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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26회>
씬 1 금성 관아 길
왕건들이 막 관아의 입구로 들어서며 말고삐를 당겨 속력을 줄이고 있다. 경계를 서 있던 군사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인다.
군사 송악에서 오시는 분들이시옵니까?
왕식렴 그렇다. 이곳 태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군사 송구한 말씀이오나....
왕건 ...........?
군사 방금전에 운명하셨사옵니다.
왕건 뭐라? 운명하셔...?
왕평달 이런 세상에.... 어서들 가자.
모두들 예.
왕건 아... 아, 아버님... 여기서 눈을 감으시다니요. 아..
눈을 감는 왕건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2 금성 관아 안 외경
왕륭의 방 앞에 능산과 유금필과 박술희들이 지켜 서 있다.
씬 3 동 관아 안 왕륭의 방
왕륭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왕평달 부자와 변, 마사부 그리고 한씨가 눈물을 닦고 있다. 왕건이 흐느끼고 있다.
왕평달 세상에 이렇게 타궐에서 숨을 거두시다니요... 형님. 너무도 안타깝사옵니다. 형님..
왕식렴 (울며) 백부님....
변사부 주군... 이렇게 가시옵니까? 너무도 일찍 세상을 버리셨사옵니다. 주군..
한씨 ....... (애써 침착하고)
왕건 ......... (눈물만 닦고 있다)
마사부 철원에서 폐하가 이리로 오고 계신다 하옵니다.
왕건 폐하께서....?
마사부 예. 인근의 여러 장자분들도 오고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왕평달 그렇다면 맞을 준비를 아니할 수 없지 않나. 상청을 준비하도록 하세.
두사부 예.
왕평달 자 우리도 나가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꾸나.
왕식렴 예, 아버님.
모두들 나가고 한씨와 왕건이 마주앉아 있다.
왕건 (눈물을 닦으며) 소자가 불효를 저질렀사옵니다. 병환이 그토록 깊으셨는데도 문안 한 번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씨 그렇지가 않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아버님께서 굳이 말리고 막으신 것이니라.
왕건 어찌하여 그리하셨사옵니까?
한씨 너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뜻이셨느니라.
왕건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한씨 그리고 잘 들어라. 이 애미도 장사가 끝나고 나면 한적한 암자에 들어갈 것이니라.
왕건 아니,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암자로 가시다니요?
한씨 네가 큰 뜻을 성취하려면 네 주변이 깨끗해야 좋은 것이니라.
왕건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어머님이 계신다고 하여 아니 될 것이 무엇이 있사옵니까?
한씨 내 뜻은 정해졌느니라. 사사로운 정을 미리 잘라 주려고 하는 것이다. 암자에 들어가 너의 앞날과 아버님의 명복을 빌 것이니라. 그리 알거라.
왕건 어머님.... ?
한씨 너희 아버님께서 너의 혼사를 만류하신 것도 다 그런 연유이니라. 큰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가릴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왕건 하지만 어머님.....저희 혼레에 관한 일은....
한씨 이미 아버님께서 정하신 일이다. 네가 바꿀 수 없느니라. 전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왕씨 가문은 너에게 달린 것이니라. 조상님들과 아버님의 염원을 헛되게 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왕건 어머님...?
씬 4 동 왕륭의 방 밖
마사부가 이리저리 장수장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마사부 폐하께서는 어디쯤 오셨다 하느냐?
장수장 이미 관내로 들어서셨다 하옵니다.
마사부 누가 마중을 나갔는가?
장수장 평달 서방님께서 가신 것으로 아옵니다.
마사부 다른 장자들도 많이 오고 계시느니라. 조문객을 모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게.
장수장 예, 마사부님.
장수장이 급히 군사들과 함께 나가면 마사부는 또 이것저것을 챙기기 시작한다.
마사부 상청을 만드는데 왜 이리 더디하는가? 폐하께서 오셨느니라. 어서어서 서둘러라.
씬 5 금성 관내 길
황제인 궁예를 모시고 은부와 종간들이 군사들과 함께 오고 있다. 기다리고 있던 왕평달 부자와 변사부가 달려가 보고있는 궁예를 맞아 허리를 굽힌다.
왕평달 폐하. 먼길을 오셨사옵니다. 형님의 부고에 이토록 친히 왕림해 주시니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궁예 어인 말씀이오. 왕성주로 말하자면 나와는 가족같은 사람이외다.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문안차 온 것이외다. 이 길이 조문길이 되어버렸구려. 안타깝소이다.
왕평달 관아로 드시오소서.
궁예 그리 하십시다.
이들 왕식렴의 안내를 받으며 관아쪽으로 향해 간다.
씬 6 동 관아 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강장자 내외와 연화, 그리고 박지윤 등과 유장자, 장자 1, 2, 3 등 많은 장자들이 들고 있다. 상청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왕건과 한씨가 상복을 입고 그 앞에 앉아있다. 왕평달과 식렴부자가 역시 상복을 입고 조문객들을 함께 맞고 있다. 장자들이 연이어 향을 올리고 상주인 왕건과 절을 나누고 조상하며 나간다. 왕건의 결의형제들은 상청 저만큼에 서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 그렇게 박지윤이 나가고 유장자가 나가고 다시 강장자가 향을 사리우고 조상을 한다. 연화가 백씨들과 함께 왕건과 한씨들을 보고 있다. 잠시 후, 왕건과 시선이 마주쳤으나 그것뿐이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이들은 다시 시선이 끊긴다.
강장자 (맞절을 하며)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왕건 그저 애통할 뿐이옵니다.
이들 그렇게 상식적인 조상의 예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 한쪽에서 장자들이 수근거리고 있다.
씬 7 그 상청 일각
유장자 참으로 안되었소이다. 한때는 패서 일대 최고의 부자가 아니었소이까? 송악의 주인이 금성에 와서 죽다니....
장자1 그러게 말이외다. 이야말로 객지에서 숨을 거둔 꼴이 아니겠소이까?
박지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기가막힌 일입니다.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대왕폐하 납시오. ...... 대왕폐하 납시오....
그 소리와 동시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갈라지면서 모두 허리를 숙인다. 궁예가 내군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대문으로부터 들어서고 있다. 왕건과 한씨가 일어나 궁예를 맞는다.
왕건 폐하. 이 먼길에 어인 왕림이시옵니까?
궁예 얼마나 상심이 크겠는가?
한씨 폐하께서 이리 찾아주시니 고인께서 참으로 망극해 하실 것이옵니다, 폐하.
궁예 아니예요. 그저 슬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궁예가 상청 앞으로 다가가 향을 사리우고 합장을 한다. 그러고 나즈막히 염불과 조사를 올린다.
궁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부디 극락 왕생하소서.
궁예를 따라 종간과 은부도 함께 허리를 숙여 합장을 올린다. 궁예는 황제는 신하의 죽음에 절을 하지 않는 법에 따라 절을 대신 합장으로 왕건과 주고받는다.
궁예 장지는 어디로 모시기로 하였는가?
왕건 너무도 황망한 가운데 당한 일이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고향으로 모셨으면 하옵니다마는.....
궁예 그리 하도록 하세. 운구하여 송악에 모시도록 하게나.
왕건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폐하.
궁예는 왕건의 인사를 뒤로 하고 서서히 그 상청을 빠져나간다. 모두들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 치며 궁예에게 경의를 표하는데 궁예는 얼마쯤 가다말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저만큼 서 있는 연화를 본다. 연화도 황망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모두들 궁예를 따라 그런 연화를 본다. 강장자의 눈이 재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종간을 보고 다시 궁예를 보는데.....
궁예 허허허...... 우린 구면이로구먼... 철원의 법회때 보았었지 아마... 그렇지 않소 낭자?
연화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강장자 보며) 그대의 여식이라고 하시었소?
강장자 예, 예... 폐하. 그러하옵니다. 기억해 주시니 백골난망이옵니다.
모두들 .......
왕건 (상청에서 이를 보고 있다) ........
종간 폐하. 신이 알고 배워온 모든 관상학 가운데 이만큼 고귀한 상은 처음이옵니다. 참으로 덕이 넘쳐나고 그 고매함의 향기가 천지에 가득해 보이옵니다.
연화 .............? (긴장하고 있다)
궁예 종간군사의 칭찬이 또 시작되는구려, 허허허...... 이보시오, 낭자?
연화 예, 폐하.
궁예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대가 이 나라의 황후감이라고 하는구먼... 하하하하......
연화 예...?
강장자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황후라.... 황후라....하하하하........
궁예들 그렇게 상청을 빠져나가고..... 모두들 황망하게 그들을 쫓아 사라지면서... 디졸브
씬 8 인서트 (길)
왕륭의 관이 수레에 실려 운구되고 있다. 왕건이 앞을 섰고 한씨는 보이지 않는다. 평달부자와 두 사부, 그리고 세 결의 형제, 장수장 등이 군사들과 깃발을 앞세워 그렇게 황톳길을 가고 있다. 카메라 앞을 지나 멀리 사라지는 동안 해설이 이어진다. 그리고 해설 내용을 따라 신라 부분의 화면들이 복합된다.
해설 왕륭의 죽음. 왕륭이 죽은 이 해는 진성여왕 11년, 단기 3230년이고 서기는 897년이다. 왕륭은 송악성주로써 신라의 사찬벼슬을 갖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해상무역에 종사하여 큰 부를 이루었고 도선대사의 예언에 따라 아들 왕건을 낳아 훈육에 힘쓰다가 궁예의 세력에게 귀부하여 금성태수가 되었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세상을 뜬것이다. 왕륭은 훗날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후 세조 위무대왕으로 추존이 된다. 한편 왕륭이 죽은 이 해에는 신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진성여왕은 이 해에 조카인 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지금의 해인사인 북궁으로 내려가 같은 해 12월에 세상을 뜬다. 그녀는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생만큼이나 죽음 또한 남달랐다. 그녀는 그 곳에서 숨을 거두면서 화장하기를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그녀는 한줌의 재로 산야에 뿌려졌다. 생전의 진성여왕답지 않은 최후였다. 아마도 뒤늦게나마 삶의 허무를 깨달았던 것일까?
씬 9 철원성 외경
씬 10 동 성안 대회의장
문무 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는 가운데 궁예가 조회를 주재하고 있다. 신료들은 종간과 은부를 비롯해 신훤, 원회,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배현경, 홍유, 김락, 김언, 종회, 금대, 장일, 염상들이다.
궁예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궁예 우리가 천도해 갈 송악의 황궁 역사가 모두 끝났다고 하오. 그동안 이 철원은 우리의 임시 도읍지에 불과하였소. 이제 제대로 된 한 나라의 궁궐을 갖게되었으니 자못 반갑고 기쁜 일이오.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우리가 천도하기에 앞서서 이 성과 궁궐을 지은 송악의 왕건성주의 충성과 노력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천도 준비는 어찌 되어가오?
종간 이미 다 끝이 났사옵니다. 송악의 공사가 끝났다고 하니 옮겨가는 일밖에 아니 남았사옵니다.
복지겸 작은 고을이 아니옵니다. 큰 국가의 도읍이옵니다. 기왕에 궁성을 짖고 가시는 것이라면 폐하께오서 위엄을 갖추실 수 있도록 제반의 모든 여건이 완벽해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배현경 그러하옵니다, 폐하. 황성에는 궁녀들도 제대로 있어야 하옵고 내군의 근위병들과 환관들도 그 격을 갖추어 두셔야 하옵니다.
종간 허허허, 이미 그에 관한 일들도 대책 마련이 끝이 났사옵니다. 우리는 저 당나라 황실과 신라국 황실에 버금가는 황궁의 위엄을 갖출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미비했던 국가의 체계도 완벽하게 조정중에 있습니다. 송악으로 옮겨가는 즉시 폐하께오서 이를 대외에 알리게 되실 것이옵니다.
이흔암 그동안 폐하를 뫼시고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볐사옵니다. 이제야말로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의 장수가 된 기분이옵니다.
환선길 그러하옵니다, 폐하. 폐하꼐오서는 이제 진정한 대 고려국의 황제이시옵니다. 신은 참으로 기쁘옵니다.
홍유 아직 멀었소이다. 폐하께오서는 삼한을 통일하실 것이옵니다. 그때는 좀 더 크고 더 화려한 대 제국의 도읍지를 다시 세우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김락 홍유 장군의 말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시면 즉시 출전의 명을 내려주시오소서. 폐하의 영토를 더욱 넓혀오겠나이다.
김언 그리 해 주시오소서.
종회 그리 해 주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그리 해 주시오소서, 폐하.
장수들이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싸우기를 청한다. 궁예는 웃음으로 이를 접하고 있다. 그런데 종간이 다시 말을 막고 나선다.
종간 아, 모두들 잠깐... 조용히들 해 주시오. 오늘 폐하를 뫼신 이 자리에서 송악으로 천도를 하기 전에 다시금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 청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 있사옵니다.
궁예 .......
종간 폐하께오서 수 차례 책망을 하시며 만류하셨사오나 비어있는 국모의 자리를 뫼시는 일은 참으로 급하고 중한 국가의 대사이옵니다. 폐하, 신들의 뜻을 가납하여 주시오소서.
은부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 일은 분명히 재가를 하신 후에 천도를 하셔야 하는 줄로 아옵니다.
궁예 그만들 하자고 하지 않았소. 그 일은 제발 그만....
이흔암 내원의 종간군사 말씀이 지극히 타당하고 옳은 줄로 아옵니다. 폐하의 뜻을 신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옵니다. 국가를 위하는 일이옵니다. 가납하시오소서.
환선길 가납하시오소서.
김락 가납하시오소서.
모두들 가납하시오소서, 폐하.....
궁예는 답답하다, 그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가납하라는 신들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러기를 얼마, 그예 궁예가 앞에 놓인 서탁을 손으로 몇 번 내려친다. 그러자 좌중이 조용해 진다.
궁예 참으로 답답한 분들이오. 그토록 아니 된다 하였건만 마치 어린애처럼들 졸라대니..... (사이) ...... 나는 알고 있소이다. 나에게, 이 궁예라는 사람에게 오는 여인들은 모두가 불행하다는 것이오.
모두들 ............?
궁예 왜, 나는 불국토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인간들의 희노애락 같은 것은 나에게는 없소이다. 나는 미륵이기 때문이오.
모두들 .........
궁예 허나, 그대들이 쉬임없이 이 일로 시끄럽게 하니 내가 오늘 허락하겠소이다. 연화라고 하였든가........?
종간 예, 폐하.
궁예 나랏법에 따라 그대들이 청한 국혼을 준비토록 하시오. 이 일은 우리가 천도를 한 후에 시행할 것이니, 그리 알도톡 하오.
종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러나, 복지겸만은 눈을 감은 채 아무 표정이 없다. 그런 복지겸을 보는 종간의 표정에서 다시 궁예의 얼굴로 이어지면서......
씬 11 길
철원성의 문이 열리면서 금대와 장일이 나란히 말을 달려나간다. 그들 곧 그렇게 사라져 간다. 멀어지고 나서...
씬 12 강장자 집 외경 (밤)
백씨 (E) 국혼.... 국혼이라고 하였습니까?
씬 13 동 강장자 처소 밖
과일상을 들고 거소 앞에 이르던 연화가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하며 선다.
강장자 (E) 그렇소이다. 보시오, 부인... 내원에서 종간군사라는 분이 은밀히 보내온 서찰이오.
연화 .........?
씬 14 동 집 강장자의 거소
백씨가 눈을 크게 뜨고 보고있고 강장자가 황실에서 온 서찰을 보여준다.
강장자 이 서찰을 보시오. 틀림없소이다. 오늘 낮에 폐하께서 정식으로 국혼을 결정하셨다는 거예요.
백씨 뭐라구요?
강장자 내가 일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 종간군사라는 분이 우리 연화일을 귀띔하였다고 말이오, 국모가 될 것이라구요. 허허.... 오늘밤 내군장군이 직접 이곳으로 온다는구려.. 국혼이 결정됐어요.
백씨 무서운 일입니다. 송악에 왕건공자는 어찌하구요?
강장자 이미 끝난 일이예요.
백씨 끝이 나다니요? 당사자들은 생각이 그렇지 않은데 누구 마음대로 끝을 냅니까?
강자자 부인, 그렇지 않아도 얘기를 하려고 하였습니다마는... 절대로 이제는 송악 이야기는 해서는 아니되오.
백씨 예....?
강장자 은부라는 내군장군이 패서의 호족들을 모아놓고 크게 경을 쳤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우리 신천의 연화와 송악의 왕건공자와의 혼사를 입에 올리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구요....
백씨 세상에.... 어느새 그렇게까지 일이....
강장자 왕륭성주도 금성에서 죽었어요. 이제 곧 폐하께서 송악으로 오십니다. 그렇게 되면 왕건공자는 이제 송악에도 있을 곳이 없어요. 다시 말한다면 왕씨 가문의 송악은 없다 이 말이예요, 부인..
백씨 무서워라... 이 일을 어찌할꼬..대체 이 일을...
강장자 송악은 끝이 났다니까요, 부인......
그때, 밖에서 과일상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앙칼진 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화 (E)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아버님.
갑작스런 소리에 강장자가 놀라 당황하며 휘장을 걷고 본다. 그 밖에 연화가 서 있다.
연화 아버님, 소녀는 절대로 폐하께 시집가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오래전부터 소녀는 왕씨가문의 사람이었사옵니다. 잊으셨사옵니까? 어른들이 결정하신 일이옵니다.
강장자 연, 연화야... 그런 것이 아니라...
연화 생각보다 일이 더 다급해졌사옵니다. 소녀가 왕공자의 정혼녀라는 것을 아시게 되면 폐하께서는 이 국혼을 단념하게 되실 것이옵니다.
백씨 연화야 그것은 아니된다.
강장자 큰일날 소리 하지 말아라...
연화 이 일은 다시 왕공자와 의논을 해야겠사옵니다. 슬이야? 말을 준비하거라.
슬이 예, 아씨....
연화는 그렇게 성큼성큼 나가 버린다. 강장자 내외는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며 연화를 부른다.
강장자 연화야, 어딜가느냐, 연화야......
백씨 .....?
강장자 저 아이가 우리말을 다 들었지 않소?
백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이를 어쩌면 좋사옵니까? 저 아이 성미에 이 일이 무사히 넘어가겠습니까?
강장자 ........?
씬 15 밤길
연화와 슬이가 달려가고 있다. 그 위로 연화의 생각이 소리로 들려온다.
연화 (E)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이제 더는 믿을 수가 없어. 오늘밤 모든 것은 끝을 내야 한다. 우리가 해 내야 해....
그녀들 그렇게 사라져 가면......
씬 16 송악성 외경 (문경세트)
끝없이 펼쳐져있는 큰 성의 모습이 어둠 속에 잠겨있다. 왕건과 세 결의형제가 천천히 다가온다. 어느 큰문을 소리내어 열자 대궐 안의 전각들 모습과 정전의 모습들이 웅장하게 보여온다. 왕건이 감회어린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다.
능산 엄청난 역사를 해냈사옵니다. 주군.
박술희 기적같사옵니다. 그 짧은 기간에 이만한 황궁이 들어서다니요..?
유금필 폐하께서도 주군의 공을 높이 평가하셨다고 하옵니다.
왕건 어찌 나의 공이겠소이까? 그대들과 백성들의 피땀이 아니겠소이까? 천도할 준비가 모두 끝이났다지요?
유금필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철원에서는 지금 그 때문에 매우 부산하다 하옵니다. 궁녀들과 환관들하며 모든 것이 신라 황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하옵니다.
왕건 폐하의 궁전인데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요. 자 가십시다..
이들 궐안을 둘러보며 천천히 정전 안의 뜰을 걸어나간다.
씬 17 그 궐안 다른 길
이들이 궁성 안의 다른 전각 사이를 걸어오고 있다. 가면서 유금필이 자꾸만 할 말이 있는 듯 왕건의 표정을 훔쳐본다. 그러자 왕건도 그것을 느끼고 서로의 시선이 부딪힌다.
왕건 유장사는 내게 무슨 할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네만....
유금필 그렇사옵니다
능산들 .......(무슨 일인가 본다)
왕건 말해보시게.
유금필 저는 본래 강장자 댁의 가인이었사옵니다. 그 집 식객이었다가 이제 비로소 주군의 사람이 되었사옵니다. 누구보다도 저희 세 사람 중 주군에 대해 잘 아옵니다.
왕건 그런대.....?
유금필 이제 송악을 통째로 수리하여 폐하께 드렸사옵니다. 어머님께오서도 암자로 가시어 주군 곁을 떠나셨사옵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혼자가 되셨사옵니다. 빨리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하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능산 남아있는 문제라니요? 뭘 말하는 게요, 형님?
(배역 관계상 형과 아우의 서열이 바뀝니다. 왕건,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 순으로 정해집니다)
유금필 아직도 주군께서는 미장가이시옵니다. 예전에 정혼을 하신터인데 왜 이러고 계시온지요? 장래로 보아 참으로
염려스러운 일이 아니옵니까? 박술희 허허허... 아직도 이 성의 성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같은 천하의 장사들을 아우로 두셨사옵니다. 설마 처자가 없어 못가시는 것은 아니실테고....
유금필 소인은 다 보고 있었사옵니다. 이제 상황이 아주 급박한 것 같사옵니다. 폐하께오서 신천 강장자댁 따님을 황후감이라 말씀 하셨다 하옵니다. 알고 계시옵니까?
능산 ..........?
왕건 ...... 알고 있었네. 금성에서 아버님 초상을 치를 때에 그리 하셨지.
유금필 그런대도 아무런 조치나 대안이 없으시옵니다.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신료들이 폐하께 국혼을 하시라 청하고 있사옵니다. 그 상대가 바로 연화 아씨이옵니다. 모르고 계셨사옵니까?
왕건 알고 있었네. 내 어찌 모르겠는가? 알고 있었어.
그와 동시에 왕건의 발걸음이 딱 멈춘다. 그들도 모두 뻥하니 앞을 본다. 어둠속으로 두 필의 말이 달려오며 멎은 것이다. 말위의 사람들은 연화와 슬이였다.
박술희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이게 그 격이지 않소? 저분이 연화아씨 아니오, 형님?
유금필 아씨께서 어쩐 일이시옵니까?
그러나 연화는 댓구없이 왕건만을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자 연화가 천천히 말에서 내려선다.
연화 지난 번에 분명 다시 오겠다 하였습니다. 짧지 않은 길을 달려오느라 목이 타옵니다. 차 한잔 주시겠사옵니까?
그러자 유금필이 얼른 수행했던 장수장에게 이른다.
유금필 이보시게, 장수장. 두 분을 뫼셔 가게나.
장수장 예, 장사님.
왕건 가십시다.
왕건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연화를 인도해 간다. 두 사람 자연스레 함께 걷기 시작한다. 박술희가 능산에게 묘한 눈짓을 하며 물러나자고 한다. 세 사람, 뒤로 빠지고 인사를 하며 물러간다. 그리고 장수장이 앞서고 두 사람이 뒤를 따른다.
씬 18 그 길
궁성 밖 큰 대로길을 걸으며 한동안 말이없다가 왕건이 입을 연다. 종자들이 등을 들고 앞서고 있다.
왕건 이 밤중에 어찌 이리 급히 오시었소, 낭자?
연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급히 달려올 수 밖에요.
왕건 무엇이 그리도 급합니까?
연화 무엇이냐구요? 공자께서 지난번에 대답해 주시지 못한 그 일이옵니다.
왕건 무슨 일이 생겼구려.
연화 가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오늘밤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주셔야 하옵니다. 오늘밤으로 말이옵니다.
왕건 ............?
디졸브되면서....
씬 19 왕건의 처소 (집무실) 외경
방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밝다. 밖에는 장수장과 군사들이 번을 서고 있다.
왕건 (E) 국혼이라고 하셨소이까, 낭자?
씬 20 동 처소 안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왕건은 놀란 표정이다.
왕건 그 일이 그예... 소문이 아니라 사실로 되었다는 것이오?
연화 그렇습니다. 철원에서 온 내군장군의 서찰을 보았사옵니다.
왕건 ........?
연화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왕건 .... (오랜 침묵 끝에) 그 분은 폐하이시고 나는 그 분의 신하요. 우리의 정리보다도 더 큰 것이 충성이오.
연화 (기가막히다) 그것이 대답이옵니까?
왕건 내가 낭자를 연모하였음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오. 그러나 불행이도 어른들의 이해가 맞지 않아 오랜 시일을 허비하였소이다. 참으로 안타까웠소이다. 우리는 그것을 놓친 것이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약속의 시간을 놓쳤소이다.
연화 (처연하게) 그것이 공자의 대답이시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폐하께서 낭자를 택하셨다면 모든 것이 끝난 것 아니겠소이까?
연화 그래서 오늘밤이 중요하다고 하였사옵니다. 바로 오늘밤.... 폐하가 계시는 황실에서 내군장군 은부라는 사람이 저희 아버님을 만나러 온다 하였습니다. 국혼에 관하여 은밀히 논의하기 위해서이지요.
왕건 .......
연화 하지만 이번 국혼은 아니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소녀는 이미 이곳 송악에 와 있기 때문이옵니다. 나의 정혼자를 찾아 옛 약속을 지키려고 이곳에 왔사옵니다. 공자님의 정혼자로서 말이옵니다. 아시겠사옵니까?
왕건 ..........?
씬 21 마사부의 처소
왕식렴과 왕평달, 두 사부가 함께 해 있다. 놀란 눈으로 왕평달이 묻는다.
왕평달 뭐라고? 강장자댁 연화낭자가 주군의 방에 함께 있다?
왕식렴 이거 큰 일이 아니옵니까?
변사부 큰 일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큰 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사옵니다. 연화낭자는 폐하께서 국모감으로 천하에 공표를 하셨사옵니다.
마사부 일이 어렵게 되어가는 것 같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군의 은부라는 사람이 곳곳에 첩자를 띄워 많은 것들을 염탐하고 있다 하옵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왕평달 안되지, 안되지.... 섶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야. 가뜩이나 우리 송악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얼마나 좋은 빌미가 되겠는가? 여차할 경우 삼족을 멸할 수도 있는 일이야. 폐하의 여인을 훔치는 일이 아닌가 말일세. 허허, 이거 어쩌나.....
그들의 당황한 표정에서....
씬 22 그밤 강장자댁 외경
은부 (E) 따님께서는 주무신다구요?
씬 23 동 강장자 처소
촛불 밑에 강장자와 은부가 마주해 있다. 은부가 음험한 미소를 띄우며 관찰하듯 강장자를 살펴보고 있다.
은부 따님께서는 잠자리에 일찍 드시나 보옵니다?
강장자 예, 예....그게 저... 오늘은 좀 곤하다고 하여서..헤헤헤..송구하옵니다. 내군장군께 나와 인사를 올려야 하는 것인데...
은부 허허, 어인 말씀을... 장차 황후마마가 되실 분이시오이다. 나같은 사람에게 인사라니 그건 당치 않소이다. 그건 그렇다 하고....
강장자 .... 말씀 하시오소서, 장군.
은부 (은근히 협박하듯) 황후의 집안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오. 하지만... 어쩌다가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일신을 망치고 가문이 쑥때밭이 되는 것이 또한 외척이라는 것입니다.
강장자 ....... (겁먹고).....?
은부 그만큼 엄청난 자리예요. 권력을 잡자면 한없이 큰 권력을 잡을 수 있고 재물을 모으자면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그 자리요. 그러나... 끓는 기름가마 같아서 조금만 여차하면 피바람이 얼마든지 불수 있는 곳이 또한 그곳이거든....
강장자 (공포)....... (마른침을 삼키며)......그, 그렇겠습지요...
은부 이 나라의 큰 일은 폐하께서 다 하시지만 그 모든 일을 다 발상하고 주관하시는 분은 내원에 계시는 종간군사이십니다. 아시겠소이까? 그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신천의 강장자 댁과 송악 왕성주의 혼인약속에 대해서 말이요.
강장자 ...... (기겁하며) 예?
은부 이미 이 댁 따님은 폐하께 가시기로 정해졌소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지난 일을 깨끗이 지워야 한다 이 말씀이오. 아시겠소? 깨끗이....아주 깨끗이 말이오.
강장자 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송악과는...이미..끝난 일이옵니다.
은부 더 깨끗이 끝내라고 하였소이다. 잘못될 경우 이 댁은 물론이거니와 송악까지도 줄줄이 목이 달아날 수 있소이다. 불바다가 되는 것이지요.
강장자 ....... (식은 땀을 흘린다) 염려놓으시오소서. 그리 하겠사옵니다.
은부 좋소이다, 그리 믿겠소이다. 폐하께서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잡음이 없도록 국혼을 잘 준비해 주시구려. 허허허허......
씬 24 철원성 궁예의 대전
성내의 시야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문을 열어놓고 앉아서 궁예가 염주를 굴리고 있다. 종간이 그 옆에서 아뢰고 있다. 이곳에서도 황촛대는 휘황하게 타오르고 있다.
종간 이제 날이 밝으면 폐하께오서는 송악의 새 궁전으로 가시게 되옵니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궁예 .........
종간 또한 그곳에 가시게 되오면 바로 나라의 큰 경사인 황후마마를 뫼시는 의식이 진행될 것이옵니다. 좋은 일만 거듭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허허허....
궁예 좋은 일이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새 집을 얻고 새 장가를 가게 되었으니 말이오. 내원께서는 그것이 그렇게 좋아보이시오?
종간 물론 폐하같이 큰 도를 이루신 분께는 그런 것들이 어찌 크게 흡족하시겠사옵니까마는....백성들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대 고려 제국의 새로운 아침을 보는 것처럼 감격할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백성들이 기뻐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구려.
종간 기왕에 말씀이 나왔으니 여쭙겠습니다마는....
궁예 말씀 하세요.
종간 폐하, 양길의 따님은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궁예 어찌하다니...?
종간 어차피 새로운 국모님을 뫼시게 되었사옵니다. 아무래도 상당한 불편함이 따를 것으로 아옵니다마는....
궁예 허허허....그 생각은 잘못되었소이다. 내게는 여인이 열이오나 백이오나 다 마찬가지외다. 뭐가 불편하단 말이오?
종간 그거야....
궁예 허허허.. 아직도 그렇게 나를 모르시오? 그 보살은 내가 내관을 시켜 이리로 오라고 하였소이다. 아무래도 새로운 황후가 생긴다면 그래도 이야기는 해주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오.
종간 멀리 보내시오소서.
궁예 허허허...글쎄요. 보낸다....?
그때, 환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환관 (E) 대왕폐하, 마군장군이신 복지겸 장군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그래..? 들라하라.
종간 .....?
복지겸이 들어와 절을 올린 후 앉는다. 궁예가 온화하게 웃는다.
궁예 장군께서 어쩐 일이시오?
복지겸 문안 인사도 드릴겸... 여쭐 말씀이 있사와...
궁예 말해보시오.
복지겸 신은 평생 의를 중하게 여기고 살아왔사옵니다. 이번에 송악으로 천도를 하시면 새 황후를 모신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
복지겸 신이 일전에 말씀 올린 것처럼 폐하께오서는 양길의 따님에 대해 그 사후를 지켜주실 것이온지요?
종간 무뢰하오.... 신하로써 어찌 한번 약속하신 것을 두 번씩 되묻는 것이오?
궁예 .......
복지겸 ............
씬 25 대전 근처
미향이 환관과 궁녀들에게 인도되어 오고 있다.
미향 어쩐 일로 폐하께서 이 밤에 이몸을 다 불러주시었는고...?
월이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님.
그들 그렇게 전각을 돌아 대전 앞에 이른다.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이들 멈칫선다.
종간 (E) 폐하께서는 지존이시오. 한번 말씀하신 것을 신하가 의심한다면 이는 불충 중에도 큰 불충인 것이오.
미향들 ..........
환관 (눈치보다가 알린다) 폐하... 후원의 미향부인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E) 들라하라.
씬 26 동 대전 안
세 사람이 앉아있는 가운데 미향이 들어와 절을 하고 앉는다.
궁예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보살.
미향 찾아계시었사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종간,복지겸 ..........(눈치를 보고)
궁예 날이 밝으면 우리는 송악으로 갑니다. 그리고 신료들의 청에 의해서 내가 다시 장가를 가야 한답니다. 아시겠소, 보살?
미향 들었사옵니다.
궁예 그래서 하는 말이오마는... 여기 내원께서는 그대를 조용한 곳으로 보내라 하고....
종간 ............?
궁예 또 여기 복장군께서는 그대를 안전하게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나의 옛 다짐을 다시 확인하러 왔소이다. 내가 어떻게 대답할 것 같소이까, 보살?
미향 .......
궁예 아무것도 눈치볼 것 없소이다. 말해보시오, 보살.
미향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폐하께는 어느 여인이 또 온다 한들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옵니다. 새로운 지옥이 열릴 것이옵니다.
종간 허허, 이런...
궁예 (듣고 있다가 폭소) 핫하하하하........ 참으로 맞는 말이오. 어쩌면 그렇게 정확히 예측을 하시었소이까, 보살? 요즘 불경을 열심히 읽는다 하더니 이제 도가 트이는 모양이구려, 하하하하하...... 그렇소이다. 보살은 알고 있는 일을 이들은 하나도 모르는구려. 두분께서는 들으셨소이까? 이 보살의 대답이 곧 나의 대답이오. 이제 되었소이까?
모두들 .......
궁예 보살은 들으시오. 이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어도 좋소.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또 절을 원하면 절을 지어 줄 것이오. 또 대궐이 있고 싶으면 그대로 대궐에 있으시오. 편하게 사시오.
미향 대궐에 있을 것이옵니다, 폐하.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폐하의 안해이며 폐하의 아드님을 낳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니까 폐하께오서는 싫든 좋든 소첩의 지아비가 되시옵니다.
궁예 지아비라......? 아직도 꿈을 꾸는 게로구먼, 쯧쯧쯧.....
미향 꿈이라도 이 사실은 어쩔수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아직도 소첩의 지아비시옵니다.
그 다부진 미향의 얼굴에서....
씬 27 강장자 댁 (아침) 마당
새소리들이 높다. 강장자는 밤새 한잠을 자지 못한 듯 마당을 서성거린다. 그때 백씨가 저만큼 안채 쪽에서 걸어나온다.
백씨 나으리, 대체 어찌 되었사옵니까? 우리 연화는요?
강장자 십중팔구 송악에 가 있을 것이오.
백씨 어쩌면 좋사옵니까? 제발 이 소문이 밖으로 안나가야 할 것인데..
강장자 이를 말이겠소?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내군장군이 두고두고 다짐을 받고 간 것이 그 말이오.
백씨 그 말이라니요?
강장자 만에 하나 새간에 송악의 왕공자와 우리 연화사이에 불미한 소문이 나갈 경우 삼족을 멸하겠다는 것이오.
백씨 세상에...
강장자 그런데 이 철없는 것이 지금 송악에 가 있다 그 말이오. 어이구 억장이 무너지는구려. 굴러오는 복을 제가 차고 있소이다.
백씨 그것을 어찌 굴러오는 복이라 하오이까. 화근일 수도 있사옵니다.
강장자 아니, 부인. 뭐요? 화근이라니...
백씨 뻔히 정혼자가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국혼으로 바뀌어지고 있사옵니다. 그러니까 연화가 반발을 하는 것이예요. 이것을 어찌 좋은 일이라고만 하실 것이옵니까?
강장자 부인부터 그 생각을 바꾸도록 하시구려. 이것은 지금 우리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예요., 어이구.... 진서방을 보냈으니 곧 무슨 소식이 오긴 오겠지만서두... 이 일을 어쩌나....
씬 28 송악 왕건의 거소 외경
여전히 장수장과 군사들이 번을 서고 있다. 그 거소 밖의 섬돌위에는 연화의 신이 보인다. 멀리서 왕식렴이 홀깃 방쪽을 보고간다.
씬 29 동 거소 안
연화가 홀로 앉아있다. 그 표정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왕건 (E) 낭자, 이렇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이미 페하께서는 낭자를 황후로 맞겠다 하셨소이다. 운명이 변한 것입니다.
연화 (E)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왕건 (E) 가야하오. 다 변했다고 하였소이다. 송악도 변하였고 나라도 변하였고 우리의 사이도 변했소이다. 그대는 이제 황후가 되어야 하는 것이오.
연화 (E) 무슨 말씀을 하셔도 나는 아니갑니다. 우리의 약속은 이런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공자님.
입술을 깨무는 연화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30 동 집 정원
왕건이 물 속에 재미있게 놀고 있는 비단잉어를 본다. 한숨과 답답함이 가득한 표정위로 연화의 격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연화 (E) 소녀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이곳으로 왔사옵니다. 무엇이 그리 무섭사옵니까? 우리들의 사모함보다도 더 큰 것이 있었사옵니까? 그랬사옵니까 , 공자님? (사이) 이제와서 황후감이 되었으니 돌아가라 그것이 하실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사옵니까?
왕건이 또다시 긴 함숨을 내뿜으면 저만큼 장수장과 함께 진서방이 함께온 하인들이 모여 서 있다.
씬 31 동 왕건의 집 평달의 처소
평달 부자와 두 사부, 그리고 세 결의형제가 모여있다. 왕건이 그들을 중심으로 앉아있다.
왕평달 밖에 강장자댁의 집사가 와 있다 하였는가?
왕식렴 예, 아버님.
왕평달 큰 일일세. 보통 일이 아니야. 아직도 이 일을 밖에서는 아무도 모르니 빨리 처리해야 해.
박술희 대단한 낭자인 것 같사옵니다. 정혼자라 하여도 이렇게 밤중에 찾아와 돌아가지 않는다니... 참으로 대가 센 여인이 아니옵니까?
능산 그러게 말일세.
마사부 아무튼 이 일은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옵니다. 나중에 무슨 말을 들으려구요.
변사부 그렇사옵니다.
왕평달 이보시게, 유장사.
유금필 예, 어르신.
왕평달 나설 사람은 그대밖에 없겠구먼.. 가서 이 일을 좀 처리해 주게나.
유금필 알겠사옵니다.
대답하고 밖으로 나간다. 답답해하는 왕평달의 표정에서...
씬 32 왕건의 거소 밖
유금필과 진서방들이 와 있다.
유금필 아씨, 유금필이옵니다. 오늘 철원성에서 이곳으로 폐하가 수많은 신료들이 길을 떠나옵니다.
씬 33 동 방안
유금필 (E) 이렇게 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불행하게 될 수 있사옵니다. 지금은 돌아가시어 좋은 방법을 찾아보시지요.
연화 .............
진서방 (E) 아씨, 어르신들께오서 밤새 한잠도 못 주무셨사옵니다. 황실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하옵니다. 이러시면 큰 일 나시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아씨, 제발...
연화 .......
유금필 (E) 신천과 송악이 큰 곤경을 치르게 돠옵니다. 이번 일만은 다시금 살펴주셔야겠습니다, 아씨.
연화는 눈을 감는다. 한숨을 쉰다. 다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
두사람 (E) 아씨, 돌아가셔야하옵니다.
생각하다 문을 여는 연화. 표정이 굳어있다.
씬 34 동 밖
문을 연 연화가 이들을 훑어본다. 저만큼 왕건이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왕건이 서서히 걸어온다. 왕건이 눈짓을 한다. 그러자 모두들 물러간다.
왕건 낭자. 돌아가셔야 하오. 낭자가 하기에 따라 수많은 목숨이 살기도 하고 또 죽을 수도 있는 것이오. 지금은 돌아가셔야 하오.
연화 (쓴 웃음) 나는 이곳에서 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공자께서는 밖에서 계셨어요. 무엇이 그리 무섭사옵니까?...... 그렇게도 무섭사옵니까?
왕건 .............?
연화 돌아가지요. 나로 인하여 수많은 목숨이 걸려있다 하니 돌아갈 수 밖에요. 폐하께서 아무리 이 몸을 택하였다 하여도 나는 아니갑니다. 이 일은 앞으로 이 몸이 해결을 볼 것이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몸이 나서겠다는 것이옵니다. (밖으로 내려서며) 아직도 소녀는 포기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아시겠사옵니까? 우리의 연을 아무도 못 끊사옵니다. 다시 볼 것이옵니다.
왕건을 대답하지 못한다. 그녀는 아주 여유있게 나와 하녀 슬이와 함께 그 후원을 빠져나간다. 왕건을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쉰다. 유금필도 착잡하다. 연화들은 곧 멀어진다. 그녀들이 멀어지고 나서 모두들 나와 왕건을 본다. 민망한 듯 장수장이 중간의 사잇문을 닫는다. 왕건의 그 우울한 표정에서 디졸브...
씬 35 길
엄청난 행렬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황제의 행렬이 오고있는 것이다. 연도의 백성들이 모두 엎드려 있다. 궁예를 둘러싼 숱한 장수들의 모습하며 수많은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다. 장수들과 환관들과 궁녀들 그리고 신료와 군사들이 끝도없이 밀려오고 있다. 그 위로
해설 서기 898년 단기로는 3231년 그 해의 2월, 궁예는 드디어 철원에서 왕건이 있는 송악성으로 천도를 한다. 그는 훗날 송악에 머물다가 다시 본래의 철원으로 돌아가는데 그가 왜 송악성에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되돌아갔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 대답은 명확하게 내릴 수가 있다. 지금 송악으로 가고 있는 궁예의 결정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그 무렵의 무진중 성에 있는 견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견훤은 그들의 도읍지로 삼을 완산주를 정비하는 한편 국내의 정치 안정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씬 36 무진주 성 외경
씬 37 완산주 성 공역장
곳곳에 공사판이 널려져있다. 추허조와 신강이 뭔가를 숙의하며 인부들을 돌아보고 있다. 디졸브되면서...
씬 38 무진주 성 대전
지도를 확인해가며, 또 서책을 넘기며 견훤이 능환과 최승우를 맞아 국사를 논의하고 있다.
능환 완산주의 공사는 족히 몇 달은 더 지나야 될 것 같사옵니다. 아무래도 버려진 옛 건물들을 손보는데는 시일이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리 서두르지 말자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것이 더 급하이.. (서책보며) 이것 보게나. 우리 서남해는 들판도 넓지만은 곳곳이 강과 바다야. 소금이 많이 나고 철도 많이 나고....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이제부터는 한편으로는 전투력을 키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궁예가 더 커지기 전에 백성들의 인심을 확고하게 안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그것은 곧 나라의 재정을 일이올사옵니다, 폐하.
견훤 백번 옳은 말이야. 그렇고 말고... 지난번에 만났던 그 오다린이란 장자 말일세. 그 끝도없는 소금밭을 내가 보았어. 그것이 바로 황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견훤 그런 자들은 오랫동안 많은 재화를 축적하였을 것이야. 장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있는 자들의 것은 거두어 들여서 좋은 곳에 쓰도록 해야지.
능환 철의 생산도 대폭 늘려서 발해국이나 오월국 등에 교역을 하게 되면 국가의 재정을 더욱 늘릴 수가 있사옵니다.
견훤 좋은 생각이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단 말이야. 아니 그런가?
최승우 하옵고 폐하.
견훤 말씀 하시게.
최승우 일전에 여기계시는 능애님께서 사벌주를 다녀왔다고 들었사옵니다.
견훤 그런데....?
박씨 아버님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 얘기는 그만두세. 내 아버님이기는 하시지만 나하고는 틀렸네 그려.
최승우 그 당시 능환군사께서 하신 말씀이 백번 맞사옵니다. 우리가 완산주를 얻게되면 바로 그 위가 사벌주이옵니다. 코앞에 폐하의 아버님께서 계시게 되옵니다.
박씨 (한숨쉬며) 어쩌겠습니까, 폐하께서 아무리 애를 쓰셔도 부자분의 골이 깊으시니..... 아마도 같이 하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견훤 맞아 맞아.. 내 그 생각만 하면 아주 머리가 아프이....
최승우 신이 한번 더 여기 능애님과 가보면 어떻겠사옵니까?
능애 폐하의 말씀이 맞소이다. 어찌나 고집이 세신지....
최승우 그러나 사벌주를 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북진이 어렵게 되옵니다. 반드시 해결을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신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시오소서. 여기 능애님과 같이 가 보겠사옵니다.
견훤 소용이 없다는데도..... 왜 또 그 얘기가 나왔는가 모르겠구먼...
능환 궁예가 송악으로 가고 있사옵니다. 머지않아 발해국까지 이르는 그 넓은 북쪽 땅이 모두 궁예의 차지가 될 것이옵니다. 우리는 이번에 기필코 사벌주를 다시 또 우리의 영토로 삼아야 하옵니다. 그리하셔야 진정한 폐하의 위엄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옵니다.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궁예왕이 저토록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모습을 천하에 보이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그 위엄을 드러내셔야 하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 궁예라.... 궁예라.....이제 신라가 아니라 궁예가 되었어. 궁예..... 그 외눈박이 중이 천하를 호령하고 있구먼......
씬 39 송악길
송악의 모든 사람들이 왕건과 더불어 송악으로 들어서고 있는 궁예를 맞고 있다. 장관의 행렬이다. 긴 돌다리를 건너 궁예의 모습들이 들어간다. 기다리고 있던 왕건이 장자들을 대신해 나아가 궁예의 말 앞에 허리를 굽히고 선다. 은부와 종간들이 내려다 보고 있다.
왕건 대왕폐하, 어서오시오소서. 오늘의 천도 하심을 감축 드리옵니다.
장자들 (일제헤) 감축드리옵니다.
궁예 고맙소. 왕성주. 그대의 이 엄청난 공은 두고두고 고려국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오. 가십시다.
왕건이 대답과 함께 궁예들을 모셔간다. 이들 일제히 궁궐의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린다. 엄청난 대 병력이 황제를 맞으러 집결해 있었다. 수백 수천의 깃발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큰 대북 수십개가 일제히 울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황제를 맞는 취타대 일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위로 왕건이 천천히 들어서기 시작한다. 정전의 큰 대문이 군관들에 의해 소리를 내며 열린다. 궁예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전의 큰 문앞에 섰다. 뜰안 가득히 그를 맞이하기 위해 서 있는 수많은 신료들과 기치창검이 보인다. 종간이 그 옆에 와 이른다.
종간 폐하. 대왕폐하의 황궁이옵니다. 이제 곧 옥좌로 오르셔야 하옵니다. 황금 면류관과 폐하의 위엄을 드러낼 대례복이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이곳이 폐하의 궁성이옵니다.
궁예 ........
둘러보는 궁예의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