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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회 (The Garden Party)
캐더린 맨스필드
장경렬 譯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특별히 주문을 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원유회에 알맞는 날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람 한점 없이 따뜻하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떠 있지 않다.
다만 초여름이면 때때로 그러하듯이 옅은 금빛의 안개가 푸른 하늘을 덮고 있을 뿐이었다.
정원사가 새벽부터 일어나 잔디를 깎고 쓸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데이지 꽃이 있던 곳의 잔디와 장미 무늬의 검고 평평한 장식이 한층 더 빛나 보였다.
장미꽃에 대해 말하자면, 원유회에서 사람들에게 호감을 끄는 것은 유일하게 장미꽃뿐이고 모든 사람이 모두 틀림없이 알고 있는 꽃이라면 장미꽃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치 장미꽃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백 송이가, 정말 문자 그대로 수백 송이의 장미꽃이 단 하룻밤 사이에 핀 것이다. 푸른 과목들은 마치 대천사장이 방문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천막을 치기 위해 일꾼들이 왔다.
"엄마, 천막은 어디에다 치면 좋을까요?"
"얘야, 나한테 물어야 소용 없단다. 올해는 모든 것을 너희들한테 일임하기로 결정했단다. 나를 너희들 엄마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영광스럽게 손님 정도로 생각하렴."
그러나 메그가 나가서 일꾼들에게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머리를 감았고, 초록색 터번을 두른 채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양쪽 뺨에는 밤색의 젖은 곱슬머리칼이 붙어 있었다.
나비와 같은 차림의 조즈는 항상 비단으로 된 속치마에 키모노 식의 품이 넓은 상의를 걸친 채 식당으로 내려왔다.
"로라야, 네가 가야겠다. 넌 예술가 타입이 아니냐?"
로라는 버터 바른 빵 한 조각을 손에 든 채 날아가듯 뛰어나갔다.
집 바깥에서 무엇을 먹을 구실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는 이것저것 배열하고 정돈하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항상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러한 일에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셔츠 바람으로 간소하게 차려 입은 남자 네명이 정원 사이로 난 길에 모여 서 있었다. 그들은 천막천으로 둘둘 감은 장대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커다란 연장 가방을 등 뒤쪽으로 메고 있었다. 인상적인 모습들이었다.
이윽고 로라는 이 버터 바른 빵 조각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디에 놓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던져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굴을 붉히고는 심각한 표정에 약간 근시인 것 같은 표정까지 지어 보이면서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엄마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꾸민 것같이 느껴져서 공연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어린 소녀처럼 말을 더듬거리게 되었다.
"저.... 그러니까.... 천막 때문에 오신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아가씨!"
키가 제일 큰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마른 체격에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었다. 연장 가방을 추스리더니, 밀집 모자를 가볍게 쳐서 뒤로 젖혀 쓰고는 그녀를 내려다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그의 미소가 너무도 평안하고 친근감이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로라는 곧 자신감을 되찾았다.
참 멋진 눈을 가졌구나. 작긴 하지만 검푸른 빛의 아주 멋진 눈이야. 그리고 곧 다른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니, 그들도 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운 내세요. 물어뜯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의 미소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참 좋은 사람들이야! 게다가 얼마나 멋진 아침인가! 하지만 아침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지. 사무적이 되야 해. 천막치는 일을 해야잖아.'
"그럼 저 백합이 있는 잔디밭이 어떨까요? 괜찮을까요?"
그리고는 버터 바른 빵 조각을 들지 않은 손으로 백합이 있는 잔디밭 쪽을 가리켰다.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그 쪽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고 땅딸막한 친구가 아랫입술을 내밀었고, 키 큰 친구는 얼굴을 찌푸렸다.
"안 좋을 것 같은데요."
그가 말했다.
"눈에 확 들어 오지가 않는데요. 아시겠지만, 천막 같은걸 칠 때는요, 어딘가 눈에 팍 띠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제 말을 아시겠어요?"
그는 느긋한 태도로 로라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로라는 자신이 받은 고육을 의식하고 일꾼이 자기에게 '눈에 팍 딴다'는 투의 말을 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어쨌든 그녀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테니스 코트 구석은 어떨까요?"
그녀가 제안을 했다.
"그런데 한 쪽 구석으로 악단이 자리잡을 거예요."
"흐음, 악단이 온단 말이지요?"
다른 일꾼 하나가 말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검은 눈으로 테니스 코트를 꼼꼼이 살펴볼 때 그의 눈매가 매서워 보였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주 작은 악단일 뿐이예요."
로라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그는 얼마나 작은 악단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키가 큰 남자가 끼어들었다.
"자, 보세요, 아가씨, 저기가 좋겠는데요. 저쪽에 있는 저 나무들 앞이 어떨까요. 저기라면 괜찮겠어요."
카라카 나무들 앞쪽을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카라카 나무들이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다. 그 나무들은 넓고 반짝거리는 잎사귀가 달려 있고 노란 열매 송이들이 탐스럽게 열린 아주 예쁜 나무들이다. 인적이 없는 외딴 섬에 자랑스럽게 홀로 자라서 잎과 열매를 태양쪽으로 받쳐들고 이른바 화려한 정적 속에 서 있음직한 그런 나무들이었다.
저 멋진 나무들이 천막에 가려져야만 하는가? 그럴 수밖이 없게 되었다.
이미 일꾼들은 장대를 어깨에 메고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다만 키가 큰 남자만이 뒤에 남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라벤더의 잔가지를 하나 꺾어서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을 집어 그 잔가지를 코에 대고는 향내를 맡았다.
로라는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런 것에 마음을 쓰는 그에게 경이로움을 느끼는 가운데 카라카 나무들에 대해서는 아예 잊어버리게 되었다.
라벤더의 향내에 마음을 쓰다니! 그녀가 알고 있는 남자들 가운데 도대체 몇 명이나 저런 일에 마음을 쓸까. 아 얼마나 멋진 일꾼들인가,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일요일 밤에는 식사를 하러 오기도 하는 그 멍청한 남자 애들보다는 저런 일꾼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훨씬 낫지 않을까? 저런 남자들하고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저런 남자들하고라면 훨씬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건 다 이 불합리한 계급 차별 탓이야.
그녀가 이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 동안 키가 큰 남자는 봉투 뒷면에 무언가 둥글게 매듭지어 놓을 것이라든가 그대로 늘어뜨려 놓을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 쪽에서는 계급 차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조금도, 눈꼽만큼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때 나무망치로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고 노래하듯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 친구, 그쪽은 괜찮은가?"
어이 친구라니! 얼마나 친근감을 주는 말인가! 그리고 또 ...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키가 큰 남자에게 얼마나 자기가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멍청한 인습에 대해 얼마나 경멸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로라는 봉투에 그려진 작은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버터 바른 빵을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그녀는 스스로 일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로라야, 어디 있니? 전화야, 전화!"
집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가요"
그녀는 미끄러지듯 나가서 잔디를 넘은 다음 정원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는 계단을 올라 베란다를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의 홀에서는 아빠와 로리가 사무실에 나갈 차비를 한 채 솔로 모자를 털로 있었다.
"얘, 로라야."
로리가 매우 빠르게 말을 했다.
"오전 중으로 내 코트 좀 봐 주지 않겠니? 다리미질이 필요한지 어떤지 좀 봐줘."
"응, 그렇게 할게."
로라가 대답했다.
갑자기 그녀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로리에게 달려들어 재빨리, 살짝 그를 껴안았다.
"난 파티가 정말 좋아. 오빠는?"
로라가 숨을 할딱이며 말했다.
"그럼!"
로리가 따뜻하고 소년다운 목소리로 말한 다음, 그도 또한 로라를 껴안고 나서 살짝 뒤로 밀었다.
"빨리 가서 전화 받아야지."
참 , 전화가 왔었지.
"여보세요. 아, 그래. 키티구나. 안녕, 키티? 점심식사 때에 오겠어? 그래, 와. 물론 오면 얼마나 반갑겠어. 뭐 이것 저것 긁어 모아 준비하는 식사야. 샌드위치 부스러기며 머랭그 과자 조각, 뭐 그런 것들이야. 정말 좋은 날씨 아니니? 흰 옷을 입는다고? 아, 꼭 그렇게 해야겠다. 잠깐만 기다려 줄래, 끊지 말고. 엄마가 부르셔."
그렇게 말하고 로라는 뒤로 앉아서 엄마에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엄마, 잘 안들려요."
셔리단 부인의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려 왔다.
"요전 일요일에 썼던 그 멋진 모자를 쓰고 오라고 이르렴."
"우리 엄마가 너 요전 일요일에 썼던 그 멋진 모자를 쓰고 오래. 좋아. 그럼 한 시에 만나자. 잘 있어."
로라는 전화를 내려 놓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숨을 깊이 쉬고는, 쭉 폈다가 다시 내렸다.
"아아"
한숨을 쉬고는 빨리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다.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온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집안은 가벼운 재빠른 발소리와 끊이지 않는 말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초록색 천으로 덮은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리더니 둔하게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번에는 끼득거리는 듯한 길고 묘한 소리가 길게 들려왓다. 뻣뻣한 물건 이동용 바퀴로 무거운 피아노를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기가 왜 이렇지? 가만히 주의해서 보면 공기가 항상 이런가?
희미하고 작은 바람 한 점이 숨바꼭질을 하듯 창문 위쪽으로 들어와서는 문을 통해 나갔다. 그리고는 햇빛이 만든 작은 점 두 개가 하나는 잉크병 위에서 다른 하나는 은빛 사진틀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귀여운 작은 점들이었다. 잉크병 뚜껑에 있는 것이 유난히 귀엽다. 상당히 따뜻한 느낌이다. 은빛의 따뜻하고 작은 별이었다. 그녀는 그 별에다 입을 맞출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관의 벨이 울리자 날염한 천으로 만든 새디의 치맛자락에서 나는 소리가 계단을 따라 들려왔다.
이윽고 남자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렸으며, 무심한 어조로 새디가 대답하는 소리도 들렸다.
"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기다리세요. 세리단 마님께 여쭈어 보고 올 테니까요."
"새디야, 새디?"
로라가 홀로 들어서며 물었다.
"꽃 가게에서 왔대요, 아가씨."
정말 그랬다. 현관 바로 안쪽에 넓고 턱이 낮은 쟁반에 연분홍빛 백합꽃 항아리가 가득 놓여 있었다. 다른 종류의 꽃은 없었다. 백합 뿐이었다. 그것도 칸나 백합뿐이었는데, 커다란 연분홍빛 꽃이 활짝 피어서 빛을 발하는 듯 했으며, 밝은 심홍색 줄기 위에서 놀랄 만큼 생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어머, 이럴 수가!"
로라가 놀라면서 말했다. 그 소리는 신음 소리와도 같았다.그녀는 타오르는 듯한 백합의 붉은 빛에 몸을 덥히기라도 하듯이 그 앞에서 웅크렸다.
백합이 그녀의 손가락 안에, 입술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녀의 가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실수가 있었나봐."
가냘픈 어조로 로라가 말했다.
"아무도 그렇게 많은 꽃을 주문하지는 않았을 거야. 새디, 가서 엄마를 좀 찾아봐."
그러자 마침 그때 세리단 부인이 그들에게로 왔다.
"실수가 있었던 게 아니란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주문한 거야. 예쁘지?"
그녀는 로라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어제 꽃 가게 앞을 지나가다 진열장에 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리고 일생에 한 번이라도 칸나 백합을 하나 가득 사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지 않겠니? 원유회가 좋은 구실이 되었구나."
"그렇지만 엄마 말씀이 관여하지 않을 작정이라고 하셨잖아요?"
로라가 말했다.
새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꽃집 점원은 아직 바깥에 서 있는 짐차에 있었다.
로라는 엄마의 목에 팔을 감고 부드럽게 그리고 가만히 그녀의 귀를 물었다.
"그렇지만, 얘야, 논리적이기만 한 엄마를 좋아하지는 않겠지. 얘, 그만 둬라. 꽃집 점원이 들어오지 않니."
그는 다시 백합을 쟁반 하나에 가득 담아서 들고 들어왔다.
"현관 안쪽에 있는 통로 양쪽으로 나란히 놓아 주세요."
세리단 부인이 말했다.
"로라야,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응접실에서는 메그와 조즈, 그리고 꼬마 한스가 드디어 피아노를 옮기는 데 성공하였다.
"자 이제는 이 대형 소파를 벽 쪽에 붙여 놓은 다음 의자만 빼놓고 방안에 있는 것을 모두 내놓는 게 좋겠는데. 그렇지 않니?"
"그래"
"얘, 한스야, 이 테이블을 모두 끽연실로 날라 줄래? 그러고는 청소하는 사람을 불러와서 이 융단에 난 테이블 자국을 없애 달라고 해. 한스야, 잠깐만...."
조즈는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들도 기꺼이 그녀의 명령에 따랐다. 그녀는 언제나 하인들에게 무언가 연극에 참여한 배우와도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엄마하고 로라한테 빨리 좀 와 달라고 해줘."
"그렇게 해요, 조즈 아가씨"
그녀는 메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피아노 소리가 어떤가 들어 보고 싶은데. 오후에 사람들이 나한테 노래라도 하라면 어떡하니. '이 내 인생 우울해'를 한 번 해 볼까?"
꽝! 따-따-따
피아노가 갑자기 격렬한 소리로 울리기 시작하자 조즈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그녀는 양손을 꽉 쥔 채, 슬프고 불가사의한 눈빛으로 방을 들어서는 엄마와 로라를 바라보았다.
이 내 인생 우-울해 눈물과 한숨. 덧없는 사랑-이여 이 내 인생 우-울해, 눈물과 한숨. 덧없는 사랑-이여, 이제는 ... 안녕!
그러나 노래가 '안녕'이라는 부분에까지 도달했을 때, 피아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망적인 음조로 울려 퍼졌으나, 조즈의 얼굴에는 노래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엄마, 목소리 괜찮지요?"
미소를 띠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내 인생 우-울해, 희망은 사라지고, 꿈인가, 현-실인가.
이 때 새디가 들어왔다.
"새디야, 무슨 일이니?"
"저, 마님, 요리사가 샌드위치에 꽂을 장식용 기가 준비됐냐고 묻는데요."
"샌드위치에 꽂을 장식용 기라니?"
세리단 부인은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그 말을 반복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고 아이들은 그것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어쩌나..."
잠시 망설이더니 그녀는 단호하게 새디에게 말했다.
"십 분안에 보내겠다고 요리사에게 일러라."
새디가 갔다.
"얘, 로라야."
엄마가 빠르게 말했다.
"같이 끽연실로 가자. 봉투 뒤 어디엔가 장식용 기에 써 넣을 샌드위치 종류 이름을 써 놓았거든. 나 대신 그걸 좀 옮겨 써 줘야겠다. 메그야, 넌 빨리 이층으로 올라 가서 그 젖은 것을 머리에서 좀 벗어 놓아라. 조즈는 빨리 가서 옷좀 갈아입어라. 알겠니? 말 안들으면 오늘밤 아빠 돌아오신 다음 말씀드린다. 그래도 괜찮겠니? 그리고, 조즈야, 너 혹시 부엌에 가거든 요리사 좀 구슬러 주지 않을래. 오늘 아침은 그녀가 괜히 무섭더구나."
봉투는 마침내 식당에 있는 시계 뒤쪽에서 발견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곳에 가 있게 되었는지 셰리단 부인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틀림없이 너희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 가방에서 꺼낸 거겠지. 집어넣은 게 뚜렸하게 기억이 나니 말이지. 그건 그렇고, 크림 치즈에 레몬 커어드, 다 썼니?"
"네"
"달걀에다.."
세리단 부인은 봉투를 멀찌감치 들고서 바라보았다.
"생쥐라고 쓴 것 같구나. 생쥐일 턱이 없는데 말이야."
"올리브라고 썼네요, 엄마."
로라가 엄마의 어깨 너머로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올리브구나, 둘을 합해 놓고 보니 정말 묘하게 들리는 구나. 달걀에다 올리브라니."
마침내 끝을 내고 로라가 그것을 부엌으로 가지고 갔다.
가보니 조즈가 계속 요리사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요리사는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가 않았다.
"이렇게 멋진 샌드위치는 생전 처음이야"
조즈가 황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샌드위치가 몇 종류나 된다고 했지요? 열다섯이던가요?"
"네, 열 다섯 종류예요, 아가씨."
"아주머니, 정말 멋져요."
요리사는 길다란 샌드위치 칼로 빵부스러기를 쓸어 내면서 활짝 웃었다.
"고버드 상점에서 사람이 왔어요."
새디가 식당 부속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고드버 상점의 점원이 창 밑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는 슈크림이 도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드버 상점은 슈크림으로 유명한데, 아무도 집에서 그것을 만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새디야, 받아다가 식탁 위에 놓아주렴."
요리사가 이렇게 지시했다.
새디는 슈크림을 갖다 놓고는 문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물론 로라와 조즈는 이제 슈크림 같은 것에 진짜 마음이 빼앗길 정도의 어린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슈크림이 정말 맛있어 보인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말 대단히 맛있어 보였다.
요리사는 슈크림의 주변에 붙어 있는 가루 설탕을 털어 내면서 파티를 위해 가지런히 배열하기 시작했다.
"이걸 보면 옛날에 있었던 파티 생각나지 않아?"
로라가 말했다."
그런 것도 같다.
"옛날을 회상하는 일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인 조즈가 말했다.
"아주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로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데."
"아가씨, 하나씩 들어 보세요."
요리사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께 말씀 안 드릴께요."
그러나 정말 먹을 수는 없지. 아침 식사를 막 끝내고 나서 슈크림을 먹다니. 생각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 이 분쯤 지난 다음 조즈와 로라는 슈크림을 먹고나서 사람들이 짓는 무언가에 황홀해 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뒤쪽 길로 해서 정원에 한 번 나가 보지."
로라가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천막을 어떻게 치고 있는지 보고 싶어. 정말 멋진 사람들이던데."
그러나 뒷문은 요리사와, 고드버의 점원과 한스가 막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쯧, 즛, 쯧,"
요리사는 안절부절 못하는 암탉 같은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새디는 치통이라도 앓고있는 듯한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고드버 상점의 점원만이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건 어차피 그가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왜 그러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대요."
요리사가 말했다.
"사람이 하나 죽었대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어디서요? 어떻게요? 언제 그랬대요?"
그러나 고드버 상점의 점원은 자기가 꺼낸 이야기를 바로 그의 면전에서 빼앗길 사람은 아니었다.
"이 아래에 작은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을 아시죠, 아가씨?"
알고 있냐고?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스코트라는 이름의 작은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짐수레꾼이었대요. 오늘 아침 호크 가 모퉁이에서 이 친구의 말이 견인차를 보고 뒷걸음질 치는 바람에 그 친구가 낙상를 당하게 되었는데. 머리 뒤쪽을 다쳤대요. 그래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죽었다고요?"
로라는 고드버 상점의 점원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고드버 상점 점원이 재미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올 때 마침 시신을 집으로 옮기는 중이었어요."
그리고는 요리사를 향해 말했다.
"아내에다 어린 것을 다섯이나 남겨두고 갔다고 하더군요."
"이리 좀 와 볼래."
로라는 조즈의 소매를 잡고 부엌을 가로질러 가더니 초록색 천으로 덮은 문을 빠져나왔다.
문 밖으로 나와 잠시 멈추어 서더니 로라는 몸을 문에 기대었다.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녀가 조즈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다 중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다 중지시키다니?"
조즈가 놀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이니?"
"물론 원유회를 그만두자는 거야."
조즈가 왜 모른 척하는 것일까?
그러나 조즈의 놀라움은 한결 더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원유회를 그만두자니? 얘, 그런 바보 같은 소릴랑 아예 하지도 마라. 물론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지, 또 아무도 그걸 기대하지 않아. 터무니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
"그럼 바로 대문밖에 살던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원유회를 할 수 있겠어?"
사실 그 말은 정말 터무니 없는 것이었는데, 작은 집들은 이 저택으로 통하는 가파른 고갯길 아래쪽 골목에 따로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에는 널찍한 길도 하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너무 가까이에 있기도 하다. 그 집들은 아마도 더할 수 없이 큰 눈에 가시와 같은 것들이었고, 그곳에 있어야 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였다.
갈색으로 칠을 한 작고 초라한 집들이었으며, 좁은 안뜰에는 양배추 몇 포기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조차도 가난에 찌들어 보였다.
누더기 조각과도 같은 가냘픈 연기는 세리단씨 저택의 굴뚝에서 곧게 솟아오르는 은빛의 커다란 버섯 구름과 같은 연기와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 골목에는 빨래하는 여자들과 굴뚝 청소부들, 구두 수선공들이 살고 있었으며, 집 정면의 벽 하나 가득히 작은 새장을 걸어놓고 있는 사람도 살고 있었다.
아이들도 많았다. 세리단 가의 자식들이 어렸을 때 에는 그곳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상스러운 말씨를 배우거나 무언가 병에 옮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다 자라도 난 다음 로라와 로리는 이따금 배회하다가 그곳을 지나가기도 했다. 불쾌하고 더러운 곳이었는데, 그들은 몸서리치면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디든 가 봐야 하고 무엇이든 봐 두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갔던 것이다.
"게다가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면 그 가엾은 여자의 귀에 어떻게 들리겠는가 한 번 생각해 봐."
로라가 말했다.
"아니, 로라야, 너 정말..."
조즈는 심각하게 하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든 사고를 당할 때마다 악단의 연주를 중지시켜 봐라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프겠니? 나도 역시 너처럼 정말 안된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로 동정심을 느낀단 말이야."
그녀의 눈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어렸을 적 함께 싸울 때 짓곤 하던 표정으로 자매를 바라보았다.
"감상적이 된다고 해서 그 주정뱅이 일꾼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잖아."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주정뱅이? 누가 그 사람보고 주정뱅이래?"
로라는 격렬한 말투로 조즈에게 대들었다.
그녀는 옛날에 그런 일이 있을 때 쓰곤 했던 바로 그 말투로 말을 했다.
"엄마한테 가서 말해 버릴 거야."
"그러렴."
조즈가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 들어가도 돼요?"
로라가 방문에 달린 유리로 된 커다란 손잡이를 돌렸다.
"그럼.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니? 얼굴빛이 왜 그러니?"
세리단 부인은 화장대에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새 모자을 써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사람이 죽었어요."
로라의 말이 시작되었다.
"설마 우리집 정원에서 죽은 건 아니겠지?"
엄마가 말을 끊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예요."
"얘가 .... 사람 놀라게 하기는 !"
세리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커다란 모자를 벗어서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그렇지만, 엄마."
로라가 말했다. 숨이 가빠 목이 맬 듯한 상태에서 로라는 그 끔찍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
"당연히 파티는 할 수 없는 거죠?"
호소하듯 로라가 말했다.
"악단도 오고 사람들도 오잖아요. 엄마, 틀림없이 우리집에서 나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이웃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가까운 곳에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는 조즈와 똑같은 태로를 취했다. 엄마가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어서 그만큼 더 견디기가 어려웠다. 엄마는 로라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얘야,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렴. 어쩌다 우연히 그 애기를 들은 게 아니니? 만일 어떤 사람이 살 만큼 살다가 죽었다면, 우리는 그것과 관계없이 여전히 파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사실 저렇게 비좁은 굴 속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긴 하다만...."
로라는 엄마의 말에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뭔가 다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떨칠 수 없었다.
그녀는 엄마의 소파에 앉아서 쿠션에 달린 주름 장식을 손 끝으로 잡아 뜯는 시늉을 했다.
"엄마, 우리 정말 너무 무심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요?"
그녀가 물었다.
"애는!"
세리단 부인은 일어서서 모자를 손에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막을 겨를도 없이 엄마는 불숙 그 모자를 로라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얘, 그 모자는 네가 가져라."
엄마가 말했다.
"너한테 참 잘 어울리는 구나. 나한텐 너무 젊은 애들 것 같애. 이렇게 그림같이 멋진 네 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너도 한 번 봐라."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그녀 앞에 손거울을 비쳐 주었다.
"그렇지만. 엄마"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옆으로 비껴서면서, 로라가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세리단 부인도 조즈와 마찬가지로 자제력을 잃었다.
"로라야, 너 정말 왜 이렇게 바보짓 하니?"
세리단 부인이 차갑게 말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한테 희생을 바라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지금처럼 행동해서 모든 사람의 즐거운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그곳도 무심한 짓이 되기는 마찬가지야."
"전 이해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로라는 재빨리 방을 빠져 나와서는 자기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섰을 때 정말 우연히 제일 먼저 그녀의 눈에 뛴 것은 거울에 비친 매력적인 소녀의 모습이었다.
황금빛의 데이지와 길고 검은 벨벳 리본으로 장식된 검은 모자를 쓴 소녀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말씀이 옳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터무니 없는 소릴 한 건 아닐까? 아마 그런지도 몰라. 그러나 아주 잠깐 그녀의 마음에는 그 가엾은 여인과 어린 아이들과 집안으로 운반된 시신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신문에 나온 사진처럼 흐릿한 비현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파티가 끝난 다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마음의 결정을 했다.
어쨌든 그것이 최선책 같아 보였다.
점심 식사는 한 시 반 전에 끝났다.
두 시 반까지는 왁자지껄한 파티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녹색의 옷을 입은 악단이 도착하여 테니스 코트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머, 저 사람들 어쩌면 저렇게 개구리 같니?"
키티 메이틀렌드가 혀를 굴려 노래하듯 말했다.
"저 사람들 연못 주위에 빙 둘러 세워 놓고 지휘자는 연못 한가운데 있는 잎사귀 위에 세워 놓지 그랬니?"
로리가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도중 사람들에게 환영 인사를 했다.
그의 모습을 보자 로라는 갑자기 그 사건이 다시 생각났다. 그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만일 로리도 다른 사람과 생각이 같다면, 그러면 틀림없이 자기가 잘못 생각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따라 현관의 홀로 들어갔다.
"오빠."
"야!"
그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로라를 보더니 그는 갑자기 놀랐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대단한데! 로라야, 너 정말 굉장하구나!"
로리가 말했다.
"야, 그거 멋진 모자구나."
"그래, 오빠?"
이렇게 힘없이 대답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로리를 올려다 보았다.
결국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곧 사람들이 잇따라 몰려들기 시작했다. 악단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임시로 고용된 급사들이 집과 천막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어디를 보아도 쌍쌍의 남녀가 한가롭게 거닐거나 몸을 굽혀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잔디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길을 가는 도중 오는 오후에만 세리단씨 저택의 정원에 내려 앉은 화려한 색깔의 새들과도 같았다.
아, 모두가 다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과 악수를 하거나 뺨을 부비기도 하고 또 서로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머, 로라야. 너 정말 멋지구나."
"정말 모자가 너한테 잘 어울린다, 얘"
"로라야, 너 스페인 여자 같아 보여. 이처럼 멋진 네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걸."
그러면 로라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곤 하였다.
"차는 드셨어요? 얼음 과자 안 드시겠어요? 시계꽃 열매를 넣은 얼음 과자가 정말 별미예요."
그녀는 아빠한테 달려가서는 이렇게 조르기도 하였다.
"아빠, 악사들한테도 뭐 좀 마실 것 갖다 주면 안돼요?"
이윽고 그 완벽한 오후는 서서히 꽃을 활짝 피우고 서서히 시들다가 마침내 서서히 꽃잎을 오므리게 되었다.
"이렇게 즐거운 원유회는 처음인 걸요..."
"대단한 성공이에요..."
"아주 대단합니다."
로라는 엄마를 도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엄마와 딸은 현관에 나란히 서 있었다.
"휴우, 이젠 끝났구나, 끝났어."
세리단 부인이 말했다.
"로라야, 남은 사람들 좀 불러 모아라. 가서 새로 끓인 커피라도 마시자. 완전히 지쳤는 걸. 그래, 정말 대성공이었어. 그렇지만, 이렇게 자꾸 파티를 여는 것이 힘들지도 않니? 뭣 때문에 애들이 자꾸 파티을 하자고 조르는지 모르겠어."
모든 사람들이 이제 손님들이 떠난 천막 안에 모여 앉았다.
"아빠, 샌드위치 좀 드세요. 장식용 기에 글씨를 쓴 건 저예요."
"그래, 고맙다."
세리단 씨가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는 또 하나를 집었다.
"오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 모르고 있겠지?"
그가 말했다.
"여보."
세리단 부인이 한쪽 손을 멈춘 채 말했다.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원유회가 망가질 뻔한 걸요. 로라가 뒤로 미루자고 고집을 부렸지 뭐예요."
"아이, 엄마"
로라는 그 일 때문에 놀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끔찍한 일이었어."
세리단씨가 말했다.
"게다가 그 친구 결혼한 몸이더군. 바로 아래 골목에 살던 사람인데, 아내와 대여섯의 애들이 있다고 하더군."
약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세리단 부인은 안절부절 못하며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아빤 정말 눈치도 없이...
갑자기 세리단 부인이 눈을 들었다. 눈을 들어 보니 식탁 위에는 샌드위치며, 과자며, 슈크림이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있었다. 이걸 그냥 두면 다 버리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음식을 보고 그녀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
그녀는 말했다.
"바구니에 이것들을 꾸리자.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 훌륭한 음식을 보내도록 하자. 아무튼 아이들에겐 아주 멋진 대접이 될거야. 그렇게 생각 안 되니? 그리고 분명히 그집 여자가 사람들을 부르기도 했을테고, 뭐 그러지 않았겠어? 그럴 때 음식 준비가 다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몸을 벌떡 일으키며 그녀가 말했다.
"로라야! 층계 쪽 선반에 가서 큰 바구니 하나 가져다 주렴."
"그렇지만, 엄마,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로라가 물었다.
다시 한 번 묘하게도 로라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것처럼 보였다.
파티의 남은 음식을 가지고 가다니. 저 가엾은 여자가 그걸 정말 좋아할까?
"물론이지, 너 오늘 웬일이니? 한두 시간 전만 해도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니?"
"아, 알았어요."
로라는 급히 가서 바구니를 가져 왔다.
바구니가 채워졌고, 채워진 바구니 위에 세리단 부인은 음식을 산더미처럼 더 담았다.
"얘, 로라. 네가 가지고 가려무나."
그녀가 말했다.
"그대로 빨리 갔다오렴. 아, 잠깐 기다려라. 이 백합꽃도 좀 가져가렴. 그런 계층의 사람들이 이런 백합꽃을 보면 감동할게다."
"줄기 때문에 레이스 달린 드레스가 더럽혀지겠네요."
현실주의자인 조즈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때 맞춰 잘 이야기한 것이다.
"그럼, 바구니만 가져 가거라."
엄마가 그녀를 따라 천막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로라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뭐예요, 엄마?"
아니, 그런 생각을 아이의 머리 속에 심어 주지 않는 게 좋겠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자, 그럼 빨리 갔다 오렴."
로라가 정원 문을 닫았을 때는 막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그림자처럼 뛰어 나갔다.
길은 뿌옇게 빛나고 있었으며, 아래쪽 움푹 패인 곳에 있는 작은 집들이 짙은 그림자에 가리워져 있었다.
파티가 끝난 오후 세상은 뜬 채 누워 있는 곳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입맞춤과 사람들의 말소리, 스픈이 그릇에 부딪혀 나는 딸그락 소리, 웃음소리, 짓밟힌 풀에서 나는 냄새가 어쨌든 그녀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에는 그밖에 다른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얼마나 묘한 일인가! 회백색으로 바뀌어 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 '그래, 정말 최고로 멋진 파티였어'라는 생각밖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이윽고 큰 길을 건넜다.
칙칙하고 어두운 골목길이 시작되었다.
목도리를 걸친 여인네들과 트위드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쓴 남자들이 서둘러 지나갔다.
남자들이 울타리 주변에 모여 있었고, 아이들이 문밖에서 놀고 있었다.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초라하고 작은 집 안에서 흘러 나왔다.
어떤 집에서는 등불이 어른거리고 있었고, 게딱지 같은 그림자가 창문 위로 지나가기도 했다.
로라는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코트를 입고 나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스가 환화게 빛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벨벳 리본이 달란 큰 모자라니. 모자만이라도 다른 걸 쓰고 나왔더라면!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까? 그럴 게다. 애초에 길을 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오면서 내내 잘못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니, 이미 늦었다. 이 집이 바로 그 집이다. 그 집임에 틀림없다.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이 밖에 모여 있었다.
문 옆에 아주 나이가 많은 노파가 목발을 짚고 의자에 앉아 바라 보고 있었다. 노파의 발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로가가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들의 말소리가 그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마치 그녀가 여기에 올 것을 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로라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벨벳 리본을 어깨너머로 넘기면서 옆에 서 있는 어떤 여인에게 물었다.
"여기가 스코트 씨 댁인가요?"
야릇한 미소를 띠며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아가씨"
아아, 여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비좁은 뜰안 길을 따라 걸어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그녀는 실제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중얼거렸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아니면, 그 여인들의 목도리라도 좋으니 그걸 뒤집어 쓰고 자신의 복장을 가릴수만 있다면!
바구니째 놓아 두고 가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바구니를 비울 때까지 기다리는 일조차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문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키가 작은 여자 하나가 어두침침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로라가 물었다
."스코트 부인이세요?"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그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자, 들어오세요, 아가씨."
로라는 통로에 갇힌 셈이 되었다.
"괜찮습니다. 안에까지는 안 들어가도 돼요. 바구니만 전해 주면 돼요. 저희 어머니가 보내셨어요."
어둠침침한 통로에 서 있던 키가 작은 여인이 로라의 말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자, 이리 오세요, 아가씨."
붙임성 잇는 목소리로 그녀가 이렇게 말했고, 로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이윽고 로라는 천장이 낮고 공간이 좁은 형편없는 부엌 안으로 안내되었다.
흐릿한 등불이 실내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으며, 난로 앞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엇다.
"얘, 엠아."
로라를 안내해서 들어오게 한 키 작은 여인이 말했다.
"엠아, 아가씨가 찾아왔어."
그 여인이 로라 쪽으로 돌아보면서 의미심장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애의 언니되는 사람이에요. 저 애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아이, 뭘 별 말씀을 다하세요."
로라가 말했다.
"부탁입니다만, 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저는 단지 이것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 난로 앞에 앉아 있던 엠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 보았다.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부어 있었으며 눈과 입술도 퉁퉁 부어 있었다.
왜 로라가 여기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온 것인가? 낯선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와서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 이게 다 무엇 때문이지?
그녀의 가련한 얼굴에는 또 다시 주름이 잡혔다.
"알았다, 알았어."
키 작은 여인이 말했다.
"내가 이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그녀가 말했다.
"아가씨, 부탁입니다만, 이 애의 실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하시겠죠?"
그녀의 얼굴 역시 부어 있었는데,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를 썼다.
로라는 다만 밖으로 나가서,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다시 통로로 나왔다.
문이 열렸다. 그녀가 곧장 걸어가니 침실이었고, 그곳에는 세상을 떠난 남자의 시신이 눕혀져 있었다.
"한 번 뵙고 싶으시지요."
엠의 언니가 이렇게 말하고는 로라의 옆을 지나서 침대 가까이로 갔다.
"겁내지 말아요, 아가씨."
여인의 음성은 다정하고 어딘가 장난기가 섞인 듯하였다.
그녀는 다정하게 시신을 덮어 놓은 천을 들쳤다.
"그림 같아요. 아무 표정이 없는 걸요. 이리 가까이 와 보세요."
젊은 남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너무도 곤하게. 너무도 깊이 잠들어 있어서 그를 바라보는 두 사람과는 멀고도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초연하게, 평화롭게 잠들어있다니!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를 결코 다시는 깨우지 말아야 한다.
그의 머리는 베개에 푹 파묻혀 있었으며 눈은 감겨 있었다.
감겨진 눈꺼풀 아래에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꿈에 잠겨 있는 것이다.
원유회나 바구니나 레이스 달린 드레스가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는 그 모든 것에서 떨어져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아주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큰소리로 웃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이런 놀라운 일이 이 골목을 찾았던 것이다.
행복이란... 행복이란...
그 잠들어 있는 얼굴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만족한다. 하지만 여전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지 않고서는 그 방을 나설 수가 없었다.
로라는 어린애처럼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엠의 언니를 기다리지 않았다.
혼자서 문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아서 그 모든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내려왔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그녀는 로리를 만났다.
그는 그늘에서 나와 물었다.
"로라니?"
"응"
"어머니께서 걱정이 되기 시작하나 봐. 괜찮니?"
"응, 괜찮아. 아, 오빠!"
그녀는 그의 팔을 붙들고 그에게 몸을 기댔다.
"아니, 울고 있는 것 아니니?"
그녀의 오빠가 물었다.
로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로리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울지마."
그가 사랑스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섭지 않든?"
"아니, 무섭지 않았어."
훌쩍이며 로라가 말했다.
"그냥 아주 놀라웠어. 그런데, 오빠..."
그녀가 멈춰 서서 로리를 바라보았다.
"인생이란..."
더듬거리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인생이란..."
그러나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로라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상관 없었다.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것 아니겠니?"
로리가 말했다.
끝
첫댓글
나 나름 평가하는 단편소설 '캐더린 맨스필드'의 ‘원유회’.
이 소설을 읽을 적마다 나는 로라가 숨막히도록 어여쁘다오.
<로라는 어린애처럼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이 대목에서 언제나 콧등이 싸해집니다그려.
으흠, 늙은이에게 여적 남아있는 센티멘탈리즘....
오늘 격리 마지막 날.
다른 곳은 모두 낳은듯 한데 인후통은 쌈빡 가시지 않는군요.
성규도 후유증으로 그리 고생을 했다하지 않았소?
코로나, 다시 고개를 처든다니 조심하기요~~~
집단, 사회적 동물 세계의 필연적 계급사회.
저 편에 대한 미안함, 배려, 연민.
공감의 로라, 아름답고 어여쁜 로라.
많이 호전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질병 걱정 없는 後年이기를 우리 모두에게.
벗님들, 오늘도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