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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님과 멋진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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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소식 스크랩 출가 콘서트
안도산 추천 0 조회 43 16.08.19 17: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출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주관으로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2016 출가콘서트’에 출연해 ‘청춘, 자유를 향한 날개짓’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평화재단에서 쉴틈 없이 회의와 미팅 일정을 소화한 스님은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출가콘서트가 열리는 동국대학교로 향했습니다.


동국대학교는 한창 축제 기간이여서 학교 곳곳에서 먹거리, 장터, 주점 등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스님이 중강당 앞에 도착하자 동국대와 조계종 교육원에서는 주요한 직책의 스님들이 나와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사회자로 나온 BBS불교방송 ‘좋은아침 원영입니다’의 진행자 원영 스님은 “출가가 인생의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눠보고자 한다” 라고 하면서 콘서트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오프닝 공연부터 청중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나와 강렬한 비트박스에 맞춰 랩을 선보인 것입니다. 알고보니 동국대학교 학인스님팀이라고 합니다. 시작부터 깜짝 놀란 대중들은 그동안 출가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었던 환상들을 깨어나갈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국민 멘토라는 소개를 받고 스님이 무대로 걸어나오자 청중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올해 구족계를 받고 정식 승려가 된 고우 스님, 랩 공연을 주도한 법상 스님, 단기 출가를 경험한 김민지 마인드디자인 대표가 함께 패널로 나왔습니다.



사전에 ‘스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나온 6가지 질문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콘서트의 1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들은 화가 날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데 원래 이 나이에는 그런 것인지, 나의 꿈과 부모님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어떻게 가라앉힐 수 있는지, 삼포, 오포, 칠포 세대라 불리우는 청년들에게 연애란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 등 다양한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에게 주로 답변의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간단하게 답변을 해주면서도 “오늘은 여러분들 또래의 젊은 스님들이 들려주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며 다른 패널 분들도 자주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인생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1부를 마무리한 후 이어진 2부에서 본격적으로 ‘출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역시 많은 청년들이 출가에 대해 궁금해했던 내용들을 사전에 신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영 스님은 먼저 법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출가하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고, 부처님 제자로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꼭 출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뭘까요?”라며 스님의 출가 이야기와 함께 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누구나 출가수행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출가 안 하고도 얼마든지 재가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부처님께서 진작에 열어주셨어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길을 가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출가해서 수행하는 출가수행자였고, 나머지 하나는 재가에 있으면서 수행하는 재가수행자였어요. 출가수행자의 첫 번째가 교진녀 등 5비구와 야사 비구이고, 재가수행자로서의 첫 번째는 야사 비구의 아버지, 어머니, 부인이었어요. 이렇게 출가수행과 재가수행의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입멸 후 100년, 200년이 지나면서 출가수행자가 점점 바라문을 닮아서 사제계급으로 전락하고, 재가수행자가 점점 신도로 전락을 해서 소위 일반종교와 똑같은, 당시 브라만교와 똑같은, 사제와 신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와 비슷하지요. 그러나 원래 불법에는 사제나 신도의 관계는 없고, 오직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가는 수행자만 있습니다. 그 수행자의 종류가 출가수행자, 재가수행자,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얼마든지 출가든 재가든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재가수행자가 되고, 어떤 사람이 출가수행자가 될까요? 자기를 잘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한 은행 직원이 하루에 돈을 내주고 받고, 내주고 받고, 내주고 받고, 이렇게 많이 하는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돈이 자기 돈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은행 직원이 될 자격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은행 직원을 그만둬야 해요. ‘나는 돈을 셀뿐이지, 그게 내 돈은 아니다.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돈이다’ 하는 사람은 은행 직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렇게 여자나 남자하고 같이 살든, 애를 낳아서 키우든, 그냥 같이 살고 키울 뿐 ‘이건 내 여자다, 이건 내 자식이다, 이건 내 집이다, 이건 내 돈이다’ 하는 생각 없이 그냥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재가수행자를 해도 돼요.

 


그런데 여자 손을 만지니까 그게 내 것 같아서 집착이 생기고, 돈을 만지니까 자꾸 내 돈 같아서 집착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재가수행자가 될 자격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돈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여자로부터 격리를 시켜야 돼요. 그런 사람이 바로 출가수행자예요.(모두 웃음)



그게 안 되면 출가수행을 해야 되고, 그게 되거든 그냥 세속에서 재가수행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재가수행자는 출가수행자보다 원래 한 등급 높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급이 높지도 않으면서 급을 높여서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그래서 집착을 해서 부부 간에 싸우고, 집착을 해서 자식과 싸우고, 집착을 해서 돈 때문에 괴롭고,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출가를 하는 게 좋습니다.(모두 웃음)


저는 세속에 살아보니까 집착을 잘 합디다. 그래서 일찍 출가수행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재가수행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여러분들이 항상 존경스러운 거예요.” (모두 박수)


스님의 위트 있는 답변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또 이런 질문도 있었습니다. “출가하면 가족, 친구의 인연을 끊어야 하나요? 그것이 정당한가요?” 라고 묻자 스님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청년들이 많이 자리해서 그런지 부모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얘기되자 더욱 집중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예, 끊어야 합니다, 당분간은 딱 끊어야 돼요. 엄마이기 때문에 끊어야 되는 게 아니라 어린애를 탈피해야 된다는 겁니다. ‘엄마가 그립다’는 말은 어린애 수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제비 새끼가 둥지에서 날아간 후에는 어미 뒤를 안 따라다니고, 어미도 제비 새끼 뒤를 안 따라다니듯이, 성년이 됐으면 독립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끊는 과정이 수행이에요.



여러분들은 ‘욕심이 없느냐, 있느냐?’ 이렇게 묻는데, 욕심이 없으면 수행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욕구가 있으니까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이 있고, 보고 싶으니까 보고 싶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이 있는 겁니다. 집착이 생기니까 그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이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집착이나 욕구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욕구가 없는건 수행의 대상이 안 되는 거예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한테 담배를 끊는 수행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 피우는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의 과제가 되니까, 그걸 과제 삼아서 수행을 해 나가면 되거든요.

 


그러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찾아와서 울고불고 하면 그런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수행이예요. 그럴 때는 ‘오지 마라’고 욕을 해도 안 되고, 온다고 멱살 잡혀서 끌려가도 안 돼요. 안 끌려가겠다고 악을 써도 안 되고요. 멱살을 잡혀 끌려가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걸 지켜보면서, 그냥 몇 발 가다가 어머니 팔에 힘이 좀 빠지면 그냥 돌아오면 되지, 방문 잡고 안 가겠다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저 대문까지만 끌려갔다가 오면 돼요. 또는 일주문까지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노인한테 계속 힘이 있겠어요? 힘이 좀 풀리면 그냥 놓고 돌아서 들어오면 돼요.(모두 웃음)



저항할 것도 없고, 끌려갈 것도 없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돼요. 여러분들은 저항을 하거나 끌려가거나 늘 둘 중에 하나이거든요. 끌려가는 게 쾌락이고, 저항하는 게 고행인데, 이 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도를 이런 과정 속에서 계속 연습해 나가는 거예요.


보고 싶은 것도 수행의 대상이잖아요. 보고 싶다고 집에 가면 쾌락이고, 보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괴로워하면 고행이에요.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건 현실이니까 인정을 하고, 그러나 거기에 내가 끌려가지도 않는 그런 것들을 공부의 과제로 삼는 거예요. 뭐든지 다 과제가 되니까, 그 과제 삼은 걸 이제 공부해 가면 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가고 그러면 안돼요.(모두 웃음) 그러나 부모가 나를 찾아왔을 때 안 만날 건 없어요. 안 만난다는 건 뭐예요? 끌려갈까 봐 겁이 나서 안 만나는 것 아니에요? 오시면 친절하게 인사하고, 울면 등 좀 두드려 드리고, 가시면 가시라고 인사하고, 너무 자주 오시면 이곳은 자주 오는 데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면 집에 가도 되고, 부모님이 절에 오셔도 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 속에 집착이 있으면 수행과제로 삼고, 그게 스스로 ‘자유로워졌다’라고 생각하면, 오고 가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부모님도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이 세상의 보살들이잖아요. 또 어쩌면 앞으로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러니 그걸 배척해도 안 되고, 끌려가도 안 된다는 자세로 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답변을 듣고 원영 스님은 출가한 스님들이 들어도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고 하면서 흡족한 표졍을 지었습니다.


청중석에는 출가를 했거나 스님의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 승려들도 많이 자리했는데,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깊이 공감하는 모습이였습니다.


패널로 나온 분들도 출가는 특별한 누군가의 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백일출가 프로그램을 체험한 김민지 마인드디자인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처럼 잠시라도 출가를 체험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김 대표는 "이혼 가정에서 크고 아버지 사업까지 어려워지면서 자살을 생각하던 시절 단기 출가를 했다""이 경험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 이후로는 마치 인생의 답안지를 살짝 본 기분으로 살고 있다.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진짜 내 삶을 사는 느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경험담을 나눠주었습니다.


법상 스님은 "출가할 무렵 여자친구도 있었다"면서 "출가했다고 말하니 여자친구가 '네가 출가를 했다고?'라고 반문하며 믿지 않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다음 생에도 이 길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법상 스님은 "이번 생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출가했지만 다음 생은 스스로 선택해 출가하고 싶다"고 말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고우 스님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우 스님은 "미련은 아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하기는 하다"면서 "하지만 불교에선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 같다. 인생의 숙제를 풀어나가면서 업을 뛰어넘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한참 이야기가 깊어갈 무렵 스님이 출연하기로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만 스님은 저녁에 평화재단에서 다른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이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원영 스님이 마지막 질문을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 내용이라고 소개하면서, 무엇을 위해 출가해야 하는지 한말씀을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출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무엇을 위해서 출가해야 되는 거죠?”


“무엇을 얻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캐나다에서 대학원 다니는 한 학생이 한국에서 백일출가를 한 후 인도에 가서 봉사까지 하고 돌아와서 저한테 물었어요. ‘제가 박사과정에 들어갈까요? 아니면 여기서 출가를 할까요? 제가 박사과정을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의 길이 출가라면 저는 출가를 하겠습니다. 스님, 뭐가 더 좋겠습니까?’ 라고요. 그래서 제가 ‘너는 그냥 캐나다로 가라’ 라고 대답했어요.(모두 웃음)



출가를 해서 뭘 얻고자 하면 출가 생활이 힘듭니다. 오늘날 많은 스님들이 ‘학위를 받아야 된다’, ‘교수가 돼야 된다’, 안 그러면 ‘큰 절의 주지가 돼야 된다’ 라며 세속과 똑같이 경쟁을 하잖아요. 그런데 출가의 근본목적은 해탈과 열반, 즉 이런 대립과 갈등이 있는 속에서도 괴로움 없이 속박 없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욕구에 기반해서 목표를 세우고 접근을 하면 필연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방의 스님들조차도 한철을 났는데도 못 깨달으면 ‘하, 이번 철에도 못 깨달았다’ 라고 하면서 괴로워하는 겁니다. 이것은 돈을 버는 사람이 돈을 못 벌었다고 괴로워하거나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떨어졌다고 괴로워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다만 얻고자 하는 대상이 그에게는 ‘깨달음’이었던 겁니다. 그게 안 얻어지니까 괴로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것은 욕구를 충족시킬 때의 그 대상이 ‘돈’인지 ‘도’인지 하는 차이밖에 없는 거예요.

 


욕구가 일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욕구가 일어나는 건 현실이고, 그러나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의 목표예요. 이런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나가면, 욕구에 끌려갔다가 넘어졌다가, 또 일어나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졌다가 하면서 전에는 10번 다 넘어졌다면 이제는 9번 넘어지고, 7번 넘어지면서 점점 그 횟수가 줄고, 넘어져서 주저앉아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수행을 해도 화나 욕구가 일어나지만 옛날에 수행을 시작하기 전보다는 그 빈도나 정도가 줄고, 유지기간도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괴로움은 적어지고, 행복도는 높아지고, 무거운 짐은 내려놓아져서 가벼워지고, 이렇게 변해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해서 뭘 얻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 불교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출가를 해서 뭘 얻겠다고 하기 때문이에요. 세속에서 경쟁해서 얻는 것보다 여기서 부처님의 빽을 이용하면 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복 불교입니다. 사회는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는데, 경쟁을 떠나서 자기만 특혜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 불교라면 이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되고, 승려가 되어도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지 못하는 거예요.

 


수행의 목표는 극락 가는 것도 아니고, 천당 가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의 목표는 바로 해탈과 열반입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지속가능한 자유입니다. 욕구를 따르는 자유는 다음에 속박으로 가고, 욕구를 따라서 일어나는 행복은 바로 다음에 불행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행복과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지속가능한 즐거움, 즉 괴로움이 없는 상태, 이게 열반이거든요. 이런 참행복과 참자유를 증득하기 위해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돈이 많으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울 것 같은데, 그건 마약처럼 일시적으로는 분명히 기분이 좋지만 반드시 즐거움의 과보로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가능하지가 못해요. 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지속가능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아직도 욕구가 남아있고, 집착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느냐?’ 라며 화를 합리화하면 수행자가 아니에요. 화가 탁 났지만 ‘아, 내가 또 사로잡혔구나. 내가 또 놓쳤구나’ 하면서 되돌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수행자냐 아니냐는 기준이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은 화를 내니까 수행자가 아니다’ 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가 그것을 합리화하느냐, 아니면 자기가 놓쳤다고 알아차리고 빨리 되돌아가느냐, 이걸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진척이 있게 되는 거예요. 하루 수행하면 하루만큼 좋아지고, 1년 수행하면 1년만큼 좋아지고, 3년 수행하면 3년만큼 좋아집니다. 그렇지 않고 어느 날 일확천금이 얻어지듯이 얻어진다면 그것은 도를 확 깨달아서 구름 타고 하늘을 날겠다는 욕망의 극대화를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건 잘못된 관점입니다.

 



그래서 출가한 많은 스님들이나 절에 오래 다닌 사람들도 행복해지지가 않는 거예요. 절에 오기 전에는, 불교를 알기 전에는, 늘 괴로워하며 애하고도 싸우고, 남편하고도 싸웠는데, 이 법을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좋아지는 겁니다. 아직도 싸우긴 싸우지만 전보다 좋아지고, 전에는 돈 없으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돈 없어도 조금 자유롭고, 전에는 애가 시험 떨어지면 난리 나는 줄 알았는데, 애가 시험에 떨어지면 ‘그래, 좀 섭섭하지만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되지’ 라거나, 전에는 누가 죽으면 며칠 잠을 못 잤는데 ‘그래, 어떻게 인생을 영원히 살 수 있겠냐? 돌아가신 분은 잘 보내드리자’ 라고 하면서 점점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한번 해 보시면 좋겠어요. 계속 듣기만 하지 말고 직접 해 보세요.”


“예, 고맙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답변에 다시 한 번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출가를 해야 한다, 말아야 된다는 식의 정해진 답변이 아니라 조금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 출가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스님을 보고 청중들이 모두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자 원영 스님이 마지막한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한 마디만 ?게 남기고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스님이 나간다고 해서 여러분들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도록! 젊은 스님들이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늙은 스님의 이야기는 들을 게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늙으면 저절로 알아지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필요가 있어요.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아쉽지만 청중들은 박수로 스님을 떠나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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