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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더 탐색을 해야 될 것 같은데 느낌대로 쓰자면..
우선 펌글로 ..
특히 나루세의 대표작 <부운>을 본 사람들이라면 유미코와 미시마가 들어가게 되는
두 여관의 장면이 거의 같은 숏으로 반복되는 것을 주목할 것.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분석처럼 나루세 영화에서 병석에 눕거나 간호하는
남녀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층위로 묶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좀더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다다미방에서 인물의 행위를
포착하는 유연한 나루세 스타일을 목격할 수 있다.
늘 수평적인 시선을 맞추며 앉아 있는 오즈의 가족들과는 달리 나루세의 연인들은
앉거나 서는 순간 정교하게 커팅된 카메라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일본식 좌식생활의
리듬을 시선의 영화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놓치기 쉽다는 점이 나루세 미키오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만, 그 세계로 진입한 순간 아시아영화의 숨결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연호/ 전 <키노> 편집장의 글
-홍콩엔 왕가위가 있고 일본엔 나루세가 있었다
두 감독 똑 같이 외국 지리-동남 아시아-가 나온다
화양연화,2046-
같은 멜로 영화이고 남 주인공은 잘한것도 없는데 틱틱거리는 아우라가 양조위와 비슷하더라
외모도 비슷하다 기름기 빠진 추레한 양조위..
-우리의 옛날 멜로..
떠 올리기도 싫은 신성일 류의'성우영화'-로 갈까 봐
조마조마한 대목이 몇개 보였는데 당연히 길을 잘 잡더라
((우리-시골 여자가 상경하고 부잣집의 식모가 되고 아들과 사랑? 을 하고 첫 경험으로 아기를 갖고
수술하고(애를 뗀다고 한다)울고불고하다가 여자만 손해 보고 떠난다 남자는 슬픈 척 ..
까지껏 뭐 슬퍼 해줄수도 있지..부모가 댓가성 돈을 건넬 때도 있고..이런게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
-부운도 병원 장면이 나와서 불안 했는데 의사가 아니라 다행히 같은 업무로 옆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가린 신문으로 대체한다 기사 내용은 남자의 동거녀와 관련된 살인 기사..
그러니까 죽었고 죽이고가 될거다))
-부운 오프닝 부근..
설레더라 왕가위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여의 환한 얼굴..
(숲 속의 첫 키스 장면은 참,좋았다)
직장부터 우리와 다르다 본국에서 파견된 농산성 공직자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여자는 그가 첫 남자도 아니다
유부남과 미혼여-전후 귀국-남자집 방문-밀당-어려운 생활에 매춘도 하지만
여자는 남자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그놈의 순애보)
남자가 바람을 펴 동숙했던 한 여자가 죽자
내가 그녀에게 '졌다' 고 여는 눈물을 흘린다(감히 내가 게임에서 졌다는?)
이런 대목은 왕가위에게서도 나오는 설정이다
나의 남자니까..
여자는 큰 돈을 훔쳐서 남자에게 오고
(사이비 교주 노릇하는 첫 남자의 돈/여는 '당신과 결혼할려고 그랬다'고 한다- 이 당당한!)
부탁부탁하여-
남자의 파견지 섬까지 함께한다
엔딩-그리고 죽는다 바람둥이 남자는 애통해 한다 그의 진심이 보인다
진정으로 슬프다 화면 속의 남자도 슬프고 화면 밖의 사람도 슬프다 그게 '중요'하다
멜로는 그 중요가 '중요' 하다 영화는 기술 이전에 감정이기에..
-우리 옛날 남자에게는 장만옥이 같은 여자가 하나는 있었다
그리고 나루세의 여 주인공도 있었다-
병상의 여자를 보는 건 사랑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여자의 운명이..
여자가 스쳐 보내는 매순간 장면들이 마치 엔딩처럼 너무 슬프다
과정들이 이미 결말인(죽음)슬픔..
[펌]
나는 본편에 대한 무수한 찬사나 오즈 야스지로의 특별한 언급 등에 대해 첨언할 능력이 없다.
과거의 상찬은 분명 나름 이유가 있었을 터이지만, 나의 공부는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더불어, 본편을 남녀의 애절한 로맨스 장르로 발설하는 것 역시 지금 내겐 큰 흥미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감독의 여정 안에서 본편을 자리매김할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 잡문이 타인들에게 정보로서 도움이 된다면 효용은 달성된 것이다.
구름이 파란 하늘에만 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밤하늘에도 구름은 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회피하거나 거부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구름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인지할 수 없다.
자연의 변화란 그야말로 오리무중, 인간의 감정을 거기에 비할 수 없음이렸다.
본편 <부운>의 엔딩은 누구나 예감할 수 있음에도 관객은 그것을 물리칠 수 없음 역시 인지할 뿐이다.
구름은 언뜻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이지만, 점차로 흩어져 줄어들고 사그라들 것이다.
영화 <부운>은 흔히 말하는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시간들,
즉 나루세 미키오가 여기에 여성 영화 혹은 아내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로 같이 동행했던 시기를 고려하자면
여러모로 놀랄만한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아래에서 별도로 부연하겠지만, 그 자체가 일종의 선정성을 담보함으로서 고요함의 이탈로 치닫지는 않지만,
위 대가들의 작품들 이후 일본 누벨바그 세대 혹은 태양족 영화들과 구별할 수 있거나
언급한 4명의 대가들의 전작을 일독한 이들에게는 일순 흥미로운 지점들이 담겨져있다.
( 미조구치 겐지의 작품들과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들 전작을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의 이 결론은 성급할 수도 있다.)
본편이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영화 안에 분류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든 동거든간에 두 남녀가 극의 중심 뼈대를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나루세 미키오의 전작들을 고려하자면 상당히 특이하다.
<밥>에서 위기의 부부 관계가 현실적인 체념이라는 의미에서 회복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부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로맨스물이라고 하기에는 함량이 부족하고,
<산의 소리>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성적 긴장감이 가족 내 신분을 어색하게 만들 정도로 지속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등의 과격함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물러섰다.
즉,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의 긴 시간의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절반 정도라고 봐야하겠지만, 남자 주인공 도미오카는 공무원에서 다시 직장인이 되기까지
여주인공에게 돈을 빌리는 남성 역할을 다시 선보이는 무력함이라는 나루세 미키오의 남성을 재현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가족이나 자신의 삶을 경제적으로 추스리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달성하는 변모를 보인다.
물론, 이같은 변형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만큼 극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간 거의 돈을 융통하기 위해서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남성들과 본편의 도미오카는 차별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편은 남자 주인공 도미오카가 격었을 세파는 거의 스크린에 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중심은 여전히 여주인공 유키코에게 맞춰져있다.
오프닝에서 외국에서 피난선을 타고 내리는 여주인공의 모습에는 일말의 친근감이 있다.
게다가 곧 그녀는 침탈지역 공무원으로서 자신과 연애를 했었던 동료 도미오카의 집으로 향하는데
이미 그녀는 그에게 부인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만나려고 한다. 그것이 경제적인 이유든 아니든간에 상관없이.
이 짧은 오프닝의 5분이 지나간 이후에 놀랍게도 과거와의 교차 편집이 등장한다.
이 시퀀스가 특이한 이유는 두 가지다. 교차 편집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기법 상의 변이도 있지만,
베트남에서 침략지 공무원으로 분한 두 사람을 영화가 담아냈다는 선택이 놀랍다.
물론, 여기에는 침탈이나 착취라는 식민지적 잔혹함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한 1세대 감독들이 그러하듯이 나루세 미키오 역시 정치적인 발언은 삼가했었다.
그렇다면, 이 침략지 시퀀스는 왜 필요했을까? 대답은 하나다.
2층 계단을 내려오는 주인공 유키코의 젊은 아름다움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이국이라는 정서의 주입에 있다.
즉, 그들은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장소에서 만났음을 영화는 강조하려는 것이다.
애시당초 영화가 말했듯 젊은 일본 여성이 침략지 베트남에서 공직에 종사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어색하다.
전술했다시피, 초반부는 두 남녀가 식민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과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와 재회하는 장면이 교차편집된다.
여기서 교차편집이라는 기법은 여주인공 유키코가 여전히 도미오카를 사랑한다는 정서를 지속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그곳이 어디이든간에 구름과도 같은 도미오카를 쫓아서 유키코는 움직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그들이 식민지 내 밀림에서 처음 입맞춤을 하려는 장면에서
현실의 만남에서 재회 후 입맞춤을 하는 장면을 편집하는 것에서도 쉽게 드러나는데,
1956년의 일본 내 남녀 주인공의 러브씬이 어디까지 허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세대 감독들의 작품 안에서 이같은 키스씬이란 자못 놀라운 바가 있다.
본편 내에서도 이후 더 이상 등장하는 않는 이같은 키스씬은
초반부 이같은 두 남녀의 사랑의 증표를 보이기라도 하듯이 과감하게 기용된다.
( 우연하게도 한국 영화의 첫 키스씬 장면은 한 해 뒤인 1956년에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으로 첫 등장한다. )
다르게 말하자면, 이같은 키스씬은 곧 있을 유부남과의 연애라는 장벽이나
이미 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하려는 남편 도미오카의 면모와는 관계없이
적어도 식민지 밀림 안에서의 행복한 시절을 여주인공 유키코의 의도적인 회상이 아닌
감독의 주문에 의한 과거의 연애 광경을 담았다는 측면이 더욱 특이한 것이다.
이는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로맨스적 장면의 삽입이라는 맥락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아닌게 아니라, 전술했다시피 본편의 다양한 지점은 감독 자신에게도 혹은 1세대 감독의 세계에서도
영화에서 우리는 거의 구름을 보지 못한다. 그 대신 기용된 것은 촛불이다.
전후 일본의 폐허에서 전기불은 희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유키코의 성매매 거주지에서 혹은 결말부 장소인 오지의 섬마을에 전기는 보이지 않는다.
만일 전기불이 선명한 연애라면 촛불은 그 자체로 언제든지 산화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일렁거림 혹은 후욱 불어서 꺼질듯한 심지와 다시 켜야만한다는 강박증.
아니 차라리 전기불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장소라는 의미에서의 심리적인 폐허로서의 연애.
유키코가 병사하는 결말의 낡은 서사적인 배치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엔딩에서 유키코를 붙들고 오열하는 도미오카의 늦은 참회에 대해서
혹은 종결에 와서야 관객으로 하여금 혹시 온전한 로맨스 비극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경종을 울리는 포옹 옆에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가 배치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에 가깝다.
드디어 구름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정작 구름이 되어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전복으로서의 설정.
흔들리고 흩어진 것은 구름이 아니라 혹시 나는 아니었을까라는 일종의 배반된 심리가
본편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이는 다시 한번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체념이자 순종극이 될 여지가 있다.
물론, 이 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당신은 좀 더 뒤로 물러서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도미오카가 도착하기 전에 유키코가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처리를 놓치지 말아햐는 것처럼.
<부운>은 전후 일본의 피폐함이라는 시대상을 기이하게 끌어안은 어색한 풍경화이며
두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한 여자의 자기 상실극이라는 결론으로 치닫기 위해 켜둔 촛불의 애도다
나루세(成瀨) 감독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꼼꼼히 다룬 작품을 다수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 그에겐 어둡고 비관적인 작품이 많은데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곤경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역시 지독한 가난을 겪은 여류작가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소설을 영화화한 '밥' '번개' '늦국화' 등으로 성가를 굳혔는데 2차 대전 종전 후에 발표된 하야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부운'은 그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1946년 초겨울 배에서 내리는 귀국자의 대열 사진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귀국자들 가운데는 유키코라는 젊은 여성이 끼어 있다. 유키코는 도쿄의 도미오카 집을 찾아간다. 유키코를 맞는 도미오카는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나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함께 거리로 나간다. 왜 답장을 하지 않았느냐는 유키코의 물음에 남자는 도쿄로 올 줄 알았다고 대답한다. 어디서 유하느냐는 물음에 유키토는 부모가 소개(疏開)지에서 돌아오지 않아 친척 되는 이의 집에서 유했다는 말을 한다. 이들은 전쟁 중 지금의 베트남에서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는 도쿄에서 온 스물 두 살 난 유키코에게 처음엔 짓궂게 대하지만 이내 가까워진 것이다.
좋은 영화가 본시 그렇지만 대사가 간결하면서도 집약적이다. 유키코는 "남자는 좋겠다"고 말한다. 아내를 두고 자기 같은 처녀를 건드리고도 이렇게 태평하다는 것에 대한 원망과 항의의 함의가 있다. 이에 대해 남자는 "여자란 참 느긋하다"고 받는다. 피차간에 어려운 처지인데 강짜를 놓을 참이냐는 질책과 회피의 함의가 있다. 남자는 옛날 생각을 말라면서 베트남에서의 일은 꿈을 꾼 것이니 헤어지자고 말한다. 유키코의 등장이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남자도 이전에 근무하던 농림부에서 퇴직한 터였다.
이번엔 남자가 유키코의 거처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아주 허술한 집 한 모퉁이지만 얼마쯤 여유 있어 보인다. 남자는 부럽다고 말하고 유키코는 참 밉상이라고 받는다. 방문객이 찾아오는데 바로 미군 병사다. 유키코는 나가서 그를 돌려보내고 들어온다. 그 사이 그녀는 '빵빵' 생활을 한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매춘행위를 가리키는 빵빵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는데 그 어원은 불명이다. 영업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돌려보냈으니 상관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하자 여자는 알 것 없다면서 그도 외로운 처지여서 알게 된 것일 뿐이라고 응수한다. 묵어가도 좋으냐는 남자의 말에 긴장된 대화가 진행되는데 남자가 가끔 들르겠다고 하자 유키코는 그건 싫다고 단호히 말해서 남자는 돌아간다.
두 사람은 이렇게 더러 만나곤 하는데 바람둥이인 남자는 심심찮게 바람을 피워 유키코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번은 어렵사리 찾아가니 여자의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그 사이 남자의 아내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뜬다. 안대를 하고 찾아온 남자는 유키코에게서 장례비용을 빌려가기도 한다. 그 후 유키코는 작심하고 장래 얘기를 꺼내보지만 남자는 늘 핵심을 피하고 각자의 길을 가자고 회피할 뿐이다. 유키코는 그러는 남자에게 잠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일편단심 변함이 없다.
마침내 유키코는 유하고 있던 친척집에서 돈을 챙기고 빠져 나와 여관을 정하고 전보로 남자를 불러낸다. 결판을 낼 작정이었으나 남자는 끝내 회피한다. 그러면서 옛 직장 일과 관련해 야쿠시마(屋久島)로 가겠다고 한다. 규슈 남단에 있는 섬으로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수령 천년이 넘는 삼나무 숲이 있는 섬이다. 유키코는 같이 가겠다며 따라가나 병이 난 몸으로 빗속에 배를 탄 사정도 가세하여 결국 섬에서 죽는다. 산에 올랐다가 달려온 남자는 유키코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며 울음을 터트린다.
버거워하면서도 인연을 끊지 못하는 남녀 간의 끈질긴 집념이 기복 많은 줄거리를 통해 전개된다. 시종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유키코는 새 여성상을 보여주어 흥미 있다. 무책임하고 불성실하나 악당은 못 되는 남자 역의 모리는 '라쇼몽'에서 사무라이로 나온 배우이다. 유키코 역의 다카미네 히데코는 일본의 대표적 여배우인데 눈치 빠르고 맹렬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역할을 잘 해낸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대립과 음영이 박진감을 얻고 있으며 패전 직후의 일본의 사회상도 흥미 있다.
작가 하야시는 모친이 규슈 사쿠라지마 온천 여관집 딸이요 부친은 외지에서 온 행상인이었다. 그래서 사쿠라지마에는 하야시의 기념관이 있고 그녀의 시를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괴로움만 허다하고 짤막한 꽃의 목숨.' 영화 '부운'도 이 단시를 크게 적어놓은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그녀의 출세작이며 1930년대에 60만부가 나간 '방랑기'는 영남대학교 최연 교수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간행되었다
세계일보/유종호-문학 평론가
아니지만 짐 자무쉬 같은 분위기..그림으로만..
이해가 덜가는 일본의 목욕 문화
베트남에서의 짧은 행복
어디에선가에서.. 길에서 카드를 틀때 한번 쯤 마주친 듯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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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볼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