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제 극복한 자들이 다스리는 정치 미학 (2)
한국사회문제연구소장/박사
조상진
막대한 국가예산이 적정한 수요와 효용성을 외면한 채, 정치적 특혜 등의 방법으로 낭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은 조선시대처럼 문맹 사회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학벌 수준을 자랑한다. 정치인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너 나은 지식이나 품격을 보유하고, 더 나은 리더로서 탁월성을 갖춘 개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심각성은 더 배가된다. 단순히 가문의 영예 또는 특정 정치인의 뒤를 따라가는 사적 인연 등을 염두에 둔 출세와 생업 성격의 정치인이라면, 한국 민주주의의 저급성으로 낙인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서구의 민주정치 발전역사를 돌이켜보면, 최초 민주주의를 실현한 고대 아테네를 떠 올릴 수 있다. 지중해권을 바탕으로 그리스 도시국가(Polis)중 아테네는 누구나 시민이 될 수 없었다. 해상무역 등 경제적 여유를 갖추고 전쟁 비용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자 개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들이 아고라에 모여서 집회하고 그들 중에서 정치인을 선출한 것이다. 이들은 별도 보상 없이 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오직 봉사와 희생의 정신을 실천하였다. 즉 직접 민주주의 탄생과 함께 아크로폴리스의 상징으로 그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데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 정점이 되었고 경제적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정치적 소통에 필요했던 수사(修辭)학을 역이용한 소피스트(Sophist)들이 말장난을 앞세워 돈벌이로 타락하였고, 민주주의 역시 오염과 함께 패망이 시작된 것이다. 근대기에 이르러 서구에서 부활한 간접 민주주의는, 1948년 건국한 한국에도 도입되었다. 동시에 산업발전이 이어지면서 21세기 경제선진국이 달성된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정치와 경제의 성숙도가 같은 축의 맥락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이다.
정치는 다스림의 미학이라고 하면, 경제는 국부의 성장이나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는 수입의 기반이다.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 받는 민중들보다 더 넓은 지성과 인격성이 지도력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다른 탁월성과 희생 봉사의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아무나 정치를 하는가’ 라는 비판적 시각을 누구나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는 정치와 달리, 사업적 능력이 필요하고 부의 창출을 위한 개인적 노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지극히 사적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경제는 정치가 아니고 행정의 정책이다. 경제발전은 기업인의 몫이고 정치와 행정은 보호, 지원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정치는 공적 영역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 또는 생업과는 개념적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개인의 경제적 생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경제적으로 극복된 가정의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론으로, 정치는 아무나 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삼 우리는 깊게 새겨야 한다. 정치를 출세와 벼슬로 생각하는 전근대 관념도 버려야 한다. 정치는 다스림의 철학이고 미학이다. 스스로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나설 만한 품성과 품격을 갖추었나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우선,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출마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즉 급여제에서 명예직으로 격상하는 제도이다. ‘명예’ 라는 명분 자체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도전자들에게 스스로를 검증하는 기제로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