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빠세나디 왕은 사왓티의 자기 왕궁 위층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왕은 수 천 명의 빅쿠들이 탁발을 하기 위해 거리를 지나 아나타삔디까 쭐라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 빅쿠들은 어느 집으로 탁발들을 가시는 건가?"
시종이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저 수천의 빅쿠들은 매일같이 음식이나 약품을 공급받기 위해서 아나타삔디까 쭐라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십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빠세나디 왕은 자기도 그들과 같이 빅쿠 상가를 위해서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곧 수도원으로 부처님을 찾아 뵙고 빅쿠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빅쿠들을 초청하게 된 왕은 이레 동안 부처님께 자기가 직접 공양을 올렸고, 마지막 날에 이르러 부처님께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후부터는 매일같이 제 왕궁에 오시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는 한 곳에서 규칙적으로 공양을 받는 법이 아니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하기 때문이오. 여래는 그들의 집을 골고루 방문하여 그들의 정성을 받아 주지 않으면 안 되오."
"부처님이시여, 정 그러시다면 한 분의 테라님만이라도 규칙적으로 저의 왕궁으로 탁발 오시도록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왕의 청을 받아들여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테라를 왕궁에서 공양받는 빅쿠로 정하시었다.
그래서 아난다 테라가 중심이 된 일군의 빅쿠들은 매일같이 왕궁에 가서 공양을 받게 되었다. 왕은 빅쿠들이 도착하면 자기가 직접 받따를 받아 들고 음식을 담아 빅쿠에게 건네주곤 했다. 왕은 그처럼 자기가 직접 빅쿠들을 공양하면서, 시종들은 다만 자기를 돕는 데 그치도록 했다. 이같이 공양을 베풀던 도중 여드레째가 되던 날 왕은 정신이 약간 흐트러져서 직접 공양 올리던 일을 소홀히 했다. 그러자 빅쿠들 간에 이런 말이 돌았다.
"이제 왕궁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앉을 자리를 권해주지 않는다. 혹시 왕이 챙겨서 명령을 내리면 모를까 왕궁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다른 곳으로 탁발을 가도록 하자."
그래서 빅쿠들은 다른 곳으로 다 떠나고 책임이 있는 아난다 테라만 혼자서 왕궁에 가 음식을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왕은 많은 빅쿠들을 공양하지 못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제자가 있다. 아난다 테라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 특별한 인연을 가진 제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법을 수호하고 빅쿠 상가를 지키는 신심 깊은 사람들인데, 이는 빅쿠 상수 제자인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테라, 빅쿠니 상수제자인 케마와 웁빨라완나 테리, 남자 재가신자로서 으뜸인 찟따와 핫타까알라와까, 그리고 여자 재가 신자로써 으뜸인 난다의 어머니 웰루깐타끼와 쿠주따라를 말한다. 이들 여덟 사람은 과거 전생부터 큰 서원을 세우고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하여 금생에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가 된 것인데, 아난다 테라도 이들에 못지않아서 과거 십만 겁 동안을 큰 서원과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초인적인 인내와 으뜸가는 지혜로써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며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마련이었다.
빅쿠들이 왕궁을 떠날 시간이 되어 음식을 살펴 본 빠세나디 왕은 많은 음식이 건드려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빅쿠 존자들은 오늘도 오시지 않았느냐?"
"예, 오직 아난다 테라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빅쿠들이 나에게 큰 손해만 끼치는구나!"
이같이 화를 내고 그는 곧 부처님을 찾아 뵙고 자기의 심정을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늘도 오백 명의 빅쿠들이 드실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직 아난다 테라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의 제자들이 대왕에게 가지 않은 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곧 빅쿠들을 불러서 수행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는지, 그 바른 태도에 대해 이렇게 설법하시었다.
"빅쿠들이여, 어떤 집에 아홉 가지의 결함이 있으면 빅쿠들은 그 집에 가서는 안 되며, 만일 부득이하여 방문했을 때에는 그 집에 들어가 앉아서는 안 되느니라. 무엇이 그 아홉 가지인가? 가족이 모두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 때, 가족이 모두 반갑게 인사하지 않을 때,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지 않을 때, 그들이 소유한 것을 감출 때,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했거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게 공양을 올리거나, 좋은 음식이 있으면서도 나쁜 음식을 공양할 때, 공양 올리는 마음이 존경스럽지 않고 불경스러울 때, 그들이 앉아서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자 청하지 않을 때, 그들이 기쁘고 즐겁지 않은 목소리로 말할 때 등이니라.
빅쿠들이여, 그런 집에는 가지 말아야 하며 그럴 책임도 없느니라. 또 행여 그런 집을 방문할 때에는 그 집 안에 들어가 앉아야 할 책임이 없느니라. 빅쿠들이여, 그러나 어떤 집에 아홉 가지 좋은 태도가 있으면 그 집은 빅쿠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느니라. 그런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방문하도록 해야 하며, 만일 방문했다면 마땅히 집안에 들어가 앉아야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 아홉이란 무엇인가? 빅쿠가 그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족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며,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고, 가진 것을 감추지 않으며,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여 다 공양하고, 좋은 음식을 공양하며, 불경스럽지 않고 존경하는 태도를보이며, 공양이 끝난 다음에는 여래의 가르침을 청하고, 그들이 즐겁고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이 같은 설법을 듣고 빠세나디 왕은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빅쿠들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부처님의 혈족을 왕실에 두어 빅쿠들에게 공양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왕은 왕궁으로 돌아오자 곧 사신을 까삘라왓투에 보내어 사끼야족의 공주를 자기 왕비로 삼겠다고 제의했다. 이 요청을 받은 사끼야 족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마하나마 왕(정확히는 왕족)과 노예 사이에 태어난, 아주 예쁜 와사바캇띠야를 공주로 만들어서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