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에서 바라본 희양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혼자서 산길을 간다
풀도 나무도 바위도 구름도 모두 무슨 얘기를 속삭이는데
산새 소리조차 나의 알음알이로는 풀이할 수가 없다
바다로 흘러드는 산골 물소리만이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그저 아득해지는 매 마음의 길을 열어 준다
―― 조지훈, 「산길」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2월 24일(토), 맑음, 미세먼지, 따듯한 봄날
▶ 산행인원 : 14명(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산정무한, 인치성, 상고대, 두루, 향상,
신가이버, 해마, 오모육모,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11.2km
▶ 산행시간 : 7시간 50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36 -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휴게소
08 : 42 - 문경시 마성면 정리(鼎里) 솥골 마을, 산행시작
09 : 48 - 성주산(聖主山, 720.7m)
10 : 28 - ┳자 갈림길, 829m봉
11 : 00 -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마원리 3.1km, 직진은 백화산 0.4km
11 : 26 ~ 11 : 54 - 백화산(白華山, △1,063.6m), 점심
12 : 35 - 평전치, ┣자 갈림길 안부
13 : 08 - 973.1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백두대간 이만봉으로 감
13 : 38 - 안부
15 : 08 - 뇌정산(雷霆山, △992.0m)
16 : 32 - 문경시 가은읍 하괴리 미노리(未老里) 마을, 산행종료
18 : 00 ~ 19 : 48 - 문경, 온천, 저녁
21 : 3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성주산(聖主山, 720.7m), 백화산(白華山, △1,063.6m)
솥골 마을. 오늘 성주산의 산행들머리로 잡았다. 이 마을은 성주산(聖主山, 720.7m), 능곡산
(陵谷山, 572.2m), 주지봉(朱芝峰, 368.4m)의 3봉이 둘러싸고 마을이 마치 부엌 아궁이 같
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여 솥골(정리 鼎里)이라고 한다. 솥골 마을의 주업은 사과 농사다.
마을 동구부터 사과 과수원이다. 처음에는 이 노령의 과수가 무엇인지 몰라 근처의 주민에게
물으니 사과나무라고 하며 수대로 맛 좀 보시라고 사과를 한 봉지를 담아주신다. 옛말에 산
골이 깊으면 마을 인심도 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마주치는 마을 주민마다에게 수인사를 드린다. 잘 다녀들 오시라고 하면서도 성주산을 이쪽
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은 아직 보지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구미가 당긴다. 과수원 황톳
길을 지나 얕은 골짜기를 건너고 능선 자락에 붙는다. 덤불숲 잠깐 뚫으면 갈잎 낙엽이 수북
하고 넙데데한 오르막이다. 바야흐로 봄날이다. 금세 눈 못 뜨게 땀을 쏟으니 엊그제 맵던 바
람이 벌써 그립다.
성주산을 멀리서 바라볼 때도 불끈 솟은 준봉에 약간은 움찔했다. 가면 갈수록 점점 일어서
는 사면이다. 맨 앞에서 낙엽 러셀하는 대간거사 님 족적 쫓는다. 성주산을 단숨에 오를 양이
다. 하긴 워낙 가파른 오르막이라 여럿이 쉬기가 마땅한 곳은 없다. 낙엽에 미끄러져 헛발질
이라도 하게 되면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스틱에 잠시 기대어 가쁜 숨 할딱이다 다시 긴다.
성곽인가? 정연하게 쌓은 석축을 넘으면 너덜지대가 나온다. 너덜지대 지나 암벽과 맞닥뜨
리고 왼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몇 번 미끄러지고 나서 한 발 한 발 낙엽 쓸고 발판 만들어 오
른다. 가파름이 수그러든 능선마루는 노송이 즐비한 바윗길이다. 정상이 저기라 내쳐간다.
성주산. 나무숲에 둘러싸여 아무 조망이 없다. 첫 휴식한다. 여태 게거품이 인 목마름에 덕산
명주 탁주가 아주 시원하다.
성주산 내리막도 백화산 쪽 오르막도 완만하다. 우리 내닫는 발걸음에 이는 바람은 부드럽
다. 얼추 고도를 높였으니 등로 곳곳이 눈길이거나 빙판이다. 낙엽 밑은 틀림없는 얼음장이
다. 하늘 가린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보기 좋다. 진득하게 올라 송이봉 갈림길인 829m
봉이다. 당초 산행계획은 송이봉 쪽으로 내려 효자동 마을 근처에서 점심 먹고 백화산 서
릉 평전치의 남릉을 오를 예정이었다. 방금 전의 성주산의 호된 오르막 못지않은 비지땀을
쏟을 것이다.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게 되면 혹시 어차피 오를 백화산을 여기서 바로 오를 마음이 생길까봐
아예 퇴로를 끊어버리고자 우리 버스에 두고 왔다. 그런데 상고대 님만은 계획적으로(?) 도
시락을 가져왔고 곧장 백화산으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송이봉 쪽으로 내리다 보니 영화 ‘식
스 빌로우(6 Below: Miracle on the Mountain)(2017, 미국)가 생각났다.
2004년 프랑스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에릭 르마크’의 설산에서의 생존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는 우울한 기분을 떨치려고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매머드 산(Mam
moth Mountain, 3,371m)을 혼자서 스노보드 타러 갔다. 활강금지구역을 신나게 내리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결국은 길을 잃었다. 절벽을 만나고 눈에 덮인 호수에 빠지기도 하고 밤이
면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리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설산에 갇히게 되었다.
눈 녹인 물로 허기를 달래고 동물 사체의 앙상한 뼈에 붙은 약간의 살점을 뜯어 먹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8일간이나 버텼다. 기적적인 구조 후 동상에 걸린 양다리는 절단해야 했다.
그런 험한 경우를 이겨낸 사람도 있는데 나는 어떤가. 점심 도시락은 두고 왔지만 가래떡이
며, 쿠키며 비상식이 있다. 에라, 나도 뒤돌아 백화산을 향한다. 스틸영 님도 뒤돈다.
2. 성주산 들머리인 솥골 마을 동구
3. 성주산을 향하여
4. 성주산 넘은 등로
5. 백화산 오르기 전 전망바위에서, 중간이 능곡산
6. 백화산 오르기 전 전망바위에서, 옥녀봉
7. 멀리 가운데는 작약산 연릉
8. 백화산 정상에서
9. 뇌정산
송이봉 갈림길인 이 829m봉은 이래저래 사연이 깊은 봉우리다. 2011년 12월 킬문 님과 둘
이서 이곳을 왔다. 하내에서 능곡산, 송이봉, 백화산, 뇌정산 넘어 신상괴로 진행했었다. 그
날 킬문 님은 감기로 온전한 몸 컨디션이 아닌데도 이 829m봉에서 이름 붙은 산을 놓칠 수
없다며 성주산을 혼자서 갔다 왔다. 여기서 성주산까지 왕복 2km나 된다. 나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다.
백화산 가는 길은 잘 났다. 952.1m봉 넘고 약간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마
원리 3.1km, 직진은 백화산 정상 0.4km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등로 벗어나면 눈이
꽤 깊다. 암벽과 만나고 왼쪽 사면으로 돌아 암벽 사이의 반침니로 오른다. 고정밧줄이 달린
슬랩을 오르기도 한다. 무릎 넘는 눈길을 헤치고 등로 약간 벗어난 전망바위에 들른다. 미세
먼지가 끼여 원경은 뿌옇다.
나무뿌리 돌부리 움켜쥐고 긴다. 백두대간 주릉. 백화산 정상은 0.1km 남았다. 오늘 등산객
이 지나간 눈길이다. 백화산 정상은 널찍한 공터다. 양광이 가득하다. 점심밥 먹는다. 상고대
님 도시락을 3등분하여 나눠먹는다. 그러고도 모듬전이며 녹두지짐이며 푸짐하다. 다만, 천
려일실로 탁주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상고대 님의 고로쇠 물로 대신한다.
백화산 정상에서 조망은 나무숲에 가렸고 서쪽으로 30m쯤 내렸다가 왼쪽으로 10m쯤 잡목
헤치고 절벽 위 암반에 다가가면 훤히 트인다. 가야 할 뇌정산이 뿌듯하게 보이고, 특히 눈앞
에 펼쳐지는 희양산에 이르는 준봉들이 도열한 백두대간은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은
여기에 올라서서 이 풍광을 보고자 일행대열에서 이탈하여 백화산을 올랐다.
▶ 뇌정산(雷霆山, △992.0m)
예전에는 백화산에서의 경점은 이곳뿐이었는데 오늘 와서 보니 딴판으로 달라졌다. 이제는
봉봉을 우회하여 넘지 않고 직등하는 등로가 뚫렸다. 봉봉마다 경점이다. 효자동 마을로 내
린 일행들이 평전치 근처 주릉에 오르려면 멀었다. 우리 셋의 발걸음이 느긋하여 천하경개를
자세히 살핀다. 수직의 오르막 눈길을 발자국계단으로 오르고, 바위 슬랩을 고정밧줄 잡고
오른다. 암릉 길 릿지를 간다.
┣자 갈림길 안부. 이곳도 평전치다. 오른쪽은 분지골로 간다. 이제부터 등로는 부드럽다. 능
선 마루금에 쓸려 쌓인 눈이 깊다. 비켜 가자니 얼음장 감춘 낙엽이 오히려 험로다. 평전치에
서 2개 봉우리 넘고 Y자 갈림길인 973.1m봉이다. 오른쪽의 이만봉 가는 백두대간 길은 눈길
이 훤히 뚫렸는데 왼쪽의 뇌정산 가는 길은 인적이 뜸하다.
10. 뇌정산, 그 뒤는 대야산
11. 도드라진 봉우리가 옥녀봉
12. 가운데는 희양산
13. 뇌정산
14. 가운데가 희양산
15. 맨 왼쪽이 뇌정산
16. 희양산과 그에 이르는 백두대간
17. 왼쪽은 뇌정산, 오른쪽은 희양산
내리막은 낙엽으로 은폐된 빙판이고 오르막은 눈길이다. 백두대간 갈림길인 973.1m봉에서
30분간을 줄곧 내려 바닥 친 안부다. 아예 멀찍이 사면으로 벗어나서 사면 누비며 오른다. 드
물지만 더덕경한고발청향(더덕經寒苦發淸香, 더덕은 추위를 겪을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낸
다)에 힘 받는다. 또한 수렴(樹簾)에 가린 희양산을 엿보는 것은 잔재미다.
희양산은 저 수려한 암벽으로 인해 예로부터 뭇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도 그중 한 분이다. 그는 희양산에 올라
혁희봉(赫曦峰)이라고 작명까지 했다. 산군 중 단연 빛난다.
혁희라고 꼭대기 봉 이름을 붙였나니 憶把赫曦名絶頂
띠 풀집 짓고 살며 신선 찾아가고 싶네 欲留茅棟訪仙家
맑은 유람 본디 진짜 인연이 있는 거고 淸遊自有眞緣在
좋은 경치 속인이 다 자랑하기 어렵다네 勝境難從俗子誇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백두대간 이만봉 백화산 연릉이 장성이다. 그 뒤로 보이는 주흘산, 부
봉 6봉, 조령산, 포함산, 만수봉은 성채다. 막바지 오르막 눈길을 묵은 발자국계단 따라 오른
다. 뇌정산 정상 직전 953.7m봉이 경점이다. 곧 뇌정산이다. 정상은 사방 나무숲으로 가려
별 조망이 없다. 삼각점은 ‘문경 302, 2003 재설’이다. 벼락이 잘 치는 산이라고 한다. 산의
표고나 삼각점 숫자도 망통이라서인지 그다지 상서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효자동 마을을 딛고 오는 일행과는 꼭 1시간 차이가 난다. 땅은 땡땡 얼었고, 탁주는 없고,
조망은 시원치 않고, 뇌정산 정상에서 시간 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세상을 피
해 산을 찾았는데 스마트 폰 열어보기도 싫다. 어쩌면 발청향을 맛볼 수도 있을 것. 미노리
가는 넙데데한 남동쪽 사면을 훑어보기로 하고 내린다.
우선 뇌정산 남릉의 주등로를 잡는다. 쭉쭉 내리다 873.2m봉 오르기 전 안부에서 왼쪽 생사
면을 내린다. 울창한 참나무 숲이 퍽 아름다운 곳이다. 너덜이 나오고 미리 오른쪽 사면을 길
게 돌아 873.2m봉 남동릉에 붙는다. 선답의 인적이 흐릿하다. 완만한 내리막 숲속 길은 계속
된다. 폐무덤이라도 보이는 건 거의 마을에 가까웠다는 신호다.
광산 김씨 관찰사공파 납골묘를 내리면 콘크리트 포장한 대로의 성묫길이고 그 아래가 미노
리 농로다. 미노리(未老里) 마을사랑방 옆에 주차장이 있다. 두메 님을 부른다. 효자동 코스
일행들은 아직 뇌정산 정상에 있다. 하산을 마치려면 아마 1시간이 넘게 걸릴 것. 차라리 그
들이 부럽다. 백난지중대인난(百難之中待人難, 온갖 고난 중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가장 힘
들다)이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하릴없이 1시간이 넘도록 그들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확
실히 그렇다.
18. 옥녀봉
19. 옥녀봉
20. 희양산
21. 뇌정산 가는 길
22. 오른쪽이 백화산
23. 멀리 왼쪽은 부봉 6봉, 그 오른쪽은 주흘산
24. 맨 오른쪽은 백화산, 왼쪽 멀리는 주흘산
25. 왼쪽은 부봉 6봉, 그 뒤로 포암산과 만수봉이 흐릿하다. 오른쪽은 주흘산 영봉
첫댓글 3명이 그렇게 가고 나니 마음이 허전했슈. 영양가 없고 쓸데 없더라도, 흰소리에 농담, 잡담, 객담이라도 들려왔어야, 덜 힘들었을 텐데~
쌀에 뉘 섞이 듯 정담도 있는데.ㅋㅋ
백화산 오르기도 힘들었어요^^
가끔은 이런 탁월한 선택에 대견해 할때도 있네요 ㅋ ㅋ
조금의 허기는 있었지만 새롭게 된비알을 접해야 하는 것보다는~~~~
세분이서 좋은 구경은 다 한듯 싶네요...진즉이 알았다면 저도 살짝 끼었을텐데,,,아쉽넹
조망을 즐기셨습니다.
냅다 오르기만 하다보니,
보이는 것도 감흥을 느끼지못한 길이었습니다.
악수형님 사진과 글 보며, 이제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