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잠자리/정호승
진눈깨비가 슬슬 내리는 강기슭 마른 갈대 끝에 앉아
엄마! 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도
가는실잠자리는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살얼음이 살짝 언 겨울강을 건너다가
아이들 몇 명이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도
가는실잠자리는 오직 갈대 끝에 앉아 파르르 날개만 떨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의 어느 푸른 날처럼 신나게 저공비행을 하면서
아이들의 손을 힘차게 잡아 끌어올리고 싶었으나
그만 차가운 바람에 떨며 갈댓잎만 몇 번 흔들고 말았던 것이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낚싯배를 타고 강 깊숙이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찾던 사람들이
시체를 찾다 말고 하나 둘 강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새우깡을 안주 삼아 몇 차례 소주잔을 돌리는 것을 보고
가는실잠자리는 몇 번이고 실 같은 꼬리만 도르르 말아올렸던 것이다
더러 담배꽁초를 강물에 내던지거나
말없이 소주만 연거푸 들이켜는 남자들 곁에 퍼질고 앉아
여자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꾸 울음을 터뜨려
가는실잠자리는 그만 죽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겨우내 온몸에 친친 감았던 햇살을 풀어
잠시 여자들의 목에 목도리인 양 걸어주는 일 외에는
탁탁탁 불똥이 튀는 모닥불 위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진눈깨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가는실잠자리는 슬펐던 것이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겨울 잠자리가 강가를 보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안타깝고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모닥불 위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진눈깨비.....
이 문장이 오랫동안 눈길을 머물게 합니다.
이곳 제주에는 비가 옵니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비가 옵니다.
나의 친구인 커피 한 잔이 있어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시길 비옵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