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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9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참으로 값진 그 평화를 주소서.
[알렉산드리아의 거대한 도서관이 타 버렸을 때 단 한 권의 책만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아주 평범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책이었다. 그래서 글을 겨우 읽을 줄 아는 어느 가난한 사람에게 동전 몇 푼에 팔렸다. 그런데 겉보기에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이던 그 책은 아주 값진 책이었다. 표지 뒷면에 크고 둥근 글씨로 아무렇게나 몇 자 씌어 있었는데, 그것은 대기만 하면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작은 돌멩이에 대한 비밀이었다.
그 신기한 돌멩이는 흑해 해변에 똑같은 모양의 돌멩이 수천만 개 사이에 있는데, 단 하나 다른 점은 다른 돌멩이는 감촉이 찬 데 비해서 이 돌멩이는 마치 살아 있는 듯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행운을 기뻐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아 앞으로 일 년은 견딜 수 있는 돈을 마련하였다. 그러고는 흑해로 가서 텐트를 치고 돌멩이 찾는 일에 착수했다. 고된 작업이었다.
그는 자갈 하나를 집어 들고 감촉을 느껴 보고는 차가우면 바다에 던져 버렸다. 해변에 그대로 두면 어떤 것이 만졌던 것이고 어떤 것이 새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매일 몇 시간이고 참을성 있게 일을 했다. 자갈을 집어 들고, 차가운지 만져보고, 바다에 던지고, 다른 것을 집어 들고, 만져보고, 던지고.... 이렇게 한 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그는 돈을 빌려 앞으로 2년을 더 지낼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았다. 돌을 집어 들고, 만져 보고, 던지고,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그렇지만 돌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그 감촉이 따뜻했다. 그런데 그는 순전히 습관적으로 그 돌멩이를 흑해에 던져 버렸다.](앤소니 드 멜로 지음/ 황애경 옮김, 개구리의 기도 2)
매일 습관적으로 몸에 밴대로 행동하고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기도하고,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다보니까 30년이 지나고, 70년이 지났습니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지도 벌써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미사에 참례하고, 숱하게 많은 고해성사도 보았고, 영성체도 하였습니다. 교리도 가르친다고 엉터리로 교리강좌도 열었고, 성경공부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같은 내용으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강의도 많이 하였고,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습관적으로 지냈습니다. 내가 인사하면서 명함을 건넨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셀 수 없습니다. 명함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내 명함을 많이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받은 명함도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받은 명함은 사교적으로 만난 사람들과 정치가들로부터 받은 명함과 명함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의 명함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습관적으로 그 명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지 못한 편입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의 명함은 명함첩에 꽂아 넣지만 그렇지 않는 명함은 책상의 한 쪽에 모아둡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다음에 살펴보면 내 주의를 끌지 못하고 또 바꿔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쓸데없이 많은 사람들과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많이 인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 손가락 안에 들을 만큼 작습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체면치례로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 방문할 새도 없습니다. 내가 아는 집을 방문한다고 하여도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하면서 고상에 절하고 인사하는 경우는 신자의 집이 아니면 하기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신자의 집이 아닌 경우 어떤 집을 방문할 때에 그 집의 평화를 위해서 바치는 아주 짧은 기도를 잊지 않고 바치는 것도 아주 어렵습니다. 이제는 가정방문이나 이웃을 방문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집은 안전 때문에 차단되어 있습니다. 방문하려면 인터폰으로 연락하고 신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어야 다른 사람을 방문할 수 있도록 아파트의 입구부터 차단되어 있답니다.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으니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것이 아주 몸에 배어있답니다. 그래서 선교하기 위해서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답니다. 그 보다도 더 심한 것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문전박대를 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그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문제에 대하여 지혜를 담아주십니다. 사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를 같이 듣기 위해서는 공회당과 같은 자리가 필요했고, ‘어느 곳에 주님의 제자가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찾아오도록 고정된 장소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 곳은 숙소도 되었고, 학교도 되었고, 전례의 장소도 되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을 여러 날에 걸쳐서 시리즈로 전달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한 우물을 파라.’라는 속담과 같이 한 곳에서 오직 복음을 선포하신 제자들이 대단하십니다. 제자들이나 젊은이들에게 한 우물을 파라고 충고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면 돈을 밝히는 사람 같고, 인기를 누리려는 사람 같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사람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에 밴 행동은 결국 우리의 자신을 그런 기계적인 원리에 파묻히기로 하고, 형식적이며 답습하는 신앙에 빠지게 합니다. 매일 반복하는 전례에 무감각해지고, 감동이 없어지고,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것을 찾아서 내면의 진실을 외면하고, 매일 주어지는 주님의 엄청난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기적을 찾아서 헤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무모하고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에는 회한만 남고, 인생은 엉뚱한 곳으로 이미 선수를 돌리고 돛을 올리고, 한참 항해를 해서 길을 잃어버리고 나침반도 없고, 폭풍이 몰아친 다음에 겨우 깨닫게 되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평화를 빌어줄 때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아무리 뉘우쳐도 이미 늦은 때입니다. 사람들이 빌어주는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매일 생각합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평화를 빌어 주십시오. 참으로 값진 그 평화를..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축일12월 9일 성 후안 디에고 (Juan Diego)
신분 : 농부
활동 지역 : 쿠아우티틀란(Cuautlitlan)
활동 연도 : 1474-1548년
같은 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코, 디다쿠스, 디에이고,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콰우틀라토아친, 쿠아우틀라토아친, 한스
성 요한 디다쿠스(Joannes Didacus, 또는 요한 디다코, 후안 디에고)는 1474년 오늘날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일부인 쿠아우티틀란에서 태어나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쿠아우틀라토아친(Cuauhtlatoatzi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아나후악(Anahuac) 계곡에서 비교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치치메카족(Chichimeca)의 일원이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50세경에 초기 멕시코 선교를 나온 작은 형제회 베드로 다 간드(Petrus da Gand) 신부로부터 요한 디다쿠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날이 갈수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는 에스파냐가 마야,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밖에 없던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서 한 귀부인이 나타나 성 요한 디다쿠스를 불렀다. 그때 그 귀부인은 자신이 은총을 가득히 입은 하느님의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멕시코의 초대주교인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arraga)는 그를 믿지 않았다.
성모님께서는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성 요한 디다쿠스에게 다시 발현하시어 내일 주교에게 다시 가서 성당을 반드시 세울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교는 성모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말하였다. 성 요한 디다쿠스가 이 말을 다시 성모님께 전하자 성모님께서는 징표로써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미를 주워 주교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때는 12월이라 추웠고 또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산 정상에 가니 과연 장미꽃들이 있었고 이를 틸마(Tilma, 외투 또는 보자기로 쓰이는 겉옷, 망토)에 담아 주교에게 내보였다. 그 순간 주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겨울이라 장미꽃이 필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성 요한 디다쿠스의 틸마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었다. 바로 그 귀부인의 모습과 그 옷자락을 한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귀부인은 스스로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과달루페'는 '뱀을 부순 여인'이라는 뜻이다.
그 후 성 요한 디다쿠스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성당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과달루페의 성모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성화를 보여주면서 성모님의 발현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였다.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마침내 발현 후 8년 만에 우상 숭배와 매년 2만 명 이상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피의 제물로 '뱀신'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900만 명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여 축성식을 갖고 과달루페 성모님을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 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들의 신앙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의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신자들은 깊이 믿고 있다.
성 요한 디다쿠스는 성모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인정받기보다는 내적인 정화를 통해 하느님을 위한 기도와 가치가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1548년 5월 30일 생을 마감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시복 승인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오늘 축일을 맞은 후안 디에고 (Juan Diego)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