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여행1 - 코르푸에서 항공으로 아테네에 도착해서 버스로 신타그마에 가다!
2024년 5월 8일 코르푸섬에서 아테네로 가야 하는데 여행게획서를 작성하면서 자료들을 찾아보니....
코르푸신항에서 페리를 타면 1시간 30분 걸려 바다를 건너 그리스 서북부 이구메니차
Igoumenitsa 에 도착하며 버스로 8시간 30분이면 아테네 키피소스 터미널에 도착할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구메니차항에서 전날 밤에 이탈리아 바리나 브린디시에서 출발한 페리를 타면
펠로폰네소스 반도 파트라스에 도착하니 거기서 기차나 시외버스로
아테네로 갈수는 있는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지라 비행기를 타려고 합니다.
비행기 시간이 너무 일찍은지라 어침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식당에서 빵만 몇 개 챙겨서 호텔 리셉션으로
내러가 택시를 부탁하니 얼마 기다리지 않고 왔는데 공항까지는 20여분 거리로 요금은 20유로입니다.
공항에 들어가서 아게안 항공 부스에서 보딩패스를 받는데 역시나 비용 때문에
수하물로 부치지 않낳았더니 8kg 그람이 넘지 않는지 무게를 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안 수색을 하고는 게이트를 찾아가서 비행기에 오르는데 예정대로
아침 8시 40분에 이륙한 아게안 항공 A 3283 ( 111.25 €) 비행기는
동남쪽으로 1시간을 비행해 09시 40분에 아테네 Athens 공항에 도착합니다.
아테네공항은 2층과 3층이 Office 이고 1층은 출발 Departures 이며 0층은 도착
Arrivals 인데, 0층과 1층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게 됩니다.
아테네 공항에서는 삼성에서 제공하는 Battery charging station 이 0층(2번 출구)과 1층 두군데 있으며 또
삼성 charging 센터 위에 있는 전광판엔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트레인과 버스에 대한 안내도가 있습니다.
2000년에 파리에 가서 루브르 박물관에 갔더니... 한국말 해설 단말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15개
언어로 된 루브르 박물관 종이 안내문 해설서 조차 없었는데, 이후 삼성에서 돈을 내서 종이
안내문을 제작했고 지금은 귀에 대고 듣는 해설 단말기도 비치됐다는데 여기 아테네공항도 그렇다는....
여기 아테네 공항에는 도착층 Arrival 층 1번 출구 앞에 노랑색 바탕에 Store your bag' 유인락커 (코인락커는
없음) 가 있으니 6시간 4 유로(스몰) - 6 유로(미디엄) - 8유로(라지) 이며 12시간은 각 5- 7- 9 유로 합니다.
공항에서 저 유인 짐 보관소를 찾아가서는 배낭 2개를 1개당 8유로씩에 보관을 시키고는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5번 출구 우측에는 개방 주차장이 있으며 공항 버스는 24시간 다닙니다.
버스는 입국장 5번 Gate 출구에 서니 부스에서 1인당 5.5유로에 버스표를 구입한 다음에 신타그마 광장
Sintagma Square 으로 가는 X 95 공항 버스(15분 간격) 를 타는데 버스 안에서 티켓을 태그 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는 30분에 1대 정도 있지만 신타그마로 가는 버스는 15분만에 1대 정도 있는데
늦게타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갈수도 있는데... 시간만 있다면 다음 버스를 타는게 좋습니다.
만약에 택시를 타면 공항에서 시내는 40유로(밤 12시 이후 20% 할증)가 나오는데.... 5분간
기본요금 4유로, 10분 거리 8~10유로, 20분 15유로, 30분 20유로 정도 입니다.
지하철은 입국장 내에서 파랑색 Platforms 표지판을 따라 5분을 가서 Ticket Counter 에서
1인당 8유로에 티켓 구입한후 입구에서 티켓 펀칭(벌금 60배)을 하고는 계단을 내려갑니다.
리카비토스 언덕 Likavitos Hill 으로 가자면 공항에서 지하철 3호선(청색) 을 타고 11번째
정거장 에반겔리모스역 Evangelismos 에 내리며 다음 12번째 정거장이
중심부인 신타그마 Sintagma 이고, 13번째가 교토의 요지 모나스트라키 Monastiraki입니다.
버스는 50분 정도면 시내 중심지에 도착하는데... 우리는 에반겔리모스역 Evangelismos
에 내려야 하는데 주저하는 순간에 버스가 출발한지라 결국 종점인 신타그마에 내립니다.
아테네의 중심부 신타그마 광장에서 붉은색 시티 투어 버스를 보는데 크레타나 코르푸섬에서는 그리스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에 몇나라... 그러니까 네델란드와 러시아, 폴란드 및 포르투칼등의 이어폰이 국기로
표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보니 일본, 중국, 이스라엘에 튀르키예와 브라질 및 스웨덴등 몇나라가 추가된 것을 봅니다.
그러고는 도리스식 대리석 기둥이 서있는 아름다운 건물인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리스 병사들이
에브조나스 라는 민속의상을 입고 규칙적으로 서로 위치 바꾸다가 위병 교대식을 하는 것을
보는데, 이런 교대식은 세계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동작이 크고 직각으로 걷는 것이 특징입니다.
건물 벽면에는 페리클레스의 묘비명과 19세기에 터키와의 독립전쟁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비문 부조
가 있으며 좌우 상단에는 무명전사의 묘가 있으니 의 묘로 투키디데스의 말이 새겨져 으며.... 오른쪽에
그리스어로 KOPEA(KOREA) 명시되어 잇는데 매년 6월 25일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모여 기념식을 갖습니다.
그러고는 위로 올라 와서는 버스가 왔던 대로를 되짚어 가다가 거리의 표지판에서 리카비토스
언덕 Likavitos Hill 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는 좌회전을 해서 언덕을 올라갑니다.
우리가 오르는 언덕인 콜로나키 kolonaki 지구에는 프라다, 루이비통등 명품 숍이
즐비한 부촌으로 고급 주택지이니 숍들을 구경하면서 경사진 언덕을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수평으로 된 도로를 만나 살펴 보니 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걸어서 다시 죄히전을 하면 무수히 많은 계단이 보이고 부겐빌리리아 꽃이 참 붉습니다!
아테네의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
시민의 권력을 독점하지 말라... 도편추방제의 경고장” 이란 글이 떠오릅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특별히 기여한 사람들이
있으니 클레이스테네스가 대표적이다. 아테나이 명문가 출신으로 망명과 귀향을 반복했는데....
헤로도토스의‘역사’에 따르면 그는‘민주정을 확립’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도 똑같다
. ‘민주정의 아버지’가 한 일은 하나는 부족 재편이고, 다른 하나는 도편추방제 도입이다.》
아테나이의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는 특정 부족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부족을 소규모
데모스로 나눠 재편했고, 독재자를 경계하기 위해 도편추방제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귀족들 다툼의 심각한 결과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권력 투쟁에서 자유롭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나 가문의 권력이 아니라 시민 대중의 권력을
추구했다. 훗날 징기스칸처럼 부족의 해체와 재편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 시작이었다.
전통과 혈연으로 엮인 부족을 재편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클레이스테네스의 탁월함은
“사람의 머리로 상상하기 힘든 인위적 체제”(E. M. Walker)를 고안한 데 있다. 그는
아테나이를 포함한 아티카 지방 전역을 해안, 내륙, 도시로 나누고, 이 세 지역을 각각 10개로 쪼갰다.
그리고 이렇게 생겨난 30개 구역(소부족)을 셋씩 묶어 하나의 ‘부족’을 만들었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각각 10개로 나눈 뒤 각 도의 1번 지역들, 2번 지역들 등을 함께 묶어 ‘부족 1’, ‘부족 2’ 등으로 만든 셈이다.
30개의 소부족을 더 큰 단위의 부족으로 묶었을 뿐만 아니라 더 작은 규모의 행정 단위인 ‘데모스’
로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전체 아티카 지역에 걸쳐 130개 이상의 데모스가 생겨났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영리했다. 나누기와 더하기를 통해 전통적 부족의 세력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체
‘데모크라티아’ 를 확립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개혁 이후 아테나이에서 ‘시민’은 ‘데모스의 구성원’
과 같은 뜻이 되었다. 모든 시민의 이름에는 소속 데모스가 명시되었고 이것이 그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또 모든 시민은 데모스의 일원으로서, 전체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 시민 대표가 모이는 협의회, 시민들이 주도하는
배심원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누렸다. ‘데모스(demos)’의 ‘힘(kratos)’이 주도하는 정체 ‘데모크라티아’
에서 과거의 혈연관계는 더 이상 힘을 쓰기 어려웠다. 혈연 중심의 ‘부족’은 알맹이 없이 이름만 남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아테나이의 정체’에 따르면 도편추방제 역시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제도였다. 고대 그리스의 귀양 혹은 탄핵 제도에 해당한다. 다만 시민들이 대상자를 결정한다는
점이나 유죄 판결 없이도 추방이 가능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웃자란 줄기를 솎아내는’ 민회의 절차였다.
민회의 동의에 따라 6,000명 이상이 참여하면 투표가 성사되었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은 세력가나 선동가의
위험성이 있는 인물로 지목되어 추방되었다. 재산은 몰수하지 않았으니 10년 동안 ‘조용히 나가 살라’ 는 뜻이었다.
도편 추방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 제도는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 추방자의 수도 적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도편추방이 이루어진 것은 제도가 도입된지 20년 뒤의 일이며, 480년부터 65년 동안 13명이 추방을
당했다. 하지만 그런 숫자만으로 도편추방제의 효과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보이는 숫자 이면의 보이지 않는 효과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권력 장악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추방 제도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아니었을까? 도편추방제는 시민의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침묵의 경고로서 민주정에 기여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공허한 이상에 그치거나 도리어 역풍을 맞은 정치 개혁의 사례를 많이 본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은 성공했고 헤로도토스는 그 효과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제
아테나이인들은 강성해졌다. 이세고리아(isegoria)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훌륭함을 보여준다.
아테나이인들도 참주의 지배를 받을 때는 전쟁에서 그들의 이웃 나라 중 어느 곳과 비교해서도 더 나을 게 없었지만,
참주들로부터 벗어나자 단연 선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예속 상태에서 주인을 위해 일할 때는
게으름을 피웠지만, 자유를 얻은 뒤에는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과를 이루려 적극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세고리아는 이소노미아(isonomia)와 더불어 아테나이의 직접 민주정을 대표하는 이념이다. 이소노미아는
동등한 권리, 평등을 뜻한다. 민주정에서 모든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한 동료였다. 최고 권력자 ‘아르콘’
도 첫 번째 시민이었을 뿐이다. 이세고리아는 그런 평등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권리, 동등한 발언권을 가리킨다.
당대의 시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권리’가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 ‘말할
권리’였던 셈이다. 입법, 사법, 행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결정에 참여해 발언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권리가 없다면 법 앞의 평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테나이의
민주정에서 이세고리아와 이소노미아가 데모크라티아와 동의어처럼 쓰였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기원전 507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통해 확립된 민주정은 젊고 활기찬 정체였다. 이런 활력이 없었다면,
아테나이는 490년과 480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그리스를 지킨 선봉장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쟁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
페르시아 군대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피정복민을 포함한 다민족 연합군이었고 ‘예속 상태에서’ 왕을 위해 싸우는 군대
였다. 반면 아테나이 군대는 규모가 작아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군대였다.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민주정은 자신에게 유익한 성과를 위해서 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함께 싸우게 했다.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상이 없는 현실
적응의정치는 침팬지 세계에도 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정치’는 그런 ‘침팬지 정치’
(F. de Waal)의 수준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한다. 2024년에는 이상과 역량을
갖춘 ‘클레이스테네스들’의 등장을, 그리고 그들을 가려내는 시민의 판단 역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