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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떨켜 없는 사람들/ 박혜숙 소설가
땅 끝이라고 새겨진 표지 석 앞에 태현은 서있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바닷가에서 보는 수평선은 푸르고 둥글게 펼쳐졌다. 태현의 머리 위로 바람은 요란스럽게 분다. 하필 바람맞이에 심어져 자라지 못한 상수리나무도 태현의 머리카락처럼 나부낀다. 첫사랑 그녀가 여기에서 보낸 엽서 그대로다.
아내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자고 했을 때 태현이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여기였다. 가우디의 건축물도 알함브라의 궁전도 아닌 이 바람맞이에 서보고 싶었다. 사는 게 늘 바람이었던 그는 컬럼버스의 배가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가 나타나리라는 꿈을 품었던 사내의 흔적을 쫓아가고도 싶었다.
퇴직을 하고도 시간에 쫓기며 사는 부부에게 한 달이란 휴가가 생각지도 않게 연말에 떨어졌다. 손주 남매를 보느라 묶이었던 줄을 풀고 날 수 있는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아내는 우선 1주일은 내가 있는 용평에 와서 그간의 피로를 잠으로 녹여내었다. 먹고 자고 멍 때리고 그러다 황금 휴가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현에게 가고 싶은 데를 말하라고 했다. 10월에 인도를 같이 다녀온 팀이 스페인을 가자고 했을 때 태현은 무조건 가자고 했다. 하지만 손주들이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있어야하는 현실에 아내가 다음으로 미뤘다. 시간을 뺄 수 없어 포기했던 아쉬움을 소환하여, 대서양의 바람을 맞닥뜨리고 싶어 신청을 해버렸다.
딸은 같이 괌을 가자고 했다. 거기가면 뭐 보느냐고 했더니, 볼 것은 반 나절이면 다보니까 휴양지에서 그냥 쉬는 거라고 했다. 아내는 단칼에 따로 갈 거라고 잘랐다. 이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날도 별로 없다. 보고 싶은데 못 본 게 너무 많다. 젊었을 때 남미 마츄피추를 못 본 게 너무 아쉽다며 지금 갈 수 있는 것을 보러가자고 했다.
우리의 도전에 자극을 받았는지 5살짜리 손녀와 비행기를 타기를 걱정하면서도 하와이로 행선지를 바꿨다. 여행은 가기 전 준비하는 설렘이 가장 달콤하고 두렵다. 10년 전 결혼 30주년에도 패키지여행을 떠나면 제일 나이가 많았다. 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아프지 말고 쳐지지 말아야 한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좋다는 것을 먹고, 영양제 주사도 맞으며 체력을 길렀다.
일주일 전부터 캐리어를 쩍 벌려놓고, 준비물을 채웠다 꺼내기를 반복했다. 짐을 줄이는 방법은 정리할 옷을 넣어가지고 가서 까만 봉지에 하루씩 입은 후 버리고 오는 것이다. 봉지마다 개봉해 입고, 얌전하게 싸서 내놓으면 캐리어가 깨끗하고 돌아올 때 캐리어 공간이 넉넉해 선물로 채워온다. 이 기회에 집안도 가뿐해지는 맛을 즐긴다.
KAL은 24시간 전에 좌석을 열어놓는다고 신청하라고 했는데 정해진 시간에 안 열렸다. 짐 부칠 때 좌석 배정을 받기로 하고 공항에 가니 역시 우리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열려 자리 배정을 받아온 집도 많았다. 부부는 너무 빨리 포기하고 다시 시도해 보질 않았다. 덕분에 부부가 나란히 앉을 자리가 없어 통로 쪽으로 앞뒤로 앉았다. 옆자리들은 좌석 지정을 받은 젊은 부부들이 앉아 바꿔 달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보니,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자폐학생 남자아이와 부부가 여행하는 팀이 제일 대단해보였다. 태현은 그 부부의 용감함을 보며 그들 또한 떨켜를 갖지 못한 나뭇잎임을 표정에서 알아보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직장을 다니면서도 얼굴에 가득한 그림자가 얼마나 힘들게 그 아이를 키우는지 말해줬다.
가이드 설명을 방해하고 시간 내 차에 오르지 못해 한참씩 기다리는 일이 있어도 일행 모두 따듯한 눈길을 보내며 20명이 다 함께 아픈 아이를 돌보았다. 일행 중 제일 행복한 그는 살며시 손을 잡고 맛있는 것을 달라고 할 때 그 순진한 눈빛이 여행의 피로를 녹이곤 했다. 23년 차 가이드도 평균 연령이 상당히 작다고 하며 철학적인 마력으로 안내를 하고 태현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배려해주어 와인을 많이 샀다.
첫 방문은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이다. 1700년대 전소된 요새에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 따 2800여 개의 방을 가진 필립이 지은 궁전이다. 마드리드 왕궁은 1734년 화재로 전소된 곳에 부르봉가 왕가의 시조이며 베르사이유 궁에서 유년시절 보낸 필립 5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돌과 화강암으로만 건축했다.
아들인 카를로스 3세 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후안 까를로스 현 국왕의 조부인 알폰소 8세가 왕정의 문을 내린 1931년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었다. 한 면의 길이가 140m에 이르는 장방형의 건축물로서 19세기 식 내부 장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왕궁은 초기 안달루시아의 플라멩고부터, 이태리의 르네상스 거장에 이르는 그림과 타펫 화들로 되어 있다. 1931년까지 국왕의 거처였으며, 현재는 박물관,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국빈리셉션 등 국왕공식행사를 왕궁에서 거행하고 있어 행사가 있는 날이 많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 벨라스케스 컬렉션을 보았다. 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루부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며, 회화관으로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다. 마드리드문화관광의 최고 명소이다. 비야누에바에 의해 1819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미술관으로 소장품은 약 6,000점으로 전시되는 것은 3,000점에 이른다.
1층은 아내가 좋아하는 루벤스 작품이 많았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에게 ‘한복을 입은 남자’ 품위 있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소더비경매장에서 팔려나갔다며 베니스 개성상인 책3권을 꼭 읽어보라 한다. 2층의 고야 전시실에 있는 유명한 <옷을 입은 마야와 나체의 마야>를 보았는데 태현은 목발을 짚고선 노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있었다.
유럽 곳곳의 미술관을 돌면서 말이 앞발 둘을 들고 있는 것이 그렇게 좋은 말을 탈 수 있는 지위를 상징하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왕비나 고관을 태운 말은 한 발을 들고있다고 전문적인 가이드의 설명은 대단했다. 좀 더 걸어가 엘 그레코의 사실적인 그림도 보니 참 좋았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으로 왔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길 위에 네온사인처럼 했다. 거리마다 다른 모습으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파라솔의 솔이 델 솔이란 이름에서 유래되었단다. 태양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광장, 알 칼라 문을 관광하고, 카를로스 3세의 명으로 만들어진 독립광장의 웅대한 문도 보았다.
현지가이드는 선경을 다니며 번 돈으로 해외여행을 마치고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우러 유학 왔다. 170cm의 늘씬한 키에, 미모의 그녀에게 운명적으로 스페인 남자가 다가왔다. 유학생의 외로움을 따뜻한 스페인 가족들이 녹여주고 서로 사랑했다. 그녀는 친정 식구들의 등골을 빼고 결혼한 자칭 ‘부모님의 먹튀’로 수준 높은 설명은 최고였다.
국제결혼을 해서 이곳에서 사니까, 우린 그들의 삶을 정확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엔 일찍 집에 와서 가족주의적인 스페인 가정, 보습학원을 안 다니는 열린 교육, 초등학교도 60점 이하는 유급을 시키며 고등학교까지 일정한 실력이 넘으면 진학하고 대학 들어가는 것도 쉽지만 졸업하긴 어려워 이 때 학원을 다닌다.
대부분 2시면 퇴근한다는 직장인, 배가 나오고 담배 피우는 남녀가 많지만, 혈관이 올리브, 발사믹 식초, 유기농 식품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세계 2대 장수국가임을 자랑했다. 올리브 오일이 많이 나오는데 60단계의 여러 가지 제품이 나온다. 그 중 냉침 법으로 파랄 때 따서 바로 담은 올리브가 최고라고 해서 사왔다. 그리고 모로코에서만 난다는 아르간 오일도 샀는데, 피부를 윤기 있게 하고 가려움증이 낫는 신비한 오일이었다.
이 나라는 하루에 5끼를 먹는 맛의 고장이다. 넓은 땅에 제대로 기른 야채와 과일로 만든 음식들은 맛있었다. 과일을 썰어 넣고 포도주를 넣은 상그리아 음료도 맛있었다. 노란 죽이 나와 강황이냐 물었더니, 샤프란이다. 비싼 빨간 향신료가 실고추 같이 생겼는데 요리하면 노래지고 깊은 맛이 났다.
스페인은 하몽 돼지 다리를 숙성하여 썰어먹고, 에그 타르트, 츄러스 등 못먹어본 특식이 여행 내내 나왔다. 해외 여행하다보면 한국음식을 몇 번 먹여주는데, 스페인은 한국식당 진출이 거의 없어 딱 한번 김치찌개와 닭볶음탕을 먹었다. 매끼 나오는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와인 입이 점점 고급이 되어가지만 닭요리와 감자는 너무 나와 질렸는지 체했다.
오후엔 톨레도 중세 마을을 배를 타고 돌아보았다. 다리 6개가 연결된 오래된 마을은 중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구스타프 에펠이 금문교와 비슷하게 설계한 다리로 생산한 것을 옮겨 팔아 포르투갈엔 세계적인 거부들이 있다.
귀족들은 위쪽에 살고 가난한 사람들이 낮은데 사는데, 우리나라의 달동네 개념과 정 반대였다. 이동 수단이 발달해 높아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일까? 유럽을 5번째 오는데 어느 나라나 높은 데가 살기 좋은 곳인 것은 공통이다.
선택 관광으로 꼬마 기차를 타고 도시 위 산꼭대기로 올라가 숱한 전쟁의 역사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 살기 좋은 지중해를 두고 힘센 자들의 땅뺏기가 계속되고 종교 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16세기 모습이 온전히 지켜진 중세도시 모습을 조망했다. 유럽은 이제 기독교 국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엄청난 규모와 모습을 갖춘 대성당 산토 토메교회도 보고, 고풍스러운 톨레도 구 시가지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18세기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성당 클레리구스 성당과 종탑을 보았다.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와 있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포르투갈에 왔다. ‘칼’이 아니라 ‘갈’로 발음하라고 다녀간 사람들은 제대로 발음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1세기부터 유럽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나라가 포르투갈이었고 현재 21000달러 국민소득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나라가 뒤처지고 있다.
천 만 국민이 우리나라만한 땅에서 살고 있다. 포루트 와인은 대서양 거센 해풍에 익어 달고 톡쏘는 16도의 와인이었다. 국조는 수탉으로 포크 세트와 냄비받침 등을 샀다. 포르투 와인은 우리나라에선 한 병에 80만 원한다는데 5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었는데 무거워 1병만 사왔다. 귀국하여 연말 모임에, 회와 함께 13명 가족 전체가 만나 연말 분위기를 내는데 30유로를 투자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번 여행의 특색은 대부분 하루 정도 머무는 것이 다른 코스들 여정인데, 2박3일 포르투갈을 여행한다. 정열적이고 낙천적인 스페인에 비해 지적이고 어두운 이미지가 느껴지고 돌이 많았다. 해리 포터의 영감을 얻었다는 렐루 서점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메모하고 다녔다.
포르투 구시가지 관광 후 카톨릭 교회가 공식 인정한 성모 발현지인 파티로 이동했다. 성모마리아 발현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파티마 성당은 목동의 3남매가 성모마리아를 6번을 매달 만났다. 아래 남매 둘은 예언대로 죽어 천국에 갔다. 성모 마리아 마지막 발현 날 온 숱한 병자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큰딸은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종식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나타난 성모마리아에게 감동하여 수녀가 되었다. 영혼은 여기에도 분명히 있다. 사후세계를 믿으며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삶의 엄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마침내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포르투갈 땅 끝 마을에 왔다. 태현은 엽서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 첫사랑은 어찌 되었을까? 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향해 그녀를 불러보았다. 캠퍼스 커플로 대학 내내 붙어 다녔는데, 태현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되어 다니는데, 그보다 공부를 잘 했던 그녀를 회사에선 여자라고 자꾸 떨어트렸다.
신입사원이 되어 정신없던 그에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속을 태우더니,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곤 이곳에서 엽서 한 장 달랑 보내온 것이다. 영어로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We are tired in life. 포루투갈 땅 끝 마을에서. 여행 내내 이 거리를 그녀도 걸었을까 묻고 또 물었다. 언제나 작은 체구에도 당당하던 민영이 가슴 밑바닥에서 부상해 올라오곤 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왔다. 테조 강과 리스본 시내가 내려다 에두아드르 7세 전망공원에서 조망하고, ‘툭툭 투어’ 옵션인 작은 차를 4명씩 타고, 리스본 관광을 했다. 8.7의 지진이 도시 대부분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이 죽었다. 이탈리아는 지진으로 폼페이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묻혔는데 여긴 지진으로 대재앙을 만났다가 새로 건설되었다.
당시에는 통신이나 언론이 빨달하지 않아 리스본 거의가 부서진 그림을 판화로 만들어 찍어서 퍼져 나갔고, 유럽은 지진에 대한 공포에 빠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시의 아수라장을 머릿속에 그리니 진저리가 쳐졌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리베르다데, 샹젤리제 거리, 제로니모스 수도원 관광 후 다양한 건축양식이 녹여진 포르투갈 리스본의 예술의 백미 벨렘 탑을 보러 바닷가로 나왔다. 바다 위 성을 떠올리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아래는 감옥인데 밀물이 되면 죄수들 방까지 죽지 않을 만큼 바닷물이 들어왔다 썰물이 되면 빠져나간다는 얘기는 여행이 끝나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이 부분이 방영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자유시간에 벨렘 에그 타르트가 유명한 곳에 갔다. 이 교수네 부부가 사주어서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 하다 보니, 어린 시절 원효로에서 같이 산 후배임을 알았다. 9일 간 타고 다니는 버스에도 바로 뒷자리에 앉아 많은 도움을 받고, 캐리어도 늘 넣어주고 꺼내주더니, 후배라니 더욱 정감이 가서 식사 때마다 같이 먹고 마셨다. 예의 바르고, 봉사하는 고품격 부부였다.
이번 여행 옵션 중 최고인 베나길 보트 투어가 우기인 겨울에는 안 된다 하여 가장 아름다운 곳 콩데나스 트래블러 선정, 베나길 지역으로 이동했다. 황금빛 모래 알가르베 해변에서 자유 시간을 지냈다. 포르투갈 남부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고운 모래사장을 걷고 대추야자 열매를 보았다. 윈드써핑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스페인으로 들어왔다. 국경을 넘는 데는 어떤 제재도 없었고, 시간이 1시간 차이가 날 뿐이었다. 다음날 들른 세비아 대성당은 유럽 3대 성당이다. 파이프 오르간이 얼마나 큰지 120 명이 함께 불어야 소리가 났고, 금 은으로 장식된 정교한 조각품이 많았다.
컬럼버스의 관을 든 병사들 조각 앞에 한참 머물러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청년이 대서양을 건너 인도에 갈 계획을 말했지만 너 말고도 탐험가는 많다며 무시당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계획을 말하니 전쟁을 치르느라 돈이 없다며 패물을 팔아 주었다.
위대한 역사는 과감한 선택에서 이루어진다. 컬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니까 서쪽으로 계속 가도 인도가 나올 거라며 달걀을 세워보라고 했고, 과감하게 달걀을 깨서 세우곤 대서양을 건넜다. 관점을 달리하면 남이 못 보는 것이 보인다. 결국 아메리카의 많은 물자가 스페인으로 들어오며 제국은 기반을 잡고 컬럼버스는 귀족의 작위를 받고 세비아는 번성했다.
하지만 세비아 귀족들은 컬럼버스를 이탈리아 촌놈이라고 무시하며 상처를 주었다. 세비아 귀족들은 컬럼버스를 이탈리아 촌놈이라고 무시하며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정복한 땅에서 잘못하여 부하들까지 잃어 여왕의 진로를 샀다. 그는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을 것이라 하고 죽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번영을 이룬 그의 유해를 모셔 와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어 모셔 왔는데 그의 말을 존중해 4명의 왕이 메고 있다.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여 설명을 들었는데 앞의 두 왕은 그의 탐험을 찬성해서 머리를 당당히 들고 있고, 뒤의 두 왕은 반대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각품의 설명을 들으며 그도 역시 떨켜 없는 비바람 앞의 삶을 살다갔음을 확인했다.
밤에는 옵션으로 짚시들의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갔다. 제일 춤을 잘추는 여자가 꽃을 태현에게 던져 아내에게 주었다. 일행이 3명이나 꽃을 가져온 것을 보고 오랫동안 가이드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놀랬다. 짚시의 춤을 직관하는 행운을 얻고 투우의 춤 깊은 우울이 밴 노래도 가슴을 울렸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났던 그녀가 말도 없이 떠났던 아픈 사랑을 가슴에 묻었다. 소개팅으로 편안하고 따스한 아내를 맞아 쉽고 편한 길을 택했고 별탈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첫사랑을 찾아가야 했는데 가지 않으므로 오는 가책이 이 나이에도 남아있었다.
다음날부터 이틀 간 비가 심하게 왔다. 밤에 호텔에 들러 텔레비전을 보면 완전 장나 같았다. 스페인에 사상자가 5명이 날 정도로 비가 왔다. 오래된 나무가 쓰러져 2명이 다쳤다고 하여 스페인 광장을 못 보았다. 우린 폭우를 앞서 달리며 무지개를 세 번이나 보며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은 환희를 느꼈는데 여행 일정 뒤에서 비가 많이 왔다. 무지개를 보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워드워즈의 시구가 입 안을 맴돌며 자폐학생을 떠올린다.
빗속에 아찔한 절벽 위의 아름다운 도시, 론다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스페인하면 떠올리는 투우장은 외부관람만 했다. 투우사와 투우의 목숨을 두고 싸우는 경기는 죽는 대상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며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스페인하면 투우인데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헤밍웨이 작가도 여기가 좋아 이곳에서 많이 살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도 이 지방이다. 일본인 화가도 이곳을 그리다 이곳에 묻혔다는 인상 깊은 곳이다. 누에보 다리는 150미터 깊이의 좁고 깊은 협곡이었다. 바닥은 바위로 되어 있었는데 중세에는 죄인을 다리 아래로 떨어트려 사형 집행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 협곡이 무서웠다.
그 날 저녁 안탈루시아의 꽃 그라나다로 와서 야간 연장투어를 했다. 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이 들어오니 정말 아름다웠다. 알함브라 궁전도 산 아래 아름답게 불이 켜져 야간 투어를 하며 높이를 내려올 때마다 다른 얼굴을 한 궁전의 진수를 보았다.
다음 날 알함브라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알카사바, 카를로스 5세 궁전, 헤네랄리페를 우비를 입고 무어인들이 세운 아름다운 궁전을 보았다.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교도들이 쫓겨와 세운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슬람교도를 내찾은 후, 스페인 국가를 세우고 내 궁전을 지어달라고 한 카를로스 5세 궁전까지 돌아보며 두 문화가 빚어낸 건물과 정원에 감탄했다. 하지만 인도의 타지마할 묘의 아름다움과 거대함엔 미치지 못했다.
주로 중세의 오래된 도시들을 보다 발렌시아로 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이었는데 이강인이 여기에서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던 곳이란 얘기를 들으니 반가웠다. 이곳은 현대적인 과학박물관 오페라하우스 등, 또 다른 신도시 모습을 보여준다. 도시마다 한 군데도 닮지 않은 개성 있는 문화에 감탄했다.
가이드는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했지만 역사는 그 사실로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나라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슬람 문화도 관대한데 많이 왜곡되어 전해져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너무 과거 역사에 매여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1980년대엔 우리나라 경제수준보다 5배 높았지만 이제 2019년 통계는 한국 34269달러로 바로 앞에 이탈리아 바로 뒤에 스페인이 있다고 했다. 나와서 바라보니 우리나라의 발전한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더욱 발전해 가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마드리드부터 여기가지 엿새간 안내하던 가이드는 그라나다에서 내렸다. 그녀는 스페인 남부에 살고 있었다. 8살 딸에게 주라고 한국 것들을 싸주었다. 왜들 이렇게 어렵게 인생길을 가야하는 것인지 부모님의 먹튀로 살아가는 그녀가 태현은 동지를 만난 듯 했다.
모니스트롤 데 몬세라토로 5시간 반을 2시간마다 쉬어가며 왔고, 가이드가 바뀐다고 했다. 미모의 가이드를 소개한다고 하여 박수를 치다 태현은 얼어붙고 말았다. 첫사랑 민영이었다. 한 장의 엽서를 보내고 소식이 두절되었던 그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이드하면서 살고 있었다. 여전히 눈빛이 강하고, 목소리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올라가며 살벌한 바위산을 오르며 짱짱한 목소리로 검은 성모마리아상을 설명했다. 이 산의 괴물에게 처녀를 제물로 받치는 제비뽑기에 사랑하는 공주가 뽑히자 괴물을 이기고 공주를 구해 성 차트라가 된 조각품을 가리키며 태현을 쏘아보았다. 적어도 이런 게 사랑이라고. 내가 보낸 엽서를 보았으면 바로 찾아 나설 것이지, 아내를 데리고 다 늙어서 놀러온 태현, 너는 내 앞에 나설 자격이나 있느냐고 비웃는 듯했다.
몬세라트 수도원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주차비를 7만 원으로 올렸는데 그래도 안 먹혀 2020년부턴 10만 원으로 올리고, 톱니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열차 등도 몸살을 앓고 있다고 관광객을 귀찮아하는 이곳의 정서를 전하는 그녀의 말 속에 왜 왔냐고 느껴지는데, 그녀 말을 방해하는 자폐학생에게 화를 내는 그녀가 못마땅하다고 아내는 계속 쫑알댔다.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안 좋다고 국내에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유럽은 더욱 심각한 상황임을 2달 전 이 지방의 독립전쟁을 위한 데모를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감옥에 갇힌 독립투사들을 응원한다고 아직도 아파트에 깃발을 내걸고 램프의 불을 계속 켜고 있다. 노란 리본을 보도블럭에 그려놓았는데 세월 호와 같은 모양과 색깔이었다.
10만이 입장하는 최대의 축구장이 있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 가우디가 세계문화유산을 7개나 만들어 150만 시민을 먹여 살리는 이곳에 매년 4000만 관광객이 몰려와 이제 제발 고만오라고 오만에 차있다는 도시 곳곳에 곡선을 많이 사용한 건축물들을 보았다.
다음날은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물 성가족성당 내부를 관람했다. 아직도 공사 중으로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2026년이면 성당이 완공될 거라며 입장 1위가 한국인으로 가장 공헌하는데 한국말로 된 안내서도 없다고 가이드가 불평한다. 하지만 스테인 글라스에 김대건 성인이 새겨진 것과 정문에 한글로 새긴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다.
놀라운 일을 번화가를 지나며 가이드가 가리켰다. 이 응가하는 형이 스페인의 산타 할아버지다. 아이들이 선물을 달라고 이 앞에서 기도를 한다고 했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 우기에 왔는데 3도에서 20도 기온인 이 나라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눈썰매를 끌고 온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아 생긴 것 같다. 번화가 거리에는 길 위에 거리마다 다른 무늬의 트리가 있고, 알함브라 야간 투어에서 불이 들어온 거리를 보니 하늘이 온통 트리로 반짝거려 동화나라로 보일 만큼 크리스마스 최고의 아름다운 장식으로 보였다.
이상하게 오고 싶었던 스페인에서 그녀와 해후하다니. 늘 비바람 앞에서 떨어지지도 못하던 그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눈치 못 채게 그녀에게도 말 한 번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젊은 날의 상처를 혼자 감당할 뿐이었다. 한 번도 말조차 걸어주지 않는 첫사랑을 향해 그는 가장 먼 곳에서 짱짱한 설명을 들을 뿐이다. 그리고 잎을 힘없이 떨궈내고 있다.
태현은 먼 거리 비행기로 이동하고 10일이라는 기간에 무리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여행을 하면서 원효로 후배인 이 교수 부부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리고 모녀가 여행을 하는데 아파서 식사를 거의 못하는 딸에게 아내가 싸온 김, 멸치, 고추장 한국 음식으로 구토를 진정한 것이 인연이 되어 6명은 늘 같이 식사를 했다.
사업이 바빠서 못 온 남편이 차 대접을 한다고 하여 그러면 이수 팬쿡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약속을 했다. 대개 여행 기간엔 친해도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긴 쉽지 않은데 과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나이 차이가 많은 부부를 껴 줄지도 모르겠다.
바로 검색을 한 그들은 여기가 어디냐고 하여 2층에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일품이라고 했다. 집이 어디냐고 해서 3층에 우리가 살고 있고, 아내는 네일 아트한 손을 내밀며 1층 여기에서 해준 솜씨라고 했다. 집에 와서 시차 적응을 극복할 즈음 이교수가 문자를 보냈다.
편안히 쉬고 계신가요? 설렘과 기대로 떠난 그림 같은 여행에 행복한 동행자로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분 때문에 저희 부부의 미래 삶에 대해서도 여행 내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더욱 뜻 깊었습니다. 모쪼록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후에 기회가 된다면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저희 부부도 주변에 폐가 되는 나이라 걱정했는데 좋은 동행 만나 행복한 여행 했습니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며 사진 잘못 나온 놈들을 훅 날려 보내곤 하면서 그곳의 향기를 떠올립니다. 꼭 다시 보길 바랍니다. 서울 토박이들은 동문들이 잘 뭉치지 않는데 진짜 즐거웠습니다.
기사와 같이 일관되게 봉사하는 것을 보며 초지일관하는 모습이 특히 좋아보였어요. 휴머니티가 배어나오는 행동이지요. 젊은 남자들도 손 안대는 그 힘든 일을 요번 여행에서 멋쟁이 후배를 만나 뿌듯했습니다. 이제 그들과의 해후를 기다리고 있다.
떨켜: 잎, 꽃, 과실 등이 각 기관의 기부에 발달된 이층에서 분리되는 현상 또는 분리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