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멱을 감던 고향의 포구여

故鄕 소리도의 四개 浦口에 對해서

<포구 끌어안기 운동>에 합류를 기대

그해 여름 멱을 감던 고향의 포구가 기억나는 계절이다. 소리도인 모두에게 깊게 드리워져 있는 故鄕 소리도의 四개 浦口에 對한 추억들이 추억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업그레이드가 되어 <포구 끌어안기 운동> 합류하는 변곡점을 기대한다. 남면 안도(雁島)에는 동고지 남고지 서고지 등이 있다.

동고지 서고지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지만 남고지만은 두어 채에 사람들 살았다는 집터만 남겨져 있을 뿐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곳이 되었다. 소리도(鳶島)에는 고향의 모태라 말할 수 있는 가랑포 당포 덕포 역포(가나다 순)가 있다.(사진)

포구의 사전적 의미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라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끈질기게 여전히 포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생명력을 보여주는 곳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역사성과 상징적이며 한없는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생태지역으로 조성하고 어항기능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랑포는 남부 사람들이 수영을 하던 곳이며, 해산물을 채취하던 곳이다. 어쩌다 한 번씩 여객선이 닿던 곳이다. 한 때 임운수산 정치망조업이 성황을 이뤘던 곳이다. 지금은 조일수산(김명옥 대표)이 고향의 정치망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선원 중 7, 80%가 다문화선원으로 국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조일국제공동체 가족이 사는 곳이다.

당포는 정치망이 있었던 곳이며, 아버지들의 정치망 그물작업을 눈으로 봐왔던 곳이며, <맘보>라는 대형고기를 목격했으며, 무더운 여름이면 당포 바닷가에서 멱을 감으며, 선창 틈새에서 알가토리를 낚고 선창 높은 곳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일명 다이빙을 하던 추억의 한 곳이다.

지금은 진성수산(眞成水産) 우영호 대표(禹永浩, 23회)이 육상양식 사업을 펼치는 곳으로 연도리 1302번지가 된다. 당포는 6, 70년에 김형수 옹(작고)이 경영했던 연도정치망 수산업회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이며, 여름날 멱을 감던 곳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서린 곳이며, 필자의 부친이 부선수로 일했던 곳이기도 했다.

덕포는 등대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포구로 몽돌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덕포는 명품마을이 되었으며, 솔팽이 굴과 소용단 대용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안덕포(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음)로 시집간 큰고모(김병주 모친, 여수) 댁엘 가 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1995년 씨 프린스호가 대 바위에 좌초되어 기름유출로 인한 엄청난 재해와 고통을 주었던 사건의 현장이 되는 곳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지만 <해양기름유출사고의 폐해성에 대한 해양교육박물관건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포는 어업전진기지를 방불케 할 정도의 전성시대에 비하면 감척 감선으로 어선수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어업이 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선을 부리는 세대가 많은 곳이다. 여객선이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며 오고가는 곳으로 소리도 관문이라고 봐야 한다.

하계 06:20, 14:30 동계 06:20, 14:00에 두 차례 여객선 <한림해운, ☎061,666-8092>소속 금오고속페리호가 오르내리는 곳이 역포다. 금오도와 안도를 거쳐서 역포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며, 마을버스개념이 알게 해준 곳이다. 안도-연도 간 한전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며, 안도-연도 간 교량건설 추진이야기가 나오는 곳이다.

따라서 <포구 끌어안기 운동>에 합류하는 변곡점 확보의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총동문회 향우회 등이 고향방문 행사시에 갯바위낚시 포인트로 유명한 가랑포 당포 덕포 역포를 장소로 추억담 이야기 및 수영대회를 개최하고 갯바위낚시대회를 펼쳐보는 것도 권장해 볼 수 있는 뜻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