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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의 명칭 *1550년 미술가 ‘조르지오 바사리’의 설명에 기초하여 ‘모나리자’라고 불리는데, 모델의 이름을 따서 그림의 제목을 붙였으며, 부인을 뜻하는 Madonna의 준말인 모나와 그림을 의뢰한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 부인의 이름이 ‘리자 마리아 게라르디니’이기 때문에 「모나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세기 이전에는 이 명칭이 그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라 조콘다’로 불러 왔다. (조콘다의 부인이라는 뜻) *프랑스어로는 ‘라 조콩드’ *영어권에서는 ‘모나리자(Mona Lisa *19세기에 ‘한 피렌체 부인의 초상’ ‘면사포를 쓴 정부’라고 불리기도 했다한다. |
2) 그림속의 모델은 누구?
※오늘날까지 일치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으며 여러 설이 있는데 두 가지만 적어 본다.
① 피렌체의 여인이 모델-
*레오나르도의 첫째 전기 작가인 ‘조르지오 바사리’에 의하면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피렌 체 여인이 ‘모나리자’의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피렌체의 비단장사인 ‘프란체스 코 델 조콘도’이며, 상인의 아들 ‘안드레아’의 출산을 기념하여 이 작품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레오나 르도의 모델이 되었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슬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냈다.
②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델이라고 주장 ?
*뉴욕의 여류 예술가 ‘릴리인 슈워츠’는 컴퓨터 작업 중에 레오나르도와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일치 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모나리자 의 모델을 레오나르도 자신이었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레오나르도가 수년간 모델 없이 미 완성 작품을 계속 그리다보니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몇 가지 풍설이 더 있으나 생략한다.
3)「모나리자」 그림의 재료와 크기는?
* 화판은 포플라 나무로 된 목판이며. 유채(안료에 기름사용)룰 사용하였다.
* 작품 크기는 77×53cm이다. (15∼20호 사이정도)
4) 제작 연대는?
*재작 연대는 1503-1506(1507)년경이며 피렌체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밀라노 체류 시기에 도 그렸으며, 죽기까지 10년간 가지고 다녔던 그림이다.
5)「모나리자」가 미완성이라고 ?
*그리던 중 모나리자(모델)가 남편 따라 외국 여행을 갔다가 그만 병으로 사망하여 더 이상 못 그렸다고 하는 풍설.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를 완성하지 못한 것은 레오나르도의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기 때 문이라고 이탈리아 미술사학자인 ‘알렉산드로 베초시’가 발표했다.
레오나르도의 오른쪽 팔에 붕대처럼 보이는 천을 감고 있는 초상화가 발견됐고. 레오나르도는 왼손잡이라 그림을 완전히 그릴 수 없게 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작업하는데 힘들 것이라며 이런 마비증세는 손가락 마비증세로 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6)「모나리자」는 왜 눈썹이 없을까?
★미완성이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그 당시에는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사이에 눈썹을 뽑아 버리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이 여인도 눈썹을 모두 뽑아 버려서?
★학자 파스칼 코트는 미술 복원 중에 부주의로 눈썹이 지워졌을 가능성을 제기함.
★2009년 프링스 미술전문가가 특수카메라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레오나르도는 3차원으 로 표현하기 위하여 유약을 여려 겹으로 특수처리 하였고 가장 바깥에 그러졌던 눈썹이 오랜 세월동안 화학반응의 영향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주장을 하였다.
7)「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까지 간 경로는?
(역사적 경로에 정확을 기하기 어려움)
*레오나르도가 미완성인 「모나리자」를 보관하다가 말년에 프랑수아 1세의 프랑스 왕의 초 청을 받아 프랑스로 가서 프랑스 왕에게 「모나리자」를 팔았다. 1500년대 초로 4천 에퀴스(ecus)에 사들인 왕은 그림을 퐁텐블로 성(城)의 욕실에 걸어 두었다고 함.
그 후 여러 곳을 거쳐서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1800년 튈트리 궁전의 자신의 침실에 한 3년간 걸어 두었다고 하며, 그 후 1804년 생-클루성(城)에 들렸다가 나폴레옹 실각 후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비밀스런 곳으로 몇 번 옮겼으며, 2차 대전 당시 프랑 스가 히틀러에게 ‘영토는 침입하되 문화재는 결코 손대지 말라,’ 고 부탁한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8)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라는 의미는 ?
모나리자의 표정이 웃고 있는 건지, 우울한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알쏭달쏭한 표정 때문이지요.
9) 모나리자의 신비하고 묘한 표정에 사용된 기법 및 미친 영향.
(1) ‘스푸마토(sfumato)기법’ 으로 신비스러움을 간직-
★ 프랑스 화가 프랑크에 의하면 르네상스시대에는 인물화, 초상화를 그릴 때 경계를 명확하게 긋는 것이 일반적인 미술기법인데, 레오나르도는 명확한 경계선 대신 미세한 붓질로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어 부드럽게 표현하였다. 레오나르도는 다른 화가들이 시도하지 않는 독창적인 양식을 연구했고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푸마토(sfumato)라 한다. 스푸마토란 ’안개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인데, 쉽게 표현하면 먼 곳에 있는 사물은 색깔도 흐릿하고 선도 흐릿하다. 이 기법을 우리말로는 ’안개 마감법‘ 또는 ’공기원근법‘이라고도 하며, 스푸마토 기법으로 미세한 붓질을 반복해가며 탄생시킨 것이 바로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라는 것이다.
⑵ ‘신비의 미소’ 얼굴 표정은?
( 예시2: 빨강색 원안과 예시3의 배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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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표정의 핵심은, 입 가장자리와 눈 꼬리 부분의 표현인데,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에서 인간의 표정을 좌우하는 ‘입 가장자리’와 ‘눈 꼬리’를 스푸마토기법으로 세심하게 처리하여 입술과 눈꼬리에 선이 없어지며, 부드러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 두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할까, 눈과 입이 어떤 기분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모호함이 바로 신비감일까? 또한 눈썹이 없으니 더욱 신비로운 여자로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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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비한 미소의 표현이 ‘황금분할 비율’에 의해 그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 ||
*미국 안면(얼굴) 분석 전문가 스터픈 마코트는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의 비밀은 바로 고도의 계산된 과학적 비율에 의해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인체의 각 부분의 비율을 1:1.618로 황금분할에 따라 그리는 것이다. 즉 모나리자의 ❶얼굴의 가로 길이와 세로의 비율이 1:1,618이며, ❷코에서 턱, 코에서 이마까지 비율, ❸특히 콧망울 사이의 길이와 입술 길이의 비율, ❹인중과 입술 사이의 비율과 입술과 턱 사이의 비율도 1;1.618로 그려져 있어 안정감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신비한 미소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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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얼굴의 가로 길이와 세로 비율이 1:1,618 | ❸콧망울 사이의 길이와 입술 길이 의 비율 1;1.618 | ❹인중과 입술 사이의 비율과 입술과 턱 사이의 비율의 비율도 1;1.618 |
*황금분할: 흰선: 1, 붉은: 1.618을 표시함 |
(4) ‘모나리자’ 배경의 언밸런스 ?
| 왼쪽은 구불구불한 길이 보이는데 오른쪽은 호수가 있다. 왼쪽이 오른쪽 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그림에서 초점을 왼쪽에 맞출 때와 오른 쪽에 맞출 때에 높은 쪽의 인물이 약간 더 크게 보인다. 얼굴도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것 같이 보인다. 화가는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레오도르가 창안한 스푸마토 기법이며 배경의 선도 의도적으로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나리자 얼굴이 훨씬 도드라지게 보인다. 한편 스푸마트 기법으로 탄생시킨 모호함과 신비로움은 여인의 미소뿐만 아니라 배경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배경이 환상적인 풍경화인데, 양쪽이 서로 맞지 않는다. 어깨위에서 오른쪽 배경과 왼쪽 배경의 높이가 다르다. |
(2) ‘신비의 미소 비밀’ 을 밝힌 ‘스푸마토’ 작업과정을 보면-
★프랑스 화가 겸 미술사가 자크 프랑코에 의하면 ‘모나리자 신비의 미소 비밀’은 ‘스푸마 토’라고 불리는 초정밀 붓질인데. 방법은 먼저 밑그림을 그린 뒤에 극도로 묽게 섞은 한 물감으로 폭이 4분의 1mm에 불과할 만큼 아주 섬세하게 붓질해 나가는데 붓질의 길이도 2mm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미세한 붓질을 반복해 밑그림 위에 30겹 이상의 물감 충을 쌓아(덧칠)나갔다고 한다. 즉 노랑색으로 밑칠을 먼저하고 희석한 붉은 계열 물감으로 색조를 조절한 뒤 미세한 붓질로 음영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얇은 물감 층을 덧 씌웠다는 것이다.
섬세한 붓질을 위해 한 손에는 확대경, 또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작업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방법은 엄청난 노동량이 들어가게 되며 따라서 많은 제작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프랑스 박물관 기술 센타장 ‘티에르 모양’ 국장은 과학자 10여명이 특수촬영 장비를 동원 하여 76시간에 걸쳐 분석 작업을 했던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포프라 나무판 위에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여러 번 고친 흔적도 발견됐다. 그러나 그 방법은 덧칠이 아니라 지워낸 것이다.
*안료를 빨리 굳히는 재료도 사용하였다.
*큰 붓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은 것은 섬세한 터치를 위한 의도로 보인다.
*연하게 칠한 부분은 손가락으로 직접 작업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비의 미소를 머금은 창백한 얼굴은 색이 변한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의 손 색깔과 대비 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결과였다. 이것이 이 그림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일조를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작품 중에 스푸마토 기법의 작품,<참고>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그리스토의 세례
(3) 모델의 질환
이탈리아 팔래르모대 비토 프랑코 교수는 모나리자 지오콘도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는 것으로 작품 속에서 나타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모나리자의 ‘신비의 미소’는 왼쪽 눈꺼풀(눈두덩)에 노랗게 지방이 피하 축적된 ‘안검 황색 증’이 보인다고 설명하고, 부풀어 오른 듯한 왼손은 명백한 지방종의 중세가 엿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원인은 지오콘도 부인의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4) 모델의 기분전환을 위해 악단초빙-
모나리자가 모델을 하고 있을 때 안타깝게도 자식을 잃고 슬픔에 젖어 있을 때여서 네오 라르도는 광대와 악사를 불러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녀를 웃기려 애를 썼지만 그 때 억지로 웃는 웃음이 바로 모나리자의 웃음이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11) 「모나리자」의 수난사건에 대하여-
① 도난 사건
*100년 넘게 루브르 미술관에서 전시되어 있던 「모나리자」가 1911년 8월 22일에 사라졌다. 그림이 사라지자 박물관은 물론 휴관하고 프랑스 국경까지 폐쇄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범인은 20대의 이탈리아 화가였다. 범행 동기는「모나리자」를 조국의 품으로 돌려 주고 싶다. 이탈리아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약탈해 간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애국이라 여겨 비밀을 간직하고 2년 동안 조용히 보내다가 피렌체 미술상에게 그림을 팔려다가 진품임을 확인받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시인 아폴리 네르와 피카소가 사건과 연루되어 곤혹을 치렀다. 시인 아폴리네르는 구금까지 됐을 정도였다. 그 후 1914년 「모나리자」는 루브르로 돌아가게 되었다.
② 산(酸)을 뿌린 사건
*1956년 신원미상의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 하단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③ 돌멩이를 던진 사건
*1956년 12월 30일에 「모나리자」의 팔굼치에 돌멩이가 날아 왔댜. 범인은 볼리비아 ‘빌레 가라’라는 남자가 돌을 던진 것이다. 범행 동기는 비록 경찰서 유치장일망정 따뜻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했다.
④ 찻잔을 던진 사건
*2009년 8월 2일 한 러시아 여성이 찻잔을 모나리자를 향해 던졌다. 방탄유리 상자에 들어 있어 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 여성은 체포되어 정신질환 유무와 동기를 알아보았다.동기는 프랑스 국적을 못 받아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다. 정신질환은 이상이 없고 그 후 석방되었다.
12) 「모나리자」의 해외 나들이(전시)는 딱 두 번.
① 1963년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순회전시.
해외 전시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1961년 케네디의 프랑스 방문 때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재클린의 매력에 빠져, 미국 전시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 전시가 이루 어진 것이라고 한다. 관람객이 워싱턴에서는 4주 동안 68만명, 뉴욕전시 때는 워싱턴의 2배 가까이 관람인파가 몰려 야간 개장까지 했다. 미국 순회전시를 위한 보험에 1억불로 감정하였다고 하며, 그 이후에는 손해보험을 감당하지 못해서 해외 전시가 이루어지지 않 았다.
② 1974년 4월에 일본 도쿄에서 전시.
그 당시에 이번 일본전시가 해외전시로 마지막이라고 프랑스 정부가 선언했으며, 일본 전시 때 4천3백만 달러의 보험에 들었고 손해보험을 일본 국가가 보장하였다. 1974년 4월 17일 일본에 도착하자 국빈대우로 30여명의 무장경호를 받으며 장갑차로 박물관까지 수송하였다.
19일부터 관람 시에 3명이 한 줄로 서서 16초씩 관람하도록 제한하였다고 한다.
◉ 모나리자의 그림가격에 대해- *어떤 자료를 보면 루브르 연간 입장객 수: 830만명(하루 25,000명)∼900만명(약 30,000명) *휴무일: 매주 화요일. 새해첫날, 노동절, 12월 25일 *입장료: 12유로(일반적으로 구매하는 입장료) *수익률 또는 환원이률 5%로 계산해서 약 40조원이랍니다. ★참고로 2015년 2월에 사상 죄고가격에 팔린 그림이 ‘폴 고갱’의 ‘너 언제 결혼하니?’가 약 3억 달러 (3,269억원)에 개인이 산 가격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참고로 1963년도 미국 전시 때 보험감정이 1억불이면? (현재로 7억불 정도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원화로는 약 7,931억원 ? ) |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과 각종 재해방지를 위해 방탄유리로 씌워진 신세가 되었지만, 하루에도 2만여 명의 방문객이 모나리자를 보러 오는 것이다. 이 그림은 미완의 명작, 표정의 수수께끼, 배경의 언밸런스, 보는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준 스푸마토 기법, 많은 풍설이 전해지고 긴장과 감정이 함축된 작품으로 인류 역사상 제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불후의 명작으로 온갖 명예를 독차지하고 있다.
첫댓글 저 처음이라 잘 살펴보지 않고 올려놓고 보니 [가입인사방]이 적절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흥미있는 글 입니다
매우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