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주일설교 누가복음21:20-28
본문: 누가복음21:20-28
제목: 멸망의 날이 오기 전에
오늘은 누가복음21:20-28의 말씀을 가지고
“멸망의 날이 오기 전에”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멸망의 날이 오기 전에”
오늘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미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지진과 정쟁과
어둠의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로마인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구약의 세대를 마감해 주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 사건이 우리 주님의 입술을 통하여
묘사되고 있음은 타당하고 적절한 일입니다.
수 세기 동안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되어왔던
그 거룩한 성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예언이
가장 크게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지식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장차 예루살렘에 임한 비참한 사건들에 대한
두려운 광경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디투스의 군대가 그 성을 포위하기 사십 년 전에
거기에 따를 무서운 상황들이
이미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여인들이 당할 곤경,
수 많은 유대인 들의 학살,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
열방 가운데 흩어질 것과 약 1,800년 동안
그 거룩한 성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될
이 모든 일들을 우리 주님은
친히 보고 계시는 것처럼 상세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지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어떤 나라에 어떤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한 것들을 안다면
우리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40년 전에 예언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아주 엄숙하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46:9-10)
장차 나타날 일들에 대하여 본문의 우리 주님처럼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이시면서 바로 하나님이 되시는 분일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완전한 지식에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들, 그리고 장차 되어 진 일들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서
모두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지었던 죄들을 회상할 때
우리는 겸손하게 됩니다.
또 현재의 연약함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걱정하게 됩니다.
장차 있을 환난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든것을 아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주님을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오래전부터 모르고 계셨던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실제 멸망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보는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이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의 실제 멸망 사건을 통해서
그것을 상징 삼아 그와 같이 예루살렘의 멸망이
예수님에 의해서 예언되었고 실제로 성취되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온 세상이 최종적 종말이
이루어지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별개의 사건같지만 상징이면서
또한 우리에게 닥치게 될 실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AD66-74년도 까지 벌어진 약 10년 가까이
진행된 유명한 유대 전쟁이다.
역사가 요세프스가 쓴 글에 보면
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전쟁이었는지
지금도 그 유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가면 최종적인 항거의 상징이었던
마사다 요새가 있습니다.
그것이 관광명소가 되어 성지순례를 가는
성도들이 꼭 보곤 하는 장소입니다.
마사다 요새는 어마 어마한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마찬가지로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함락할 수 없는 장소였습니다.
마가복음13장2절에서 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곧 무너질 예루살렘을 암시하면서
예언 겸 암시하신 내용입니다.
막13:3-8을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그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처럼
공격을 당합니다.
유대 전쟁의 발단은 예루살렘 성전 때문에 일어납니다.
로마의 총독이었던 플로루스라는 장군이
성전 창고의 금고에서 몇 개의 보물을 훔쳐갔습니다.
금고의 돈의 가치보다는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무력에 의해서
공격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신성 모독으로 여기어서
그 당시에 젤롯당(열심당원) 우두머리가
그 상황을 그냥 놓아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젤롯당의 수장격이 유다가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때야말로 로마 정부와 맞서서
본격적으로 해방전쟁을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메나헴이라는 이스라엘 사람 하나가
전쟁에 기름을 붙는 행동을 했습니다.
로마 행정관서를 습격을 해서
모든 유대인 들의 빚문서를 약탈하고
불태우고 파괴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정부가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거대 군단을 파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0년경에 로마는 티투스 장군이 급파하게 되었고
예루살렘은 그 장군에 의해서 함락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점령되지 못한 곳이
마사다 요새 지역이었습니다.
절벽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그 옆에다 토성을 쌓아서
결국 정복하게 되어 항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항복이 아니었습니다.
마사다 요새에 들어가보니 그 안에 있는 유대인들이
다 자결을 했습니다. 아이들까지!
그래서 그 끔직했던 유대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10년 가까이 걸쳐서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난공불락의 마사다의 함락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
그러면 이와 같은 전쟁이
실재적인 역사 속에 일어났던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전쟁을 말하므로 온 인류에게 어떤 상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예루살렘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자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언대로 주님은 다시 오셔서
악한 자들을, 불순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소망을 주는 것일까요?
21절-22절에 표현된 날은 피하고 싶은 날입니다.
누가 징벌의 날을 만나고 싶겠습니까?
이날은 기록된 모든것이 이루는 징벌의 날입니다.
기록되었다는 것을 구약에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이 무너지는 말씀의 성취는
저 역사에 끄트머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그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최종적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온 인류를 판가름할
최종적 심판도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믿습니까?
그분이 오셔서 우리에게는 안위와 속량과 소망을 주지만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리고 오심을 또한 믿습니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성이 실제로 무너진 것처럼
실제 함락이 되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의 함락은 실제 일어났고
그 실제 안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습니까?
상징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다고 한 것처럼
실제로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도 실제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날에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을 행하여 주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성의 함락과 멸망을 통해서
예수님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루터신학교 어느 교수의 논문에서는
예루살렘 성의 함락을 통해서
사실상 유대인의 삶은 몽땅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국방의 영역에서
새로 갈아엎어지듯이 다 바뀌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새로 갈아엎어지듯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고 살아왔던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일제36년이나 6,25침랴을 당해을 때처럼
최종적인 날에도 예수님의 심판을 통해서
그렇게 모든 질서가 다 갈아엎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소망과 안위로 다가오겠지만
예수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날이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눅19:42-44을 보면
자신을 보호해 주던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자식들이 메어침을 당하는 날이고
모든 안식처들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마사다가 함락이 되면서
유대 전쟁은 유대 모든 삶을 갈아엎는 것으로
실제 사건이지만 역사 끝에 일어날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실제 역사 속에 상징을 담아 놓았습니다.
상징적인 예언도 실제처럼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참으로 끔직한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에게 화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100만 명 정도가 죽었고
97,000명 정도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수치 기준으로 보아도
유대 전쟁은 무시무시한 전쟁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가 쓴 전쟁사를 보면
2000년 전에도 이런 끔직하고도
어마어마한 전쟁이 일어났음 알 수 있습니다.
흉폭함과 잔인함 ,그 무서움 앞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전율 스러웠을까요?
10년 가까이 일어난 전쟁으로서
70년경의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공격을 받고 무너진 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유대인의 모든 삶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삶이 갈아 엎어지고 질서가 완전히 바뀌는
역사를 유대인들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6절 그 상황이 너무나 끔직하고 두려워
도저히 감당히 안되어 기절을 한다고 합니다.
27절을 보면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시편 63편 2절에서 보면 권능(능력)과 영광은
최종적인 심판을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입니다.
실제 예루살렘의 멸망도 암시하지만
마지막 멸망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25일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다고 합니다.
우주가 다 뒤집힌다고 말합니다.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해와 달과 별이 다 흔들리고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모든 기초가 흔들리는 날이 올 것이다.
예루살렘의 무너진 것처럼
마지막 날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8절에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합니다.
춘향전에서 보면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고통 중에 있는 춘향에게 머리를 들라고 한다.
성경에서 머리를 들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는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구부러진 것을 펴라는 것입니다.
눅13:11에 보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머리를 들라는 말은 너희 속량
곧 구속의 날이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들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앞둔자는
구원의 날이요 속량이 날이요 구속의 날이 됩니다.
그렇지 않는 자들 약속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처벌의 날이요 심판의 날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으로부터
네 머리를 들라는 말을 듣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날이 소망의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땅에서 웅크리고 꾸부리고 살고 있다가
주님이 오실 때 그렇게 고개를 들고
주님 앞에 서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이 땅에 오셔서
네 머리를 들라고 하면 그 순간이 오면
모든 곤고했던 살의 질서와 기초가
완전히 뒤바뀌는 새로운 하나님의 날이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이 심판 되었던 것처럼
마지막 하나님의 날도 그렇게 실제 우리에게 임합니다.
악인에게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의인에게나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 날이 소망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머리를 들고
그 소망을 붙들고 그 약속의 시간을 향하여
힘 있게 달음질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