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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고려의 동북9성포기는 합리적이었다.
Daum Bark 추천 0 조회 1,002 05.10.31 18:10 댓글 8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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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1.05 18:34

    성 주요전투는 강동6주와의 거란과의 전투와 다릅니다. 뭐 거란군과의 싸움이야 간단하게 한전투에서 5~6만 넘겼죠. 귀주대첩에서야 말로 고려군 20만에 거란군도 15만 정도;;; 하지만 여진하고 싸울때는 기껏해야 2~3만을 넘지 않았습니다.

  • 05.11.05 18:35

    유능한 지휘관이 이끄는 정예 수천 기병이면 수만 보병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듯 보입니다만ㅡㅡ;; 게다가 고려의 재정 여건상 17만 대군을 언제까지 주둔시킬 수도 없고 상시가용 가능한 병력은 수만에 지나지 않는데...이정도면 게릴라전으로 충분히 해볼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요...

  • 05.11.05 18:37

    여진과의 전투는 다른 전투보다는 병력이 맞붙는게 수가 좀 떨어지죠. 거기다가 위에서 말했듯이 여진편제는 50기 단위의 소규모입니다. 50기 단위 하나하나마다 명령을 내리는데서 2000~3000명 규모만 처도 40~60부대입니다. 2000명이나 3000명도 40~60부대나 되는데 이런

  • 05.11.05 18:38

    여진족은 항상 적에 비해 숫적열세인 반면 기동성에서 앞섰기 때문에 웬만한 병력 차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백년 뒤 금의 후예 후금군이 조명 연합군을 몰살시킬 때도 전력비는 1:2에서 심지어 1:10으로 추정할 정도로 열세였으니...

  • 05.11.05 18:39

    부대의 간단한 통솔체계도 마련하지않고 갑자기 2만~3만 데려다 놓으면 지휘가 될까요? 물론 거란이야 500~700명 단위제입니다. 7만 데려다 놔봤자 기껏해야 100단위죠. 근데 여진은 2만 동원했다처도 400단위입니다. 물론 중간단위도 있었겠죠. 하지만 2000~3000 명에서 만도 40~50단위나 되니 여기서 확립한 지위체계는

  • 05.11.05 18:40

    2만명정도의 단위부대를 지휘하고 통솔하는데 큰 도움이 됬을겁니다.

  • 05.11.14 17:15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확인해 봤더니 많이 달려 있었네요^^;)

  • 05.11.05 18:43

    워게임초보 님 말대로 여진족에게 소대 단위 부대가 있다는게 전투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을 듯 싶네요. 하급부대 지휘관들로선 병력을 유연하게 운용하고, 정찰, 소규모 전투에서도 훨씬 용이하게 기동할 수 있었을테니...결과적으로 대부대의 유기적인 병력운용에 기여했을듯.

  • 05.11.08 01:01

    그런데 여진이 그 때부터 과자마를 운용했었나요;;;?

  • 05.11.08 17:32

    괴자마 제도는 정확하게 입증되는것은 거란과 북송 정벌전이었죠. 하지만 괴자마 제도의 전신은 있었습니다. 초기 괴자마 제도는 막강한 적 앞에서도 후퇴하지 말자는 각오로 중장기병 여럿의 몸을 묶고 돌진하는것이었죠. 고려와의 전투에서 이 괴자마 전투의 전신이 활용됬습니다 ^^

  • 05.11.09 00:08

    그런데 괴자마란게 정말로 사슬로 묶어 연환마를 만들어 뛰어드는 건가요, 아니면 멘엣암즈에 나온 것 처럼 놀라운 밀집 대형이나 연계 작전으로 봐야 하는건가요? 물론 기동성을 포기한 괴자마가 사슬로 밀집대형을 유지하려 한건 이해가 가지만 어느 쪽이 맞는지;;(개인적으론 전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만;;)

  • 05.11.09 20:26

    사슬로 3마리씩 묶어서 돌진시키는겁니다. 이렇게 하면 속력, 기동성은 떨어져도 충돌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이런 괴자마들은 중앙에 절대로 배치 안합니다;; 주로 양익에 배치하죠; 선회는 아주 크게 원을 만들면서 할수밖에 없으니까요^^

  • 05.11.12 18:37

    근데 괴자마라는게 3마리중 한마리의 다리를 도끼로 잘라내버리면 3마리가 전부 못움직이는 단점이 있지않나요?

  • 05.11.12 19:00

    ;;;; 사람과 말이 옷을 3벌로 껴입고 3마리를 묶어서 거의 그당시 중전차와 같은 충돌력으로 달려오는데 그앞에서 버틸수있을 보병이 있을까요?;;; 그리고 달려오는말 다리를 도끼로 어떻게 자르시려는것인지 ^^:

  • 05.11.13 01:59

    실제 악비가 치뤘던 전투들은 중보병을 이용해 금의 기병돌격을 막아내지 않았나요?;;

  • 05.11.13 18:28

    대체로 창병을 이용하면 막을수있죠^^ 또 고려시대에는 앞에 검차를세워놓아서 막았기도 햇구요. 그리고 위에 쓴말은 기병 3마리가 달려오는데 엎드려서 말다리를 도끼로 자를수있을만큼 담력센 보병이 있을까 하는의도였습니다^^:

  • 05.11.14 15:10

    담력센보병있습니다 중국의 어느전투인지는 몰라도 있었던일입니다 알기쉬운손자병법인가에서 봤어요 어떤장군인지는 몰라도 보병들한테 도끼를 나눠준후 괴자마의 다리를 자르라고 시켰고 실제로 아주 잘 잘라서 승리했습니다

  • 05.11.14 16:03

    글쎄요;; 그건 엄청나게 특수한 상황이고;; 그 엄청나게 특수한 상황때에 약한것을 모든 전투에 취급하는건 무리가 있지않을까요 ^^: 예를들어 모든젙우의 보병은 담력이 세기 때문에 괴자마의 다리를 자를수 있다;; 라고 추측해서 괴자마는 다리자르면 약하다;; 라고 보기엔 무리가있죠

  • 05.11.14 17:17

    기병은 다리가 약점이라는 식으로 많이들 말하긴 합니다만, 실제로 기병의 다리를 공격하긴 정말 힘듭니다. 특히 '도끼'로 그 다리를 자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요. 말 다리를 베려면 무기를 가로로 휘둘러야 되는데 그럼 병사 주변 공간이 텅 비거든요.

  • 05.11.14 17:18

    말 다리를 베려고 보병을 듬성듬성 배치한다? 그럼 보병들 다 밟혀 죽지요. 보병을 빽빽하게 배치한다? 그럼 말 다리를 못 벱니다.

  • 05.11.15 00:31

    그러고보면 중국에는 어째서 15~16세기에 서양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이크방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네요=_=;; 파이크방진+중국식 강력한 석궁 조합은 기병에게 쥐약이련만;;; 역시 기마궁수 때문일까-ㅅ-;;

  • 05.11.16 01:14

    파이크방진이라고 해도 파이크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창이 길어지는 만큼 보병 개개인의 숙달도도 더 높아야 하고, 전열도 더욱 정교하게 맞춰야 합니다. 그렇게 긴 물건 잘못 쓰다 동작이라도 엉켜버리면 혼란속에 떼죽음 당하겠죠.

  • 05.11.16 01:15

    게다가 장창을 들면 보병 개개인의 방어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방패와 갑옷이 경량화되니까요. 또 창이 길어지는만큼 창 값도 더 비싸지게 되죠.

  • 05.11.16 01:24

    장창을 들고 선 보병이 장창만으로 기병에게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규율이나 사기 같은 훈련상태가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서양에서도 장창진 등장 이후에도 중기병이 창병을 꺾은 사례가 없지는 않았고(자세한 사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장창 없이도 보병만으로 기병을 격퇴한 사례도 있죠.

  • 05.11.16 01:21

    파이크가 6미터 7미터 하는 식으로 말하니 기병돌격을 저지하려면 창이 그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 3m만 돼도 '아주 긴' 창입니다. 3m짜리 막대기를 앞으로 세우고 걸어가 보세요. 힘이 좀 약하다 싶은 분들은 끝을 고정시키는 것도 약간 벅찰 정도입니다.

  • 05.11.16 01:23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기병창(삭, 랜스) 평균이 3m이긴 하지만, 기병은 창을 양 손으로 쥘 수가 없으니 창을 좀 짧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병과의 창 길이 경쟁에서는 창 길이가 같다면 말 몸통 때문에 기병창이 더 불리하구요. 적의 창이 내 말의 목을 뚫었는데 내 창은 아직 적의 몸에 닿지 않는 거죠.

  • 05.11.16 12:43

    굳이 못 만들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송의 철강 생산량은 세계 최고였고 어차피 서양에서도 파이크든 화승총이든 제대로 된 훈련방식이 등장하는 것은 나사우 마우리츠 이후이고 그 전까지 스위스 창병이든 란츠크네흐트든간에 특별한 제식훈련은 없었으니까요.

  • 05.11.16 12:47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 역사에서 파이크방진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전투방식의 차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 중기병이 파이크병을 격파한 사례도 몇 차례 있기는 합니다만...진열이 정비되기 전 행군대형에서 공격받은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차피 회전에서 써먹으라고 있는 파이크 방진인데 중국 전쟁에서 써

  • 05.11.16 12:47

    먹으려던 것은 좀 무리였을까요;;; 물론 스위스 창병같은 경우 파이크주제에 기동 가능합니다만 이 정도 수준의 파이크병을 만드는건 힘드니까요-ㅅ-

  • 05.11.16 17:15

    아뇨, 전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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