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굴뚝이 있는 풍경 / 신해욱
목욕탕의 굴뚝은 높았다.
여긴 것 같아. 하나가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언젠가 말씀이 있었어.
언젠가 우리는 들었는데. 전해야 했는데. 하나는 떠올렸다.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독을 깼어.
우리가?
응. 우리가. 콸콸콸. 쏟아졌어. 콸콸콸. 뜨끈했지. 콸콸콸. 어느새 탕에 들어. 마스크를 벗었어. 몸을 녹였어. 요구르트를 마셨고. 때를 불렸지. 때를 밀었어.
시원했어?
응. 시원했어. 우리는 비로소. 우리는 다 같이 등을 돌리고. 매끈한 등에서 등으로. 손가락을 따라 손가락으로. 하나는 회상에 잠겼다. 등에 말씀을 옮겼던 것 같아. 필사적으로. 피상적으로. 등에서 등으로. 돌고 돌아 요원해질 때까지. 식상해질 때까지. 웃음이 터질 때까지. 손 쓸 수 없는 훼손에 이를 때까지.
현장은 어지러웠다.
목욕탕의 벽돌. 목욕탕의 의자. 나뒹구는 의자의 구멍. 구멍과 비누. 깨진 타일. 구멍과 열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굴뚝은 철거가 어렵대. 우리는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등이 가려웠다.
지워버리자.
응. 지워버리자.
우리의 입김이 모락모락 눈발에 섞였다.
ㅡ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웹진》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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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욱 시인
1974년 춘천 출생. 한림대 국문과 졸업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 『해몽전파사』 『창밖을 본다』
산문집 『비성년열전』 『일인용 책』,
소설 『해몽전파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