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주의보도 구냥 오르고져 하는 우리 느림보님들의 타는 목마름을 얼리지 못했던가?
허연 입김을 내 뿜으며 약속된 정차장에 대기 하고 계시던 산벗님들을 연신 픽업 하는가
하더니만 어느새 우리 느림보 리무진은 아침 햇살이 마냥 따숩게만 느껴지는 경부
고속도로를 거침 없이 질주한다.
백두대간 추풍령의 연장 선상에 우뚝 솟은 황악산은 그 넉넉한 품으로 직지사란 명찰을
보듬어 안고 있는데 과거 급제를 위해 한양 천리길을 떠나던 선비들은 소백산에 있는
죽령길은 대나무 밭에서 주욱 죽 미끌어 진다고 해서 피하고, 추풍 낙엽 처럼 우수수
떨어 진다고 해서 이곳 추풍령 고갯길도 또 피하곤 만부득 나는 새도 울고 넘는 다는
문경 새재길 을 넘나 들었다고 하는데 추풍령은 7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던 남 상규란
대중 가수가 힛트를 쳤던 고향의 강이란 노래와 함께 바람도 쉬어 가고 구름도 자고 가는
추풍령 구비 마다 한 많은 사연으로 이어 지는 추풍령이란 대중 가요로 유명하고
황악산과 수도산이 있는 이곳 김천땅은 방학철이면 가끔씩 우리 느림보 산악회를 찾으시는
니콜라스님의 고향땅이기도 하다.
여시골산을 경유하는 괘방령에 당도하여 바깥을 얼핏 내다 보니 햇살이 마냥 따사롭게 보여
언능 겉옷을 베낭에 집어 넣고 하차를 하니 흐미 모진 추풍령 바람이 마치 미친 년 광목 치마
처럼 펄럭인다.
이런 매서븐 능선길 바람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직지사를 경유한 계곡길을 선택하지 못한
불찰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동장군처럼 무시 무시한 겨울바람이 왜놈 순사의 말채찍처럼 매섭게 내 뺨따구니를
휘 갈기며 스치운다.
눈물 콧물 범벅탕을 연신 핑핑 거리며 복날 모란시장 황구처럼 끌려 가듯 산길을 재촉하는
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지난 주 월봉산 산행기에서 못다 한 일목탱천 목자지행이란 선문답의 주석으로 일단
화두를 돌려 보면
일목 즉 나무 하나로 탱천 즉 하늘을 떠 받히는 재주를 가진 목자(木子) 놈의 소행?
절에서 수행을 하시는 원주스님인지라 비결,감결 혹은 예언서 등등에 늘상 등장하는,
글씨를 풀어 쓰는 즉 파자에도 능했었으리라 금새 말뜻을 알아 채린 원주스님의 제보로
서울로 급파된 형사대가 금새 용의자를 검거 압송하여 취조하니 이내 실토를 한다.
몇 개월 전에 해인사 경내에 불사가 있어 잠시 단체로 기숙을 하며 일을 하던 이씨(李)
성을 가진 목수(대목)가 연분이 있던 처녀와 약간의 다툼 끝에 살인을 하게 되자 겁에
질려 낙엽 더미에 시신을 유기하였던 것이다.
그후 명성을 얻은 부산 박도사는 상당히 비싼 복채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점이다 머다 하는 것이 나물 놓고 두푼 어치도 않되는 서민들이
즐겨 보는 일이 아니다.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에 있는 사람은 먹거리 구하느라 점 같은 걸 볼 겨를이 없지만
너무 기름지게 많이 쳐 먹어서 자칫하면 배가 불러서 터져 죽을지 모르는 부자나 권력자
들이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더 긁어 모으기 위해 초조한 마음을 달래느라 보는 것이다.
이곳 김천땅에서 엎어 지면 코가 닿는 곳이 구미 선산인데 예로 부터 조선 인재의 반수가
영남땅에서 태여 나고 그 반수의 반이 구미 선산 출신이란 말이 있어서 그런지 고 박 정희
대통령과 김 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고향땅이기도 하다.
민족중흥의 역사적인 사명이란 기치를 내 걸고 이 나라에서 가난이라는 고통의 굴레를
벗겨 버린 박 대통령께서 마침내 유신헌법을 구상하고 실행에 앞서 고뇌를 하다 암암리에
부산 박도사에게 사람을 보내 유신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자 약간은 성격이 괴팍했던
이 박도사란 분이 방바닥에 버려 둔 구겨진 담뱃갑을 펼쳐선 거기에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유신이란 두 글자를 긁적였는데 유를 한문으로 귀신 유짜를 써 버린 것이다.
구겨진 담뱃갑에 써 있는 귀신 유짜를 받아 보는 이는 틀림없이 엿을 먹은 심정이였을
터이다. 당연한 얘기(?) 겠지만 오래지 않아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 간 부산 박도사는
똥물을 토해 낼 정도로 흠씬 얻어 터지게 된다.
황악산 처럼 활엽수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산은 오늘 처럼 눈이 내렸던 날은 낙엽이
떨어 진, 줄 지어 서 있는 앙상한 나무들이 마치 하얀 바둑판을 보는 듯? 아니면 격자
무늬의 쇠그물을 씌워 놓은 듯 하다. 이날
김천 황악산의 상고대는 숱하게 보았던 상고대와는 또 다른 묘한 감흥을 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상고대란 생각이 연신 떠 오른다.
황악산은 직지사를 비보하기 위해 어느 누구의 손에 만들어 졌는 것 같은 삼태기 형태의
포근한 지세인데 직설하면 내가 애당초 태여 났던 본적지 즉 그 깊디 깊은 계곡을 보는 듯
하다. 황악산과는 약간은 다른 형태의 여성 음부산이 신라 고도 경주 건천면에 있다.
산엘 다니다 보면 여성봉이니 머니 좋게 말하는 산은 거의 대부분이 여성 음부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선덕 여왕의 설화로 더욱 유명해 졌던 경주 건천의 여근곡은 우리나라
최고의 음부산으로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의 학습코스이기도 한데 선덕 여왕의
설화의 주된 내용은 신라를 습격하기 위해 몰래 경주 인근의 여근곡에 숨어 든 백제
군사들이 해필이면 재수 옴 붙게도 여근곡 바로 아래에서 숙영을 하곤 그 엄청난 음기에
아랫도리 맥이 빠져서 다음 날 선덕 여왕의 명령을 받고 공격해 온 신라 병사에게
전멸되었다는 것이다.
여근곡은 기차나 차량을 이용하여 인근을 지나면서 유심히 보면 얼른 눈에 들어 오는데
병풍처럼 길게 늘어 선 산 정중앙에 그 부위만 딱 떼어 놓은 듯 한데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여성봉이 있는 산이 있는 곳이면
늘상 따라 다니는 얘기가 동네에서 장가를 못가서 안달이 난 노총각이 있으면 여성봉
아래로 흐르는 물 웅덩이에 장대를 넣고 사정없이 휘 저서 불면 금새 동네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 것인데 이곳 여근곡은 묘하게도 겨울에 가 보면 황악산 처럼 대부분의
활엽수들은 낙엽이 져서 잘 보이질 않는데 으 으 음 머랄까? 국어 사전에 보니
X거웃이라고 써 있더라구요. 이 거웃 부위에만 어느 놈이 역부러 식목을 했는지
거무튀튀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지 멉니껴? 흐 흐 농담 아님.
여느 산 처럼 이곳 황악산도 하산길은 멀고도 멀다. 한참을 내려 오다 정상을 되 돌아
보고 또 보면서 참말로 내가 저 산엘 올랐는가 반문을 해 보면서 재규어 등가죽 처럼
잔설이 험상궂은 산길을 내려 오고 또 내려 오니 명적암이란 암자가 보이고 이내
본당인 직지사가 시야에 들어 온다. 난 사실 오늘 산행의 주목적은 난생 처음 가 보는
고찰 직지사인데 허망하게도 일주문을 통해 법당이 있는 경내로 들어 가지 않고 구냥
내려 오던 길을 재촉하며 참으로 무심한 마음으로 스쳐 지나쳐 버린다.
촉박한 시간탓도 있지만 엄청난 위용(?)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법당 건물들을 보노라니 차마
들어 가서 부처님께 인사 올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사는 오리역 인근에도 이름만 들어도 금새 알 수가 있는 대형 예배당이 즐비한데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어떤 교회는 바로 옆에 있는 4~5층 짜리 상가 건물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도 모잘라서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 날 그 인근에 있는 상가 건물을 또 매입
하였던 가 보다. 장사하던 상인들을 다 몰아 내곤 일층엔 음료를 마시는 휴식 공간으로
이층은 또 어떤 용도로 사용한다고 건물 벽면에 안내판을 붙여 놨지만 그곳을 아침 저녁
으로 수도 없이 지나쳐 봐야 일충 휴계실에서 동전커피 한잔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교회나 법당은 성직자들이 수행하며 신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예배나 예불을 드리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돈은 모이면 반드시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마련이다.
맨발에 누더기만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도 구냥 자연 그대로의 동산에서 복음을 전해 주셨고
거지 중에 상거지 신세였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분소의라는 똥 딱던 천을 기워서 만든
누더기에 맨발로 산상에서 설교를 하셨을 따름이다.
난 비록 불제자 이지만 어릴 적에 들었던 산골 마을의 자그만 함석 지붕 예배당에서
들리던 그 풍금소리가 지금도 귀에서 들리는 듯 하다.
난 불교를 넘 늦게 알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경전 공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가 있는, 스님들이 썼거나 스님들에 대한 수필이나 산문집 등등은 꽤나
많이도 읽어 보았다.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인
자기 주장을 내 세운 글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글의 내용이 유사하다. 전부 남의 주장이나
글을 인용했기 때문인데 가끔씩은 자기가 실제로 체험했던 내용들도 나오긴 한다.
행자 시절 아니면 햇중 시절 쌀 한톨 배춧잎 한장 버리지 못하게 엄한 살림을 사셨던
어른 스님들 얘기와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을 말씀 하셨던 백장 청규를 내 세우며
주경 야독을 하면서 콩깻묵 뜯어 먹었던 얘기들도 자주 접하는데 난 요즈음은 다니던
절에도 거의 가질 않는다. 왜냐구요?
신도수가 그리 많지 않아 지금 사용하고 있는 법당 건물도 유휴 공간이 부지기수인데
허구헌 날 법당 건물을 증축하는 불사에만 여념이 없다. 법회를 한다고 해서
절엘 올라 가 보면 물론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법문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이
신도들 주머니를 쥐어 짜는 돈 얘기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가 보다.
얼마 전에 언론에서 얼굴을 붉히며 언듯 보았던 내용이다.
룸 싸롱 출입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조계종 어느 요직 간부의 상좌란 스님이 면허가 취소될
정도로 만취 운전을 하다 적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백을 알 수가 있다.
나처럼 술을 마시는 놈은 고기를 쳐 묵게 마련이고 남의 고기를 맛 들인 놈은 사람
생고기가 고기 중에서 암소고기 보다 더 맛있다는 걸 자동으로 알게 된다.
콩깨묵 뿌시고 풀 뜯어 먹으며 뱃가죽이 등창에 들러 붙도록 수행만을 해? 이룬 말이
오뉴월 염천에 싸리나무 울타리 밑에서 부달 처억 늘이고 한숨 땡기던 멍멍이가 하품하다
울타리에서 떨어 진 늙은 호박에 좆 찡기는 소리처럼 들리면 증말 안돼는데에...
분당 탄천변에서 흰소를 찾아 나선 돌삐 드립니다.
첨언: 다음 다음 주는 양주 불곡산에서 우리 느림보의 송년 산행 뒷풀이 여흥이 거나하게
진행된다고 합니다. 느림보와 단 한번의 인연이라도 있었던 분이라도 꼬옥 참석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강 대장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일년 이년 정도 살다 보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은 쌍년이나 쌍라이트 가튼 놈이
있기 마련이자너요. 이런
기회에 화악 털어 불면 좋지 않겠습니껴?
늘 좋은 산행 안전한 산행 되시고 황악산에서 약간의 부상을 당하신 느림보 벗님에게
약사 여래와 예손(예수님의 손)의 어루만짐이 계시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첫댓글 와우~
어제의 힘든산행도 거뜬히 해치운 돌삐님답게 피곤하심에도 산행기를 밤새워 쓰셨던가요~?
쭈욱,쭉,쭉
한줄쓰는것만도 생각하고 또머리를 쥐어짜야 겨우 몇줄쓰는 저로서는 돌삐님의글이 그저 부럽습니다.
돌삐님께 말씀드렸듯이 제뒤엔 돌삐님이 계셔서 너무 든든하다고....ㅎ
돌삐님과 저는 느림보의 꼴찌단골입니다 .ㅎ
저도 직지사란 절이름은 들어봤지만 직지사 근처를 가본적이 없어서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외향적인것이 다는아니지만 돌삐님의글에도 써있듯이 웅장한 건물과 새로지은듯한 큰건물에 내심실망하며 고찰,명문사찰다움이 느껴지지않아 화장실만 사용하고
주차장으로 갔답니다.
저의 미숙한글 양해바랍니다
후미에 저도있었어요
느림이~~
돌삐님의 흰 소는 삶에서 찿았으리라 생각되네요
겨울 산행의 백미는 하얀 설원을 보는것..
기대하지도 않았던 상고대는 힘든 발걸음을 위로받기에 충분했지요.
힘겹게 오른자만이 맛볼 수 있는 환희!!
우리네 인생에서도 이런 환희가 약속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쯤에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살아가기가 좀 수월할텐데...ㅎ
황악산 잊혀지지 않을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린..황악산..ㅎ
"일년 이년 정도 살다 보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은 쌍년이나 쌍라이트 가튼 놈이 있기 마련이자너요."
아직도 감히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시구나. 한참 웃었읍니다
내 경우는 너무 내가 오래 살았나보다 ....
나이 들수록 남자는 입을 닫을 때가 제일 이쁘고 착하고 현명하다고 눈 감고 입 막고 머리를 돌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