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8편 풀꽃>
①어느 봄날-10
“시방 워디 기셔유?”
“...?”
천복이 어릿하게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그쪽에서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인지나 알아야 집에 있다고 하던지, 어디 있다고 말할 거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대체 누구신데...요? 말씀을 해보세요.”
천복이 이렇게 묻는 데에도, 그쪽에서는 누구라고 밝히지 아니하고, 자기가 할 말만하고 있었다.
“맨날 여그 오문서 고렇기 매정허기 대답도 않고이, 당슨얼 믿고, 못 산당게. 여그서 당슨이 방금 나가갖고, 모른 척허문, 나가 고런 무심헌 사내허고, 상종헐 수가 있겄어유? 딸-깍.”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는 거였다. 정나미가 떨어지었는데, 실로 알 수 없는 구습을 놀리고서는 깐에 야속하였던지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잘못 걸리어온 전화가 틀림없었기에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먼저 끊고 있었다.
그는 그와 동시에 취기에서 산뜻하게 벗어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아니하고, 무작정 쏘아대기만 하더니, 전화를 끊는 순간 속에 그름이 끼는 거였다.
“지흥아빠! 점슴 워떻기 혔어유?”
그때 뒷방 문이 열리더니, 옥희가 무거운 몸을 방바닥에 주저앉힌 채 방문을 겨우 밀치어놓고서 천복에게 점심걱정을 하고 있었다.
“술 먹어서 밥 생각이 없소.”
“그려도 끼니럴 에면 안 되어유? 식구들언 다 잡쉈은 게 당신만 들와서 한 술 떠유.”
“알았소!”
천복은 독주에 한바탕 취기가 넘실거리었으나, 이제 깨어난지라, 목이 마르고 일을 잡아들기도, 뜨악하여 대뜸 뒷방으로 들어가는 대로 벽에 몸을 기대어놓고, 주저앉았다.
그는 실눈을 뜬 채 다시금 전화에서 구습을 놀리던 여자의 말을 되살리어보는 거였다.
‘맨날 여그 오문서 고렇기 매정허기 대답도 않고이, 당슨얼 믿고, 못 산당게. 더군다나 여그서 방금 나가갖고 워디로 도망간디, 모른 척허문, 나가 고런 무심헌 사내허고, 상종헐 수가 있겄어유?’
게다가 전화를 딸깍 끊는 품이 절교라도 하겠다는 거였는데, 대체 요즘 그러할 만한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방금 나갔다고 하는데, 방금 나온 집은 박 기자랑 술 한 잔한 군산집밖에 더는 없었다. 그리고 맨날 어쩌고 하였는데, 오늘 군산집에 간 거는 실로 오랜 만이었다. 그러니, 그 집도 아닐 게 분명하였고, 읍내 뚱이네 집도 맨날 가는 집이 아니었기에, 누구더러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전화가 잘못 걸리어온 게 틀림없어보이었다.
“아까 왔던 분이 누구셔유?”
천복은 옥희가 밥상을 따로 차린다고 하여 방으로 들어갔으나, 까딱도 하지 아니하고 앉았는데, 배는 태산처럼 부풀어올라있었다. 아마도 밥상은 윤희한테 맡기었던 모양인데 묻고 있었다.
“ㄷ일보 기자야. 특종기사를 취재하러 왔다는데, 그런 기사거리가 내게 있겠소?”
천복은 그 일이 엉뚱하다는 듯이 말을 뱉어내었다.
“그려도 소문얼 듣고서나 왔겄지유.”
“소문은 무슨 소문?”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 있었다.
“당신언 울 엄니끼서 그러신디, 외할아버지 명당자리도 잡으서 잘 모셨담서유?”
그녀는 정읍댁에게 들었다면서 생경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그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라서 그냥 귀 너머 들으려고 하였으나, 정읍댁이야기가 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정희네 일이 바쁘다면서 얼굴을 마주보기도 어려운 판인 데다, 그도 또한 이따금 출사에다 밤새워 현상 인화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고, 게다가 눈이 펄펄 내리어쌓일 때가 많아지자, 복숭아과수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니, 구레나룻이 겨우내 얼마나 기다리었던가는 빤하였다.
옥희가 대답하였다.
“야! 남덜헌티 고렇기 말씀허셨어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숨이 차오르는지 말할 적마다 코를 세게 불고 있었다. 여자가 아이를 갖는다는 게 과연 힘겨운 일이라는 게 새삼스레 느끼어지었다. 그런데 도선암에 있을 상은을 비롯하여 매화나 쪽머리가 아이를 갖겠다고, 뜨겁게 달리어들고, 유희도 아이 더 낳기를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새터댁, 처제 장순희는 하나씩 가지었으면, 그만이었지, 또 낳겠다는 거였다.
그는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자, 속으로 웃음이 절로 나는지 혼자 피씩 웃고 있었다.
그때 윤희가 점심상을 들고, 들어오는 거였다.
“처제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가족인데요.”
천복이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 윤희에게 말하자,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가족인데 어떠냐는 뜻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김봉규 동서가 돌아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처제 기다리느라 코 빠지겠네요.”
첫댓글 애독자 여러분!
2015년이 저물어갑니다.
새해에는 福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도 새해 福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대우 대우님께서 변함없는 항심으로 찾아주시니 용기백배입니다.
2016년에도 대우님 특별히 萬福이 깃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처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
윤희도 결혼하면 자기살림하겠지만 김봉규가 천복사에
소속되었으니 인연의 연속이겠지요. 예전 대가족제도가
좋습니다. 가족들이 20명쯤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듯 여러 명의 가족이 살면 서로 돕고 의지하고 후끈거리지요.
동양의 대가족제가 서양의 방만함보다 가정교육 가례범절 도덕관념들이
뛰어나지요. 본데없는 서양인들 접촉은 없지만 신물나고 어수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