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공의 사직서 수리 결정, 복귀 여부 현명한 선택을
중앙일보
입력 2024.06.05 00:40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일 넘어선 집단 사직 사태에 출구 전략
희망자 복귀 길 열려, 정부는 처우 개선해야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현안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아닌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 명령, 업무개시 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서울 주요 대형병원 원장들이 전공의들에게 무작정 복귀만 요구할 게 아니라 퇴로를 열어 달라고 건의한 것을 정부가 받아들인 모양새다. 이미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 가운데 진짜 떠날 사람은 떠나게 하고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게 하자는 취지다.
주요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사직 의사를 밝히고 의료 현장을 떠난 지도 100일이 넘었다. 그동안 정부는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즉각 업무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각 병원에는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반면에 전공의들은 사직서 수리 금지가 헌법이 보장한 강제노동의 금지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라고 반발해 왔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빠진 의료 현장에선 인력 부족으로 인한 진료 공백이 심각했다.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끌고 갈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는 현실적으론 불가피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정부 발표로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각 병원이 전공의들의 희망에 따라 사직서를 수리하면 이들이 다른 병·의원 등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주변과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병원으로 돌아가길 망설이는 전공의들이 있었다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복귀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들의 장래가 걸린 사안인 만큼 주변만을 의식하지 말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역설적으로 이번 일은 지금까지 전공의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수련을 받아 왔는지 사회적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정부도 전공의들의 과중한 업무 시간을 줄이고 의료사고 가능성에 대한 법적 대책을 마련하는 등 처우 개선을 약속했던 배경이다. 조 장관은 “전공의들이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말로만 그치지 말고 현장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받아들여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의사들도 이제는 의대 증원에 대한 원점 재검토 요구를 거둬들이고 정부와의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대한의사협회가 ‘큰 싸움’을 언급하며 집단휴진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면 의료 현장의 정상화를 바라는 민심과는 계속 멀어져 갈 뿐이다. 의사들이 진정으로 한국 의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시급히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