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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맞이하듯 책을 만나는 공간
저에게 서재는 영혼의 사랑방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사랑방이라고 하는 것이, 대개 바깥주인이 외부 손님들을 맞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잖아요. 익숙한 손님들이 거듭 찾아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낯선 손님이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손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내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손님이 너무 좋아서 오래 계시라고 권할 때도 있고 하는 것처럼, 많은 책들이 저한테 손님처럼 왔다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좀 내성적이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버지께서 사업이 파산하는 바람에 갑자기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을 살게 되기도 한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러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 때문에 책이라는 공간으로 도망을 친 것이 아닌가 할 만큼 책에 많이 빠져있었어요. 끝없이 책을 보는 사람이었죠. 어릴 때부터 그 이후 청년기까지……. 아마도 지금까지일 텐데. 어려서 책을 보는 것이 설사 도피행위라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었고, 또 그 속에서 얻은 것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늘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이 되었죠. 마음속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은 조금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먼저 자리를 잡게 되어서, 글을 쓰는 사람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글을 읽는 사람으로 살아오게 됐죠.
저는 데뷔를 한 이후로 – 데뷔전 한지 올해가 30년 째인데 – 계속해서 대중들한테 관심이 많았어요. 대중에 관한 관심이 커서, 특히 출판을 통해서 좀 더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겠다고 생각한지 오래였어요. 처음 데뷔전을 한 것도 <응달에 피는 꽃>이라고 판화집 형태의 책자로 묶여 나오고, 이후로 꾸준히 그런 판화집도 출판을 하기도 했고요. 달력이라든지, 엽서라든지, 책 표지라든지, 정기간행물 표지, 혹은 정기간행물 안의 연재하는 칼럼, 이런 형태로 계속해서 판화를 출판물에 실어서 평범한 사람들 곁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어요. 특히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세상에 하려고 할 때, 무력한 한 개인이 대중들하고 접점을 넓히려고 하면 결국은 다량의 복제가 가능한 그런 형태가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는 인쇄라고 하는 것이 저한테 준 영향이 굉장히 컸어요. 본질적으로 보면 판화라고 하는 것도 인쇄에 가까워요, 복제의 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그리고 과거에, 현재와 같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목판 자체가 엄연히 인쇄술이었거든요. 그게 기능이 좀 수공적이라고 하는 것을 제외하면, 요즘 인쇄 출판의 역할을 판화가 해왔던 거니까 운명적으로 굉장히 가깝다고 할 수도 있는 거죠.
나는 사실은 특별하게 새로운 매체에 관한 호기심이나 이런 것은 없는 편이에요. 특히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정밀하기는 하지만 허상이고 가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그 트릭에 나까지 뛰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생각을 사실은 많이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인 세계에 좀 지속적으로 있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특히 손 뜨개질 같은 것처럼 수공의 느낌, 손으로 하는 조용한 노동이 주는 따뜻함이라든지, 뭔가 친밀감 같은 것이 있는 그런 세계에 저는 관심이 많아서 제가 아마 아주 많은 복제 수단들이 있고 판화의 형태들이 있을 텐데도 목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일 것 같아요.
올해는 제가 데뷔한지 30년 되는 해가 됐어요. 그래서 묵은 그림들과 함께 근년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작은 전시를 하나 해볼까 계획을 하고 있어요. 제가 한 6년째 전시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모처럼 전시 외출을 한번 해볼까 그런 정도를 생각하고 있고. 일상적으로야 늘 봄이 되면 논밭에 뭔가를 심고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될 거고, 때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다른 일 바빠도 제때 제때 논밭 관리 해주려고 쫓아다니기도 할거고요. 누가 올지 모르겠지만, 드나드는 손님들하고도 또 가끔은 보게 될 거고……. 뭐 그런 것 이상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