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성주는 양만춘인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연사를 초대하여 전교생을 모아 놓고 역사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하였다. 그때는 역사를 6학년 때 가르쳤기 때문에 역사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분의 이야기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중국의 당 태종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수십만 병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그런데 용감한 고구려 병사들이 이를 안시성에서 맞아 끝까지 지켜내었다. 석 달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안시성의 고구려군이 쏜 화살이 당 태종의 눈알에 맞았다. 화살을 당겨 빼니 화살 끝에 눈알이 빠져나왔다. 오랜 전쟁에 시달려 배가 고픈 당 태종은 그 눈알을 입에 넣어 뽀드득 씹어 먹었다. 마침내 패배하여 물러가면서 용감한 고구려군을 칭찬하여 비단 백 필을 선물로 주고 갔다.”
‘눈알을 뽀드득 씹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용감하고 강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흐뭇하였다. 겸하여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싸움에 지고 게다가 눈까지 빠진 형편에 상대편 군사의 용감성을 칭찬하여 귀한 비단을 준 태종이란 왕에 대하여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6학년이 되어 역사를 배울 때는 안시성 성주가 연개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후에 어떤 책을 읽으니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고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금도 고구려 안시성 전투의 영웅을 ‘양만춘(楊萬春)’으로 기억한다.
1998년 해군은 광개토대왕함급 국산 구축함 이름을 양만춘함이라고 붙였다. 또 2001년 정부는 양만춘의 표준 영정을 제정했고, 2008년 조폐공사에서는 한국의 인물 시리즈 양만춘 기념 메달까지 만들었다. 또 2020년 독립기념관은 월간 ‘독립기념관 2월 호’에 ‘반목했던 연개소문과 양만춘, 적 앞에서 손잡다’라는 글을 실었다.
역사상 안시성 전투는 실재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역사서 어디에도 없다. 역사 기록에 단 한 번도 ‘양만춘’이라는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한다. 안시성 성민들은 힘을 합쳐 저항했다. 당 태종은 60여 일간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토성을 쌓아 안시성을 공격한다. 이에 고구려군은 토성을 무너뜨리고 거세게 공격했다. 마침내 당 태종은 석 달 만에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안시성주는 성위에 올라 패퇴하는 당나라군을 향해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기타 기록들에 남아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투를 지휘한 성주의 이름은 어느 기록에도 없다. ‘성주 이름은 알 수 없어 매우 애석하다’는 구절만 남아 있다. “삼국사기” 외에도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나 “신당서” 등 어디에도 양만춘이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 당 태종이 양만춘이 쏜 화살에 눈이 맞았다는 것이나, 더욱이 빠진 자신의 눈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터무니없는 허구다. 다만 당 태종이 병이 나서 돌아갔다는 역사적 기록은 있다.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당 태종이 물러가면서 고구려인들의 용감성과 충성심에 감탄하여 비단 백 필을 주며 칭송했다는 이야기도 다 꾸며낸 이야기다.
그러면 ‘양만춘’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양만춘은 고구려 멸망 후 900년이나 지난 명나라의 한 소설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등장한 시기는 조선 후기다. 그 출처는 놀랍게도 명나라 때 소설인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다. 이 소설 속 ‘태종동정기(太宗東征記)’ 편에서 등장한 허구의 이름이, 외교 사신이나 지식인들의 대화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며 ‘성주 이름은 양만춘이다’라는 이야기가 괴담처럼 퍼진 것이다. 연의(演義)라는 말은 명·청대에 발전한 역사 사실에 허구를 더해 알기 쉽게 서술한 중국 소설 장르로,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이다.
양만춘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문헌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송시열과 함께 노론을 이끌었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집 ‘동춘선생문집(同春先生文集)’에서이다.
사신을 갔다 온 사람들 입에서 안시성 성주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를 들은 현종이 “안시성주 이름이 양만춘이라는데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송준길은 “윤근수(尹根壽)라는 사람이 중국인에게 듣고 기록했다고 합니다.”라고 답한다.
윤근수는 1616년에 죽은 조선 문인인데 그의 ‘월정만필(月汀漫筆)’에 이런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온 오종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안시성주 성명은 양만춘으로 ‘태종동정기’에 보인다고 하였다. 내 또 얼마 전 감사 이시발을 만났는데, 말하기를 ‘당서지전통속연의’를 보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태종동정기와 “당서지전통속연의”는 어떤 책인가?
“당서지전통속연의”는 당 태종의 일대기를 1593년 종곡(鍾谷) 웅대목(熊大木)이 쓴 소설이다. 줄여서 “당서연의(唐書演義)”라 일컫기도 한다. 그리고 태종동정기는 책이 아니라 “당서지전통속연의”에 나오는 하나의 편명이다. 태종이 동쪽을 정벌하는 이야기 부분이다. 그러므로 양만춘은 소설 속의 허구인 이름이다. 웅대목이 지어낸 가짜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후기 이덕무, 이규경 등을 비롯한 실학자들도 모두 양만춘이 거짓 이름임을 밝히고 있다. 윤근수 등 조선 문인들도 이 이름이 소설임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양만춘이 조선이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지식인들이 다시 살려내었다.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은, ‘양만춘의 용맹에는 당 태종이 혼이 떴다. 자주독립 이러하니 어느 누가 걸을손가’라고 읊었고, 대한매일신보도 양만춘을 끌어다가 민족혼을 일깨운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던 조선 지식인들이었다.
조선이 흔들리던 18, 19세기, 사람들은 양만춘이라는 허구의 이름을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라가 무너져갈수록 강력한 영웅을 바라는 마음이 커졌고, 그 결과 없는 인물을 있는 것처럼 꾸며 정신적 위안을 삼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우리의 가슴에 심어졌다. 양만춘은 소설 속 인물이지만 해군 구축함 이름으로 실존하듯 사용되고, 영정, 기념 메달, 독립기념관까지 모두 허구의 영웅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