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어떤 노력으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곧 내 곁을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불가사의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은 언제나 같지는 않다. 사랑에 괴로워하는 많은 연인들은, 이성과 감성, 현실과 이상, 무엇보다 서로 다른 존재의 차이에서 오는 결정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
[내 사랑 내 곁에]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지금까지 수없이 다루어졌던,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이다. 시한부 삶이라는 명확한 장치에는 몇 가지 공식이 등장한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다는 것, 그 곁에 헌신적으로 끝까지 그를 간호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의 차이를 두고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그 갈등을 넘어서 화해하고 결말로 이른다는 것, 이런 공식으로부터 [내 사랑 내 곁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내 사랑 내 곁에]의 내러티브는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공식 위에 기초해 있다. [죽어도 좋아]에서 다큐멘타리적 기법으로 실제 노인 부부의 사실적 삶을 드러냈던 박진표 감독은, 역시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너는 내 운명]과 [그놈 목소리]를 거치며 사실적 허구라는 모순된 가치를 생생하게 구현하는 영화적 방법론에 연착륙하고 있다. 박진표 감독은 얼마나 상투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와 그러면서도 대중적 기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인가라는, 외줄타기에 성공해야만 한다.
상투적 순애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것은,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종우(김명민)와 장례지도사인 지수(하지원)의 캐릭터 구축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구조에서 새로운 형식적 시도나 이야기의 반전 모티브를 찾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과거의 연으로 환자와 장례지도사라는 위치에서 다시 재회하는 두 사람 중에서, 지고지순한 순애보식 사랑이야기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생된 사람은 지수다.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여자로 설정되어 있다. 처음 사귀자고 접근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종우다. 하지만 같이 자자고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사람은 지수다.
종우와 지수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 신물이 날 정도로 낯익은 상투적 드라마를 극복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젊은 여자 주인공의 직업을 장례지도사로 설정한 것도 이색적이다. 시신에 화장을 하고 유족들과 장례상담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죽음을 낯설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신선하게 전개되는 전반부에 비해 결말 부분은 너무 느리고 상투적이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는 이야기에 공감할 사람은 없다. 의식이 없는 종우 곁에서 지수가 꽃단장하고 핑클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때, 이야기의 여백을 남기며 끝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자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