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거역하면 영락없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보다는 매우 변조(變造)된 신앙으로 바뀌어 하나님을 거역하였는데, 오므리(Omri) 왕조 때엔 최악의 모습으로 치닫게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인 아합(Ahab)은 아예 대놓고 우상인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겼고, 아합의 아들인 아하시야(Ahaziah)가 제8대 왕에 올랐습니다. 아합 왕 땐 모압(Moab) 족속이 이스라엘에게 조공까지 바치며 이스라엘에 굴복하였는데, 아합이 죽자 모압은 이스라엘을 배반합니다(1절). 아합의 시대가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국력이 약해진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배반하며 극악하게 우상을 섬긴 오므리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왕궁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심각하게 다치게 되어 병들게 되었는데, 아하시야는 자기의 병이 낫게 되겠는지에 대해 에그론(Ekron)의 신(神)인 바알세붑(Baal-Zebub)에게 묻고 오라고 사자(使者)를 보냅니다(2절). 2절 말씀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단적(端的)으로 보여 줍니다. 크게 다쳐서 병들었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안중(眼中)에 없고 우상인 바알세붑에게 가서 물으라고 한 것입니다. 에그론은 블레셋 5대 성읍 가운데 최북단에 위치한 성읍이고, 바알세붑은 “파리들의 주(主)”라는 의미의 우상입니다. 아하시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예 제외된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使者)를 엘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아하시야의 사자에게 가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전하라고 하시면서 아하시야가 병들어 누운 그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전하게 하셨고, 엘리야는 그대로 행합니다(3절, 4절).
엘리야의 말을 듣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간 사신(使臣)으로부터 엘리야가 전한 말을 들은 아하시야 왕은 그 말을 전한 자가 누구냐고 물었고, 사신들은 그 이름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였는지 털이 많은 사람이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고 전하였습니다(5절~8절). 이 말을 듣자 아하시야는 그 말을 전한 사람이 엘리야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자기의 아버지인 아합 왕과 맞섰던 선지자를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하시야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마도 옳은 태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하시야는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왕에게 내려오라고 전하게 합니다(9절). 만약 아하시야를 엘리야를 만나서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했다면 군사들이 아니라 사신(使臣)을 보내어 정중하게 청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사 오십 명을 보내어 위력(威力)을 보이면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불렀지만, 이것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여 존중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롱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에 대응하여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이라는 표현을 써서 대답하면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사를 것이라고 말하였고, 그 말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그 군사들을 태워버립니다(10절).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하시야는 또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 군사 오십명을 보내었고, 또다시 그 오십부장과 그 군사들도 같은 방법으로 불에 태워져 죽게 됩니다(11절, 12절).
이러한 상황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그 왕인 아하시야가 얼마나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하시야의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찾아 해결하려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은가요? 이것저것을 해보다가 아무래도 어려우면 맨 마지막에 가서야 하나님께 매달리는 때가 많지 않은가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물질이나 인맥(人脈)이나 방법들과 도구들을 먼저 찾고 애쓰다가, 그래도 잘되지 않으면 그때에야 하나님께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못해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도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엎드리기보다는 아하시야처럼 여전히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앞선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것들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며 기도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에 대해 경고하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굴복하고 엎드려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내 주장과 생각에 매여서 뻣뻣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직장, 일터의 현장, 가정 등에서 하나님이 가장 우선적인 분이 되고 있는지, 가장 중심이 되시는지 자신을 온전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