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제운스님
처행處行
종도차처거처행 從道此處渠處行
하일주향남창원 何日住向南昌原
본연달마우석가 本然達摩又釋迦
편휴거생하착구 便休生去何着求
길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어떤 날 남쪽을 향하다 창원에 머물다
본시 달마도, 석가 또한 그러했다
잠시 쉬어가는 세상 무슨 집착으로 구하려 할까.
서울 직할 공 사찰 적조사 주지 살이 한지도 어언 10여년 일산에서 정광사를 개원해서 몇 년을 살았다. 하지만 어릴 적 출가라 세상물정 모르고 ‘늘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 정광사도 버리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가끔 드라이브 즐기던 양평의 용문사를 들렸는데 당시 주지가 74년 법주사 강원 도반이라는 걸 알고서 용문사 방부를 드렸다.
그렇게 화려했던 과거는 저만치 보내고 고급스런 차도 버리고 한주(閑住)로서 5년을 살았다. 한주라는 것이 단순히 한가하게 지낸다는 뜻만은 아니다. 엄연히 소임(所任)이다. 승납 을 갖춘 스님들에게 부여되는 소임이다. 그러니 아무나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법납(法臘)과 법력이 있어야한다.
그렇게 용문사의 생활이 시작되는데 나는 첨에 지난 날 되돌아보며 옛적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수행하던 자세로 살려고 했었다. 물론 차도 없이 살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석 달 쯤 될 무렵 산이라 교통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차를 구입하는데 지난 날 어느 신세졌던 보살에게 차를 넘기던 생각이 난다. “스님 차를 제게 주시면 스님은 차 없이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난 당시 좋은 차를 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차 가격이 4천만원이 넘는 외제 지프차였다. 그런 차를 조건 없이 “보살 빨리 명의 이전 하면 좋겠다.”는 말로서 그렇게 버렸는데 다시 차를 구입한다는 것이 irony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차를 구입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10년이 훌쩍 넘은 겔로퍼 400만원을 그나마 할부로 구입했다. 슬픈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 조석지변(朝夕之變,아침저녁 변한다는 말)이라 했던가? 아니, 불가에서는 찰나지변(1찰나는 눈 한 번 깜빡이는 80분의1)이라 하지 우습고 우습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작심했던 맘 다 채우진 못해도 뜻을 져버리지 않으려 열심히 애를 쓰고 살았다. 매년 책을 한 권도 내고 어느 해는 두 권도 냈다. 그렇게 낸 책이 10권이 넘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건강을 위해 운동도 했다. 양평 탁구장에서 후배 j와 탁구를 즐겼고 때론 더운 여름날 가평 설악 그 험하다는 고갯길을 mtb바이크로 돌아 도라 140리길을 탔었고 또한 어떤 날은 용문산 정상을 오르고 오르길 무려 13번을 등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2012년 4월 6일부터 15일까지 양평군에서 위탁 받은 용문사 박물관에서 전시회와 시집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를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용문사도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에 남쪽을 향했다 첨엔 서부 경남 고성에서 잠시 머물다 부곡 청암사로 창원 회광선원을 개원하고 그렇게 지내다 문득 합천 보림사에 이르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수행이 무엇인지 그저 허허로운 그런 것 쯤 오늘 이렇게 글을 써 본다. 다행하게도 이곳은 합천 땜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경치 좋고 물 좋은 그런 절이다.
-합천 보림사에서..
첫댓글 합천 보림사가 어디가요 스님
경남 합천 합천 땜 위 황매산 뒤에 있어요.
나무아미타불_()_
관세음보살_()_
_()_나무아미타불
74년도에 출가하신분이시군요.
그당시 그당시 저는 고딩초 무렵입니다.
저와 다르신 경우 이긴하시지만...
부모님이 눈에 밣히시진 안으셨는지요?
감사합니다.
저역시 그런생각이야 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불가의 인연법이자 운명인걸요.
혹 가능하다면 올해 선시선화 마무리해서 내년 봄 쯤 책 출간과 함께 전시회를 가져볼 셍각입니다.
저에게 스폰서가 될 분이라도 주변에 있다면 좋겠습니다.
@걸사비구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지금까지.풍족하게 잘 살아오셨군요.
@만덕1 무엇을. .또. 구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