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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25회>
씬 1 송악의 공사 현장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날카롭게 묻고있는 연화의 표정에 왕건은 어쩔 줄을 모른다.
연화 대답을 달라 하였사옵니다.
왕건 낭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이까?
연화 묻고 싶사옵니다. 우리의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옵니까?
왕건 분명히 기억하고 있소이다. 허나....
연화 허나, 무엇이옵니까?
왕건 옛날과 지금은 분명 다르다는 것이오.
연화 형편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사이는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사옵니다.
왕건 .....
연화 어른들께서는 이미 우리 일을 어찌하실 수 없게 되었사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옵니다.
왕건 우리는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소이다.
연화 (한숨)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공자님께선 변하셨습니다. 옛날의 공자님이 아니시옵니다. 하지만 소녀는 그렇지 않사옵니다. 이 세상에 우리 두 사람의 일보다 중요한 것은 소녀에게 없사옵니다. 기억해 주시오소서. 다시 올 것이옵니다. 그때는 가부간의 답을 주셔야 하옵니다.
연화, 그렇게 다짐하듯 강하게 말을 뱉고는 돌아서 가버린다. 왕건은 아무말도 못한 채 그렇게 그녀를 보고있다. 디졸브....
씬 2 금성 관아 외경
왕륭 (E) 송악의 궁궐공사가 다 되어 간다구?
씬 3 동 왕륭의 거소
왕륭이 자리에 누운 채 한씨에게 묻고 있다. 왕륭은 병색이 완연하여 죽어가고 있다.
왕륭 궁궐이 다 되어간다....? 허허허...
한씨 그 엄청난 공사를 하느라고 그동안 쌓아온 송악의 재정이 바닥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왕륭 허허허, 그까짓 재물이야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이지....
한씨 그나저나 빨리 차도가 있으셔야 할 터인데...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갈수록 더 하시니...
왕륭 (숨차하며) 더 미련을 갖지 마오. 나는 이제 얼마 안남았소이다. 하지만, 기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한씨 예....?
왕륭 도선대사의 예언이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고 있소이다.
한씨 무엇이 말이옵니까?
왕륭 이미 천하의 절반 가까이 얻은 궁예대왕이 송악에다가 도읍지를 세우고 있어요. 허허허.... 실은 내가 권한 것이지만 생각....해보구려.... 송악에다가 대궐을 짖는단 말이요.
한씨 그것이 어떻다는 것이옵니까?
왕륭 우리의 고향이 천하의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말이올시다.
그런 미소짖는 왕륭의 얼굴에서...
씬 4 철원성 외경
씬 5 동 성안 종간의 처소
종간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아니 되다니...?
은부 정혼자가 있었다 하옵니다. 그것도 지금 송악성주가 된 왕건이가 그 정혼자였다는 것이옵니다.
종간 뭐라...?
은부 강장자 댁 여식이 왕건이의 정혼자라는 것은 패서일대가 다 아는 일이라 하옵니다. 어찌 국모의 자리로 모실 수 있겠사옵니까?
종간 ..........(한참 생각하며) 일이 하필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은부 다시 생각하시오소서. 처자는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종간 그렇지가 않네.
은부 예?
종간 아무리 처자가 많아도 국모감은 따로 있는 법일세. 강장자의 여식이 바로 그러하였네.
은부 하지만.....
종간 헌데.. 이보시게. 그들이 정혼을 한 사이라면 왜 아직까지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고 하던가?
은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송악의 왕륭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차일피일 일을 미루어 왔던 것 같사옵니다.
종간 그렇다면 잘 된 일이 아닌가? 뭔가가 사정이 있으니까 미룬 것이 아닌가?
은부 어찌 되었든 그러나 저들이 정혼을 한 사실은 분명하옵니다.
종간 사람의 운명은 하늘로부터 타고나는 것이야. 그 처자는 분명 귀한 국모의 상이었네. 송악성주 왕건이 보다는 폐하께 어울리는 처자야.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네.
은부 ......?
종간 (한숨을 쉬며)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국모감으로 확연하게 드러난 그 처자가 바로 왕건이의 배필이 되려고 하였다...?
은부 ...........?
종간 이 얼마나 섬찟한 일인가 말일세. 바꿔 말하면 왕건이가 임금이 될 운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은부 ......?
종간 (심각해진다) 무서운 일이야.....
은부 ......
종간 서두르세나. 국혼에 관한 일은 우리가 바짝 서둘러야 하겠어. 이곳 철원의 여러 신료들은 내가 만나 볼 것이니 다른 장자들이나 호족에 관한 일은 자네가 맡아주어야 겠네.
은부 알겠사옵니다.
종간 이참에 송악에 한 번 함께 가보세나, 공사의 진척도 알아볼 겸 장자들과 호족들도 보아야겠네. 그리로 모이라 하게.
은부 알겠사옵니다.
씬 8 송악성 공사현장
수많은 인부들이 오가고 있고 목재며 돌더미들이 운반되고 있다. 왕건과 왕평달, 왕식렴이 어느 곳에서 끝없이 넓은 그 현장들을 돌아보고 있다.
왕평달 백성들은 지치고 재정은 바닥이 났고... 갈수록 산일세 그려..
왕건 그래도 모아놓은 것이 상당하여 지금까지는 잘 버티어 왔사옵니다. 그 많은 곳간을 다 열어서 공사에 나온 백성들 노임만은 그런대로 후하게 주었다 들었습니다.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소문을 듣자하니 그 일로 백성들이 모두 형님을 동정하고 있다하옵니다.
왕건 나를 왜?
왕식렴 백부님이신 큰 성주님께서는 금성으로 쫓겨가셨고.... 형님은 또 있는 재산과 이 송악땅까지 다 빼앗기고 잃어버렸다고 말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생각하기 따라서는 그렇게 말할 법도 하네그려.
왕평달 웃을 일이 아닐세, 조카. 조카는 이 성의 성주이고 우리 모두를 책임지고 있어. 매사를 잘 판단하고 살펴야 할 걸세.
왕건 예, 숙부님. 그렇게 해야죠.
그때, 저만큼 유금필과 장수장, 변사부가 함께 온다.
왕건 어서 오시오, 유장사.
유금필 한시도 공사장을 떠나지 않으시니 참으로 성주님께서는 열의가 대단하시옵니다. 허허허...
왕건 무슨 말씀을.
변사부 조금 전에 금성에서 파발이 왔다고 하옵니다.
왕건 파발이라니요?
변사부 철원 황실에 있는 내원의 종간이라는 사람이 공사를 확인코자 이곳으로 온다 하옵니다.
왕평달 종간이란 사람이 와?
변사부 여러 장자들도 다 이곳으로 오라고 일렀다 하옵니다.
왕건 폐하의 최 측근이니 그럴수도 있는 일이지요.
유금필 성주님,
왕건 예.
유금필 언제 자리를 한번 마련해 주시옵소서.
왕건 자리라니요?
유금필 그 박술희라는 젊은이와 능산이라는 장사 말이옵니다.
왕건 아, 예. 그 사람들....
유금필 참으로 쓸만한 장사들이옵니다. 저대로 공사장에 버려두기 보다는 한번 자리를 가지심이....
왕건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그리 하시지요.
유금필 고맙사옵니다. (눈치를 보다가) 그리고... 우리 연화아씨의 일은 잘 되셨는지요?
왕건 허허허. 글쎄요. 쉽게 될 일이 있습니까? 답답할 뿐이지요.
씬 9 신천 강장자집 외경
백씨 (E) 송악에 다녀왔단 말이냐?
씬 10 동 강장자의 거소
백씨가 놀란 얼굴로 연화를 보고 있다.
백씨 송악엔 무엇하러?
연화 어머니, 더이상 망설여서는 아니되옵니다. 어떤 결단을 내려 주시어요. 상황이 급하게 변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백씨 그거야 그렇다마는.... 지금 어디 송악 사람들이 제정신이겠느냐? 앞뒤를 보아 가면서 이야기를 해야지.
연화 이러다가 저희들 문제는 영원히 이대로 끝날 것이옵니다.
백씨 그래도 그렇지. 이 일은 너희들이 해결할 수가 없단다. 어른들이....
연화 어른들이 무엇을 해주었사옵니까? 서로들 계산이나 하면서 이리저리 저희들의 문제를 끌어온 것이 아니옵니까?
백씨 연화야, 그렇지가 않느니라.
연화 송악은 이미 결단이 났사옵니다. 큰 성주님은 금성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큰 병환까지 나셨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왕건공자는 모든 가산을 다 털어서 성을 짖고 있사옵니다. 이 상태에서 계속 시간을 끌면 과연 저희들이 혼례를 올릴 수 있겠사옵니까?
백씨 그래..... 나도 그것이 걱정이다만...
연화 아버님께선 어디 계시옵니까?
백씨 방금전에 출타를 하셨다. 모든 호족들을 송악으로들 모이라고 했다는구나.
연화 더 지체할 일이 아니옵니다. 이러다 영영 다 끝나옵니다. 아버님이 돌아오시면 이 일을 매듭을 지어 주시어요. 꼭 그렇게 하셔야 하옵니다.
백씨 (한숨) 서둘러 보자꾸나. 어이구, 어쩌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고....?
씬 11 송악길
강장자와 진서방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가고 있다. 곳곳에 인부들과 현장들이 지나쳐 간다.
강장자 (도리질하며) 아무리 단단한 곳간도 한번 새기 시작하면 잠깐이라고 했느니...태산처럼 재산을 모았던 송악이라지만 이제 거덜이 나고 있구나.... 안됐어.
그때, 진서방이 한 곳을 가리킨다.
진서방 나으리, 저기...
종간과 은부 일행이 오고 있다. 금대와 장일, 염상들이 군사들과 함께 그들을 호위해 오고 있다. 종간은 마치 황제처럼 보인다.
강장자 종간 나으리시로구나.
강장자가 얼른 말에서 내려 오고있는 종간들을 맞고 있다. 종간이 가까이 와 거만하게 말 위에서 강장자를 내려본다.
종간 오랜만이로구려, 강장자님.
강장자 예. 나으리.
종간 송악에 공사가 오면서 보니 공사규모가 대단합니다.
강장자 폐하의 황궁을 짖는 일이옵니다. 의당 그래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참, 따님께서는 안녕하시지요?
강장자 그러믄입쇼. 생각해 주시니 참으로 황공하옵니다, 나으리.
종간 허허허... 훗날 좋은 인연이 될수도 있는데 어찌 관심을 두지 않겠습니까? 가십시다.
이들 송악성을 향해 그렇게 가고 있다. 그 긴 대열의 모습에서....
씬 12 송악성 공사장 앞
왕건들과 여러 장자들이 오고있는 종간을 맞고 있다. 가까이 종간들이 들어서자 모두 허리를 숙여 맞는다. 종간은 여전히 위엄을 부리며 말에서 천천히 내려 왕건들을 훑어본다.
왕건 어서 오시오소서.
종간 고생이 많구려, 왕성주.
왕건 어인 말씀을.. 안으로 드시오소서.
종간 갑시다.
이들 안으로 들어가면 장자들이 줄지어 따라 들어선다.
씬 13 동 송악성 어느 건물 안
종간이 황제처럼 상석에 앉아 여러 장자들을 훌어보고 있다. 그 옆에 금대와 염상, 장일들이 칼을 차고 서 있다. 왕건들과 더불어 박지윤, 유천궁 그리고 장자 1, 2, 3 등 십 수명의 장자들이 종간의 말을 듣고있다.
종간 내 오면서 여러 현장들을 보았소이다. 참으로 방대하고도 큰 공사였소이다. 왕성주의 고생이 많으시겠소?
왕건 폐하의 궁궐을 짖는 일이옵니다. 어찌 고생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종간 바로 그것이오. 폐하께서 계실 대궐을 짖는 일이오. 이 일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해야 하오. 그런데 듣자하니 인부들의 공역이나 물자의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들었소이다.
모두들 .......
종간 다시 말하지만 폐하의 궁궐을 짖는 일이올시다. 모두들의 성의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것이 미흡하다 이말이오.
왕건 그래도 나름대로 다 성의를 보여주고 계시옵니다.
종간 생생만 내는 성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소이다. 그대들이 모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라 이말이올시다. 그대들의 충성을 보이란 말이예요, 충성.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종간 대왕폐하께오서는 살아계시는 부처이시고 미륵이십니다. 천리를 내다보는 눈을 갖고 계세요. 누가 거짓 충성을 하고 누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종간 내 이점을 분명히 해 두려고 철원에서 이곳까지 왔소이다. 모두들 돌아가시거든 자신들이 얼마를 이 공사에 힘을 보탤 수 있는지 그 충성심을 표시하여 올리도록 하시오. 이 말에 이의가 있소이까? (대답들이 없자) 이의가 있소이까?
모두들 없사옵니다.
종간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십시다. 강장자님?
강장자 (잔뜩 겁먹은 채) 예, 어르신.
종간 나와 함께 천천히 공사장이나 구경하십시다. 잠시 드릴 말씀도 있고...
강장자 예, 예, 어르신...
종간 참 내군장군께서는 여기 계신 장자분들과 차한잔 하시고....
은부 예, 알겠사옵니다.
씬 14 공사현장 일각
종간과 강장자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종간 강장자 어른 ?
강장자 예, 어르신.... 어른이라니요? 말씀을 낮추시오소서.
종간 아니올습니다. 별 말씀을..... 일전에 따님을 보았습니다마는...
강장자 예, 예. 그랬습지요.
종간 폐하께오서도 따님을 상당히 칭찬 하셨습니다. 좀처럼 그런 법이 없으셨는데 말입니다. 허허허....
강장자 ........ 황송하옵게도 그랬습지요, 헤헤헤...
종간 따님의 이름이.... 연화라고 하셨든가요?
강장자 예, 예. 연화 맞사옵니다.
종간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이) 지금 이 나라에 국모가 아니 계시옵니다.
강장자 예?
종간 (태연히) 황후마마가 아니 계신다는 얘기 올습니다.
강장자 아, 예 예...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
종간 그래서 우리는 황후마마를 뫼시는 일에 대하여 폐하께 계속해 간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강장자 그리 하셔야 겠습지요.
종간 장자 어른의 따님이 참으로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마는.....
강장자 (충격) 예? 아니. 저... 지금..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종간 장자어른의 따님을 국모로 천거해 올렸으면 하는 얘기 올습니다.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강장자 처.. 천만에요. 소인의 여식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를 만한 인물이 아니옵니다.
종간 그렇게 사양만 하실 일은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것은 우리가 판단을 합니다.
강장자 예...? 아, 예.예... 그야 그렇겠습니다마는....
종간 돌아가시면 잘 한번 생각해 주십시요. 황후마마가 되시는 일이올시다.
강장자 하이구. 이거 원....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사옵니다. 황후... 황후라니요. 소인의 딸이 황후?
종간 허허허... (그저 그렇게 웃기만 하고)
씬 15 조금전에 그 회의장
은부가 장자들을 어르고 있다.
은부 생각들 해보세요. 이건 불충이올시다. 폐하께 황후마마가 아니 계십니다. 그런데도 가만히들 있다 이말입니다.
박지윤 그렇긴 합니다마는....
유천궁 허지만 폐하께오서는 승려분이 아니시옵니까?
박지윤 이런, 이런, 이런... 이렇게 눈치 없는 말씀하고는..... 승려분이시기 전에 이 나라의 황제폐하 올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좌중에게 묻듯이 둘러보면 모두들 끄덕인다.
은부 이미 나라가 섯고 대왕폐하가 되셨습니다. 또 보란듯이 이렇게 큰 황궁을 짖고 있어요. 대궐을 짖고 나면 환관들도 있어야 하고 또 수많은 궁녀들도 두어야 합니다.
장자1 그렇겠사옵니다.
박지윤 장군의 말씀이 참으로 일리가 있으시옵니다.
은부 그래서, 그래서 얘기오만은 그대들이 좀 나서줘야 겠소이다. 역대 어느 국가와 나라에도 황제가 있고 황후가 없었던 적은 없소이다. 그대들이 상소를 올려줘야 겠소이다.
박지윤 상소요?
은부 그렇소이다. 이미 철원의 여러 신료들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하여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맞으시도록 청을 올리기로 했소이다. 그대들도 모두 동참하셔야 겠소이다. 들 아시겠소?
모두들 예.
박지윤 허면, 황후가 되실 분은 어느 분으로 천거를 하시는지....
은부 아, 그야. 다 뜻이 정해졌지요. 우리는 신천의 강장자 댁 따님을 뫼셨으면 합니다마는....
박지윤 예? 그건 아니될 말씀입니다. 이미 송악성주와 혼담이 오가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정혼을 한 사이올시다.
은부 알고 있소이다.
박지윤 예? 아, 아시면서 어떻게...?
은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그 혼담은 미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모두들 .............?
은부 그래서 얘기올시다마는... 강장자댁 따님은 마치 대왕폐하의 반려자가 되시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려 오신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택하기로 하였고....또한 그 일에 대하여 모두들 이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소이다.
박지윤 말씀하시지요.
은부 송악성에 왕성주와 강장자댁 사이에 있었던 혼담은 일체 없었던 것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아시겠소이까? 정혼을 했다는 그 과거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 올시다.
유천궁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는지요?
금대 (겁을 주듯) 내군장군께서 그렇게 하라면 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 (공포)
은부 허허허허, 자네 왜 이러는가? 자 장자분들께선 아시겠습니까?
일제히 예.
씬 16 철원성 외경
궁예 (E) 군사와 내군장군이 송악으로 갔다?
씬 17 동 궁예의 대전
궁예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앉아있다. 복지겸, 배현경, 환선길, 이흔암, 신훤, 원회, 김락, 김언, 종회가 앉아있다.
궁예 송악에 젊은 성주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그걸 뭐 일일히 다 확인하러 가는가?
김락 궁성을 짖는 일이옵니다. 중요한 일이옵니다.
궁예 송악에 젊은 성주가 아주 혼이나고 있을게야, 허허허허.... 자, 그 일은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그대들은 오늘 무슨일로 그렇게 나를 찾아들 왔소?
환선길 실은 일전에 내원에 계시는 종간군사와 내군장군과 함께 의논한 일이 있었사온데...
궁예 말해보시오.
이흔암 소신이 아뢰겠사옵니다. 폐하께 국혼을 청해 올리러 저희들이 왔사옵니다.
궁예 국혼? 그게 무슨 소리요?
배현경 종간군사의 말이 지극히 타당하고 일리가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 나라를 세우시고 황제가 되셨사온데 황후께서 아니 계시옵니다. 이는 실로 막중한 국가 대사를 그르치고 있는 일이옵니다.
궁예 허허, 이런... 내가 군사께 그 일은 없던 일로 하라고 하였소이다.
김언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배장군의 말씀처럼 국모의 자리를 비어놓고 있는 것은 국가의 대사를 그릇치는 것과 같사옵니다. 신들의 청을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궁예 이보시오. 나는 승려요. 욕심많은 양길이 때문에 어거지로 여인하나를 취해놓고 있소이다. 그것도 마음에 걸리거늘 다시 장가를 가라, 내가 말이요? 허허 이런...
이흔암 폐하, 폐하께서 백성들의 어버이시라면 또한 궁안의 일을 맞아 폐하를 보좌해 올리는 어머님의 자리가 있어야 하옵니다. 신들의 청을 물리치지 마오소서.
궁예 그만두시오. 나는 아니하겠소이다.
환선길 신들의 청을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국혼은 반드시 하셔야 하옵니다.
궁예 (얼굴 굳어지며) 아니 한다고 하였소이다. 호화롭게 궁을 짖고 예쁜 여인을 취하고 점점 나를 보고 속된 욕망에 취하라 이 말들인 것 같은데... 물러들 가오.
배현경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신들은 막중한 국가의 대사를 청해 올리고 있사옵니다.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일제히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궁예 물러들 가시오. 오랜만에 다들 모여서 차나 한잔 하려고 하였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런 말밖에는 없단 말이오? 분명히 말하오, 이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소. 물러들 가시오.
일제히 폐하, 가납하시오소서.
궁예 (화가나서) 물러들 가라고 하지 않는가?
참지 못해 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신료들은 눈치를 본다.
궁예 나는 백성들을 위해 일어섰고 저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칼을 들었소이다. 나는 아직도 송악에 짖고 있는 궁궐의 역사가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외다. 왜....? 백성들은 허기지고 굶주려 유리걸식하는데 호화롭고 번지르르한 궁궐이나 지어? 거기다 날보고 다시 여인을 취하라 하니....제정신들인가?
환선길 그런 것이 아니오라.....
궁예 물러 가라고 하였어. 정신 나간 사람들 같으니라고....
신료들은 모두 눈치를 본다. 궁예가 워낙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종회 (E) 폐하, 신 종회이옵니다.
궁예 무슨 일인가? 들라.
종회가 안으로 들어선다.
종회 일선에 상황을 점검하고 오느라 좀 늦었사옵니다. 오다가 들으니 금성에 태수 왕륭이 위독하다 하옵니다.
모두들 ......
궁예 뭐라? 금성에간 왕성주가 위독....?
종회 예. 아무래도 새로운 태수를 내려 보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궁예 이런 세상에.... 지난 번 법회때에도 하긴 좀 아파 보이긴 했었어. 허지만, 금방 그렇게 될 줄이야.... 여기 철원성의 의원을 보내주게나.
종회 예, 폐하.
궁예 송악에 있는 왕성주에게도 전하여 아비를 찾아오게 하게나. 그래야 하지 않겠나?
종회 알겠사옵니다, 폐하. 그대로 시행에 올리겠사옵니다.
궁예 허허, 이런....
그런 궁예의 얼굴에서.....
씬 18 금성 왕륭의 관아 마당
군사들이 지켜서있다. 하녀들이 물대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 위로 들려오는 마사부의 소리
마사부 (E) 주군, 마사부 이옵니다. 정신 차리시오소서.
씬 19 동 방 안
왕륭이 헐떡거리며 죽어가고 있다. 한씨가 안타깝게 보고있다.
마사부 주군. 정신차리시오소서.
한씨 나으리, 소첩이 보이시옵니까? 나으리....
왕륭 ...... (끄덕인다)
한씨 정신좀 차리시어요. (마사부에게) 아무래도 아니 되겠습니다. 마사부께서 송악에 사람을 좀 급히 보내주시오. 아무래도 건이가 빨리 와야 하겠습니다.
마사부 예, 마님.
마사부가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한씨가 왕륭의 손을 잡으며 다시 일깨운다.
한씨 나으리, 힘을 내시어요. 송악으로 돌아가셔야지요.
왕륭 ....... (고개를 젖는다)
한씨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륭 ....... (간신히) 소란.....피우지 마시오......송악은... 이제..우리의.. 땅이 아니오....
한씨 예....?
왕륭 그곳은..... 궁예의..... 땅이오.
한씨 나으리... 그게 무슨....
왕륭 허지만....우리 건이는... 잘 해낼.. 거요.....송악을.... 다시.. 찾을게요..
한씨 그때까지 사셔야지요.
왕륭 ...... 틀렸어요. 이제 나는 틀렸어.. 하지만... 다 보입니다.. 우리 건이가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 나는 보여요. 나는....
헐떡거리는 왕륭, 그러나 그는 웃고 있다. 그 표정에서...
씬 20 송악성 공사장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그 넓은 공사장들이 거의 완공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왕건이 그 넓은 현장을 감회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그 침묵을 깨더니 변사부가 다가온다.
변사부 성주님, 뭘 그렇게 하염없이 보시옵니까?
왕건 이 송악이 곧 황도가 됩니다. 황제가 계시는 황성이예요.
변사부 그렇사옵니다.
왕건 우리들의 고향이 한 나라의 도읍이 되다니요.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변사부 설마.... 금성으로 가신 주군의 말씀을 잊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왕건 ......?
변사부 성주님께서는 저희들의 새로운 주군이 되셨사옵니다. 그리고 훗날 천하의 주인이 되실 분이시옵니다 긍예의 이 작은 성을 보고 감격하고 계신다면 소인들은 민망하옵니다.
왕건 하하하.... 그만 하십시다. 사부님. 자, 저녁에 유금필 장사가 기다린다고 하였던가요?
변사부 그러하옵니다. 박술희와 능산이라는 장사도 함께 하기로 하셨지요, 지금쯤 기다리고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럼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간다.
씬 21 동 성안 어느 정자, 혹은 방 (밤)
왕건과 더불어 유금필, 박술희, 능산이 모여있다. 변사부와 왕식렴도 함께 해 있다. 술잔이 돌고 있다.
왕건 좀더 일찍 이렇게 자리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소이다.
유금필 아니옵니다, 성주님.
능산 이제 공사가 거의 끝이 나 가옵니다. 이 황궁의 역사를 끝내시고 나면 다음엔 무얼 하시려는지요?
왕건 한 나라의 신하가 된 자로서 폐하의 영을 다시 기다려야 하지 않겠소이까?
박술희 (술을 마시며) 하지만 본래 이 송악은 성주님의 것이 아니옵니까? 폐하가 이리로 오시면 성주님은 어디로 가시옵니까?
왕건 글쎄 올습니다... 아마도 어디론가 가야하지 않겠소이까?
박술희 보나마나 그건 전쟁터일겝니다.
왕건 그럴수도 있겠지요.
유금필 십중팔구 그럴 것이옵니다. 지금은 전쟁이 소강상태이지만 황성을 다 짖고 나면 다시 또 영토를 넓히는 싸움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두들 전쟁터로 가야 합니다.
왕식렴 그럴 것이옵니다. 어쩌면 그런 영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왕건 어찌 되었든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두분께서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큰 공역을 이루는데 두 분의 도움이 아주 컸소이다. 그동안 고마웠소이다.
유금필 성주님, 마치 이별을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렇게 성주님을 뵈옵는 것은 생각한 것이 있어서 이옵니다.
능산 그러하옵니다. 저희들은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뜻을 모았사옵니다. 그동안 성주님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또 깨달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성주님을 뫼시고 살고 싶사옵니다.
왕건 무슨 말씀이시오?
박술희 어딜가나 전쟁이고 싸움이 아닌 곳이 없사옵니다. 혼란이 거듭되는 이 난세에 저희들도 발을 붙히고 살 의지처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능산 저희들의 뜻을 받아주시오소서. 주군으로 뫼시고 싶사옵니다.
그 말에 왕건을 흠칫 놀라며 변사부도, 왕식렴도 다 놀란다.
유금필 어려운 난세에는 어찌 살것인가 보다도 어찌 죽을 것인가를 살펴 헤아리는 것이 사내 대장부들의 길이옵니다. 소인은 오랫동안 성주님을 지켜보아 왔사옵니다. 성주님께선 덕이 뛰어나시고 많은 공부를 하셨사옵니다. 품은 뜻이 크시옵니다.
능산 저희들의 주군이 되어 주시오소서.
왕건 내가 과연 그 자격이 있겠소이까?
능산 저희들이 뫼시겠다 청하였사옵니다.
왕건 .......?
유금필 나이를 헤아려 보니 소인과 여기 능산 장사는 나이가 한살 차이옵니다. 박술희는 저희보다 세 살이 아래이옵니다. 하여, 능산 형님이 맏이가 되기로 하셨고 제가 중간이고 술희가 아우가 되기로 하였사옵니다. 주군께오서는 나이를 떠나서 진정으로 저희들의 맏형이 되어 주시오소서.
박술희 (함께) 저희들이 이미 그리 결의하였으니 청을 들어 주시오소서.
왕건은 감격이다. 그들을 본다. 세 사람이 모두 무릎을 꿇는다.
왕건 이럴수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소이까? 천하의 장사들인 그대들이 나를 형으로 청하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려.. 그만 일어들 나시구려. 너무도 가슴이 벅찹니다.
변사부 주군의 덕이시옵니다. 하늘이 이들을 선물로 내려 주셨사옵니다.
왕건 고맙소. 그대들이 나에게 형제의 의를 청하였으니 내가 이를 받겠소이다. 천지신명께 약속드리리다. 우리 형제는 영원히 생과 사를 함께 하겠노라고...
세사람 기쁘게 받겠사옵니다, 형님.
해설 결의 형제, 왕건이 드디어 천하의 용장들이며 호걸들인 이들을 얻었다. 추측해 보건대 훗날 신숭겸으로 불리우는 능산과 유금필의 나이가 왕건보다는 한 두살 쯤 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정확한 출생연도가 밝혀지지 않고 있어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을 불사하고 왕건을 도운 그 많은 충신들 중에서도 유독 이들의 행적이 보다 뚜렷하고 컸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이들을 이렇게 묶어 놓은 것이다.
변사부 생과사를 함께하는 결의형제를 맺은 날입니다. 맹세의 술이 없을 수 없겠지요. 자 모두 드시지요.
왕건 드십시다.
네 사람 모두 잔을 든다.
왕건 다시 한번 맹세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형제의 의로서 영원히 생사를 함께 할 것임을 하늘에 맹세하는 바이오.
세사람 영원히 함께 할 것이옵니다.
.
그들 잔을 들어 마신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는데 황급한 목소리의 장수장이 달려온다.
장수장 아뢰옵니다. 성주님.
왕건 무슨 일인가?
장수장 금성에서 급한 파발이 왔사옵니다. 그곳에 계시는 큰 성주님께오서 위독하시다 하옵니다.
왕건 뭐라? 아버님께서....?
그런 왕건의 표정에서....
씬 22 길
왕건들이 달리고 있다. 장수장과 변사부, 왕평달, 왕식렴 부자도 따르고 있다. 또한 세 결의형제도 따르고 있다. 그들 그렇게 달려 사라지면....
씬 23 철원성 궁예의 대전 외경
궁예 (E) 아무래도 금성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씬 24 동 대전 안
궁예가 도리질을 한다.
궁예 저들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을 다 내놓았고 모든 충성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어. 부자간을 서로 떼어놓은 것은 잘한 일이 아니야.
종간 ...........
궁예 자기 집인 송악을 버리고 금성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니 안되었지 않소?
종간 폐하께서는 참으로 송악에 대해서는 너무 인정을 많이 두시옵니다.
궁예 그런가요...?
은부 (E) 폐하, 내군의 은부이옵니다.
종간 들어오시게.
은부가 환관에게 산더미같은 상소문을 들려 들어오고 있다. 궁예가 찌푸리며 본다.
궁예 그게 무엇이오?
은부 폐하께 국혼을 청해 올리는 상소문이옵니다. 벌써 수백통이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궁예 그 일은 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종간 중요하고도 급한 사안이옵니다.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시기 전에 이 일은 꼭 결정을 보셔야 하옵니다.
궁예 군사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더 할 말이 없구려. 장가를 가라니... 도대체 왜 이런 일로 시끄러워야 한단 말이요? 굳이 가라고 한다면 미향이라는 여인이 있소이다.
종간 (침착하게) 하오나 폐하. 일전에도 말씀 올렸듯이 그 여인은 양길의 딸이옵니다. 신들은 폐하께 참으로 걸맞는 귀한 처자를 보아 두었사옵니다.
궁예 무어라...? 처자를 보아두어?
종간 그러하옵니다. 이 나라 국모의 자리에 오르실 분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처자가 있사옵니다. 바로 일전에 폐하께오서 보시고 칭찬해 주신 신천의 강장자 댁 여식이옵니다.
궁예 허, 이런... 잘못집었소이다. 나는 조금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소이다. 이보시오, 군사? 다시한번 말해 두겠소이다. 이 일은 더 거론하지 마시오.
종간 폐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안주인이 아니 계시는 나라는 없사옵니다.
궁예 허허, 그래도 이런...
씬 25 미향의 처소 후원
미향이 마당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월이가 그 옆에서 눈치를 보며 고해 올리고 있다.
월이 마님, 신료들이 폐하께 찾아가 황후를 들이라고 청하고 있다 하옵니다.
미향 알고있느니라.
월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미향 무엇을 어찌한단 말이냐?
월이 마님께서 계시온데 다른 여인을 들이다니요?
미향 내가 누구의 딸이냐? 적의 딸을 저들이 곱게 보고 있겠느냐?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거라.
월이 하지만 마님...
미향 우리를 살려주고 있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야.
미향,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안쓰러워 하는 월이의 표정에서....
씬 26 다시 궁예의 대전
고민에 잠겨있는 궁예, 들려오는 종간의 소리
종간 (E) 폐하, 폐하께서 여인을 멀리 하시는 것은 어찌 신이 모르겠사옵니까? 하오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시옵니다.
궁예 .....
종간 (E) 백성들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백성 들의 어버이시옵니다. 어머님의 자리가 비어있지 않사옵니까? 무진주의 견훤왕을 보시오소서. 이번에 그 먼 길을 다 돌아다 니면서 백성들을 위로하였는데 늘 황후와 함께 다녔다고 하옵 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왕실을 든든히 보고 또 우애있게 보겠 사옵니까?
궁예는 도리질을 한다.
궁예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견훤이는 견훤이고, 나는 나야.
견훤이라....무척 부부간에 우애가 있는 모양이구먼..허허허
씬 27 무진주성 외경
씬 28 동 성안 대전
견훤이 박씨와 마주앉아 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박씨 완산주로 간다고 하셨사옵니까, 폐하?
견훤 그렇소이다.
박씨 이곳도 좋은데 무엇하러 그곳까지 가시옵니까?
견훤 여기보다는 완산주가 옛 백제의 중심에 더 가깝거든...백성들 이 옛 백제를 그리워한단 말이오.이곳은 백제땅이거든...
박씨 궁예라는 사람이 송악에 큰 성을 짖는다면서요?
견훤 그러니까 우리도 서두르고 있는 것이오. 이건 나라와 나라 사 이에 경쟁이란 말이야. 체면이 걸린 문제예요. 추허조가 먼저 갔고 이번엔 능환이와 최승우까지 갔으니 가 있으니 뭔가가 되겠지요.
씬 29 완산주 성
이곳에서도 공역이 한창이다.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어 있고 추허조와 신강, 김총, 능환, 최승우들이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추허조 서둘러야 하느니라. 제대로 대궐을 짖고 난 뒤에 폐하께서 오실 것이니라. 좋은 궁궐을 폐하께 보여 드려야 하느니라. 서둘러라.
그 한쪽에서 능환과 최승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 있다.
능환 이런 일을 가지고 송악의 궁예와 경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최승우 그렇기는 합니다마는...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는 문제지요,
눙환 백성들을 너무 다잡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일세
최승우 본래 국가에 큰 일이 생기면 백성들이 고단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능환 그나저나 한동안 전쟁이 없었네.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오면 다시 공략을 해야 할 터인데.. 동쪽이 좋겠는가, 북쪽이 좋겠는가?
최승우 동쪽이라면 서라벌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북쪽이라면 상주를 넘어서 궁예 쪽을 이르는 것이옵니다. 군사께서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보시옵니까?
능환 난 서라벌 쪽으로 가고 싶네.
최승우 소인도 생각이 같사옵니다. 서라벌을 완전히 점령하기보다는 그 근처 대야성(합천) 정도는 가 있어야 신라의 전 백성들이 우리를 인정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옵니다.
능환 궁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남쪽을 향해서 관심을 갖고 있을게야.
최승우 그렇기는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우리와 만나려면 중간에 넘어야 할 곳이 많지요. 양길이도 넘어야 하고 또 상주도 지나쳐야 하고....허허허..... 한동안은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씬 30 철원성 궁예 대전
궁예가 은부를 보며 묻고 있다.
궁예 금성에서 뭐가 어찌 되었다구요?
은부 폐하의 영을 받아 어의가 다녀왔사온데....
궁예 그런데?
은부 아무래도 태수 왕륭의 병세가 어렵다고 하옵니다. 이삼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궁예 (한참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아니되겠구먼... 내가 한번 가봐야 겠어.
은부 금성까지는 꽤 거리가 머옵니다. 일개 고을태수의 병자리에 폐하께서 납시는 법은 없사옵니다.
궁예 사람의 정리가 그런 것이 아닐세. 나는 옛날에 그 사람에게 목숨을 빚진 일이 있어. 즉시 준비하도록 하게.
은부 예, 폐하.
씬 31 길
왕건들이 계속해 달려가고 있다.
왕건 도대체 그토록 위중하셨다면 왜 사전에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는고....? 이랴! 이랴....
그들 그렇게 계속 달려 멀어져 간다.
씬 32 금성 관아 외경
왕륭의 방 앞에 군사들과 하인, 하녀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다.
씬 33 동 방안
왕륭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다. 한씨가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른다.
한씨 나으리.... 나으리... 제발 정신좀 차리시어요,. 지금 우리 아들 건이가 오고 있사옵니다.
마사부 주군, 조금만, 조금만 더.. 기운을 차리시오소서. 송악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왕륭은 간신히 도리질을 한다.
왕륭 아... 아.. 닐세.. 부질... 없는... 일..들을 했어... 건이가..온들... 무엇한단..말인가.... 부인....
한씨 예, 나으리
왕륭 나는.. 비록... 보지 못하고... 가지만...알고.. 있소이다. 건이는.. 다시.. 송악을 찾고.. 결국은... 천하의.. 주인이..될 것이외다.. 바로 우리... 우리..왕씨의... 나라...왕씨의... 천하를... 세울 것이오... 왕씨의 천하...왕씨의...천하!
한씨 나으리..!
마사부 (동시에) 주군.
죽었다. 왕륭이 죽은 것이다.
< 25회 끝>
* 26회 한씨 부분 추가
씬 3 동 관아 안 왕륭의 방
왕륭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왕평달 부자와 변, 마사부 그리고 한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 왕건이 흐느끼고 있다.
왕평달 세상에 이렇게 타궐에서 숨을 거두시다니요... 형님. 너무도 안타깝사옵니다. 형님..
왕식렴 (울며) 백부님....
변사부 주군... 이렇게 가시옵니까? 너무도 일찍 세상을 버리셨사옵니다. 주군..
한씨 ....... (애써 침착하고)
왕건 ......... (눈물만 닦고 있다)
마사부 철원에서 폐하가 이리로 오고 계신다 하옵니다.
왕건 폐하께서....?
마사부 예. 인근의 여러 장자분들도 오고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왕평달 그렇다면 맞을 준비를 아니할 수 없지 않나. 상청을 준비하도록 하세.
두사부 예.
왕평달 자 우리도 나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꾸나.
왕식렴 예, 아버님.
모두들 나가고 한씨와 왕건이 마주앉아 있다.
왕건 (눈물을 닦으며) 소자가 불효를 저질렀사옵니다. 병환이 그토록 깊으셨는데도 문안 한 번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씨 그렇지가 않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님께서 굳이 말리고 막으신 것이니라.
왕건 어찌하여 그리하셨사옵니까?
한씨 너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뜻이셨느니라.
왕건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한씨 그리고 잘 들어라. 이 애미도 장사가 끝나고 나면 한적한 암자에 들어갈 것이니라.
왕건 아니,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암자로 가시다니요?
한씨 네가 큰 뜻을 성취하려면 네 주변이 깨끗해야 좋은 것이니라.
왕건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어머님이 계신다고 하여 아니 될 것이 무엇이 있사옵니까?
한씨 내 뜻은 정해졌느니라. 사사로운 정을 미리 잘라 주려고 하는 것이다. 암자에 들어가 너의 앞날과 아버님의 명복을 빌 것이니라. 그리 알거라.
왕건 어머님.... ?
한씨 너희 아버님께서 너의 혼사를 만류하신 것도 다 그런 연유이니라. 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가릴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왕건 하지만 어머님.....저희 혼레에 관한 일은....
한씨 이미 아버님께서 정하신 일이다. 네가 바꿀 수 없느니라. 전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왕씨 가문은 너에게 달린 것이니라. 조상님들과 아버님의 염원을 헛되게 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왕건 어머님...?
씬 6 동 관아 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강장자 내외와 연화, 그리고 박지윤 등과 유장자, 장자 1, 2, 3 등 많은 장자들이 들고 있다. 상청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왕건과 한씨가 상복을 입고 그 앞에 앉아있다. 장자들이 연이어 향을 올리고 상주인 왕건과 절을 나누고 조상하며 나간다. 왕건의 결의형제들은 상청 저만큼에 서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 그렇게 박지윤이 나가고 유장자가 나가고 다시 강장자가 향을 사리우고 조상을 한다. 연화가 백씨들과 함께 왕건과 한씨들을 보고 있다. 잠시 후, 왕건과 시선이 마주쳤으나 그것뿐이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이들은 다시 시선이 끊긴다.
강장자 (맞절을 하며)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왕건 그저 애통할 뿐이옵니다.
이들 그렇게 상식적인 조상의 예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 한쪽에서 장자들이 수근거리고 있다.
씬 7 그 상청 일각
유장자 참으로 안되었소이다. 한때는 패서 일대 최고의 부자가 아니었소이까? 송악의 주인이 금성에 와서 죽다니....
장자1 그러게 말이외다. 이야말로 객지에서 숨을 거둔 꼴이 아니겠소이까?
박지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기가막힌 일입니다.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대왕폐하 납시오. ...... 대왕폐하 납시오....
그 소리와 동시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갈라지면서 모두 허리를 숙인다. 궁예가 내군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대문으로부터 들어서고 있다. 왕건과 한씨가 일어나 궁예를 맞는다.
왕건 폐하. 이 먼길에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궁예 얼마나 상심이 크겠는가?
한씨 폐하께서 이리 찾아주시니 고인께서 참으로 망극해 하실 것이옵니다, 폐하.
궁예 아니예요. 그저 슬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궁예가 상청 앞으로 다가가 향을 사리우고 합장을 한다. 그러고 나즈막히 염불과 조사를 올린다.
궁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부디 극락 왕생하소서.
궁예를 따라 종간과 은부도 함께 허리를 숙여 합장을 올린다. 궁예는 황제는 신하의 죽음에 절을 하지 않는 법에 따라 절을 대신 합장으로 왕건과 주고받는다.
궁예 장지는 어디로 모시기로 하였는가?
왕건 너무도 황망한 가운데 당한 일이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고향으로 모셨으면 하옵니다마는.....
궁예 그리 하도록 하세. 운구하여 송악에 모시도록 하게나.
왕건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폐하.
궁예는 왕건의 인사를 뒤로 하고 서서히 그 상청을 빠져나간다. 모두들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 치며 궁예에게 경의를 표하는데 궁예는 얼마쯤 가다말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저만큼 서 있는 연화를 본다. 연화도 황망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모두들 궁예를 따라 그런 연화를 본다. 강장자의 눈이 재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종간을 보고 다시 궁예를 보는데.....
궁예 허허허...... 우린 구면이로구먼... 철원의 법회때 보았었지 아마... 그렇지 않소 낭자?
연화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강장자 보며) 그대의 여식이라고 하시었소?
강장자 예, 예... 폐하. 그러하옵니다. 기억해 주시니 백골난망이옵니다.
모두들 .......
왕건 (상청에서 이를 보고 있다) ........
종간 폐하. 신이 알고 배워온 모든 관상학 가운데 이만큼 고귀한 상은 처음이옵니다. 참으로 덕이 넘쳐나고 그 고매함의 향기가 천지에 가득해 보이옵니다.
연화 .............? (긴장하고 있다)
궁예 종간군사의 칭찬이 또 시작되는구려, 허허허...... 이보시오, 낭자?
연화 예, 폐하.
궁예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대가 이 나라의 황후감이라고 하는구먼... 하하하하......
연화 예...?
강장자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황후라.... 황후라....하하하하........
궁예들 그렇게 상청을 빠져나가고..... 모두들 황망하게 그들을 쫓아 사라지면서... 디졸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