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자 尹龍慈 (1890~1964)】 "지정천장군과 부부로서 1924~45년 독립운동 지원"
1890년 4월 30일 서울 종로(鍾路) 출신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1908년 지청천(池靑天)과 결혼하였다. 자녀는 2남 2녀로 지달수(池達洙)·지선영(池善榮)·지복영(池復榮)·지정계(池正桂)이다. 지청천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관, 정의부(正義府)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관,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 총사령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총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지달수는 한국독립군과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였고, 지복영은 한국광복군에 참가하였다. 지정계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陳線靑年工作隊)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지달수·지선영을 데리고 지청천이 유학하고 있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지청천을 만나 천도교(天道敎) 지도자 손병희(孫秉熙)가 연락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1919년 2월 손병희가 지청천에게 밀사를 보내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다. 만세운동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지청천은 만주(滿洲)로 건너갔다.
1924년 지달수·지선영·지복영과 함께 만주 펑톈(奉天)으로 갔다. 만주 지린(吉林)에서 지청천과 만났다. 1930년대 초반 지청천이 한국독립군을 지휘하여 일제와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전을 거두었다. 이 시기 일제의 밀정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다. 밀정이 일제에 귀순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1933년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1935년 중국 난징(南京), 1937년 창사(長沙), 1938년 광저우(廣州)와 류저우(柳州), 1939년 치장(綦江)으로 이동하였다. 1939년 8월부터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참가하여 항일 특무활동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임시정부에 참여한 각 정당 단체들은 긴급한 통일의 필요성과 임시정부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재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를 연결해 독립운동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를 결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1940년 5월 치장에서 통합 한국독립당이 출범하였다.
1940년 6월 17일 통합 한국독립당 산하단체인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창립에 참여하였다. 한국혁명여성동맹 소속으로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인 1946년 5월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