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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사육신에 성삼문 (成三問)이 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 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의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체포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처형되었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수양대군이 성삼문을 굴복시키려고 그 아버지 성승(成勝)를 잡아다 대궐 뜰에 벗겨놓고서 쇠로 만든 인두를 숯불에 벌겋게 다려서 등에서부터 장단지까지 지져댄다. 그러면 살댕이가 지글지글 타면서 연기가 풀풀 나고 고기 익는 냄새가 나고 그런다.“
자, 니가 항복을 하면 니 애비가 이런 악형을 안 당한다고.”한다. 그러나 성삼문은 아버지가 그런 악형을 당하는걸 보면서도 눈도 깜짝 안 한다. 성승成勝이 그렇게 해서 죽었다. 그래도 항복을 안 하니까 종국적으로 성삼문의 서너 살 먹은 아들을 잡아다가 성삼문이 보는 앞에서 자루에다 집어넣고 기둥에 깨트려 죽인다.
그러니까 성삼문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그때 수양대군이 하는 소리가 ‘저런 역적 같은 놈 봐라, 지 애비는 인두로 지져도 눈도 깜짝 않더니 제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뵌다’고 한다. 그러니까 성삼문이 한 소리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왜 죽는 줄을 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서 왜 죽는지를 모르고 죽는다. 그래서 비정한 그 불의에 분해서 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가치관이란 그런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서 사육신도 되고 생육신도 된다. 사육신의 그 처절한 역사. 지나간 인류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아내와 자식들은 끌려가서 자기 옛 동료의 종이 되고,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 세 동생과, 맹첨(孟詹)·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당했다. 그렇게 철천지한을 맺고 죽었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도 그렇게 한 많은 세상이다. 그렇게 집안의 구족九族이 무참하게 죽은 신명은 그 원한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과거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올렸던 구명시식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한 유력 가문 며느리가 죽은 남편 영가를 천도하는 자리였다. 남편 영가가 오셨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 영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내가 시아버지에게 얼마나 괄시를 받았는지 알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그렇게 일찍 가면 어떡해?"
그러자 남편영가는 기가 차다는 듯 "아니,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구명시식 3일 전에 다른 남자와 자고 와?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몸가짐을 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잖아."
참 전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영가의 요청대로 그대로 적어서 부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 몰래 바람 많이 피웠잖아? 나는 당신 죽은 다음이고, 당신은 나 살아있을 때 바람 폈으니까, 쌤쌤으로 칩시다." 나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들어줄 수 없어 그냥 웃고 말았는데.구명시식에서 얻는 웃음의 힘. 이런 일이 있기에 아마도 구명시식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가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숙한 자리라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어떤 때는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돌아가신 영가님을 초혼하는 자리라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의식이 구명시식이다.
또 한분 남이장군의 억울한 죽음이 있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이 글을 지은 사람은 남이(南怡) 장군이다. 남이장군이 27세에 병조판서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장관이다. 고금에 없는 영웅호걸이었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다 했고,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버렸다.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사람이 스무 살 먹어서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할 것 같으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후세에 누가 그 사람을 대장부라고 일컫겠느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유자광(柳子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자광이 생각해보니까 남이라는 놈이 27세 먹은 게 벌써 국방장관이 되었으니, 자기 자신(自己自身)이 출세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게 생겼다.
가만히 보니 죽일 기회를 포착을 했다.
남이장군이 지은 시詩에서
‘남아 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라는 글에서 ‘평할 평平’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버렸다.
평할 평平 자, 평국(平國)이면 만고충신이 되는 것이지만, 얻을 득(得) 자, 득국(得國), 나라를 얻으면이라고 하면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것이다.
유자광이 그렇게 ‘득국得國’이라고 고쳐서 임금에게 고해 바쳤다. “저놈이 득국이라고 그랬습니다.” 하고. 임금이 듣고는 “하~ 그놈 참 역적놈이로고!” 했다. 역적 소리가 나면 이유 불문, 이유를 따질 것도 없다. 그건 죽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만고충신인 남이장군이 글 한 수를 지었는데, 유자광이 얻을 득得 자 한 자로 모함을 해서 아무 죄도 없이 죽었다.
서울에 가면 남이장군의 사당이 있다. 지나간 세상은 인류역사가 그렇게 전부 피로 물들었다. 지나간 역사 과정이라 하는 것은 너무 너무 한 많은 세상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 행위를 할 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왔다가 자기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 남의 뜻, 남의 압력, 남의 방해, 음해에 의해서 자기 행위를 하지 못하고 그냥 죽어 버렸다. 너무 너무 원통하고 분해서, 그 원한이 억만 년이 지나도 풀리지를 않는다. 또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나를 이렇게 해 놓고서 너는 잘 될 줄 아느냐?’ 하고 원수도 갚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3k8KOeS0uPg
영상물 5분 50초부터 여자친구를 살해해 감옥에서 만기 출소한 남자에게 죽은 여자친구가 따라다니고 있다는 내용.
세조에게 내린 현덕왕후의 저주
문종의 비(妃)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1418∼1441)는 1541년 단종을 낳고 사흘만에 죽었다.
세조가 즉위하고 나서 단종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종묘에서 위패가 제거되고, 무덤은 파헤쳐져 물가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한다.
그후 1513년(중종8년)에 복위되어 현릉 동쪽 언덕에 무덤이 옮겨지고 위패가 종묘에 봉안된다. 이렇듯 현덕왕후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 기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457년(세조12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세조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현덕왕후는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고 세조를 향하여 꾸짖었다.
“너는 참으로 악독하고 표독하구나. 내 아들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도 그래도 부족하여 벽지인 영월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구나. 네가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심하기에 이처럼 악착스러우냐.
이제 내가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세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한참 만에야 겨우 현덕왕후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지독한 놈! 그래도 살고는 싶은 게로구나!” 그러면서 현덕왕후는 세조의 몸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세조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 뒤였다.
세조는 반정 이후에 밤마다 잠자리가 좋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이런 꿈을 꾸고서 마음이 섬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 후 동궁 내시가 달려와서 황급히 아뢰었다.
“전하, 동궁의 최내관이옵니다. 방금 전에 세자 마마께서 잠을 주무시다가 가위에 눌리셔서 매우 위중하시나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세조가 급히 동궁에 행차해 보니 이미 세자는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실로 약 한 첩 써볼 겨를도 없는 급변이었다.
세조는 맏아들의 죽음이 형수인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기고, 관리를 보내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평민의 무덤(墓)으로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세조의 명을 받은 신하가 현덕왕후의 능을 파고 관을 꺼내려 했지만 웬일인지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
능에서 꺼내진 관은 34일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당했다가 물가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한편, 그 이후 세조에게는 또 하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현덕왕후가 뱉은 침을 맞은 곳에서 흉칙한 종기가 돋기 시작한 것이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 세조는 전국 방방곡곡의 명의를 불러모아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신통치 않았고, 그 어떤 신약을 써 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려보기도 하지만 효험이 없었고, 결국 죽는 날까지 이 악성 피부병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와 둘째아들 예종은 발이 썩는 질병으로 각각 20세에 요절한다(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급사하고,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
세조의 손자인 성종 역시 소갈증을 심하게 앓다가 38세로 사망한다.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1438∼1457)는 단종이 죽기 한달 전인 1457년 9월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혼령의 살(殺)을 맞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횡사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죽기 전에 늘 현덕왕후의 혼령에 시달렸으며, 그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공작재(孔雀齋)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恨이 남았다고 한다. 한恨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恨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민족이나 국가, 동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더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이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에 무슨 신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의가 있는가. 오직 독단과 죽음밖에 없다. 그리하여 모든 인사(人事)가 도의에 어그러졌다. 올바르게, 정의를 위해, 진리의 이름으로 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서로 충돌하고 싸우고 죽였다. 여기서 세세연년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온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피의 보복이다, 자살 특공대다, 그렇게 해서 원한을 풀겠다며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때린다. 그렇게 해서 원한이 풀어지는가?
오히려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는 눈덩이처럼 ‘원한의 확대사(史)’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한의 엔트로피, 즉 원한의 살기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좁은 실내에 유독 가스가 가득 차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가.
결국 폭발을 일으켜서 건물도 날려버린다. 천지에 원한의 살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경우는 다 놔두고도 그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비명횡사한 낙태아들의 원한만 해도 너무도 크다. 인간의 원죄나 업장론에 매여 단순히 참회를 한다거나 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탈렌트 이창훈씨가 호텔에서 본 신명(神明)
1995년 늦은 봄,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국내 연기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할 때다. 당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창훈씨는 유독 많은 대사를 외우기 위해 현지에서 독방을 썼다. 도착 이틀째 되던 날, 낮잠을 자던 이창훈씨는 이상한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얘길 나누는 두 소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한 이창훈씨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지갑 속의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돈을 셀 때마다 한 장씩 없어지는가 하면, 놀라서 지갑을 떨어뜨리자, 지갑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소녀들은 잠겨진 방문을 열지도 않고서 그냥 통과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밤이면 밤마다 소녀들의 혼령은 어김없이 출몰하여 이창훈씨를 괴롭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서 목덜미에 불어대는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만으로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던 차에, 로비에 모인 연기자들도 귀신얘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탤런트 '전현'씨도 낮잠을 자다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 잠을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자신의 목을 마구 조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호텔 주인장에 따르면, 앞서 이 호텔 3층에서 웬 아버지와 딸이 묵었다가 어느 날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들 혼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중에서
[공포ssul화] 배우들의 귀신 목격담?! 드라마 촬영 중 일어난 일!|#공포ssul화 MBC961108방송 - YouTube
이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 다 매몰돼서 자식이 애비를 찔러 죽였다느니 또 부모가 새끼를 죽였다느니 하고 매거(枚擧)를 하는데, 이 세상은 갈 데까지 다 갔다. 또 성(性)이 문란해져서 눈도 코도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죽을 사람, 살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 진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저 쉽게 얘기해서 부정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알캥이를 못 맺는다고 봐야 한다.
진리의 바탕이자 틀인 ‘우주 1년’ 가르침을 보면 이 지구촌 세상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우리는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종합적인 안목에서 그 실상을 이치적으로 전해 주고 있다.
‘우주의 가을이 온다.’ 이 말씀은 그동안 동서양의 모든 성자와 철인, 예지가들이 전한 ‘인류가 맞이하는 대변혁의 실상’과 더불어 ‘종교, 철학, 과학의 핵심 결론’에 대한 해답을 전해 주고, 더 나아가 ‘인류 구원의 문제에 대한 우주관적 해답’을 내려 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윤리와 도덕, 여러 가지로 해서 파탄 난 세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걸 씨종자를 추린다.
사람은 5천 년, 6천 년 전에 처음 시조 할아버지가 다음 할아버지 또 그 다음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이렇게 해서 처음 조상 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내게 와 있는 것이다. 이 씨종자라 하는 것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 억만 분지 1 퍼센트라도 바꿔질 것 같으면 그건 혈통이 바꿔진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백조일손(百祖一孫), 천조일손(千祖一孫), 할아버지는 백인데 손자는 하나다, 할아버지는 천인데 손자는 하나다.”라고 했다. 그저 씨종자만 남는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좋은 혈통만 살려서 후천 새 세상을 넘어가게 되어져 있다.
좋은 혈통은 조상들이 한 세상을 의롭게, 바르게 잘 산 자손들을 말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 붙이고, 속이고, 죽이고, 협잡질하고, 훔치고, 이렇게 해서 세상을 못 쓰게 산 자손들은 이번에 다 넘어가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도와주고, 살려 주고, 덕을 베풀며 산 혈통이 좋은 혈통이다.
적악가의 자손은 여러 천 년 내려오면서 그 조상들이 나쁘게 살아서, 그 조상들한테 해를 당한 신명들이 “저런 저 나쁜 놈의 핏줄이 어떻게 열매를 맺으려고 하느냐? 그 좋은 자리를 어떻게 가냐?” 하고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상의 음덕으로 사는 길도 찾고 잘 살게 된다.
인류역사가 생겨나서 이런 세상이 백 번이 있었든지 만 번이 있었든지 간에 각자 개인에게는 자기 부모 조상이 지금의 나를 있게한 첫번째 하나님이다. 흑인종이 됐건 백인종이 됐건 황인종이 됐건, 어떤 종류의 인간이건 간에 사람은 자기 조상이 첫째 하나님이란 말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내 위치에서 생각을 해 볼 때,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가?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있음으로써,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사회도 있고,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미물곤충 비금주수 등 만유의 생명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있을 수가 있나, 세상에.
인간의 원한 만큼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업보(業報) 만큼 큰 것도 없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한 맺히게 만들 경우, 그 업보가 자신 또는 자손에게 까지 이어져 무고한 후손이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사자(후손)는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사인 Y씨가 바로 그랬다.
약대 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약국을 운영해온 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그에게 선도 숱하게 들어왔지만 마음이 끌리는 자리가 없었다. 이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맞선자리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Y씨는 ‘인연이 조금 늦게 나타나려나보다’고 마음을 느긋이 먹은 터였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을 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화폐로 무려 2억원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한 채 끙끙 앓던 그는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필자의 책을 잃게 됐고 자기 집안에 자살, 사고사, 비명횡사한 친척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한 것이다.
구명시식 현장에서 Y씨 집안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갑부로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다. 풍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던 할아버지는 삼례 근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됐고 그녀와 함께 춤과 노래와 사랑에 취해 몇 달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삼례 여인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녀를 문전 박대했다.
피눈물을 흘리고 돌아선 그녀는 거리를 떠돌다 할아버지 집안을 저주하면서 굶어 죽었다. 물론 9개월 된 태아도 함께 죽었다.
바로 그 삼례 여인이 원혼이 돼, 할아버지 집안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집안의 마지막 남은 남자인 Y씨까지도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애증의 한(恨)이 모두 밝혀질 즈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구명시식 제단 위의 촛불이 꺼졌다.
몇 대를 거쳐 한(恨)을 뿌린 여인이 구명시식 영단에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몇 명을 죽음으로 이끌고 몇 억원을 사기 당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안의 대마저 끊으려 드는 여인의 무서운 집념이었다.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가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숙한 자리라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어떤 때는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돌아가신 영가님을 초혼하는 자리라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의식이 구명시식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시부모님 영가 구명시식을 올리는데, 의식이 시작되자마자 다짜고짜 며느리가 시부모님 영가에게 따졌다.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희한테 재산 한 푼 남겨주신 것도 없으시잖아요! 시부모님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구요. 아세요?"
아마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경제적으로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약속 위반이었다.
애초에 시부모 영가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린다고 해놓고 속사포처럼 영가님들을 공격하다니. 며느리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시부모 영가의 안색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부른다기에 힘들게 구명시식 자리까지 왔건만 오자마자 망신을 준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영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며느리는 계속해서 인신공격을 했다. "입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자식들을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해놓고 어쩌실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영단에서 큼지막한 사과 하나가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며느리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겁했다.
멀쩡한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며느리 이마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것, 어디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집안이 잘 될 리가 없지!" 참다못한 시부모 영가가 집어 던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입 다물고 죄송하다며 바닥에 엎드렸을 텐데 이 며느리는 한술 더 떴다. "뭘 잘했다고 저를 때리세요? 아예 저기 있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시죠?"
다른 참관자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라고 난리를 치고, 또 화가 난 시부모 영가는 다른 영가들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구명시식을 정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중세 마녀사냥
초창기 기독교에서 악마는 착한 신에 대적할 힘을 가진 존재였으나, 마녀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자 마녀가 등장했다.
유럽의 13~14세기는 혼돈의 시기였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교황의 권위가 추락했고 세속 왕들의 권력이 강해졌다. 1347년에 창궐한 흑사병은 전체 유럽 인구 3분의 1의 생명을 앗아갔다.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백년전쟁과 종교전쟁, 독일 농민전쟁,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등이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이전에는 작은 빙하기로 불릴 만큼 자연재해가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흉년도 계속됐다. 이렇게 불안과 공포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기도는 소용없었고, 기댈 데 없는 이들은 점점 이 모든 일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단에 대한 종교재판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단과 악마를 결합시켰다.
교황 요한 22세는 이단 심문관들에게 마녀를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한 교서를 내렸다. 뒤이어 즉위한 베네딕투스 12세는 악마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악마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마녀사냥’이 정식으로 개장한 것이다.
이단 심문관들은 의욕이 넘쳤다. 그들은 고발당한 마녀를 재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 나가 마녀들을 색출했다. 이단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남프랑스에서 그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교황의 발표 이후 1320년부터 1350년까지 이 지역에서 마녀로 기소된 자는 600명이었으며 그중 400명이 처벌을 받았고 200명이 불태워졌다. 각 지역마다 마녀재판이 수없이 열리자 1484년 교황 이노센트 8세는 마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공식 칙령을 내렸다. 이제 ‘분명한 이단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마녀들을 종교재판에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마녀사냥의 교과서 《마녀의 망치》
마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성직자와 신학자 사이에서 ‘마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녀의 정체와 그 구별법, 마녀재판 등 이 연구 결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유럽에 퍼져나갔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연구의 가장 큰 성과물은 하인리히 크레이머가 써서 1486년에 발행한 《마녀의 망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목적은 마녀재판의 형식과 방법을 정립하는 데 있다. 지역마다 마녀재판의 절차와 처벌이 달라 이를 통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 책은 ‘마녀사냥의 교과서’로 여겨질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마녀가 이단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2부는 하늘을 나는 방법, 악마와 짝짓는 방법, 인간을 짐승으로 바꾸는 방법 등 마녀의 행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3부는 체포부터 판결까지, 재판 절차와 심문에 필요한 조언과 심문관의 태도를 실었다.
《마녀의 망치》는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마녀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이므로 반드시 죽이라고 권고했다.
마녀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마귀와 교접한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도 죽여야 한다. 제사는 반드시 야훼에게만 드려야 한다.마틴 루터(1483~1546, 독일의 신학자)
정찬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기자, 광고 카피라이터, 홍보 등 줄곧 글 쓰는 업무에 종사했다. 정찬일 선생님 글 요약
참고문헌
・ 『마녀사냥』, 모리시마 쓰네오 지음, 조성숙 옮김, 현민시스템, 1997
・ 『마녀사냥의 역사』, 오성근 지음, 미크로, 2000
・ 『사탄과 약혼한 마녀』, 장 미셸 살망 지음, 은위영 옮김, 시공사, 1995
・ 『세일럼의 마녀들 : 1692년 마녀 사냥의 비밀』, 로절린 섄저 지음, 김영진 옮김, 서해문집, 2013
・ 『유럽의 마녀사냥』, 브라이언 P. 르박 지음, 김동순 옮김, 소나무, 2003
・ 「마녀사냥에 대한 민중문화사적 접근」, 김란숙 지음, 서강대학교, 1997
・ 「중세 말 근대 초기 유럽의 마녀사냥에 대한 연구」, 엄재호 지음, 협성대학교, 2012
케냐의 국부(國父) 조모 케냐타 曰, "선교사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땅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눈을 떴을 때 땅은 그들의 것이 되어 있었고 성경은 우리 손에 들려 있었다.
19세기 북아메리카나 호주, 뉴질랜드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백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들을 교육했는데, 오히려 원주민의 문화를 탄압하고 백인들의 문화를 강제주입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 선교사들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함께 아시아인들의 고유 문화와 종교, 신앙 체계를 미신이라 하여 갈아 엎으려 들었고, 이걸 막으려고 관과 법에 호소하면 오히려 열강 공사관의 권력을 앞세워 폭거를 일삼는 존재로 보였다.
첫댓글 증산도 이야기 같네요 ㅎㅎ
종교 이야기라는게
먼 미래 이야기, 좀비 이야기 처럼
현실감은 적어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ㅎㅎ
추억의 증산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