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전 국정원장 격정 토로
"야당의 국정원 개혁은 감기 걸렸는데
폐수술하자고 들이대는 격…종북세력만 환영할 일"
세계 어느 정보기관도 정보 취득에 제한받는 곳은 없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은 분명코 '적(敵)'이다
김성호 전원장은꽤나 격앙돼 있었다.
김 전 원장은 30여년 공직 생활을 정리한 뒤 2009년부터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으로서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번잡한 세상 일을 잠시 접어두고서 ‘행복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던 김 전 원장이 왜 이렇게 격앙된 걸까.
김 전 원장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행복세상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1년간 법무장관을 역임한 뒤
2008년3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이명박 정부 첫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당시는 “좌파 정권 10년 동안 망가질대로 망가진 국정원을 바로 세우라”는 보수층의 요구가 빗발칠 때였다.
김 전 원장은 이 같은 요구를 받아 안아 재임 초부터 국정원 역량 강화를 위해 팔을 걷어 붙였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길지는 않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낀 게 적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검찰에 있을 때만 해도 국정원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원장을 해보니 제대로 알겠더라.
국정원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기관이다.” 김 전 원장은 검찰에 있을 때 대구지검장을 지냈다.
그런 김 전 원장에게 지난 대선 기간에 터져나온 국정원 댓글 사건이 1년을 끌다가 국정원 개혁특위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김 전 원장은 여야가 30일 국정원 개혁법안과 내년도 예산안을 연계해 처리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국정원 개혁법안과 예산안을 연계할 이유가 뭐 있나. 해도 너무한다” 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남북관계의 유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정보기관의 발목을 묶겠다는 것은
북한 추종 세력만 환영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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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대치동 재단법인 행복세상 사무실에서 프리미엄조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
“국회가 잘못된 진단에 엉뚱한 처방만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장성택이 숙청돼 사형이 집행됐다.
“북한의 상황이 급변할 것이다. 좋은 징후가 아니다. 북한은 왕조ㆍ조폭 국가다.
이번 숙청과 사형집행은 불안정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김정은 체제는)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남북 관계는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장성택이 물러나면 군부가 득세할 텐데,
군부는 남한에 대해서 유화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 잘못된 진단에다 엉뚱한 처방을 하고 있다.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1년 동안 댓글사태에 매몰돼 있었다.
잘못한 사람은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여야가 30일 국정원 개혁법안을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남북관계가 불안정하고,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시기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북한발(發) 리스크가 있는 상황인 만큼 국가 기관의 정보활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야가 합의한 주요 내용은 국정원 권한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 국정원의 손발을 묶은 격이다. 문제가 크다.
이번 개혁법안 가운데 최고의 독소조항은
‘국정원 정보관(IO)의 정부기관 출입 통제 및 부당한 정보수집’ 금지 대목이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간첩이 있다. 국가 안보에 중대한 공백을 초래할 것이다.
의사에게 환자를 수술하라고 해 놓고 진찰을 못하게 한 것과 같다.
북한 추종세력만 환영할 일이다.”
-야당은 대공수사권을 검경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검찰과 경찰이 간첩을 잡으러 다닌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검찰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간첩을 잡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공작도 필요하고, 추적하는 데 몇 년 씩 걸린다.
검찰에 간첩을 맡기자는 것은 적 앞에서 무장해제 하자는 이야기다.
전 세계 정보기관은 지금 통합형으로 가고 있다. FBI도 정보와 수사를 같이 한다.
이번 (국정원 개혁)사태는 댓글사건에서 비롯됐다.
심리전 부분에서 촉발된 작은 사고를 가지고 대공 수사권까지 거론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감기 걸렸는데, 폐수술하자는 얘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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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서 개혁특위를 설치한 것부터 우려스럽다." /성형주 기자 |
“교통사고 막자고 자동차 전부 없앨 건가…방어심리전 포기해선 안돼”
-지난 12일 국가정보원이 내놓은 자체 개혁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국정원 개혁은 법제화로 할 일이 아니다.
운용의 묘로 풀어나가야 한다. 야권에서는 불만스럽다고 하지만 남재준 국정원장이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들을 국회나 정치기관, 언론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국내 정보 활동의 위축과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제일 좋아할 집단은 북한이다.
세계 어느 정보기관도 정보 취득에 제한을 받는 곳은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상시는 아니더라도 비노출로 계속 출입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국정원 직원의 댓글, 다시 말해 대국민 사이버 심리전에서 비롯됐다.
“대북심리전은 물론, 대남(對南)심리전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방어심리전’이라고 부른다.
간첩은 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1만2000명을 거느리고 대남심리전을 하고 있다.
중국에 인터넷 매체도 갖고 있다. 남한 내 주사파를 동원해 댓글도 단다.
문제가 된 댓글에도 이런 세력들이 다 참여했을 것이다.
북한의 전략은 사이버 심리전을 통해 남한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가만히 놔 뒀다가는 가랑비에 옷 젖듯 적화(赤化)되고 말 것이다.
방어심리전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놓고 정치권에서 너무 크게 만들었다.
교통사고를 막자고 자동차를 전부 없애자고 나서는 꼴이다.”
“정치인은 국가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부정해도 되나?
-하지만 대남심리전이 결과적으로 대선 개입이 됐다.
“방어심리전을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가 문제다.
이번에 위법 여부를 법원이 가르고, 심리전의 범위와 수위 등을 정하게 될 것이다.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남쪽 정부’라는 표현을 쓰며 북한 편을 드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서 수 많은 댓글이 달렸고, 문제가 된 국정원 직원의 댓글도 그 중 하나다.
국정원 직원이면 국가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 동조하는 발언을 보고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었겠나.
이번 댓글 사건에서 문제가 된 직원들은 당시엔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이 정치인이든 아니든, 때가 선거 때든 아니든 국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정치인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해도 되나. 법원이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국회가 정보위원회를 전임 상임위로 바꾸어 국정원의 예산 통제 권한을 강화하려고 한다.
“국정원 예산의 세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 어떤 정보기관이 인력 조직 활동내역을 다 공개하나. 국회를 존중해야 하지만,
국회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보안 의식이 그리 철두철미하다고 보지 않는다.
세부 예산을 공개했다가는 정보기관 자체가 무력화된다.
나중에 외교 마찰까지 빚을 수 있다. 외국에서도 볼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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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예산을 공개했다가는 정보기관 자체가 무력화된다" /성형주 기자 |
“국정원 힘 빼기가 마치 민주화인양 인식돼”
-일각에선 ‘지금 국정원이 너무 아마추어적’이란 비판도 있다.
“국정원의 힘이 계속 빠져왔다.
다른 나라에선 정보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국정원을 약화시켜 왔다.
국정원장에 재직할 때 감청, 대테러, 사이버테러 등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못했다.
간첩을 잡으려면 휴대전화를 감청해야 하는데 현행 제도 하에선 근거 법이 없다.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규제를 개선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다.
이번 개혁특위에서는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만들어주고,
역량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역대 정권의 국정원 운영에 대해 평가한다면?
“민주화 이후 국정원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대체로 국정원 힘빼기가 민주화인양 인식돼 왔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부터 약해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규모로 인력을 감축했다. 국정원을 개혁한다고 대공ㆍ방첩 수사요원을 많이 줄였다.
노무현 정부때 ‘신안보’ 개념이 도입돼 경제분야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 바람에 정작 본연의 업무역량이 약해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독단적 운영이 문제가 됐다.
결국 댓글사건이 터진 계기가 됐다. 조직 내부에서 전직 직원이 발설한 것 아닌가.
결국 리더십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싶다.”
“국정원 개혁법안은 국정원 역량 강화 계기 돼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내부에서 물갈이가 벌어졌다.
“정치 지향적인 몇몇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정원 직원들은 매도당할 만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전문성을 키워줘야 하는데, 지역 등 이상한 잣대를 들이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 불이익을 주고 물갈이를 했다. 조직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개혁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나.
“첫번째는 인사다. 국정원장 인선부터 직원 인사까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정치 편향적이면 안된다.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두번째는 신(新)안보시대에 대비해 국정원의 권한을 법률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법적 뒷받침이 없으니까 국정원의 활동이 위법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보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직 진출에 제한을 두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국회에 보안법 위반자들이 많다. 반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공직에서 배제해야 한다.
동·서독은 그런 제도가 있다. 새집이 부서지면, 새 알은 다 깨진다.
이번이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은 분명히 말하지만 ‘적(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