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대의원 얼굴 외우기 열중 ... “정규직이 때리면 맞아라”
희망버스 날, 뜯겨진 철책 앞에서 1m도 뒤로 못 물러난 채 밤샘
알바와 건설현장 10년에 비하면 경력없이 가능한 꿈의 직장
그는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학교생활 내내 온갖 알바와 중소기업 인턴, 봉사활동에 이골이 났다.
<울산저널>이 지난달 20일 현대차 희망버스 때 시위대와 맞닥뜨린 채 밤을 새야 했던 회사의 계약직 보안인력팀 직원 이모 씨(29)를 만났다. 30대 문턱에 선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노조원들이 우릴 ‘용역깡패’라고 부르는 게 맘이 아프지만, 없는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 온갖 알바와 건설현장 노무직을 경험하다가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희망버스때 이씨 등이 시위대와 맞섰다. ⓒ용석록 기자
그는 지난 6월 인터넷에서 우연히 현대차 ‘촉탁계약직’ 채용공고를 봤다. 보안인력 부문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근무조건보다 좋았다. 우선 근무시간과 월급, 복지 혜택도 그 전에 결코 누리지 못했던 높은 수준이었다. 더욱이 ‘현대자동차’라는 이름이 주는 힘이 좋았다.
요즘처럼 스펙 많이 따지는 세상에, ‘무(無)스펙’으로도 응시가 가능하다니. 게다가 고소득까지, 꿈만 같았다.
부푼 꿈을 안고 밤을 새워 준비를 해갔지만 면접은 싱겁게 끝났다. 신체검사에선 악력(握力)을 주로 봤다. 건설현장에서 단련된 그는 손쉽게 통과했다.
들어간 곳은 현대차 보안인력 6개월짜리 촉탁계약직이었다. 잘만 하면 2년까지 연장계약이 가능했다.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에 무슨 큰 가치가 있을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기업 현대차는 그동안 그가 다닌 중소기업보다 월급이 최소 배 이상이었다. 여기서 1년이면 중소기업에서 2년 일하는 것보다 많이 받는다. 연장근무 수당도 나오기 때문에 장시간 근무에도 불만이 없다.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서류전형을 통해 면접보고 들어 올 수 있어 취업문도 낮다.
신입교육까지 마치고 지난달 첫 출근 바로 다음날 노사가 대립하는 현장에 투입됐다. 신체검사 때 사용한 악력은 엉켜서 싸우는 노조원들을 떼어내는 데 사용됐다. 싸움이 끝난 뒤 반장께서는 “이거 낼부터 안 나오는 것 아냐?”라고 농담처럼 한마디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출근해보니 어제 보이던 동료 몇 명이 안 보였다.
회사는 과거 용역업체를 따로 두고 400명 정도를 경비용역으로 부렸다가, 최근 그 업체와 해약하고, 촉탁계약직으로 80명씩 뽑고 있다. 8일 접수를 마감하는 5차 응시자까지 다 뽑으면 다시 400명이 된다.
06~14시, 14~22시, 22~06시까지 정확히 3교대로 일한다. 주말 토,일요일엔 12시간씩 2교대다. 새벽 6시 출근에 맞춰 집에서 택시를 타야 한다. 차가 있지만 주차장조차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이씨는 동료와 함께 택시 카풀을 한다.
이씨는 지금 정규직노조 대의원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 바쁘다. 대의원을 때리면 안 되는 게 불문율이다. 이씨는 지난달 10일 울산공장 노사 마찰 때도 대의원 얼굴을 몰라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어떤 대의원은 “대의원입니다”하고 들어가지만, 어떤 대의원은 “이××가 내가 누군지 알고”라고 대뜸 욕부터 하고 본다.
지난달 20일 밤 희망버스 땐 밤을 새워 36시간을 연속 근무했다.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현장에서 그들은 뒤로 1m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시위대가 휘두른 만장에 그의 투명 플라스틱 방패는 몇 번이고 부서졌다. 방패가 부서져 물러나려는 그에게 정규직과 반장들은 새 방패를 쥐어줬다. 200명도 안 되는 계약직들 뒤엔 1천명에 가까운 정규직들이 서 있지만 담배 피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씨는 “그렇게 많은 소화기가 어디서 다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행사 뒤에도 근무는 들쭉날쭉했다. 어떤 날엔 아산공장으로 간 노조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4시간 동안 예고도 없이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그렇게 이씨가 받은 돈은 1~2주일치만 해도 120만원이었다. 여기에 따로 나온다는 수당까지 챙기면 월 300만원이 넘을 것이다.
임단협을 코앞에 둔 회사는 희망버스나 각종 집회 때문에 대립 중이다. 그가 보기에 노조가 ‘진짜’ 이를 갈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영향력을 주기 위해 좀 극단적으로 가는 것일뿐. 회사는 이에 대한 대처 인원이 필요하다. 정규직들은 몸싸움 하기를 꺼려했다. 이 때문에 ‘그들’이 필요하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노조와 대처해 소모될 수 있는 인원들이.
결국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이 바로 그들이다. 회사도 계약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면 언제든 자를 수 있다. 그들은 노사 양측의 입장을 좁히기 위한 ‘소비 수단’일 뿐이다.
이씨는 “양측이 우리를 소모품으로 삼는데, 우리도 노사의 줄다리기 줄이 아닌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나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 근교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셋방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