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히나(Al-Kahina)는 서기 7세기 무렵 현재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살던 베르베르족을 다스리던 여왕이었습니다. 그녀의 정확한 출생과 생몰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7세기에 태어나 7세기 말엽 알제리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원래 그녀의 진짜 이름은 디히야이고, 알 카히나는 아랍인들이 ‘여성 사제’ 혹은 ‘점쟁이’라는 뜻으로 붙인 별명이었습니다. 이는 디히야 스스로가 “나는 앞날을 미리 보는 능력이 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녀의 적대 세력이었던 아랍인들이 그녀를 점쟁이나 사제에 빗대어 부른 별명으로 추정됩니다.
알 카히나는 7세기 초 베르베르족에 속한 즈라와 제나타 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른이 된 알 카히나는 5년 동안 오레스 산맥에서 가다메스의 오아시스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베르베르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인 680년대, 동쪽에서 아랍인들로 구성된 이슬람 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베르베르족의 족장인 쿠사일라가 부족들을 이끌고 그들에 맞서다 죽자, 알 카히나가 쿠사일라의 뒤를 이어 베르베르족들의 전쟁 지도자가 되어 아랍인들을 상대로 새로운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698년 알 카히나가 지휘하는 베르베르 부족 군대는 하산 이븐 알 누만이 이끈 아랍 군대와 메스키아나 근처에서 만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를 가리켜 낙타 전투라고도 부르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알 카히나가 이끄는 베르베르 부족 군대가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산은 철수하여 4~5년 동안 현재의 리비아인 키레나이카에 숨어서 지냈는데, 이는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면서 겪었던 가장 큰 패배로 기록됩니다.
당시 아랍 군대는 로마와 페르시아 같은 강대국들을 잇달아 쳐부수며 무적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는데, 그런 아랍 군대를 상대로 국가도 아닌 부족 연맹체에 불과한 베르베르족들을 이끌고 승리한 알 카히나는 매우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승리한 알 카히나는 아랍 군대를 결코 얕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랍 군대가 다시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농경지와 작물 등을 모두 불태워서 아랍인들이 식량을 얻지 못하고 굶주리다가 물러가게 하려는 일종의 청야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식의 청야전술은 비단 알 카히나 뿐만 아니고, 한국사에서도 고구려가 물량에서 월등히 앞선 중국을 상대로 여러 번 쓴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야전술은 애초에 알 카히나가 노렸던 것처럼 아랍인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베르베르족들의 민심을 떠나가게 만드는 역효과를 일으켰습니다. 물론 산이나 사막에 거주하면서 가축을 키우고 유목 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족들은 청야전술에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오아시스에 살면서 농사를 짓는 베르베르족들은 알 카히나가 저지른 청야전술로 인해 당장 먹고 살 식량과 그 수급원을 잃어버렸으니, 아랍인을 물리치는 것보다 오히려 자기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처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베르베르족 내부에서 알 카히나의 청야전술을 두고 반감이 커질 무렵, 하산은 아랍 군대를 이끌고 다시 베르베르족을 침략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알제리 국경 근처의 튀니지 지역인 타바르카에서 알 카히나와 하산이 이끄는 베르베르 군대와 아랍 군대 간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 대해서는 간략한 결과만 알려졌는데, 베르베르 군대가 패배하고 알 카히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자료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는데, 칼을 손에 들고 아랍 군대와 싸우다 죽었다거나 혹은 아랍 군대한테 붙잡혀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독을 삼키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타바르카 전투가 벌어진 해는 약 690년대이나 703년 즈음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습니다.
아랍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알 카히나는 유대교나 혹은 기독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녀가 전통적인 베르베르족들의 다신교 신앙을 믿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는데, 서기 7세기 무렵의 베르베르족 사회는 유대교와 기독교에 전통 다신교 신앙까지 여러 종교들이 공존했기 때문에 알 카히나가 어떤 종교를 믿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유대교, 기독교, 전통 다신교 신앙 모두를 함께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알 카히나는 살아생전에 바가이와 켄츨라라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들들의 행적도 엇갈립니다. 많은 아랍 역사가들에 의하면 알 카히나가 죽고 나서 그녀의 두 아들이 아랍 군대에 항복하여 스페인으로 쳐들어갔다고 하지만, 이븐 알-아티르는 그들이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알 카히나는 알제리에서 매우 인기있는 여성 영웅입니다. 특히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배르 받던 시절에 알 카히나는 프랑스와 싸운 알제리 여성 독립투사들의 모델이었습니다. 1857년 반란을 일으켜 프랑스에 저항한 여성 족장인 랄라 파트마도 알 카히나를 존경했습니다. 또한 현재 알제리 켄첼라에 있는 디히야 기념관에는 알 카히나를 기리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출처: 세계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180~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