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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 (눅 9:57-62).
오늘 성경 본문에 3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 사람을 이처럼 대하셨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먼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젊은이는 주님의 가르침과 이적을 듣고 보면서 그분에게 끌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건은 주님이 변화산 아래에서 이적을 행하신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불쌍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소년을 고치려 해보았으나 실패했습니다.
주님은 소년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눅 9:42).
젊은이는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놀라운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이 젊은이만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생각도 이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46절은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변론이 일어났습니까?
때가 되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나라를 세우고, 군대를 모으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그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분의 나라에서 요직을, 말하자면 중요한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젊은이도 똑같은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젊은이가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했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타고난 이상주의[어떤 궁극 목적 혹은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 가는 정신 태도]와 의협심에 호소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젊은이를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 .
주님은 “네가 잘못 알았다. 너는 내가 왜 왔는지 잘못 알고 있다. 너는 내 나라에 들어가기에 적합지 않다.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운동은 추종자를 끌어 모으려 애쓰며,
그들에게 호소하며, 그래서 필요하다면 뇌물까지 준다.
그들은 군중을 원하고 지지자를 원하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다르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고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은 뒤이어 젊은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인자다!”
“인자”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아라. 나는 단지 가르치고, 이적을 행하고, 추종자들을 두거나 선동가가 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라. 나는 인자다.
그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입니다! 만물의 통치자며 주인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
이제 두 번째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두 번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첫 번째 사람과 정반대입니다.
첫 번째 사람의 문제는 경솔함과 흥분과 열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 번째 사람을 보시면서,
그가 그분의 가르침과 일어난 일에 매우 끌렸을 뿐 아니라 관심도 많지만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에게는 헌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도전을 주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주님은 이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일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여기에 숨겨진 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하고 즉시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지금은 매우 바쁩니다. 지금 잘 나가고 있고, 내 앞에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막 직장생활, 장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들면서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젊고, 인생을 좀 즐기고 싶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사람의 모습니다. “저는 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갖고 싶습니다. 나로 먼저…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은 이 사람을 즉시 제지하시고서 아주 충격적으로 표현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육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해 살며,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
그는 죽어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서로를 장사지내며, 서로를 칭찬한다. 이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 모두가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주님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사람이 늙은 부모를 보살피고 장사 지내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사람은 단지 먹고 살고 죽는 짐승이 아니다. 인간 속에는 영혼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죽은 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 나라에 있는 자들은 이것을 안다.
이들은 살아 있으며, 영혼을 알고,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알며,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를 안다.”
기독교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생명 자체이신 분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나라에 속한 자들은 자신에게 불멸하는 영혼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은 잃어버린 자이며, 오직 그분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장 첫째입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자신과 자신의 영혼,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관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믿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중지시키려 했을 때, 주님은 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주님께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내 형제인가? 누가 내 어머니인가? 나를 믿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이며 나의 형제다”(마 12:48-50).
주님은 나중에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5).
주님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모나 아내나 남편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들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한다면 부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여러분은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당장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일인지 아셨습니까?
여러분은 “나는 언젠가 그리스도인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것이며,
기독교를 안적도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입니다. 당장 피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입니다.
여기 자원하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서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이 사람 요청도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핵심은, 주님은 무조건적인 내어맡김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그분께 내어맡길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마음이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이것은 관심과 충성심이 분산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새 주인과 함께하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잔치를 열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너는 앞을 봐야 하며, 계속해서 앞을 봐야 한다. 너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뒤의 것을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의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 2:15-16)
우리는 주변에 이런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아닙니다. 빛과 어둠은 섞일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세상을 사랑한 사람의 무서운 예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
하나님은 롯과 그 가족이 살고 있던 도시를 멸하려 하셨으나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강제로 끌어내셨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탈출법이었습니다.
롯과 그 아내와 딸들이 떠나자 소돔과 고모라에는 곧바로 멸망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의 삶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그곳의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나 여전히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습니까?
산으로, 광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멋진 집과 모든 사치스러운 생활을 뒤로 하고 동굴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롯의 아내의 마음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롯의 아내는 갈망하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벌을 받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장).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32).
여러분이 이렇게 죽으면 지옥에 가서 비참하게 영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한 인간으로 사셨고 수치와 고통과 죽음과 십자가와 장사와 이 모든 것을 견디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을 세상으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갈망하는 눈으로 뒤돌아볼 수 있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무언가를 즐긴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님의 은혜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비하면 그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립니다!
저의 악한 본성을 자극하는 저를 끌어내리고 악한 생각과 상상을 하도록 유혹하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모든 것을 버립니다.
저는 주님께 고백합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주님을 따르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저를 값 주고 사셨으니 저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영혼뿐 아니라 몸으로도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제 자신을 무조건 주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