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海戰 2】
1942년 5월 20일 야마모토 제독이 발신한 통신문이 태평양 함대에서도 감청되었다.
일본 해군은 모든 통신문을 암호화하여 전달하고 있었고,
설령 감청당하더라도 해독하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IBM에서 개발한 장치를 이용하여 암호문을 해독하고 있었고, 그 결과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AF란 사실을 입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AF가 어디냐는 점이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과 참모부는 미드웨이를 AF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본토의 높으신 분들 중에서는 하와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태평양의 어느 섬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육군에서는 샌프란시스코라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이 때 로슈포르 중령의 암호 해독반이 계책을 냈다.
당시 미드웨이 섬에는 도청의 우려가 없는 해저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일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기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내용을 무선으로 교신했다.
이 무선을 이용하여 미드웨이 기지에 약속된 통신을 보내도록 하고, 일본군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청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미드웨이의 급수시설이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웨이 방어군이 "해수 담수화 장치가 고장나서 식수가 부족하다"란 내용의 거짓 무전을 무선을 통해 '평문'으로 보내도록 해저 케이블을 통해 지시하였고, 그런 줄도 모르고 일본군은 이틀 뒤, AF에 식수가 부족함, 추후 해수 담수화 장치가 필요할 것이란 무전을 날렸다.
이 무전은 성공적으로 감청됐고 다음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란 사실이 판명됐다.
당시 미드웨이는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최전방 요충지였다. 특히 동태평양에는 이렇다 할 섬이 없기 때문에 미드웨이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바로 하와이였고, 하와이가 무너지면 바로 미국 서해안이었다.
이에 그 이전부터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미드웨이가 공격지로 판명된 이상 더 많은 물자를 쏟아부어 방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섬에 주둔한 해군과 해병대 지휘관에게 필요물자 요청목록을 보내도록 지시하고는 그보다 훨씬 많은 물자를 보내고, 거기에 당시 중령이던 방어 지휘관들에게 격려 차원에서 대령 계급장을 보냈다.
여기에 버팔로, 와일드캣, 빈디케이터, B-17 등의 항공기도 있는대로 보냈다.
비행장 크기가 섬의 1/4을 차지하는 작은 섬에 항공기 124대가 북적거렸고, 대공포에 추가로 지뢰까지 무수히 깔아놓았던 탓에 설사 미 함대가 전멸한다 해도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기는 힘들 것이란 예상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준비상황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당장 미 육군은 위에도 나왔다시피 미국 서부 해안이 위험하다며 대부분의 폭격기들을 손에 꼭 틀어쥔채, 미 해군이 요구했던 수량에 미치지 못하는 숫자만 미드웨이로 보냈다.
한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남태평양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산호해 해전이 종료됐는데 니미츠 제독은 일본군을 기만하기 위해 두 번째 떡밥을 던졌다.
당시 보급문제로 진주만을 경유하느라 산호해 해전에 참여하지 못한 윌리엄 홀시 제독에게 모든 항공모함을 이끌고 일본군의 툴라기 기지로 진출하여 병력을 노출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의 의미를 이해한 홀시 제독은 충실히 그 명령을 수행했고 일부러 정찰기가 있는데까지 가서 대놓고 모든 병력을 보여줬다
그 결과 일본군은 태평양 함대의 모든 항공모함이 남태평양 지역에서 작전중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더불어 남태평양에서 작전을 마친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도착하자마자 니미츠 제독은 3일만에 보급과 정비를 마치도록 한후에 바로 미드웨이로 출격시켰다.
더불어 일본군의 주요 정찰 거점에 구축함을 파견한다.
당시 일본군은 비행정을 이용하여 미군의 동향을 정찰하고 있었고, 중간에 잠수함을 만나 급유를 받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구축함이 버티고 있으니 정찰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드웨이에 파견된 미국 함대는 정규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9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32척, 잠수함 19척이었다.
이 병력은 사실상 태평양 함대가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일본군과 비교하면 명백한 전력 열세였기 때문에 니미츠 제독은 영국의 태평양 방면 항공모함 3척 중에서 1척을 빌려오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