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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균이, 담이와 함께한 이번 여행은 작년 말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5 년 전 친구들에게 "캐나다 밴쿠버에서 알래스카까지 6000킬로미터 길을 자동차로 가보자."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잊고 지냈다. 그러다 미국에 사는 담이가 균이 에게 이 말을 전해 듣더니 즉석에서 찬성하면서 일이 추진됐다. 균이와 담이는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 우정을 쌓아 온 친구들이다. 당시 우리는 일곱 명이서 어울렸는데 그사이 두 녀석이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담이는 대학교 후반부터 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 가 대기업에 들어가서 미국 지사로 발령받았다. 부친상 때를 빼고는 귀국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한국에 마음이 뜬 상태였다. 우리 둘은 내 가 미국에 갔을 때 한 번 만났는데, 그것도 벌써 34년 전 일이었다. 그 뒤 연락이 끊겼다가 몇 년 전 미국 출장을 떠난 균이가 담이 연락처 를 용케 알아내 재회하면서 우리는 다시 뭉쳤다. 여행 계획을 들은 나와 두 친구의 아내들이 알래스카로 가는 길이 너무 멀다고 걱정해 캐나다 중부에 있는 캐나디안 로키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지난 8월 28일부터 11일간 셋이서 번갈아 운전하면서 여행 했는데, 기차로 이동한 것을 제외하고도 주행 거리가 2000킬로미터 가 넘었다.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난 산불로 인해 연기가 뿌옇게 끼 어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며칠을 달려도 연기가 사 라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화재 규모와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밴쿠버 시내에서 차이나타운에 들렀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전 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노숙인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료 급식소에도 추레한 차림을 한 사람들 이 길게 줄 서 있었다. 마약에 취해 좀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마주칠까 두려워 급히 빠져나왔다. 와중에 기분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주차장에서 한국 차를 세어 보곤 했다. 어떤 곳 에서는 스무 대 가량의 차량 중 예닐곱 대나 됐다. 도시 간의 거리가 먼 데다 비포장도로가 많아 까다롭게 차를 고르는 곳에서 우리나라 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난 게 놀라웠다. 미리 의논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로 걸으며 로키의 숲과 호수를 만끽했다. 비가 자주 와 아쉬웠지만 아름드리나무 숲속 을 걸으면 심신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매일 몇 시간씩 걸으며 3000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들, 엄청난 물줄기의 폭포, 거울 같은 호수, 장 대한 빙하 계곡 등을 마음껏 보았다. 걷는 시간을 빼고는 아주 수다스러웠다. 식당에서건 숙소에서건 쉬 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셋이 같이 만난 게 45년 만이기에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과 직장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 정치, 경제까 지 별의별 것을 대화 주제로 삼았다. 의견이 정반대일 때도 많아서 놀 랍기도 했다. 며칠 지나 담이가 "수십 년이 지나도 너희들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하는 말도 전과 똑같은 것 같다."라며 웃었다. 정말 그랬다. 얼굴에 주 름살이 잔뜩 늘었지만 표정과 말버릇, 무엇보다도 사고방식이 이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공항에서 담이를 34년 만에 만난 순간부터 스스 럼없이 편하기만 했다. 순식간에 시간 이동을 한 느낌이랄까. 이것이 원초적 관계 아닐까. 젊었을 때 몰랐던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담이는 미국에서도 계속 힘들어서 쓰러질 뻔했다가 신앙 생활을 통해 회복했다. 완전히 새로 운 분야를 독학하다시피 파고들어 관련 자격을 얻었고, 정년까지 근 무했다. 미국에서 만난 그의 아내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다. 40세에 컴퓨터 공부를 시작해 큰 회사에 들어갔고 업계의 중요한 자리까지 올랐다. 지금은 부부가 은퇴한 후 편안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 수십 년 지기인 균이에 관해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중학 교 3학년 때 고위 공직 취임이 유력했던 아버지가 1년 넘게 암 투병 을 하다 돌아가신 것이다. 균이는 홀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눈을 감겨 드렸다고 했다. 아버지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는 어느 기업의 고위직을 맡았다가 회사의 잘못된 구조 문제로 큰 고생 을 한 적도 있었다. 나 역시 쉽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사기를 당 해 구속까지 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그 일로 나도 1년간 도피 생 활을 했다. 친구들은 내가 당시 폐결핵에 걸린 것을 몰랐다며 놀라워 했다. 삶이 만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통감했다.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함께하게 됐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지만 꼬박 11일간 붙어 있다 보니 사소한 의 견 충돌도 생겼다. 균이는 과묵하고 무엇이든 잘 받아주는 편이었고, 담이는 다른 이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섬세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두 친구보다 성마르고 말을 생각한 그대로 하는 편이었다. 수긍 이 안가면 즉시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나름대로 배려심 있는 사람이 라 믿고 있던 나 자신이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 절감했다. 나를 새 롭게 알게 됐으니 이것도 여행의 수확인 셈이다. 그럼에도 두 친구 덕 분에 어색한 순간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여정으로 우리는 재스퍼에서 밴쿠버까지 기차를 탔다. 오후 내내 창밖으로 지나가는 숲과 들판을 보다가 갑자기 우리네 삶이 너 무나 아름답고 슬프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외로움! 우주의 한 점 같은 행성, 이 지구의 얇은 막인 공기층 아래 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 온갖 것을 만들고, 떠들고, 돌아다니 는 사람들이 실은 모두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광막한 우주의 한없 는 어두움 속에서 돌고 있는 이 푸른 별도 얼마나 외로운가. 가슴이 아리면서,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담이와는 "잘 지내라."라는 짧은 인사말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아마 도 이번 여행이 우리 셋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지 않을까.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낄낄거리며 한 실없는 농담,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지 나눈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 찼다. 이번 여행은 로키 산맥을 돌아다닌 여정이자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 '시간 여행'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도 여행이 아닌가. 나는 여행에서 두 친구 덕분에 인생이 라는 여행의 매듭을 찬찬히 여민 듯한 기분이 든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다가 마치 이번 여행의 의미를 정리해 주는 것 같은 문장을 만났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했으며, 자신에게 만 족할 수 있는 사람만 이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한스 큉).' 윤재윤 | 변호사 |
Shenandoah - The Petersens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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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소중한 멘트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동트는아침 님 !
여행을 많이 다녀야
새로운 영감이 떠 오릅니다
미국인들은 주급제라
5일간 일하면 주급을 받는다
수중에 돈만 생기면 여행을
떠난다
집, 살림, 부동산, 등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여행이다
금요일 되면..
마음은 벌써 여행지에
가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다녀가신 고운 걸음
공감가는 훌륭한 멘트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쁨과 웃음이 함께하는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정읍 ↑ 신사 님 ~!
모이기 힘든 친구 세 가족이 장장 11일 간이나
여행하며 나눈 많은 얘기들이 지난 삶을 정리하듯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으로 남겠습니다
지난 세월이 길 듯 각자의 삶에도 깊은 사연이 서로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었네요
안녕하세요
단테아짐 님 !
소중한 멘트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을 공기 마시며,
몸도 마음도 힐링하는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