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고을에 햇볕이 사뿐이 내려앉는다. 수많은 용들이 깊은 산골짜기에 깃드는 유서 깊은 옛 땅 '미리벌'인 밀양을 찾았다.
사림학파의 조종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변계량, 사명당 같은 성현들이 태어나고 그분들의 얼이 깃든 역사적 고향이다.
지난 초여름, 그리운 영남루 앞에 섰다.
남천강 절벽 위에 세워진 웅장하고 날아갈듯 날렵한 누각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울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다.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에서 흘러내린 맑고 깨끗한 남천강에 영남루는 그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남루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옛 선인과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 같다.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마루의 기둥에 기대어 강 건너 들녘을 바라본다. 강변의 푸른 숲과 하늘 아래 펼쳐진 산, 그리고 푸른 산하가 눈 안에 들어온다.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영남루의 발자취는 아득히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밀양 군수가 신라 때의 절인 영남사 터에 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영남루는 훼손되어 여러 차례 증축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에는 애석하게도 화마에 휩쓸려 사라진 영남루를 조선 헌종 때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영남루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 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선비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영남루의 좌우로 길게 이어진 누각은 아름다운 멋을 더해준다. 왼쪽에는 능파당, 오른쪽에는 침류각을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
누각 사이는 월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달월자 형의 계단식 통로로 만들어진 월랑은 그 위에 멋진 지붕을 얹어 화려한 모습을 더했다.
누각의 지붕 위에 걸린 현판을 보니 고색창연한 멋이 느껴진다. 비바람을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 누각 곳곳에 남아 있다. 영남루 누각에는 역대 명필가와 문장가들의 시문과 글씨를 새긴 현판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마치 파도치는 듯 누각 내부에 출렁인다.
옛 선비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학문을 논하면서 교류했던 곳이리라. 서거정과 김종직, 이황과 문익점 같은 선인들도 영남루에 앉아 시를 읊고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지금도 서예가들로부터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칭송되는 커다란 글씨가 높은 기둥 사이에 걸려 있다. '영남루'와 '영남제일루'라는 편액은 당시 밀양 부사의 11살인 첫째 아들과 7살인 둘째 아들이 영남루를 증수할 때 쓴 글씨라 한다. 어린 소년이 써내려간 힘찬 필력이 대단하다.
영남루를 한 바퀴 돌아보니 아름다운 건축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잡아 웅장하고 당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을 바라보니 마치 흘러가는 남천강에 배를 띄워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듯하다.
앞뜰에 피어난 석화도 눈길을 끈다. 좀처럼 다른 곳에서 불 수 없는 신기한 돌꽃이다. 마치 국화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나는 듯도 하고, 어떤 것은 장미나 모란 같은 탐스러운 꽃무늬인 듯도 하다.
영남루 주변에는 유서 깊은 곳이 많다. 남천강 쪽의 돌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에 옛 성터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조금 비껴나면 밀양아리랑비가 세워져 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오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진한 향기가 피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 강변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아랑각에 이른다. 푸른 대숲 속에 전해오는 애틋한 아랑의 전설, 그 아랑의 순결한 정절이 지금도 살아 숨쉰다.
옛 성현들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영남루를 뒤로하니,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첫댓글 밀양 영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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