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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원문보기 글쓴이: 선과
영월암은 이천의 주산인 설봉산에 위치하며 산아래 관고저수지, 이천도자박불관. 월전마술관과 넓은 공원을 내려보고 있어 이천시민들에게는 종교적 공간, 등산로는 물론 휴식처 처럼 보인다. 오늘도 공원과 등산로에는 주말을 맞은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북악사(北岳寺)로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창건은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절 안에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을 비롯하여 석조광배·연화좌대(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와 은행나무(관리번호 5-14)가 있어 절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마애여래입상과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는 모두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절이 상당히 번성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절 입구의 노거수인 은행나무는 고려 말에 나옹화상이 심은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북악사로 불리던 절은 18세기에 들어와 暎月 郎奎대사가 중창하면서 스님의 법호를 따서 영월암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모습은 근래에 와서 이룩되기 시작하였다.
3개의 옥개석(屋蓋石)과 1개의 옥신(屋身), 1개의 상대갑석(上臺甲石)만 남아 영월암 앞 은행나무 밑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1년 당시의 주지 송정해 스님이 없어진 부분들을 새로 축조하여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3개의 옥개석으로 미루어 원래의 형태는 삼층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단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탑이 놓여진 위치도 주변의 상황으로 보아 적당하지 않다. 즉, 다른 곳으로부터 옮겨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상부에는 노반(露盤)이 있고, 그 위에는 복발(覆鉢)로 여겨지는 반원의 구조물이 있는데 중심에는 지름 5cm정도의 찰주공(擦柱孔)이 뚫려 있다. 새로 조성한 기단부와 옥신석의 크기가 원래의 탑재와 잘 맞지않고 커서 부조화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연화대좌와 광배
연화좌대는 지대석과 기단석,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전체는 8각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대석은 방형이며, 하대석에는 팔각형 각 면에 안상을 새긴 속에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는 양각을 하였다.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각각 복련과 앙련을 대칭으로 새겨놓았다.
대웅전 뒤편 언덕 위에 조성된 대지에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광배와 연화좌대가 있다. 광배는 높이 156㎝, 폭 118㎝, 두께 45㎝이며, 연화좌대는 높이 107㎝이다. 석조광배와 연화좌대는 영월암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로 영월암의 역사가 신라 말까지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상은 없어진 채 넘어져 있던 것을 1980년에 새로 불상을 조성하여 바로 세워 놓았다.
광배는 한 개의 화강석으로 조성하였다. 끝이 뾰족한 형태의 주형거신광으로 표면에는 두 줄의 선으로 身光과 頭光을 표현하였다. 두광 복판에는 원형의 연밥을 중심으로 단엽 8판의 연잎을 둘렀다. 주변에는 화염무늬와 당초무늬를 새겼으나 풍화로 매우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태이다. 또한 두광과 신광이 만나는 곳과 두광 상부 중앙에 3존의 화불좌상(化佛坐像)을 양각하였다.
대웅전 뒤편 산위로 올라간 곳에 커다란 바위들 몇 개가 서있다. 그 바위들 중 하나인 높이 7∼8m의 자연 암석에는 마애여래입상이 조성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로 높이 9m, 폭 3m 정도이며, 보물 제822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위면 전체에 꽉 채워 조각한 마애불로 전체적으로 장대하며 힘찬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마애상을 머리가 스님처럼 삭발한 모습이어서 보는 이에 따라 지장보살상 또는 조사상, 여래상 등으로 부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장대하고 힘찬 솜씨를 보이고 있는 이 마애상은 고려전기 또는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와 양 손은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고 옷 주름 등은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얼굴은 둥근 형상이며,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하다. 지그시 감은 것 같은 눈과 굵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에서 힘차고 후덕한 고승의 느낌을 갖게 한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맞대고 있으며,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는 설법하는 모양이다.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부드러운 사선을 그리며 흐르고, 끝에서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옷 주름은 소박한 모습이며, 스님의 얼굴에 어울리는 은은한 덕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부드러운 사선을 그리며 흐르고, 끝에서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옷 주름은 소박한 모습이며, 스님의 얼굴에 어울리는 은은한 덕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월암의 창건조사 혹은 이 사찰과 인연이 깊은 나한이나 고승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유례가 드문 고려시대 마애조사상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작품이다. 高麗末(고려말)高僧(고승)인 懶翁禪師(나옹선사)가 부모님을 천도하기위해 造成(조성)한 것이라는 由來가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한국전통사찰관광정보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2011.04.24 |
첫댓글 양정여고 나왔는데요..청소하러 자주 갔지요..
그때는 포도밭도 있었고 산수유나무가 많이 있었죠
저주지는 지금도 있군요..고맙습니다^^
그렇군요. 양정여중 정원에 있는 3층석탑 보고 왔습니다.
어머나, 고향님의 고향이군요? ^^*
양정여중 뒷산에 향교 있잖아요...거기 계곡물에서 놀곤 했지요^^
고맙습니다...
외사촌 형님이 계신곳인디...담에 함 찾아 가 봐야징
선과님 고향님 반갑습니다 ().
반갑습니다....
바위 전체를 이용해 마애불을 새겨놓은 곳, 정말 멋집니다.
거의 빈 공간없이 바위 하나를 다 이용한 모습이 특이합니다.
맨 위 연등과 목련이 있는 풍경은 꼭 어디서 본듯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네요.^^*
뒷산과 함께 참 예쁜 풍경입니다.
제고향 이천 입니다..나고자란곳이죠..지금은 오빠가 낙향하셔서
사업하고 계시는데 저는 고향이 너무 산업화 되서 별로 안끌려요..
오지마을 에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