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아 누렸지만, 반복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을 행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전에서도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頑惡)함을 기록하고 있지만, 어제 본문에 이어 오늘의 본문에서도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악행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과 33절은 민수기 20장에 기록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신(Zin) 광야의 가데스(Kadesh)에 머무를 때에 물이 없음으로 인해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께 불평하여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는데, 이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화를 내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자 물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물을 주실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물을 내는 것처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하신 것과는 달리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을 지적하시면서, 결국 모세는 이 일로 인해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반석에서 물이 나와 샘이 된 곳을 므 리바(Meribah) 샘이라고 불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고 원망하여 일어난 이 사건으로 인해 모세에게 재난이 내려진 셈입니다.
34절부터 42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정착하여 살게 된 때부터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할 때까지의 상황을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 때부터 이방 민족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이방 나라들의 문화와 삶을 따라 하기도 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을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바치며 제사하는 악한 일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결국 이방 나라의 손에 넘겨져서 이방 나라의 지배를 받고,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그 긴 세월의 역사(歷史) 속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우상도 섬기면서 이방 민족의 풍습을 따르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43절부터 46절은 악행을 반복한 이스라엘(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라는 43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악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돌봐주시고, 건져주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교묘하게 하나님을 계속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죄에 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44절~46절).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에서 다시 이스라엘(유다)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47절). 정말 몸 둘 바를 알 수 없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러한 부끄러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되돌아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47절과 48절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을 향해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구원받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찬송가 151장의 3절에 나오는 가사처럼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위해 나 자신을 힘써 드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 온전히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