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역사와 문학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이채형 저자(글) 서연비람 · 2025년 10월 15일
윤봉길 의사는 자기 신념에 투철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항일 정신과 독립운동을 위한 투쟁으로 일관했다. 그가 자신의 영웅으로 삼았던 이는 성삼문과 안중근이었다. 성삼문의 충절과 안중근의 의기를 그는 너무도 흠모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념과 용기의 본보기로 삼았다. - 이채형(소설가)
작가정보 저자(글) 이채형
소설가
194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서라벌 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겨울 우화」 당선. 저서로 중단편집 『동무』, 『사과나무 향기』, 『까마귀 울다』, 장편소설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 시집 『나비 문신을 한 사람』, 편역서 『수호지』 등이 있다. 한국소설가협회상, 조연현 문학상 수상.
목차
- 머리말
1. 당돌한 소년 2. 참스승을 찾아서 3. 아버지의 팻말 4. 야학과 문맹퇴치 5. 농민 운동의 기수가 되어 6. 찾아온 손님 7. 감시의 눈초리 8. 집을 떠나다 9. 첫 시련 10.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11. 압록강을 건너서 12. 상하이의 하늘 13. 비밀결사와 김구 14. 거사, 무르익다 15. 선서식 16. 마지막 남긴 말 17. 홍커우공원의 폭발 18. 되살린 불길 19. 뒷이야기
소설 윤봉길 해설 윤봉길 연보 소설 윤봉길을 전후한 한국사 연표 책 속으로 1919년 3월 어느 날이었다. 충남 예산의 덕산공립보통학교 2학년 교실에 일본인 와다나베 교장 선생이 난데없이 칼을 찬 채 들어왔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낸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 어리둥절한 학생들에게 그는 덧붙였다. “장터에서 불온한 자들이 만세를 부르며 소동을 일으키고 있으니, 너희들은 그 근처엔 얼씬거리지도 마라. 내 말을 어기는 놈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그때, 학생 중에서 번쩍 손을 드는 소년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 조선 사람이 만세를 부르는 게 왜 나쁩니까?”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교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본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만세라니!” “그런데 왜 만세를 부릅니까?” 애써 참고 있던 교장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바로 너 같은 놈 때문이다!” 교장은 당장에라도 달려와 뺨을 때릴 듯이 험악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이들 앞이라 참는 듯했다. “함부로 입을 놀리면 퇴학시키겠다.” 교장이 식식거리며 교실을 나가자, 소년은 다시 조선인 담임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조선 사람이 조선 독립을 외치는 게 정말 나쁩니까?” 담임 선생이 곤란한 얼굴로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언젠가 너 스스로 알 날이 있을 거다. 더 설명할 수 없구나.” - 11~12쪽
윤봉길은 매곡 선생 문하에서 『대학』부터 시작하여 사서삼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의 학구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불타올랐다. 학업은 일취월장했다. 재주와 기상을 두루 갖춘 그런 제자가 매곡 선생으로서도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승의 사랑이 남달랐다. “학문을 익혀 수양을 쌓는 일이 우선 중요하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번에도 제자는 마음에 새겼다. “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 대장부의 도리다.” 제자는 스승의 마지막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윤봉길은 한문을 익히며 몸과 마음을 닦는 한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신문을 읽고, 『개벽』과 같은 잡지를 구해 읽으며 신문학을 접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그만둔 뒤 오치서숙에 오기 전까지, 그사이에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혀 글을 읽을 정도는 되었다. -24쪽
야학당이 궤도에 오르자, 윤봉길은 농촌 계몽 운동으로 눈을 돌렸다. 시선을 더욱 넓게 잡은 셈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오래 끌어오던 집안 송사 사건이 한 계기가 되었다. 윤봉길의 집에서는 몇 년째 끌어오는 송사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논 다섯 마지기가 걸린 재판이었다. 상대는 덕산 전체에 수전노로 소문난 영감이었다. 그는 천석꾼 부자였다. 그런데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신발이 닳을까 봐 사뿐사뿐 걷고, 옷이 해질까 봐 자리에 앉지도 않는 영감이었다. 이런 지독한 영감과 소송이 붙은 것이었다. 이 영감이 윤봉길의 집 논을 헐값에 뺏으려고 생트집을 잡는 바람에 소송이 붙었다. 재판은 5년을 끌었다. 지방법원에서 3년, 서울 큰 법원에서 2년이었다. 결국 소송에서 이겼다. 소송 일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윤봉길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송대리인으로서 서울을 내 집 드나들 듯 오르내렸다. 소송비도 많이 들고, 교통비며 시간의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일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아, 대지주가 소농을 이렇게 착취하려 하다니! 이것도 일제의 농간 때문이 아닌가.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농민이었다면, 꼼짝없이 빼앗기고 말았을 것 아닌가. 농민들의 삶이 가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약자인 그들의 눈을 뜨게 해야 한다.’ -38~39쪽
그해 가을, 다시 일경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터졌다. 11월 3일, 광주학생의거가 터진 것이다. 열차로 통학하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벌어진 마찰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쌓이고 쌓인 민족 감정이 그 원인이었다.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이 나주역에서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자, 이를 본 조선인 광주고보 학생이 달려들어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일로 광주 시내의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 사이에 패싸움이 일어나고, 마침내 시위로까지 번졌다. 그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일제 타도 만세!” “약소민족 해방 만세!” -55~56쪽
경찰서에서 풀려나자, 윤봉길이 들어간 곳은 선천에 있는 정주여관이었다. 그는 우선 이흑룡과 어떻게든 다시 연락을 취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만나지 못한 사촌동생 윤득에게 편지를 띄웠다. 고향을 떠나 만주로 향하게 된 경위와 선천경찰서에 잡혔던 일을 알리고, 그와의 연락을 부탁했다. 동생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옆방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가 그의 귀를 세우게 했다. “그동안 너무 성과 없이 시간만 보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 “그렇습니다. 새로운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서둘러서는 안 되겠지요. 조선독립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였는데, 조선독립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틔었다. 그는 벽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고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독립군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일경이 그를 떠보려고 일부러 꾸민지도 몰랐던 것이다. 대화를 좀 더 엿듣다 보니, 독립단과 연결된 사람들이 분명했다. 누군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과 접선하려는 모양이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인가. 옆방의 누군가도 자신과 같은 계획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그를 이상하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는 참고,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릴 수 있을까 궁리하며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68~69쪽
기본정보 ISBN발행(출시)일자쪽수크기총권수시리즈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