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아십니까? 요한일서 1;3 사귐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고민이 시작될 때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직면하게 되면 그때 누군가를 찾아가 상의하게 됩니다.
그때 누군가 상의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복입니다.
그 상담자가 때로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교사, 선배,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시23편에 다윗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실 때, 내 인생의 삶이 풍요하고, 어떤 위험에서도 안전하고, 두려움이 없다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신다면 염려 할것 없다.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목자라고 했고, 자신은 양이라고 고백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사고를 영적인 영역으로 인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그 집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건짐을 받는 일이 허다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집에 나오기를 게을리하는 이들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집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일에 가장 적게 순종하는 자들이 난제들과 당혹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가장 큰 고통을 당한다.
( 시 27:4, 8) 1-14절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진리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늘에서 시작하십시오.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십시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 10:30).
당신은 하나님의 전지 하신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은 실수나 혼동하지 않습니다. 전지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의 이해와 배려 밖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전지하심 밖에 있는 것은 결코 없다.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상대방은 말합니다.
<신발벗고 하나님께 맡겨.>
신발 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세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생각과 의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실패하였습니다.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출3;5 ]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제부터는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벗어.>
하나님은 모세을 쓰실 때 “ 내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이런 명령은 기독교 복음에서 하나님의 성도로써의 삶의 최고의 형태을 말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의 신앙과 정반대 되는 삶을 살면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허무 맹랑한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말씀 부인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을 볼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 주님의 죽으심을 통한 죄사함의 가치을 부인 하는자 중에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의 연합이요, 사귐입니다.
요1서1;3절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요 기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성도는 평생 교회와 하나님의 일을 하다고 하면서도 임종시 자신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이 하나님과 아들과의 교제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오래 놀다가 늦게 돌아오니, 의심이 생긴 이브가 막 따졌습니다.
"어떤 여자랑 만났기에 이렇게 늦게 왔어요?"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 에덴 동산에 당신 말고 여자가 누가 있다고 그러는 거요?"
"하나님께서 나 모르게 다른 여자를 만들어 주셨는지 알게 뭐예요?"
그렇게 싸우다가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는데 가슴이 이상해서 아담이 눈을 떠보니 이브가 자기 가슴을 막 만지고 있었습니다. "당신, 뭐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보세요. 당신의 갈비뼈가 몇 개인지 세어 보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다른 여자를 만드셨을까 봐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를 세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부부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훌륭한 남편과 훌륭한 아내, 믿음직한 남편과 믿음직한 아내는 서로 알면 알수록 편안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평화가 옵니다.
찰스 스텐리 목사님이 아틀렌타에서 좋은 집을 보았습니다.
'아하! 이 집에 살아야 되겠네.'
너무 좋아 '하나님, 저 집을 제게 주세요. 우리에게 주세요.' 기도하고, 대부를 받으려고 은행에 가서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왜 거절할까? 기도하고 갔는데….'
그 다음날 태풍이 왔습니다. 폭우가 내렸는데 그 집이 물에 반이나 잠겨 버렸습니다. 그 집을 얻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아하!"
태풍이 끝난 다음에 언덕에 있는 좋은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집을 사기로 하고 은행에 가니 금방 대부를 해 주어서 그 집에서 8년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목사님이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응답되는 것도 축복이고, 안 되는 것도 축복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많이 알아서입니다. 경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사귐이란 ? 무슨 뜻이 있습니까.
1]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서는 “ 우리는 동반자, 파트너” 라는 [연합]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라고 표현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과 거듭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고 달라진 부분이 어떤 것일까?
성경은 “ 신적 생명”새 본성 을 부여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신성[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일단은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자녀라고 생각 합니다.
왜? 하나님의 부름이 없이는 예배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갈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묘사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는 우리안에 그분의 성품과 생명에 참여 하는자 라는 사실 입니다.
이는 그분과의 연합 속에서 모든 것을 나누고 있으며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귐의 상태는 하나님과 나눔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사역에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의 자세에서.
사회적이 생활에서 ,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라보시듯이 볼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 세상에 전달하여 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하나님과 생각을 나누고, 이세상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그분의 관심을 나누는 것은 동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 기도, 밤이 세이도록 기도..]... 하나님과 연합...
사귐의 의미는 “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하나님은 실존 하시는분 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압니다.
지식을 쌓아 실력 있는 자가 되는 것도 복이 있지만,
그보다 더 복이 많은 것은 아가페 사랑으로 출렁이어 하나님께 아시는 바가 된 사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니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없다 하였나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편 16:2-3)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밖에는 다른 복이 내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된 사람입니다.
또 다윗이 시편 122편 1절에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산에 갈 때, 친구을 만날 때, 여행을 갈 때 기쁘고 신바람이 나는데, 교회에 갈 때는 '아이고, 또 주일이구나.'하며 시무룩한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가자고 할 때 기뻐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5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며 하나님을 가깝게 알수 있게 되어서 그분을 향하여 “ 아바 아버지” 라 부를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와 연결해서 생각 한다면
기도는 하루 종일 계속해야 합니다.
꼭 길 필요는 없습니다. 짧게 해도 됩니다.
때로는 외마디 절규가 참된 기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한 말의 의미입니다.
즉,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상태에 있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길을 가면서도, 서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기도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기도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때마다 빠짐없이 반응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든 본문과 씨름할 때든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습니다. 저의 절대법칙은 그런 충동에 항상 복종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충동은 어디에서 올까요?
성령의 역사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그 충동을 거역하거나, 그 충동에 순종하기를 미루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밀쳐내지 마십시오.
그 충동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 기도한 시간 때문에 자신이 하던 일에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고 실제적인 유익이 생겼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부르심을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로 여기지 말고,
항상 즉각적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충동이 자주 찾아올수록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스웨덴에서 태어난 휴 애런슨은 18살에 꿈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나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취직도 되지 않았습니다. 돈은 한 푼도 남지 않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 무작정 서부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화물칸에 숨어 있다 승무원에게 잡히는 바람에 매만 맞고 쫓겨났습니다.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강물에 뛰어들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교회학교에서 배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했는데,
나는 아직 한 번도 인생을 싸우듯이 살지 못했지 않나?
18살밖에 안 된 나에게는 앞으로 달려갈 길도 많을 텐데……. 그래, 나도 한 번 싸우듯이 살아보자.
기도 하면서 싸우듯이 일하자.
기도하면서 싸우듯이 공부하자.
기도하면서 싸우듯이 믿음 생활을 하자.”
그가 그 즉시 일어나 싸우듯이 갈 길을 달려 마침내 몬테나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연합,나눔]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왔지만 부요하게 되고,
불행하게 시작했지만 행복하게 되고,
이름 없이 들어왔지만 명예로운 사람이 되고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는것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고, 아무것도 없어도을 하나님께서 하시면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축복을 받아 잘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시편 기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기도를 얼마나 즐겨 하였는지 알수 있다. 그들은 기도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식으로 설명 한다면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확신 하고 있는자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심과 그분의 임재하심을 알고 인식하면
이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필수적인 부분 입니다.
이것을 주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저에게 말씀 하시는분이 하나님이고
저안에서 말씀에 반응하게 하시는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의 상황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다아십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생활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의 발자국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지난 토요일에 어디에 갔다 왔는지를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발자국, 우리의 걸음을 다 세신다고
욥기 31장 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서신서 뒷부분에서 “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와 사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인도하시면, 문을 열기도, 닫기도, 어떤때는 장애물도 놓기도 ...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 삶속에서 계시면 주관하고 있으을 인식 해야 합니다.
그 부르심에 “ 온유” 순종함으로 “ 진리의 통제,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몰려와서 물었습니다.
"각하께서는 아주 걱정되고 긴장되고 초조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감정을 추스릅니까?"
"예, 휘파람을 불지요."
"아니, 각하께서는 한 번도 휘파람을 부신 적이 없다면서요?"
"그럼요. 나에게는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 없었기에 휘파람을 불 일이 없었지요."유명한 말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는데, 그 거대한 나라에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루즈벨트는 '하나님은 미국을 사랑하신다. 나를 대통령으로 세워 주셨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 는 믿음 때문에 태산 같은 문제가 와도 '괜찮다! 합력해서 선이 된다.' 하며 걱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 답게 살아야 됩니다.,
물건을 살 때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운동을 할 때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렸으면 기도하고 예배드린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와 예배가 생활로 이어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격차가 심한 자녀가 아니라,
맏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도 닮지만 형제끼리도 서로 닮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닮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닮은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님은 어머니 같으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 헝클어진 것도 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도록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주십니다.
왜 사과나무입니까? 사과를 맺으니 사과나무입니다.
왜 배나무입니까? 배를 맺으니 배나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귐이 얼마나 영광 스럽고 귀한것인지 .
심지어 임종의 자리에 까지 하나님의 사귐을 갖고 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