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8경
부석사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화엄종찰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4점, 도 유형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입니다.
사찰 앞으로 펼쳐진 자연경관을 품안에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부처님의 온화한
자비심처럼 모든 이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소재지 :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백산
우리나라에서 열여덟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고 풍기읍 수철리에
소재하는데,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영남지방의 진산(鎭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사적 제55호로서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며, 최초의
사액서원입니다.
1 5 4 2년 조선 중종 3 7 년 에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 고려 말의 명신이며
대학자이신 회헌 안향선생을 추모하고, 그분의 얼을 계승하기 위해
선생의 연고지인 이곳 숙수사지에다 묘우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여
백운동서원을 창건한 것이 서원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백운동서원이 창건된지 7 년 되던 해인 1 5 4 9년 명종 4 년 에 풍기군수로
계셨던 퇴계 이황 선생이 백운동서원의 이름을 새로 지어 줄 것을 조정에
건의, 이듬해인 명종 5년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친필사액과
함 께 학 전, 서책, 노비 등을 하 사 받 게 되 면 서 비로소 최초의 사 액 서 원 이 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되었습니다.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짓게된 이유는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의 “기폐지학 소이수지(旣 廢 之 學 紹 而 修 之)에서
이을 소(紹)자와 닦을 수(修)자를 따 온 것이며, 당시 피폐일로에 있던
관학과 단종복위운동 실 패 로 인해 고 을이 혁 파 되 면 서 폐부된 순 흥 에
다시 학교를 세워 안향 선생 같은 훌륭한 제자를 길러 내라는 뜻으로
대제학 신광한이 짓고 명종 임금이 직접 써서 사액한 것입니다.
소재지 :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무섬마을
굽이굽이 돌아흐르는 강을 감싸안은 자연의 정겨움이 가득한 수도리
전통 마을의 고가들은 우리 선조의 숨결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색으로 흠뻑젖은 마을을 거니노라면 역사를 거슬러 선조들의 체취와
삶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될 것입니다.
소재지 :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희방폭포
폭포는 소백산 연화봉 밑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몇 천 구비를 돌아
돌아 이곳에 멈춰,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웅장한 폭포를
이룬다.
소재지 :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죽계9곡
죽계구곡은 고려후기의 명현이자, 문장가인 근재 안축의 “죽계별곡”이며,
이퇴계와 주세붕 등 조선시대 유현들이 유상하던 자취들이 있어 잘 알려진
계곡이다. 죽계구곡은 초암사 앞에서 제1곡으로 시작되어, 시냇물을 따라내려
삼괴정 앞 제9곡에 이르기까지 약5리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이 죽계구곡은
영조 초에 순흥 부사를 지낸 신필하가 처음 정한 바인데 옛 초암법당 앞
바위벽에 “죽계1곡(竹溪一曲)”이라 커다랗게 새겨있고, 시냇물이 넓게
고여 흐르는 물밑 반석에 행서로 세겨진 제일수석(第一水石)” 4자는 아주
힘차고 활달한 글씨인데 오랜 세월에 갈려 겨우 알아볼 지경이다.
소재지 :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죽령옛길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96m의
죽령.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서기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
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 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습니다.
소재지 :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금선계곡
소백산의 영봉 비로봉에서 남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삼가동 저수지 아래
속칭 장선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안고 약 1.5㎞에 걸쳐 형성된 계곡이 바로
금선계곡이다.
금선계곡은 기암괴석의 골짜기와 노송이 우거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계곡 중간 지점의 물가 절벽위에 금선정(錦仙亭)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주변이 경관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소재지 :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