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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수(白雲叟)-상관을 위해 도술을 부린 부하
전당(錢塘)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라 할 만하다. 많은 이들이 유명한 이름만 들었을 뿐 실제로 유람할 수는 없어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전당 현의 현령(縣令)이 되더라도 기율이 엄격하고 공무가 많아 술 한잔하며 조용히 산과 물의 경치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기에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산동(山東) 임청(臨淸) 사람인 노지춘(盧之椿)은 거인(擧人)의 신분으로 절강성(浙江省)으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전당에서 거리가 매우 가까움에도 공무가 많아 상관을 만나기 위해 전당에 와서도 서둘러 오가느라 경치를 유람할 기회가 나지 않았다. 마치 한유(韓愈)가 남창(南昌)을 지나면서도 시간이 없어 등왕각(滕王閣)에 오를 수 없어 아쉬워했던 것과 같았다. 노지춘에게는 막료 한 명이 있었다.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 ‘백운수(白雲叟)’라고 불렀는데, 신기하고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평상시에 항상 노지춘에게 말하곤 했다.
“사나이 대장부라면 포부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현의 사무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이 현에 이렇다 할 명승고적이나 아름다운 풍광이 없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소제육교(蘇堤六橋)나 삼천축(三天竺)과 같은 경치를 보고서도 화려한 배 한 척 띄워 놓고 음악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지 않는다면 서시(西施)처럼 서호(西湖)의 아름다움을 저버리는 게 됩니다.”
노지춘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공무가 바빠 난정(蘭亭)이나 약야계(若耶溪) 같은 가까운 곳도 갈 수가 없으니 서호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일 년 후, 백운수가 갑자기 노지춘에게 말했다.
“공께서는 아직 산수의 풍경을 감상하는 고상한 취미를 지니고 계십니까? 내일 공께서는 순무(巡撫)의 수하로 들어가 백거이(白居易)와 소동파(蘇東坡)가 맡았던 관직을 맡게 됩니다. 서둘러 행장을 싸시면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사이동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이 탁월한 성과를 낸 것도 없기에 노지춘은 백운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대청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데 과연 관원이 순무의 공문을 들고 와 노지춘을 전당(錢塘) 현령으로 임명했다. 노지춘은 기뻐하며 백운수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그는 백운수와 상의하며 말했다.
“자네 말이 정말 잘 들어맞았네만 내 일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늘어갈 걸세. 자정에 퇴근하여 새벽 일찍 밥을 먹고 아직 깜깜할 때 길을 재촉하여 동이 트기도 전에 순무의 관아에 도착하여 인사를 올려야 하지. 옅은 화장 짙은 화장 모두 어울리는 서호가 있다 해도 내 마음대로 마차를 몰아 놀러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러자 백운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공께서 망중한이라는 말을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만약 제 계획대로 움직이신다면 외딴 산이 집이고 냉천(冷泉)이 방이라 해도 정자사(淨慈寺)와 영은사(靈隱寺)를 별장으로 삼고 두 봉우리와 사이의 계곡물을 정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무에 차질이 없을 테고요.”
노지춘은 이 말을 듣고도 믿지 않고 관리가 관인(官印)을 가져오자 곧바로 길을 떠났다. 항주에 도착하여 부임한 지도 사흘이 지났다. 그러자 백운수가 노지춘에게 제안했다.
“놀잇배를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내일 일찌감치 저와 서호의 명승지를 둘러보시죠.”
노지춘이 짬짝 놀라 말했다.
“난 방금 부임하여 공무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데다 자네와 나 모두 직책이 있는 몸인데 호수에 놀러 갈 여유가 어딨단 말인가? 위에서 알면 분명 날 탄핵할 것이네.”
그러자 백운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제가 공께서 망중한을 모르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공무에 지장이 있다면 제가 어찌 무모하게 공께서 처벌을 받게 놔두겠습니까?”
노지춘이 말했다.
“그러면 어쩔 생각인가?”
백운수가 말했다.
“비밀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내일도 마차를 준비해놓겠습니다. 일꾼에게 일을 맡겨놓고 평상시대로 일을 처리하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노지춘은 여전히 불안해하며 반신반의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이튿날 오후, 노지춘이 관아를 떠나 순무를 뵈러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마차 옆에서 누군가 보고하며 말했다.
“백운수 선생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지춘이 어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보니 십여 명의 시종이 작은 우마차를 끌고 길가에서 그를 맞이했다. 태도가 매우 공손했다. 그들은 노지춘을 재빨리 차 위로 안내했다. 마차가 바로 날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질풍처럼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전당 성문 앞에 도착했다. 노지춘은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공무를 아직 처리하지 않은 채 마차를 타고 놀러 왔으니 분명 일을 그르칠 것만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이미 온 이상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마차가 호숫가에 도착하자 커다란 유람선이 물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노지춘이 마차에서 내리자 백운수가 선실에서 나와 그를 맞이했다. 그는 노지춘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열흘간 실컷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노지춘은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저 화려한 배를 보며 놀랄 뿐이었다. 선실에 들어가자 노래하는 여자들이 좌우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을 맞이했다. 여자들은 모두 치아가 하얗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노지춘이 고개를 돌려 백운수에게 물었다.
“이 여인들은 어디에서 온 건가?”
그러자 백운수가 말했다.
“집안의 하녀들입니다.”
둘이 자리에 앉자 성대한 술상이 펼쳐졌다. 온갖 진귀한 음식이 가득했다. 배가 천천히 호수 가운데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경치를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다시 네다섯 명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발 안에서 걸어 나왔다. 모두 깃털로 장식한 무의(舞衣)를 입고 있었으며 반짝거리는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고 사랑스러웠다. 여자가 둘에게 술을 따랐다. 노지춘은 보면 볼수록 여자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궁금했다. 그러자 백운수가 말했다.
“집안의 기녀입니다.”
노지춘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나의 관아에서 밥벌이하니 생활이 절대 풍족할 기가 없네. 지금까지 자네 집안에 기녀를 두고 있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여종과 기녀들이 주위를 둘러싸니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겠나?”
백운수가 이 말을 듣더니 살짝 비꼬는 투로 말했다.
“공 역시 가난한 서생을 무시하시는군요. 불이 꺼진 재가 다시 탈 수도 있다는 말은 들어보셨는지요? 일전에 저는 고향에서 친한 친구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 모든 것을 제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그 많은 걸 독차지할 수가 없어 공을 초대하여 함께 누리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말하니 노지춘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배가 어느새 호수 한가운데의 정자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정자에 올라 경치를 감상했다. 정자 안에는 이미 비단 방석이 깔려 있었다. 노지춘과 백운수은 자리를 잡고 앉아 술잔을 주고받았다. 기녀들은 번갈아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저 멀리 호수에서는 작은 배들이 개미처럼 다리 밑을 떠다녔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소리를 듣는 이도 있고 물고기를 구경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이 경치를 보며 시를 읊는 소리가 악기 소리와 한데 뒤섞여 들려왔다. 호숫가에서는 악기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빽빽하게 자란 버드나무가 희미하게 보였다. 때때로 춤추는 치맛자락이 그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저 멀리 호수의 남쪽과 북쪽 양안에서 펼쳐지는 천태만상은 아름다운 서호의 풍경과 어우러져 그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진정 인간 세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를 보고 있자니 노지춘은 공무에 대한 걱정과 마음의 번민은 눈 녹듯 사라졌고, 그는 오로지 백운수와 술을 마시는 것에만 전념했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백운수가 노지춘에서 악비의 사당에 참배하러 가자고 했다. 둘은 남쪽 호숫가에 올라 임화정(林和靖)의 고택과 소소소(蘇小小)의 묘와 같은 명승지를 방문했다. 기녀들 역시 그들을 수행하면서 가는 길 내내 향기를 풍기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 그들을 신선으로 여겼다. 밝은 달이 호수 위를 잔잔히 비추자 여행객들은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노지춘 역시 집에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백운수가 웃으며 말했다.
“열흘을 놀자고 해 놓고 어찌 돌아가려 하십니까?”
노지춘이 말했다.
“내가 관직을 맡고 있는데 공무는 어찌한단 말이오?”
백운수가 말했다.
“그자들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둘은 다시 배 위로 올라 사공에게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골라 정박해달라고 요구했다. 달빛 아래에 다시 술판이 깔리고 둘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청량한 노랫소리와 아름다운 춤사위에 정신이 아찔해진 둘은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 나서야 선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둘은 작은 배로 갈아탔다. 이제는 기녀들을 대동하지 않은 채 아름답고 아무도 가지 않는 인적이 드문 곳만 찾아 놀러 갔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술과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대체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면 다시 큰 배로 돌아와 묵었다. 이부자리는 궁궐보다 훨씬 아름답고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기녀들은 잠자리에서까지 시중을 들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잠자리에 들면 시녀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노지춘이 슬쩍 물었지만, 백운수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피했다. 이렇게 그들은 온종일 서호에서 놀았다. 둘은 때로는 큰 배를 타고 때로는 작은 배를 탔다가 산길에서는 말을 타고 평지에서는 마차를 타가며 열흘에 걸쳐 서호 일대를 거의 전부 돌아보았다. 노지춘 역시 아름다운 산수에 푹 빠져 돌아가기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느 날 밤 두 사람이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백운수가 노지춘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를 대신한 사람이 너무 피곤할 겁니다. 이제 우리 돌아갈까요?”
노지춘이 말했다.
“성문이 이미 닫혔네. 아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네.”
그러자 백운수가 말했다.
“석 잔만 더 마시죠. 제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큰 술잔을 노지춘에게 건넸다. 둘은 서로 마주한 채 통쾌하게 술잔을 비웠다. 술에 취한 노지춘은 탁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자 문밖에서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났다. 몸을 뒤척이다가 보니 자신이 관청의 서재에 있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때 일꾼이 들어와 시중을 들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노지춘을 부축하며 옷을 입혔다. 당시 노지춘의 아내는 아직 원래 있던 관청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항주에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의혹이 일었지만 말해봤자 믿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가 세수하고 있는데 한 하급 관리가 백운수의 명령에 따라 작은 책을 들고 들어와 말했다.
“요 며칠 간의 공무는 모두 여기에 적어두었습니다. 단단히 기억해두시어 착오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노지춘은 헐레벌떡 달려가 읽어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깨달은 듯 깜짝 놀라 말했다.
“지금 보니 나의 몸은 여행을 떠난 적이 없구나!”
그는 책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관청에 나아가 정사를 처리했다. 한치도 틀림이 없었다. 이후 만난 상사와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의 일 처리가 빠르고 능숙하다며 칭찬했다. 이 말을 듣고 노지춘은 속으로 웃었다. 그는 기회를 틈타 노백수를 찾아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노백수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둘은 수시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기간도 사흘에서 닷새까지 정해진 게 없었다. 시간이 이전처럼 길지는 않았지만 즐거움은 똑같았다. 부근의 유명한 산수와 명승지는 거의 다 돌아보았다.
노지춘은 이 일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하여 관아의 심복에게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얼마 후, 노지춘은 가족들을 불러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는 여전히 수시로 나들이를 떠났다. 일 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아내에게 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내가 놀라 말했다.
“어쩐지 가끔 당신이 나무 인형 같더라고요. 당신은 새로운 직위에 부임하면 종종 서재에서 자고는 했죠. 그때 제가 몰래 찾아가 살펴보면 당신은 깊이 잠든 채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더라고요. 당시에는 무척 걱정됐어요. 공무로 너무 피곤해서 이렇게 된 건가 하고요. 그런데 날이 밝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모든 일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어요. 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죠. 게다가 하인이 말하길, 어떤 사람 역시 당신과 상태가 똑같다고 하더라고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건 그가 법술을 썼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전 어떡해요?”
노지춘은 이 말을 듣고 웃기만 할 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관아 안에서 점차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몰래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운수는 더는 노지춘을 데려고 나들이를 나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노지춘이 제안해도 거절했다.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부인께서 걱정하십니다.”
그렇게 두 달이 또 지났다. 탁월한 실적을 인정받아 노지춘은 어느 주(州)의 지부로 승진했다. 그러자 백운수는 사표를 제출하며 말했다.
“서호에 이미 새로운 주인이 생겼으니 저도 더는 이 일로 생계를 꾸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노지춘이 자신과 함께 갈 것을 권했지만 백운수는 끝내 거절했다. 노지춘은 백운수를 위해 서호 주변에 약간의 땅을 사서 그에게 집을 짓고 살도록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백운수는 자취를 감추었다.
노지춘은 지부로 부임한 지역에는 어떤 현승(縣丞)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똑똑하고 일을 잘했다. 다만 예전에 이상한 질병을 앓아 종종 대낮에 코를 골며 잠을 자곤 했는데 한번 잠들면 한밤이 되어야 깨어났다. 그는 잠에서 깬 후 말했다.
“제가 병을 얻었는데, 도사에게 불려가 누군가를 대신하여 전당(錢塘) 현의 정사를 도맡았습니다. 공무가 너무 많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가 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때는 닭이 아직 울지도 않은 때였지만 그가 다시 깊게 잠들자 사람들은 모두 이를 이상히 여겼다. 이렇게 열흘이 지나자 병이 완전히 나았다. 그 후로도 갑자기 병이 도지고는 했는데, 한번 잠들면 며칠을 잤다. 다행히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현승이 말했다.
“도사께서 제게 누설하지 말라고 하시며 말하면 재앙이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노지춘이 부임한 후 이 현승도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그는 노지춘이 데려온 시종들을 보더니 서로 아는 척을 했다. 심지어는 그들의 이름까지도 불렀다. 노지춘은 현승에게 있었던 기이한 일을 들어보니 자신이 겪은 일과 일치했다. 그래서 현승을 단독으로 불러 말했다.
“자네가 앓는 중에 대신했던 게 바로 나였네. 자네의 재능이 나보다 훨씬 낫구먼. 내가 추천서를 써서 자네를 추천할 것이니 자네는 이 보잘것없는 관직에 머물지는 않을 걸세.”
둘은 각자가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설명해가며 상대방의 이야기와 비교해보니 놀랍고도 감개무량했다. 과연 이 현승은 노지춘의 추천 덕분에 승진했다. 다만 그들은 백운수의 대역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외사씨가 말했다.
재능을 갖고도 때를 잘 못 만난 사람은 그의 웅대한 포부를 펼치기 어렵다. 반대로 관직에 뜻이 있는 사람은 자연의 풍광을 즐기기 어렵다. 백운수의 계획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켰다 할 수 있다. 나는 특히 백운수가 막료로서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었으며 상관들에게 평생 가난을 걱정하는 서생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관들은 그와 함께 나들이를 가면서도 순전히 자기들 덕분인 걸로 여겼을 것이며 모든 것들이 백운수의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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