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8편 풀꽃>
①어느 봄날-11
“오호호, 형부는 제 눈치 보시고, 건너짚으시지만, 실진 안 그래요. 기다리는 마음이야 있지만요. 그게 인간사라고 생각해요.”
윤희가 밥상을 천복의 앞에 소리 없이 내리어놓고서는 그 자리에 다소곳이 앉으면서 그의 농담을 이렇게 받고 있었다.
“처제는 역시 생각이 깊군요.”
천복은 그녀가 인간사를 생각하는 게 가상하였던지, 이렇게 말하고는 숟갈도 들기 전에 동치미사발을 번쩍 들어다가 입으로 가지어가는 거였다. 그리고는 시원한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그러자 갈증이 일시에 풀리었고, 속이 개운한 게 시원하였던 거였다. 맛도 찝찌름하니, 혀를 불쾌하게 자극시키는 때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는데, 그렇대서 싱겁지도 아니하였고, 무의 향긋한 뒷맛이 또한 감치는 거였다.
그것은 필시 윤희가 맛을 보면서 찬물로 간을 맞춘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미 형부가 술을 거나하게 마시었고, 목이 갈증으로 타들어 가리라는 걸 지레 알아차리고서 동치미 맛을 적당하게 조절하였을 거였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를 칭찬하고 싶었으나, 옥희가 옆에서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른 터라, 말을 선뜻 내놓기가 무엇하였던 거였다.
“과음했더니, 동침이 맛이 속을 깔끔하게 씻네.”
그는 겨우 이렇게 감탄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옥희가 끼어드는 거였다.
“싸기 숟갈이나 들고, 밥부터 떠유. 글고 기왕이먼, 처제가 동침이럴 간맞기 잘 혀왔다고이 칭찬얼 혀야제, 게우 술얼 많이 마셔서나 동침이 맛이 시원하다문, 듣는 사람이 야속허잖어유?”
그녀는 어서 밥부터 뜨라고 하더니만, 윤희에게 칭찬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듯 대드는 거였다.
그러자 그는 선뜻 숟갈을 들며, 웃음을 터뜨리었다.
“아하하, 내가 그렇지 않아도, 동침이 맛이 기가 막혀 처제를 칭찬하려다가 당신 눈치 보이기에 술 핑계를 댔더니만, 기여 당신이 날 꾸짖는군.”
그는 속으로도 더 웃음이 났지만, 밥술을 얼른 떠서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말았다.
“전, 보람을 느껴요.”
윤희가 또 불쑥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야?”
그가 밥술을 입으로 가지어가면서 윤희의 말뜻을 캐물었다.
“언니가 몸이 무거워 꼼짝 못하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돕는다는 거 말이에요.”
그녀는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진작 그녀를 김봉규에게 맺어줌으로서 함께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계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만일 그녀가 없었더라면, 옥희의 고통은 더욱 어렵게 될지 몰랐다. 정읍댁은 정희네로 빠지고, 혼자서 가족들 치다꺼리를 하려면, 비록 몸은 무거울지라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윤희는 김봉규와 짝을 지어서 명자네 사랑방으로 들어간 뒤는 하루도 빠지지 아니하고, 나와서 언니를 돕고 있는 거였다. 게다가 해산달은 다음 달로 임박하였으니, 이 달 지나면, 삼월이 닥칠 거였다.
옥희는 지난번 지흥이 낳을 때만 하더라도, 초산인지라, 심한 산고가 따랐었다. 그러나 그때는 정희네 가있던 정읍댁이 달려와 부랴부랴 아기를 받아 순산은 하였지만, 그 공포감이야 지금도 가슴을 마구 옥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윤희가 그녀를 싸고돌기에 마음 놓고, 해산달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천복은 옥희와 윤희랑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은 뒤에는 이내 방을 나와 점포로 나왔다. 그리고 버릇처럼 시계를 만지작거리는데, 전화벨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는 황당하여 전화 받기가 좀 망설이어지어서 벨소리가 몇 번인가, 거듭되었을 때에야, 마지못하여 수화기를 들어 귀로 가지어가는 거였다.
“아, 나, 박 기자요.”
박 기자가 먼저 자기를 알리고 있었다.
“예! 아까 잘 가셨습니까?”
“잘 왔소. 그런데... 말이오. 지금 집이오?”
“집이니까, 전활 받죠.”
“그렇군! 그런데 아까 뚱이네아줌니한테 전화 왔지 않소?”
천복은 기절하듯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까 정오경 누구냐고 물었으나 밝히지도 않으며, 매일 오면서 그렇게 매정하게 어쩌고 하면서 당신을 믿고 못 산다던가. 더욱 여기에서 방금 나가가지고, 어디로 도망치었기에 모른 척한다고 하였고, 그렇게 무심한 사내랑 상종할 수 있겠냐고, 씨부렁거리었던가, 암튼 생떼거리로 구습을 놀리던, 그 여자의 말이 되살아나는 거였다.
그런데 그녀가 팔경사 앞의 뚱이네 전화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도대체 자신과 무슨 상관인데, 한밤의 도깨비처럼 나타나 그러는지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까 전화가 왔었는데, 그이가 뚱이네 아주머니란 말인가요?”
“그럼, 당신은 몰랐단 말이오?”
“전혀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첫댓글 뚱이네 아주머니가 좀 엉뚱합니다 ㅎ
천복과는 상관이 없는데 눈이 날리던 날 뚱이네가 천복의 눈에서
시퍼런 불이 쏜다고 했는데, 전화하는 걸 보면
그녀는 허상의 천복과 이미 관계가 깊었던 모양입니다.
실로 놀랄만 일이지요. 그러면 그런 현상이 어떻게 나온
것일까, 생각해볼 문제인데 다음 팔경사 갈 때는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 같네요. 박 기자도 천복의 허상을 한번 보았으니
박 기자가 이 일을 밝혀낼지는 의문이네요. 천복은 아직 모르지만
뚱이네한테 들으면 짐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