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구단 선수들이 올겨울도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한달반 동안 치러지는 기나긴 해외 전지훈련. 선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집에서 자나깨나 남편의 건투를 빌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내들의 겨울나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너무 외로워 - 새댁 아내
매년 12월 프로야구계는 웨딩 마치로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이 신혼 부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포의 전지훈련. 전지훈련이 보통 1월 중순에 시작되기 때문에 이들은 눈물의 작별을 하기 일쑤다. 떨어져 있으려면 하루가 1년 같은 신혼에 무려 한 달 반을 떨어져 있으려니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다.
지난 12월10일 결혼한 박용택(27·LG)의 아내 한진영씨(27)도 요즘 매일같이 외로움에 한숨짓고 있다. 3주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불과 10일 만에 남편이 훌쩍 전지훈련을 떠나버렸다. 신랑을 떠나보낸 지 이제 한 달째. 매일 두 차례씩 전화가 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결혼 전 플로리스트로 일하던 한씨는 남편 내조를 위해 전업주부로 전향했다.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남편이 집을 비운 뒤로는 집안 꾸미기에 열중하고 있다. 따뜻한 3월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신혼집을 예쁘게 꾸미는 중. 남는 시간에 운동을 하고 주말엔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아가씨’이던 시절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새내기 아내들의 특징이다. 한씨는 “처음에는 갑자기 혼자 자려니 무서워 TV를 켜놓고 잤다”며 “보고 싶고 외로운 것만 빼면 아직은 전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애 때문에 정신없어-새내기 엄마
신혼이 끝나는 기점은 대부분 아기가 생기면서부터다. 전지훈련지에 있는 남편을 자나깨나 기다리던 새색시도 아기가 생기면 즉시 ‘엄마’로 변신한다.
두산 포수 홍성흔(29)의 아내 김정임씨(33)가 그렇다. 지난 2003년 12월 결혼했으니 이제 4년차 주부. 요즘은 딸 화리(1)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나마 시즌 종료 후 딸을 같이 봐주던 남편이 없어져 다시 아기를 혼자 맡았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은 하루 2∼3차례. 매번 8∼10분간 통화도 주된 내용은 화리 얘기다. 매일 화리 사진을 찍어 남편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김씨도 신혼 시절에는 그저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결혼한 뒤 첫 전지훈련 때는 집을 예쁘게 꾸미고 요리를 배우러 문화강좌에 다니는 등 남편을 위해서만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난해 전지훈련부터는 화리가 모든 것을 차지했다. 김씨는 “남편이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보고 싶다’는 말을 잘 안 하게 된다. 책임감 때문인지 이제는 ‘부상 없이 훈련 잘 하고 오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집 전화로 국제통화 정액요금제에 가입,남편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끊으면 집전화로 다시 걸어 전화요금을 아끼는 것도 결혼 4년차가 되는 동안 파악한 노하우다.
▲전지훈련은 오히려 약-고참 아내
무엇이든 오랫동안 경험하면 익숙해지는 법. 결혼 후 남편을 해마다 떠나보낸 고참 아내들에게는 이제 전지훈련이 연례 행사일 뿐이다.
SK 최고참인 투수 조웅천(35)의 아내 조은주씨는(34) 느긋한 고참 주부. 지난 1997년 결혼했으니 올해로 결혼 10주년째다. 그동안 남편을 전지훈련에 보낸 것만 10차례. “당연히 처음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신혼 시절에는 남편이 보고 싶어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제는 아들 승원이(7)와 혜원이(5) 뒷바라지에 바빠 남편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아동복 매장을 개업해 바쁘다. 그래서 전지훈련을 오히려 결혼 생활의 활력소로 삼고 있다. 시즌 중에는 남편이 들어오면 식사 준비 등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았던 터라 전지훈련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 조씨는 “계속 붙어있으면 안 다툴 일도 다투는 게 부부다. 비시즌 뒤 잠깐 떨어져있는 것이니 장기 출장 간 것과 같다”며 “남편들도 이 기간을 만회하려고 쉬는 날이나 비시즌에 가족들에게 더 신경을 쓴다. 그런 면에선 전지훈련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음과 달라진 것은 남편 조웅천도 마찬가지. 사이판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오지만 하루 한 차례다. 조씨는 “우리도 신혼 때는 하루 두세 번씩 통화했다. 오래 사니까 전화횟수부터 줄더라”고 웃었다. 그래도 아이들 바꿔달라는 말 없이 그저 아내하고만 통화한다니 금슬은 여전한 고참 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