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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한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다. 군 복무 시간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자연스레 지난 군 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엔 모르는 것 투성이에 서툴고 어색한 이등병 이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선임병의 위치에서 많은 후임들을 챙기게 되었다. 지난 1년이 넘는 군 생활 동안 정말 잊지 못할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고맙고 소중한 인연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꼭 다녀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27살에 2013년 9월 10일 광주에 있는 31사단 신병교육대 2중대로 입대했다. 운전 특기병으로 입대한 나는 31사단 신병교육대 2중대 1소대에서 같은 특기병으로 자원 입대한 전우들과 함께 훈련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원래 사용하던 막사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어서 우리 기수 훈련병들은 모두 간이로 마련된 컨테이너를 임시 생활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평소 폐쇄공포증이 있던 나는 생전 처음 접하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두 세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 창문도 몇 개 없는데다, 9월의 늦더위 날씨에 컨테이너 기온은 최대 40도까지 치솟았다.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매일 같이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를 느꼈고 훈련소에 입소한 처음 며칠 동안은 매일 밤 거의 잠에 들지 못한 채로 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잠들지 못하고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나에게 내 바로 다음 번호의 동기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왜 잠을 안자?”
나는 동기의 물음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여기 온 후로 자리에 눕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잠을 못자겠어. 그냥 지금이라도 집으로 다시 가고 싶어.”
그런 나를 동기는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자 봐. 내일 아침도 계속 훈련이 있을 텐데, 한숨도 안자고 훈련을 어떻게 받으려고.”
나는 동기의 관심어린 걱정에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떨쳐내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제대로 못자고 힘든 훈련들을 계속해서 받아왔던 나는 결국 그 힘듦과 답답함을 못 견디고 소대장님을 찾아갔다.
훈련소 입소 8일째 아침, 나는 퇴소를 하고 싶은 뜻을 전하기 위해 소대장님을 찾아갔다. 내 말을 듣던 소대장님의 온화했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고 이내 단호한 어조로 얘기하셨다.
“지금 입소하고 8일짼데 지금까지 한 게 아깝지도 않니? 너를 응원하시는 부모님, 그리고 주위의 전우들을 생각하고 스스로의 힘을 믿고 이겨내야지. 너를 응원하는 분들이 네가 지금 이 작은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서 포기하려 하는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이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부모님과 내 주위 사람들이 떠올라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눈물을 쏟아내는 나의 등을 소대장님이 따뜻한 손길로 다독여 주었고, 그때 마침 소대장님을 뵈러 왔던 그 동기 역시 서럽게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와 함께 위로해 주었다. 그런 후에서야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힘들고 어렵기만 했던 훈련소 생활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구보다 잘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같은 생활관 동기들과도 친해졌다. 특히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따뜻한 말과 위로의 손길을 보내 주었던 그 동기와 더욱 더 가까워졌다. 그 동기의 이름은 김민구였다. 나와 같은 나이에 고향도 같은 광주 출신이었다. 민구는 목포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입대했으며, 아버지께서 준위로 복무중이시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군 생활을 별로 낯설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민구는 항상 내가 어려워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직면했을 때 옆에서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한번은 조교가 알려준 방법대로 빨래를 정리하는 것이 잘 안 돼 애를 먹고 있을 때였다.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빨래들을 몇 번이나 개었다 폈다 하고 있는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던 민구가 다가와 종류별로 개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그런 다음부터 나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을 확실히 터득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속옷들과 양말을 아주 깔끔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또 한 번은 훈련소에 입소 한지 3주가 지났을 무렵, 배식 당번 차례가 왔을 때였다. 우리 훈련소에서는 차례로 두 개의 생활관이 한조로 2주씩 배식 당번을 맡았었는데, 나는 여러 가지 임무 중에서 식기세척조로 편성돼 식판 닦는 일을 맡게 되었다. 200명에 달하는 2중대 훈련병들의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를 배식하다보니 시간이 지우개로 지운 듯 순식간에 지나갔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싱크대에 쌓여가는 식판들을 하나씩 쉬지 않고 닦고 있던 때였다. 어느새 민구가 고무장갑을 끼면서 슬며시 다가왔다. 내가 왜왔냐고 묻자, 민구는 웃으면서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너도 무거운 식판 나르느라 힘들잖아!”
“아니야, 그래도 나는 식판 쌓일 동안 잠깐 잠깐 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좀 도와줄게.” 나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고마웠다. 그 날 민구 덕분에 일을 재빨리 끝마치고, 막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 지고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민구에게 말했다.
“민구야 해지는 노을 봐, 밖에 있을 땐 정말 몰랐는데 너무 멋있다.”
민구도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진짜 끝내주네. 오늘 수고 많이 했어. 얼른 가서 씻자!”
매일같이 정신없고 힘들었던 배식 당번 기간이었지만 민구와 함께여서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훈련소 생활에 잘 적응해가고 있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생겼다. 8년 넘게 사귀어온 여자 친구가 편지로 이별 통보를 해온 것이다. 나는 얘기치 못한 일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지냈다.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한 이유를 알고 싶어 어떻게든 연락을 해보려고 했었지만, 그 당시 훈련소에서 전화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여자 친구가 중국에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연락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갑작스런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로 훈련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힘든 시간들을 보내던 중, 우리 생활관 전원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배식 당번 포상으로 개인당 각 3분씩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내 차례가 되자 중국에 있는 여자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세 번 정도 울리고 난 후 내 전화를 받은 여자 친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결심을 굳힌 여자 친구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잘 지내라고 말하며 전화를 그대로 끊어버렸다. 나는 전화가 끊긴 줄도 모르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고 결국 내 할 말을 다 전하지도, 이별의 이유를 채 듣지도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3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버렸다.
넋을 놓은 채로 우두커니 서있는 내게 다음 차례였던 민구가 다가와서 자신의 전화를 대신해 다시 통화를 해보라고 했다. 며칠 전부터 민구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할 생각에 들떠 있었던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민구는 괜찮다며 통화를 양보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전할 새도 없이 다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와 다시 통화를 하는 동안 감정이 격해진 나는 조교가 주의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를 내며 여자 친구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결국 조교가 나에게 크게 소리쳤고 나는 여자 친구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는 나를 대신해 민구가 조교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제야 조교는 머리를 끄덕이며 더 이상 나를 꾸짖지 않았다. 생활관으로 복귀한 뒤에도 나는 괴로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주위 동기들이 다들 내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민구가 다가와 말했다.
“어차피 이 안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잊어버리든지, 아니면 수료식 당일 외출 나가서 여자 친구와 다시 통화해. 너는 지금 군인이야. 여기서 네가 할 일을 똑바로 해야지. 정신 차려!”
그동안 항상 웃음으로 답하고 친절했던 민구가 단호하게 충고를 하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무기력한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날 밤, 민구는 “아까는 네가 너무 낙담하고 있길래 정신을 좀 차리라고 한 소린데 화낸 거 같다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늘 그랬듯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민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괴롭고 힘들지만 결국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훈련소 수료식이 다가왔다. 민구와 나는 수료식 날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잠깐의 외출 후에 이내 곧 짐을 싸서 후반기 교육을 받기위해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제2수송교육단으로 향했다. 훈련소와 마찬가지로 나와 민구는 29번, 30번을 부여받으며 나란히 훈련을 받았다. 이미 둘도 없는 막역한 사이가 된, 나와 민구는 훈련소에서처럼 ‘2수교’에서도 항상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2수교에서 우리는 34기 중형반 교육을 받았으며 K-511 차량으로 곡선코스, 굴절코스, 주차코스 등의 운전 교육을 받았다.
최종 코스 주행시험 합격을 위해서 교육시간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코스를 통과하는 연습을 매일 매일 하는 동안 어느덧 2수교 퇴소 전날이 되었다. 퇴소 전날 자대 근처의 도착역이 찍힌 TMO 티켓을 받았다. 민구는 조치원역이 찍힌 표를 받았고, 내 표에는 서빙고역이 찍혀 있었다. 민구는 조치원에 있는 군수사령부 예하 부대인 종합보급창으로 배정받았고, 나는 인천에 있는 군수사령부 종합보급창 직속인 3보급단으로 자대를 배정받은 것이다.
서로 다른 자대로 배정받은 우리는 이별하기가 너무 아쉬웠다. 서로 다른 자대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하기 전, 군 생활 하는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고 가끔 SNS를 통해 연락하며 지내자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전역하는 날에 꼭 만나서 술자리를 갖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민구와 함께 했던 80여 일간의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각자의 자대에서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입대 전 나는 늦깎이 대학생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한 미래로 많은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들로 당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군 입대를 결정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훈련소 생활을 하던 내게 형제처럼 친구처럼 챙겨주던 민구와 같은 소중한 인연이 없었다면 그 힘든 순간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을 무사히 극복하고 군 생활에서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이끌어준 것은 고맙고 소중한 인연인 민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민구로부터 좋은 소식을 하나 듣게 되었다. 민구가 종합보급창에서 창장님 운전병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내 일처럼 아주 기뻐하며 축하 인사를 SNS에 남겼고, 민구 역시 고맙다는 답변을 남겼다. 비록 지금은 같은 부대 소속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연인건지 가끔 민구가 우리 부대를 방문하는 일이 있어 종종 서로의 얼굴을 보고 부대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훈련소 당시 일들이 떠올라 그 고마움이 새록새록 되새겨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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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고마운 인연이네요.
남자들은 군대 얘기와 동기는 평생하잖아요.
정말 남자는 군대와 동기는 평생가죠 ㅎ
저 또한 고마운인연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이런 인연있다면 정말 좋죠 ㅎ
감동적이예요. 좋은 인연 만나는게 그리 쉽진 않을텐데요... 군대이야기에 푹 빠졌었네요^^
하하 군대에서 정말 좋은인연만나면 평생전우죠 ㅎ
멋진 인연이네요
남자들의 의리를 볼 수 있는곳은 바로 군대가 아닐까 합니다
군대가서 지지고볶기도하지만 전우애가 정말 있죠 ㅎ
고마운 인연을 간직하겠습니다
고마운 인연을 만들기도 , 그리고 내가 고마운 인연이 되기도 해야겠어요 ㅎ
요즘은 이기주의가 만연한데, 남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 훈훈하네요~ 좋은 인연이 부럽습니다
순수하게 아무 욕심없이 도와줄수 있는사람 있다면 너무 좋을것같아요~
군대생활이 이런 것이군요
잘 읽었음다~^
군생활이 힘들지면 서로 챙겨주는 전우들도 있다는거~
정독했네요~ 소중한 사람들은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겠죠
그렇죠 ~ 옆에서 내가 힘들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죠 ~
긴글~~^^
역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하하하하 군필자가 굳굳
고마움^^
서로의 배려에서 피어나는 우정^^
에고~ 눈시울까정 뜨거워지네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마음까지 따듯해지는듯요.
정말 이런 인연이 있으니까 아직은 따듯한것같아요~
소중한 분을 만났네요
정말 소중한 사람이 아닐수없죠 ㅎ
눈물이 절로 나오네요.
힘내시고 군생활 훌륭히 잘이겨내시리라 믿어요.
우리 아들도 이렇게 고생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하 군생활중인 아드님도 전우가 있으니 더 힘내서 군생활 할 수 있을꺼에요~
정말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네요~^^
저도 그런 멋진 인연을 만들어가야겠어요~^^;
네 ㅎㅎ 저런사람을 옆에둔다면 천군만마를 얻은것같겠죠?
고마운 인연이네요~^^
이런 인연 하나쯤은~~
옆에도 마음에도 고마운 인연들이 있습니다 감사한일이지요
그렇죠 멀리서 찾을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찾아 고마워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