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 소개
■ 박옥남
1963년 중국 헤이룽장성 탕원현 출생.
중국 헤이룽장성 오상 조선족사범학원 일어전과 졸업하고, 중국 헤이룽장성 퉁허현(通河县) 조선족학교와 상즈시(尙志市) 조선족 중학교에서 일어 교사로 근무했다. 1981년 헤이룽장성 연수현 조선족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녀작 발표했는데, 작품으로 『오가툰일화』, 『올케』, 『둥지』 등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콘돔』 등 수필을 발표하면서 헤이룽장신문 진달래문학상, 장락주문학상, 중국 조선족 어머니 수필 상 등 수상했고, ‘제1회 김학철 문학상’에서 <목욕탕에 온 여자들>로 우수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붉은 넥타이>로 제9회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2. 책 소개
중국교포 작가 박옥남(1963~)의 소설집 『마이허』(차이나하우스)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1991년에서 2014년까지 지어진 단편소설 18편이 실려 있다. 2011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간행한 『장손』에 수록된 20편 중 14편을 추렸고, 그 이후 발표된 3편,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발표되지 못한 1편(탈북 여성을 조명한 「해심이」)을 더한 것이다. 『장손』 출판 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순화되었던 표현들은 – 사회 비판, 또는 한족 비하 등 - 작가의 원고에 따라 되살려 주었다. 18편의 소설은 문학이면서 그 이상이다.
첫째, 한국어의 계보, 즉 어보(語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어들을 흐드러지게 구사한다. 이 언어는 한국어 이전의 한국어, 한국어 밖의 한국어, 그리고 중국에 보존된 이산자의 한국어어다. 이 독특한 언어는 인물의 개성과 사건의 현장감을 살려주는 소설의 미적 요소이다. 나아가 험난한 역사 환경에서 민들레처럼 생존해온 한국어의 한 계보이다. 이 언어는 한국어의 한 계보로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둘째, 일종의 풍속지이다. 중국의 교포 사회는 100여 년 동안 순수한 민족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왔고, 그 가운데 조선의 풍속이 보존되었다. 문화는 기원과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보수의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자기 보존의 본능인데, 이 본능은 외부의 도전 앞에서 의지로 강화되기도 합니다. 교포 사회는 중국이라는 대해 곳곳에 점점이 있었던 섬으로, 이들의 풍속은 중국 문화의 포위 속에서 선명하게 존속되었다. 작품들 곳곳에서,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랜 옛 풍속들을 만날 수 있다. 매우 경이로운 일이며, 눈물겨운 사연이다.
셋째, 지리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만주니 요동이니 북방이니 하는 말들이 구름처럼 떠다닌다. 하지만 이 단어들에는 실체가 없다. 이 단어들이 가리키는 지리 규모는 한반도보다도 훨씬 크다. 지시 범위가 너무 크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리 이해는 장소 이해를 전제로 한다. 작품들의 지리 공간은 조선 사람이 살아왔고 이런저런 일을 겪고 있는 구체적인 마을들이다. 그 장소는 송화강 물을 이끌어 논농사를 지어온 흑룡강성 하얼빈시 통하현(通河縣) 오아포진(烏鴉泡鎭) 오사촌(五四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넷째,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며, 기록 속 인물들보다 더 거룩한 삶을 영위해 온 사람들의 사전(史傳)이다. 진수는 아버지와 학교와 이웃집 소녀 야림이를 차례로 잃고 끝내 고향을 떠난다. (「둥지」) 신옥은 물 건너 마을 한족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이허」) 나의 어머니는 열세 살에 시집을 갔고, 열사의 유족이 되고, 과부집이 되었다가 점만이 엄마가 되었다가 다시 과부집이 된다. 엄마의 일생 속에는 해방전쟁과 한국전쟁과 문화혁명이 다 들어있다. (「어머니의 이야기」) 이들의 삶이야말로 역사보다 크고 생생한 진짜 역사이다.
18편의 소설은 어보(語譜), 풍속지, 지리지, 역사서이기에 앞서 재밌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문학작품이다. 뭐가 재밌고 어떻게 감동을 줄까? 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입말 표현이 재밌다. 때론 시끌벅적하고 때론 너무 서글퍼서 말을 잊게 하는 장면들을 살려내는 묘사가 재밌다. 읽다 보면 사건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개되고, 어느새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있게 된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토속적인 표현과 비유, 그리고 중국어를 품은 비속어와 관용어도 재밌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인물들에 투영된 작가의 서정도 특별하다. 「썬딕이」에는 전라도 말을 찰지게 구사하는, 홀아비에 다리를 저는, 성격 고약한 ‘씨팔영감’이 등장한다. 말끝마다 ‘씨팔’을 달고 살아 ‘씨팔영감’이다. 이 씨팔영감이 마을의 문제 고아 ‘썬딕이’(본명은 선덕)를 맡게 되는데, 이후 얼마간 달라진다. 그는 젊어 청루의 여인을 지독하게 사랑한 풍류 순정남이었고, 그 사연으로 세상을 표류하다가 중국 땅에 정착한 것이다. 그는 너무 다정해서 무정해진 것이다. 정이 깊어 매정해진 것이다. 다정과 무정, 심정과 매정 사이의 깊이를 헤아리면 작품들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다.
어머니 상순이나 씨팔영감에 드러나듯, 이 책 속 인물의 사연은 모두 재밌으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재밌다. 재미난 이유는 알겠는데, 슬픈 건 왜일까? 작품들이 거의 모두 ‘소멸’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백 년 동안 언어와 풍속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왔던 교포 사회의 소멸이다. 한중수교 이후 교포 사회엔 한국 바람이 불었고, 순수했던 이 공동체는 바람에 흔들렸고, 해체되기 시작했으며, 이젠 사라져가고 있다. 1920년경부터 시작된 100년의 유이민 역사가 거대한 배가 침몰하듯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석양 속에 떠나가는 님의 뒷모습을 보며, 목멘 가락으로 이별의 노래를 여러 곡 불렀다. 이 노래가 바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재밌으면서 슬픈 이유이다.
작가는 한국과 중국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둥지」로 장낙주 문학상(2005)을, 「목욕탕에 온 여자들」로 제1회 김학철문학상 우수상(2007)을, 「장손」으로 윤동주 문학상(2009)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마이허」로 제7회(2005)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마이허」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렸으며(윤여탁 편, 미래엔, 2009), 프랑스어로도 번역될 만큼 그 예술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2007년에는 「붉은 넥타이」로 제9회 재외동포문학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필 「고추가 익어가는 계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우한용 편, 두산동아, 2012)에 실린 적이 있다.
3. 책 속으로
할머니는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도 못 낳는 남자애를 막내며느리가 둘씩이나 낳았다며 입이 풀린 팥 자루가 되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에 의해 분이 숙모의 인끔이 아무리 올라도 삼촌의 눈에는 다리 긴 쑤즈완 비교도 안 되는지 쩍하면 논두렁 넘다가 걸려 넘어질가 걱정이라느니 뭐니 하며 롱반진반으로 분이 숙모를 시까슬렀다. 그래도 사람 좋은 분이 숙모는 그따위 소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개의치 않고 늘 미소로 받아들였다. 손뿌리 맵짠 분이 숙모는 들일 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살이까지 막히는 데 없어 며느리들 중 할머니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살았다.(올케, P.27)
나는 큰맘 먹고 목욕값 10원에다 1인분 때밀이 돈까지 5원을 더 얹어 주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목욕 한 번 하는데 통닭 한 마리 값이 휘딱 날아가 버렸지만 여느 곳에 비기면 그래도 여기가 제일 싼 곳이기에 좀 아까워도 별수는 없다. 목욕비가 비싸다고 목욕을 아니 할 수도 없는 노릇. 동료들이 샤와기를 한 대 갖추라고 조언을 해준 지가 오래건만 세탁기 하나와 변기 한 틀, 작은 세면조를 들여 놓고 나니 돌아설 자리도 없을 만큼 작은 화장실을 갖고 사는 우리 집 형편이니 샤와기란 애인같이, 갖추고는 싶어도 아주 들여앉히기엔 마깢잖은 호사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시원도 하고 섭섭도 하다.(목욕탕에 온 여자들, P.81)
멀리서 보면 상수리나무 숲을 등에 업고 높은 언덕받이에 올라앉은 마을과 그에 비겨 한 키 낮은 지대에 내려앉은 그 남쪽 마을 사이로 제법 넓은 강 하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띠같이 자유로운 자태로 흘러 지나고 있는 것이 한눈에 안겨 온다. 사시장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이 강을 두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이허’라고 불렀다. ‘마이(螞蟻)’란 중국어로 개미라는 뜻이고 ‘허(河)’는 강이라는 뜻이다.(마이허, p.98)
해심 고모가 살고 있는 쌍교진은 30년 전이나 별 다름없이 그 모습이 허름했다. 병원과 영화관과 뜨내기들이 오며 가며 들리군 하는 여관집만 2층으로 되어 있는 외에 나머지 건물들은 일색 단층집 그대로이다. 옛날 일들이 오롯이 떠오르며 추억을 밟을수 있어 오히려 그것이 나에겐 더 정겹게 안겨 오긴 했지만 말이다.(해심이, p.330)
4. 차 례
01. 우리 동네(1991)
02. 올케(1999)
03. 둥지(2005)
04. 목욕탕에 온 여자들(2006)
05. 마이허(2006)
06. 썬딕이(2007)
07. 찐구(2008)
08. 장손(2008)
09. 아파트(2009)
10. 계명워리(2009)
11. 어머니의 이야기(2009)
12. 작은 진(鎭)의 이야기(2009)
13. 집으로 가는 길(2011)
14. 장례(2011)
15. 해심이(미발표)
16. 바퀴벌레(2012)
17. 아버지(2014)
18. 고향(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