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요즘 의대 정원 대폭 확대로 여기 저기서 이런 저런 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함에 따라 진료에 큰 공백이 생겼습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와 학원가에서도 혼란스런 모습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공계 진학을 목표하던 학생들이 의대정원 대폭 확대 발표로 대거 의대진학반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재수생들이 몰리는 학원가도 비슷합니다. 대학생들도 상당수가 다시 재수를 택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취직했던 젊은층들도 이번 기회에 의사가 되겠다고 학원가를 찾고 있는 상황입니다. 웬만한 실력이면 이제 의대에 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온 학생들을 의대 지망생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온 나라가 의사라는 직종에 목을 메는 모습입니다. 정부와 의사들과의 갈등과 대립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는 사이 일본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일본 대학들이 올해부터 이공계 입학정원을 모두 합쳐 1만 1천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디지털 전환과 AI 성장 그리고 반도체 개발 등에 속도를 내기 위해 전문 인력부터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문부과학성도 일선 대학들의 인원 확충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과대학 신설과 증설에 한국돈 2조 6천여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대상을 공모한 결과 일본 전체 대학의 1/8에 해강하는 106개 대학을 승인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선 대학과 함께 일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이공계 인력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래부터 이공계의 강국이었습니다. 지금도 노벨 화학상 물리학상 수상자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7명, 노벨 화학상 7명, 노벨 생리의학상 1명 등입니다. 노벨 평화상밖에 받은 적이 없는 한국과는 너무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계속해서 이공계 인력을 더욱 확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조금 뒤진다고 분석된 반도체 등에서 상대 우위를 되찾기위한 노력으로 풀이됩니다.
이러한 일본의 노력과 의지에 비해 한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산에서 연구개발비를 대폭 줄인데서도 잘 나타납니다.요즘 각 대학 연구소 등에서는 연구개발비 삭감으로 연구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많이 들립니다. 연구 개발을 해야할 인재들이 먹고 살 걱정에 맥이 풀린 상태에서 연구 개발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로지 의대 정원에만 힘을 쏟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사이에 큰 시각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그렇게 공을 들이는 의대인데 그렇다고 노벨 의학상을 탈 그런 수준도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대학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 이공계 인재들의 급증은 한국의 앞날에 먹구름을 짙게 드리게하고 있습니다. 대학가나 대학원들에서는 '의대 블랙홀' 현상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없는 일입니다. 최근 4년동안 1천명이 넘는 우수 이공계 인재들이 자신의 과를 떠나 의대쪽으로 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모 언론매체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KAIST와 포스텍, UNIST,GIST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 4개교에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동안 학교를 떠난 학생 수가 1천180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학교를 이탈한 이공계 인재들 대부분이 의대로 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특성화고교들의 환경과 제재 조건이 존재합니다. 한국에서는 과학고와 영재학교 학생들은 졸업 직후 의대로 진학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일종의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 또는 의대 진학 캠프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학고와 영재학교에서는 수년 전부터 의약학계열을 진학할 경우 고교때 받았던 장학금과 교육비 전액 환수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일단 충족하기 위해 우선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진학해 제재를 피한 뒤에 의대로 가는 학생들이 상당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편법을 총동원해 겨우 겨우 의대에 들어왔더니 앞으로 의대정원을 대폭 늘린다...지금 의사들뿐만 아니라 현재 의대에 재학중인 학생들도 기가 막힐 노릇아니겠습니까. 내 이럴려고 이공계 특성화대학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정말 힘들게 잠을 대폭 줄이면서 의대 공부해 입학했는데 올해부터는 대충 공부해도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분개하는 것이지요.
한국에만 있는 오로지 의대 정원 대폭 확충과 의사 선호사상은 아무리 합리적으로 판단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로지 돈 많이 벌기 위함 아닌가요. 정말로 슈바이처 박사처럼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의술을 펴기 위함도 아니요,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전쟁터나 분쟁중인 험지에서 의사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의지를 가진 의대생들이나 의사들께는 너무 죄송스런 말이지만요.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특히 한국의 이공계 대학 홀대와는 전혀 다르게 일본에서 이공계 대학에 대폭적인 지원을 하려는 모습이 상당히 부럽고 참으로 현명한 정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제가 일본의 정책에 동감하고 박수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일본의 이공계 정책은 당연하기도 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조치라고 판단이 되기 때문이요 한국 정부는 왜 그렇지 못한가 매우 아쉬운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개혁은 의대 정원 대폭 증원이 아니고 한국 사회 저변에 깔린 그 요상한 의사 숭배사상부터 고쳐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오히려 의사 숭배사상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이제 전세계에 내세울 기술력도 없는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과연 의대정원 대폭 확대가 옳은지 이공계에 대한 대폭 지원 확대가 맞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4년 3월 2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