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어요.”
이 책은 위안부로 끌려가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은주와 같은 시기,
731부대에서 일하며 괴로워하던 일본 청년 미오의 이야기다. 731부대에서 자행한 잔인한 실험에 가담하면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괴로워하던
미오는 은주를 통해 731부대의 잔인한 실상을 알리려 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끝나고 낯선 타국에 버려진 은주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먼저 떠난 동무가 남긴 만년필로 적어 내려간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어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미오는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한국의 소녀상을 찾는다. 그리고 아직도 맨발에 까치발을 든 채 앉아 있는 단발머리 은주와 조우한다.
제1부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어요
괜찮다, 다 괜찮다
나는 바람이 좋아요
덫을 놔야겠어
비구니 스님
양심과 양식
조선 최고의
가수가 될 거야
새 주인
알 수 없는 길
해골들의 행렬
내 방
무서운 꿈
순이의
죽음
거래
나는 바람이야
하얼빈의 서양 남자
긴 하루
비밀 쪽지
비밀 공책의 주인
마지막 인사
탈출
주동자 색출
마사오 중위
사라진 공책
고기 잔치
불타는 731부대
도망치는
다나카
마지막 선물
미오의 편지
화상 입은 여자
은주 이야기
제2부
731부대를 아시나요
짓지
않은 죄
731부대
동상 실험
이시이 시로 중장
마취 장난
다베 님 만세
위안부 소녀, 이찌에
세균 도기
폭탄
거래
자료의 무게 값
긴 하루
아돌프 아이히만의 죄
암컷 마루타
소년 마루타
협박
가면을
벗다
독가스 실험
비겁한 도망자
소녀와 작은 새
기억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이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나라는……
나라는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나를 돌봐 줄 조선은 없어요.
해야 할 일을 피해 도망치면 칠수록 발버둥 치면 칠수록
쏟아지는 건 몽둥이와 채찍이었고 갚아야 할 빚만 늘어났어요.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봐 주지 않았어요. 치료비와 약값 역시 고스란히
위안부들의 빚으로 남았지요.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에 5원씩 빚으로 쌓였어요.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일을
쉬었다가, 600원이었던 빚이 열흘 만에 650원이 되었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지요.
---
p.22
“내가 이 손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어.”
“…….”
“이 손이 말이야, 어떤 손인 줄 알아? 두 눈 똑바로
뜨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죽였어. 오늘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어. 이 손으로……. 나, 미오 유타카가 사람을
죽였다고…….”
두 손으로 감싸 쥔 머리를 침대 위에다 박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은 조금씩 미쳐 가고 있었다. 나
역시 이들처럼 미쳐 가고 있다.
“난 죽일 마음이...이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나라는…… 나라는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나를 돌봐 줄 조선은 없어요.
해야 할 일을 피해
도망치면 칠수록 발버둥 치면 칠수록 쏟아지는 건 몽둥이와 채찍이었고 갚아야 할 빚만 늘어났어요.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봐 주지
않았어요. 치료비와 약값 역시 고스란히 위안부들의 빚으로 남았지요.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에 5원씩 빚으로 쌓였어요.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일을 쉬었다가, 600원이었던 빚이 열흘 만에 650원이 되었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지나갔지요.
--- p.22
“내가 이 손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어.”
“…….”
“이 손이
말이야, 어떤 손인 줄 알아? 두 눈 똑바로 뜨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죽였어. 오늘 처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어. 이 손으로……. 나, 미오 유타카가 사람을 죽였다고…….”
두 손으로 감싸 쥔 머리를 침대 위에다 박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은 조금씩 미쳐 가고 있었다. 나 역시 이들처럼 미쳐 가고 있다.
“난 죽일 마음이 전혀 없었어.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명령 알지? 거기 서.”
조선인 위안부가 문을 열고 도망쳤다. 뒤따라 나가는데 방마다 위안부들이 지르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던 거지?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끌려온 여자들. 도망치던 조선인 위안부 이찌에가 군홧발에 차이고
있었다.
--- p.218
하얼빈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갔다. 아들이 찍어 왔다는 사진 속 소녀상이 있는 곳부터
찾았다. 마침 그날은 수요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는 수요 집회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은 마이크를 들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내 마음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소녀상 앞에 꽃다발을
갖다 놓는 어린 소녀를 보자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 옛날 이찌에 또래의 소녀였다.
나는 근처 꽃집으로 가 하얀 안개꽃 한 다발을
샀다. 사람들이 떠난 소녀상 앞에 꽃다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찌에가 다듬어 준 나무 새를 소녀에게 보여 주었다.
“이찌에, 잘살고
있나요?”
“…….”
“난 그동안 비겁자로 살았어요. 당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
“그때도 지금도 날
용서하지 못하겠죠?”
“…….”
“그런데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게 되었어요. 당신과 한 약속을 지키려 해요. 일본군 성
노예로 살아야 했던 당신들의 고통과 생체 실험을 했던 우리의 죄악을 세상에 알릴게요. 우리가 잘못했어요.”
난 소녀상을
안았다.
“…….”
“이찌에,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기억하고 기억할게요.”
이찌에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 p.268
그 시절이 끝나지
않았기에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다
긴 세월,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픈 역사를 반복하게 해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꺼내어 증언하고, 또 증언했다. 그렇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한 분 두 분 떠나시고 이제 남아 계신 할머니는 단 38명.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한 짓이 아니다, 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우리 땅에 우리 국민이 한 푼 한 푼 모아
건립한 소녀상을 치우라고 외교적 압력을 넣고 있다. 할머니들은 여전히 일본 정부의 사죄 한마디를 기다리며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수요일마다
집회에 나가 싸우고 있다.
할머니들은 묻는다.
“아직도 식민지 시대인 줄 아나 보지요?”
이 책은 할머니들의 빼앗긴 날들을
이야기로 담아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다. 특히 할머니들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듯 사진 위에 물감을 덧대어 그린 장경혜 작가의 그림은 가슴 아프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 당시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새가 되어, 바람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던 위안부 이찌에, 은주는
이제 우리 곁에 소녀상으로 남았다. 그 시절이 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지, 그 작은 소녀상을 왜 지켜내야 하는지, 독자의 응답을
기다린다.
첫댓글 청어람주니어의 야심찬 신간...무거운 주제이지만 쉽게 읽힙니다.
장경선 씨 글 잘 쓰는 작가죠.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작가^^
@바람숲 예전에 잠깐 같이 일한 적이 있었어요. 주로 좀 무거운 주제의 글을 쓰더라구요.
위안부도 무거운데 731부대까지. 쓰면서 많이 힘들었겠다...
그러게 말이예요. 엄청 힘들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