낸 어린 시절의 통시가 있고, 살아오며 차곡차곡 쌓인 세월이 있으며,
아직도 미처 내려놓지 못한 근심 몇 자락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날은 이름 그대로, 해우소에서 마음까지 비우고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