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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전철 9개 노선 확정 발표 이후 여러 언론에서 이 문제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관악구 구의원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정례회 기간 동안 유종필 구청장을 상대로 관악구를 관통하는 3개 노선(신림선, 서부선, 난곡선) 확정 발표의 영향으로 예상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상승과 이에 따른 주택 및 상가의 전월세 대폭 인상에 대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구정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9개 경전철 노선과 지하철 9호선 연장까지 총 10개 노선에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정류장은 총 98개입니다.
전철역이 생기면 그 주변은 소위 ‘역세권’이 되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상가와 주택의 많은 전월세 세입자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실상 개발 난민으로 전락하여 살던 곳, 장사하던 곳에서 쫓겨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안타깝게도 관악구청장도 서울시장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서울 경전철은 흑자 가능하다 ?
박원순 시장은 어제 직접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용인이나 의정부와 같은 경전철 실패 사례를 서울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근거로 서울시는 인구 천만명이 넘는 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달리 흑자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주)가 모두 적자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보다 훨씬 적은 수가 이용하는 경전철이 흑자일 수 있습니까?
또 박원순 시장은 민자로 운영되지만 요금은 기존의 도시철도와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대단한 노력인 듯 이야기 하지만, 건설 예산이 훨씬 적게 드는 경전철은 당연히 요금이 더 저렴해야 합니다. 마을버스가 일반버스와 동일한 요금을 받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듯이 경전철은 일반 중전철보다 요금이 저렴해야 정상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희망제작소 대표 시절, 희망제작소 소식지와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박원순의 희망탐사’ 제39호에서 대전 참여연대 김제선 사무처장을 인터뷰하며 대전지역의 경전철 사업의 허구성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글 링크) 물론 지금은 지방과 서울은 다르다고 강변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박원순 시장과 당시에 인터뷰를 했던 김제선 사무처장이 지금 박원순 시장의 정책을 뭐라고 할지 너무 궁금합니다.
박원순 시장은 또 자동차 이용 수요를 줄이고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교통사각지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며 경전철을 통해 파리, 런던, 도쿄와 같은 국제도시보다 대중교통의 수송분담율을 높이겠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의 허구성은 이미 프레시안에 실린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의 글(관련 글 링크)에 의해 증명된 바 있습니다.
저는 가장 큰 문제는 아래의 파이낸셜 뉴스가 기사화한 것처럼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전월세 세입자들에게 임차료 폭탄을 안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에서 난향동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던 이곳에 경전철이 개통되고 공사 중인 신림~봉천터널 등이 개통되면 집중 조명될 것”이라며 “현재 3.3㎡당 800만원이면 2종 주거지 매입이 가능한데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더 오를 것을 기대하고 3.3㎡당 1200만원에도 내놓지 않는다”
이미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평당 400만원을 더해도 매도할 의사가 없다는 이 충격적인 증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기사에 언급된 바와 같이 3억8천만원 하는 난곡 휴먼시아 2단지 전용 25평의 경우에 1억원을 더 얹어서 4억8천만원을 줘도 팔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전월세 폭탄,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고통을 받나
신뢰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만 부동산114에서 발표한 매매가대비 전세가의 전국 평균이 60% 정도 됩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위 3억8천만원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가 대략 2억2천8백 정도였는데, 신봉터널과 경전철 효과 때문에 전세가가 2억8천만원으로 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세가 무려 5천2백만원이 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과 같이 전세가 비율이 높아진 것은 부동산 경기둔화로 인한 효과가 일부 있음을 감안하여 매매가 상승으로 전세가 비율이 조금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보통의 서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월세 상승이 있을 것은 확실합니다.
박원순과 이명박, 오세훈 경전철의 뚜렷한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민자사업으로 경전철을 추진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9호선은 원래 민자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추진한 9호선 연장은 서울시 재정투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왜 같은 9호선의 사업방식이 다른지 물어야 합니다.
9호선 연장사업에 민자를 끌어들이려고 해도 사업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민간자본이 투자를 회피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순수 재정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9호선의 경우 기존 지하철보다 높은 요금을 주장했던 사업자들의 요구를 서울시는 보조금을 쥐어주고 겨우 막아냈습니다. 게다가 그 노선을 연장하는 사업은 서울시가 재정사업으로 진행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9호선 사업자는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결론을 말하면 경전철 사업을 시행하더라도 무조건 민자사업 방식으로 한꺼번에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가는 운영수익이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재정투자 사업으로 하되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여 순차적으로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당 서울시당 김상철 사무처장이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에 기고한 다음의 글에 더욱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관련 글 링크)
서울시가 비록 준공영제로 운영하지만 버스요금의 인상을 근본적으로 통제 및 관리하기 힘들거나, 보조금 항목의 부당한 전용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듯이, 경전철을 민자사업으로 진행하여 그 운영을 민간사업자가 하게 되면 그 뒤의 교통공공성의 훼손은 경험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우석훈 박사의 트윗에 의하면 다음 주 화요일, 박원순 시장과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비공개 정책토론회인 듯 합니다.
중요한 정책을 두고 각계의 전문가들과 정책결정권자가 깊이 있는 토론을 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만, 이런 것을 기자들 세워놓고 자기 계획을 발표한 후에 하겠다고 하는 것은 여러모로 시민사회를 들러리 세우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정도의 반발과 비판은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후보 시절, 그리고 시장이 된 직후에도 여러 번 이전 시장들과 여러 정치인들의 토건정책과 전시, 낭비성 행정을 언급하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장으로 기록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토건사업에 해당하는 경전철에 대해서도 여러 번 비판적으로 언급하며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외국의 대규모 도시 재개발이나 중요한 사업 사례들을 언급하며 10년 이상 사회적 토론을 진행한 것을 높이 평가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랬던 분이 다음 선거를 코앞에 두고 8조원 규모의 토목사업 계획을 발표한 것은 어떻게 말한다 해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장으로 평가받아 낙선하기 싫다’는 말 이외의 뜻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발표한 9개 노선 중 3개 노선이 제가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관악구 지역을 통과합니다. 박원순 시장이 관악구에 1박2일 동안 상주하며 운영한 현장시장실에서 우리 관악구청장은 관악구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장에게 가장 높은 지지율을 선사한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이크를 잡은 박원순 시장은 ‘경전철 계획이 발표되면 최대의 수혜지역은 관악구가 될 것’이라고 화답하였습니다. 저는 관악구 의원으로서, 박원순 후보의 지지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 순간 표현하기 힘든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8조원이면 얼마나 많은 집 없는 서민에게 편안하게 등 누일 곳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8조원이면 10억짜리 작은 도서관을 도대체 몇 개나 더 지을 수 있을까요. 8조원이면 얼마나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8조원이면 얼마나 많은 지방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박원순 시장은 우리 노동당(구 진보신당)이 시장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할 때, 그 비판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적한 것은 바로 시장이 돌보겠다고 했던 집 없는 서민들에 대한 대책 없이 추진되는 마을만들기의 허구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2년 살고 떠나는 곳에서 ‘마을만들기’는 불가능
우리 관악구의 경우 하루 평균 289명이 자기가 살던 곳 바깥으로, 관악구 내외로 전출을 합니다. 1년으로 따지만 무려 1십만5천명이나 됩니다. 전체 인구의 거의 20%에 육박하는 인구가 해마다 자신의 ‘마을’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전체 21만 가구 중 자기 소유의 집에 거주하는 가구 비율이 30.6%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세, 보증부 월세, 무보증 월세, 사글세, 무상으로 거주하는 등 남의 집에서 사는 가구 비율은 약 70%에 달합니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3년 반이 지나면 관악구의 집 없는 사람들은 한 번씩 물갈이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집 없는 서민이 2~3년 살자고 마을만들기에 열의를 보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방치된 조건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참여의 욕구가 생길 수 있습니까? 이런 상황이 방치되어 지속된다면 10년 후의 마을만들기의 주역은 시민사회나 보통의 서민이 아니라, 집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의 경전철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인구의 70%에 해당되는 남의 집에 사는 인생들에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전월세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한 경전철 추진은 어떤 의미입니까? 관악구의 경우 이것은 30%를 위한 정책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적은 비율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생을 노력해서 자기가 살 집 딱 한 채만 가진 사람에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세금이 늘어난다는 의미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동네 곳곳에 붙은 경전철 환영 현수막을 보며 제가 한 생각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마냥 시장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의 교통사각지대를 없애고 강남북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꼭 경전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민에게 보다 부담을 덜 주면서도 거대도시 서울의 교통망을 다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각계의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협의해야 합니다. 주민의 불편을 조사하고 다양한 대안을 말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검토가 1년이 걸리든, 5년이 걸리든, 아니 10년이 걸리든 생략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경전철이 해답으로 제시된다면,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 사업은 최대한 재정투자 사업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서울시의 버스교통체제를 완전공영제로 개혁하는 것과 동시에 교통공단을 설립하여 버스와 지하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속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대기업만 배를 불리는 일이 없도록 공적 개발의 방식으로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영세 상가와 집 없는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전월세 대책을 세워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개발의 이익을 일부 사기업과 부동산 토호세력이 독점하지 않도록, 서민에게 개발이 쫓겨남의 다른 말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다방면의 정책적 연구를 거듭해야 합니다.
박원순에 대한 버리지 못하는 소박한 기대
그러나 이렇게 한다면 박원순 시장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시민은, 박원순 시장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위대한 시장’이었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자신이 기록되고 싶은 대로 기록되는 정치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정치인 한 명쯤은 알고 싶다는,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