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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05
#1. 선인전 (편전 내부)
기철이 똑바로 공민을 향해 걸어오며.
기철 : 이게 무슨 괴이한 이야기옵니까. 천혈. 하늘에 의원? 의선?
기철은 옥좌가 있는 단상 아래에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계단을 오른다.
뒤쪽에 있던 충석이 움찔하여 나서려는데. 공민이 한 손을 내어 저지한다.
일신이 안절부절못하여 보고 있지만 나서지는 못한다.
기철 : 주상전하의 보령이 비록 어리시고, 궁을 떠나 타국에서 지낸 세월이 오래여서
보고 들은 것이 어지러우시다 하나. 대고려의 왕이십니다.
공민 움직이지 않는다.
기철이 어느새 옥좌가 있는 단까지 올라왔다. 한손을 옥좌의 등받이에 짚더니 중신들을 향해.
기철 : 대체 어느 놈이 감히 혹세무민의 괴이된 소리를 전하께 속살거려 용심을 미혹하였단 말인가.
(은수가 있는 발 쪽을 손을 뻗어 가리키며) 거기 있는 요물인가.
동시에 은수의 앞에 드리워져 있던 발이 휘릭 떨어져 내리며 그 뒤에 서 있던 은수가 그대로 드러난다.
은수, 당황해서 어딜 봐야할지도 모르겠는데,
기철 : 너. 여인의 형상을 가진 것.
은수,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자기를 보고 있다. 나? 해서 자기 가슴을 가리켜본다.
기철 : 대답하라.
// 뭐냐 이 상황은.. 해서 은수가 슬그머니 뒤로 돌아서 도망치려는데 그 앞을 막는 최상궁.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장빈소리 : 도망치지 마세요.
최상궁의 뒤쪽 사각지대에 숨듯 서 있던 장빈이 은수를 보며 낮게 말하고 있다.
장빈 : 여기서 도망치면 죽습니다.
은수 : (억지로 웃는) 설마 진짜루 죽이기야 하겠..
기철소리 : 요물. 대답하라 하지 않는가.
은수의 웃음기가 가신다. 천천히 돌아서 기철 쪽을 본다. 바싹 얼어서 뭐라 말도 안 나오는데.
공민의 소리.
공민소리 : 과연. 과연!
공민이 활짝 미소 지으며 일어선다. 옆에 선 기철을 바로 보며.
공민 : 경이 바로 덕성부원군이었구려. 원에 있을 때 기황후께서 늘 그대의 이야기를 했답니다.
기철 : (의외의 반응이다)
공민 : 오늘 과인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도 그대 남매의 덕인 것. 알고 있습니다.
기철 : (재미있다) 덕을.. 알고 계십니까.
공민 : 원을 떠나 올 때 기황후께선 말씀하시었지요. 고국에 돌아가게 되거든 덕성부원군이
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줄 것이다. 그러니 심려할 것이 하나도 없다.
기철을 단 위에 남겨놓고 단 아래로 내려와 신하들을 하나씩 둘러보며 거닐며.
공민 : 따라서 그가 왕에 대한 예도 올리지 않고 옥좌의 바로 앞까지 달려 올라와도 놀라지 마라.
혹여 고려의 중신들이 그런 무례에 기겁을 하거든.. 잠잠케하라.
공민과 눈이 마주친 신하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한다.
공민 : 덕성부원군 기철. 기황후의 오라비. 왕에 대한 충정이 모자라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정이 너무 넘쳐 혈기를 다스리지 못한 것. (옥좌 옆에 선 기철을 보며) 보세요.
과인이 행여 협잡꾼에 넘어 갔을까 노심초사 달려온 저 모습. 저 충심.
공민이 활짝 미소지어 기철을 본다.
기철. 그런 공민을 빤히 내려다본다. 중신들이 그런 둘의 눈치를 보고 있다.
기철 : (단을 내려오며 재미있어 미소지어) 그래서.. 전하의 말씀은 저것이 (은수 쪽을 가리키며)
정녕 하늘에서 온 자란 말씀이옵니까? 그 허황된 말을 믿으십니까?
노국소리 : 믿습니다.
모두 노국 쪽을 본다. 가리고 있던 발이 휘리릭 떨어지고.
노국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평소의 새침한 표정.
노국 : 나 그대들의 왕비. 원의 위왕, 베이르 테무르의 딸.
원을 떠나 오는 길에 누군가 보낸 자객의 칼에 목이 잘리웠소.
뚱한 표정으로 모두를 둘러본다. 말도 안돼..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신하들.
노국. 목을 두르고 있던 천을 휙 잡아당겨 벗는다. 아직 붉게 남아있는 수술 자국이 드러난다.
노국 : 저기 있는 의선께서 다시 붙여준 목입니다. 이 땅에 그런 재간을 가진 의원이 또 있습니까?
// 은수가 울듯한 얼굴로 정면을 보고는 있는데 신경은 뒤의 장빈에게 쏠려있다.
장빈이 낮게 충고하고 있다.
장빈 : 하늘에서 온 분답게 보이셔야 합니다.
은수 : 그니까 어뜩하라구..
최상궁 : (은수의 바로 뒤에서) 울지 마시고. 떨지 마시고.
장빈 : 하늘에서 하던대로 하십시오.
그 위로 들리는 기철의 커다란 웃음소리.
// 기철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기철 : 아아 어리시고 가여우신 전하. 왕비마마. 누가 그리 믿게 하였습니까? 우달치. 최영. 그자 입니까?
// 은수가 어라 해서 듣는다. 아는 이름이다.
기철 : 최영, 그 자가 저 요망한 것을 데려와 하늘의 사람이라 두분을 미혹케 하였습니까?
신은 그리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의외의 기습에 공민이 멈칫 대답을 못하는데.
기철 : 우달치 최영. 어디 있는가.
충석이 긴장해서 본다.
기철 : 그 간악하고 불충막심한 놈을 당장 끌고 오지 못하겠는가.
은수 저도 모르게.
은수 : 그건 안되는데요.
모두 은수를 본다. 은수, 아차해서 멈추는데.
기철 : (웃는) 요물이 사람의 말을 하는가.
은수, 아이구해서 뒤를 돌아본다. 장빈이 끄덕여 힘을 준다.
은수, 에라 모르겠다. 앞으로 나서며.
은수 : (아직은 겁이 나서 좀 더듬으며) 저기.. 그 우달치 최영, 그 분이 지금 제 환자거든요.
담당의사인 제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아무도 데려갈 수 없습니다. 네.
기철 : 어째? (웃음기가 싹 가시며) 네 이 년.
은수 : 뭐요?
기철 : 니 년이 감히 뉘 앞에서 함부로..
은수 : (발끈해버렸다) 말조심하세요.
기철 : (어이가 없어 말이 막혔다)
은수 : 엇다대고 함부로 반말에 쌍소리에요?
중신들이 모두 벙쪄서 본다. 입구 쪽의 양사와 기원도 기가 막혔다.
은수 : 아놔 진짜.. 어쩌다 이런 안드로메다 시궁창같은데 끌려왔는지 모르겠는데.
이 나이에 년짜 소리까지 듣구 말이지. 당신 몇 살이세요?
기철 : ...뭐?
은수 : 나 이래뵈두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질 하던 사람이에요.
그 말은, 한달에 서너번은 진상 떨면서 협박해대는 환자 떨거지들을 상대해왔다는 말이라고.
누군 쌍소리 몰라서 우아 떠는 줄 아나. 지금은 내가 임금님 앞이래서 참아주는 거니까
대충 여기까지만 하시자고. (공민왕을 향해) 임금님. 제가 지금 환자를 돌보다 왔는데요.
그래서 급히 돌아가 봐야 되거든요. 가도 되죠?
공민 : (당황했지만) 그리하십시오. 의선.
은수. 공민에게 대충 고개 숙여 절하고 돌아서 가려는데.
어느 틈에 그 앞을 막아서는 기철.
은수 : 깜짝이야.
기철이 갸웃해서 은수의 얼굴을 다시 본다. 자기 앞에서 이런 존재는 처음이다. 조용히 묻는다.
기철 : 너 요물. 죽고 싶은 거냐.
은수 : (갑자기 앗. 생각났다. 공민을 돌아보더니 기철을 가리키며) 이 분 이름이 기철이라구 했지요?
기철 : (순간 살기가 돈다)
은수 : 기억났어요. 기철. 기황후. 공민왕. 맞어. 다 시험에 나왔던 거야. 이래뵈도 내신 1등급이었거든요.
기철의 손에 사르르 서리가 언다. 그 손이 올라가려는데.
은수 : 어차피 지금 이 원나라, 얼마 못 가 망해요.
기철 : (멈췄다)
은수 : (멜로디를 붙여) 당, 요, 원, 명. 남쪽엔 송나라. (알았다) 그니까 이 다음이 명나라네.
좀만 있음 원나라는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선다구요.
기철 : (손의 얼음이 다시 풀린다)
은수 : 그래 맞아. 기철씨. 댁이 어떻게 죽는지도 기억났어요.
기철 : (굳는)
은수 : 근데.. 가르쳐주지 않겠어. 왜냐. 재수 없으니까.
기철 : (허)
은수 : (기철을 노려보며) 헤이 유, 에프 유 씨 케이. 고 투 헬.
은수가 기철의 옆을 홱 지나쳐 옥좌 뒤쪽으로 간다.
모두 다 할 말을 잃고 보고만 있다.
그 중에 기철. 말없이 가는 은수를 본다. 그러다 그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재미있다. 재미있어.
#2. 선인전 (편전) 주변 혹은 회랑
은수가 빠르게 걸어온다. 그 한걸음 뒤를 따라오는 장빈.
은수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다리에 맥이 풀리면서 휘청. 장빈이 재빨리 잡아준다.
은수가 무너지듯 앉는다. 이제야 공포가 실감나고 있다.
은수가 애처로운 얼굴로 장빈을 돌아본다.
장빈 : (웃음기가 슬쩍 어려서) 잘하셨습니다. 좀 지나치게 잘..
#3. 장빈 치료실
대만이 조심스레 경찰 방패를 한쪽 벽에 세워놓는다. 그 옆의 협탁에는 최영의 칼이 검집 째 놓여 있다.
(최영의 칼은 스승인 적월대장이 쓰던 것입니다.
손잡이 쪽에는 매희의 적월대 두건을 꼬아 만든 끈을 매달아놓고 있습니다.
귀월도라 불리기도 하는 칼이니 손잡이 쪽에 치우의 상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도 좋을 듯)
대만이 우울하게 돌아보는 곳. 침상에 최영이 시체처럼 누워있다.
방에는 안정이나 해독을 위한 훈증기. 향 등이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대만이 밖의 기척에 후딱, 경계하며 돌아보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은수가 빠르게 들어와 곧바로 최영의 침상으로 간다. 그 뒤를 따르는 장빈.
은수는 최영의 손목 맥을 짚으며 다른 손으로는 이마의 열을 살피고 눈을 열어 눈동자를 본다.
바로 배를 감고 있는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장빈 : 그럼 다시 우달치를 의선의 환자로 받으시는 겁니까?
은수 : 나 이 놈의 나라에 더 있을 생각 없거든요. 완전 질렸다구요.
다시 돌아가야겠는데. 이 사람 밖에 없잖아요. 나 돌려보내줄 사람.
그러니까 살려야겠어요. 어떻게든..
붕대 아래, 수술 자국 위에는 장빈이 올려놓은 약초가 검게 진액이 흐르며 얹혀 있다. 은수가 긁어낸다.
장빈 : 상처 봉합 아래가 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농을 줄이는 약재를 썼습니다만..
은수 : 수술부위. 다시 절개해야겠어요. 내 수술도구가..
대만 : 가져오겠습니다.
달려 나간다.
은수 : 환부를 절개하면 퍼스가 흘러나올 거에요.
장빈 : 퍼스..?
#4. 장빈 치료실
은수가 최영의 시술을 하고 있다. (수술 봉합 부위를 다시 절개하고 그 안의 죽은 조직들을 도려내는 작업)
문쪽에서는 대만이 새로운 식염수 병을 의생에게 받아서 들여온다.
약원이 최영의 상처에 도기의 식염수를 뿌려주고 그 위를 깨끗한 천으로 덮는다. (둘 다 마스크를 하고 있을 것)
그 옆의 용기에는 그렇게 고름을 찍어낸 천들이 쌓이고 있다.
은수소리 : 농이요. 고름. 그리고 여기.. (환부를 눌러보며) 주위에 회백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감염되서 썩은 조직이거든요. 이거. 내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다 디브리드해야되요.
#5. 약제실
더기가 화로 위의 커다란 약탕기에 깨끗하게 손질한 돼지 족을 하나 넣는다.
옆에서는 장빈이 약재들을 유발에 갈고 있다.
장빈소리 : 저제탕을 환부에 쓰면 썩은 살과 묵은 고름이 탕약을 따라 빠져나오게 됩니다.
#6. 장빈 치료실
이번에는 장빈이 주도하여 최영을 치료하고 있다. 더기가 앞에서 돕고 있고.
부드러운 비단에 탕약을 적셔 상처에 발라주고 있다.
장빈소리 : 이렇게 탕약에 적신 비단을 눌러주고 갈아주기를 계속하면
혈기가 소통되고 독을 풀어낼 수 있다 하였구요.
그리하여 새살이 나게 하고 풍을 흩어내며 썩은 살이 빠지고 죽을 살을 살려내지요.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 이들 아래.
최영은 돌처럼 누워있다. 그 최영의 얼굴.
#7. 최영의 꿈 / 호수
얼어붙은 호수. 최영이 부친 원직의 옆에 비슷한 낚시 의자를 놓고 앉아있다.
두 개의 얼음 구멍에 각각의 낚싯줄을 드리우고.
문득 부친이 묻는다.
부친 : 아직도 마음에 있느냐?
최영이 부친을 본다. 부친이 미소 지으며 최영을 보고 있다.
최영도 미소 짓는다.
최영 : 아직 있습니다. ...보내지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사이에 장작불을 땐 자리. 재만 남아 서리에 덮여 싸느랗다가 문득 작은 불꽃이 피어오른다.
후루룩.. 불길이 부드럽게 번진다.
#8. 최영의 꿈 / 산 속
채찍이 뻗어 나온다. 검이 그 채찍을 감아 오히려 당긴다.
채찍을 쓰는 매희와 검을 쓰는 최영이 대련 중이다. (십년 전의 모습)
당겨져서 최영의 품에 안길 뻔한 매희가 반격을 하며 벗어난다.
언뜻 보기에는 거칠고 위험하게 싸우는 듯 보이지만, 다른 느낌으로는 서로 애무를 하는 듯한 분위기.
// 숲을 달리며 서로 공방을 계속한다. 나무를 끼고 돌고. 숨고 공격하고. 도망치다 반격하며.
공격받은 매희가 나무 뒤로 숨는다. 최영이 그 나무 뒤를 공격해 들어가지만 나무 뒤는 비어있다.
그런 최영의 바로 등 뒤에서 채찍이 감아져 온다.
최영의 등 뒤에 붙어 매희가 말한다.
매희 : 뒤는 걱정마. 언제나 니 뒤엔 내가 있으니까.
최영이 몸을 비틀어 채찍에서 벗어나며 매희를 공격한다.
매희가 쓰러지고 최영이 쓰러진 매희 위를 눌러 감싸고.
최영 : 절대로 내 눈 밖에 벗어나지 마라. 그래야 내가 널 지켜주지.
매희가 웃는다. 그 입술에 입 맞추려는데.
바람이 불어 지나간다. 나뭇잎이 날린다. 날리는 나뭇잎에 최영이 눈을 감았다 뜨면.
#9. 인서트 / 4부 # 50 산속
최영이 달리고 있다. 달리는데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10. 최영의 꿈 / 산속 다른 일각(4부 #49) / 밤
4부의 씬49. 같은 상황.
높은 나뭇가지에 던져지는 채찍. 나무를 감고 돈다. 그 채찍을 당겨 나무 위로 날아 올라서는 매희.
최영소리 : (너무 다급하여 목이 메어 겨우 나오는) 아니야. 매희야. 아니야.
매희가 이쪽을 돌아보는 것 같다.
역시 수신 상태가 안 좋은 화면처럼 지직대다가 일그러지다가.
#11. 최영의 꿈 / 산속 다른 일각(4부 #49) / 밤
나무 가지 위에 올라선 매희가 채찍의 다른 끝을 자신의 목에 감는다.
최영소리 : 하지 마. 그러지 마.
그 때 매희의 이마를 두르고 있던 적월대의 두건이 벗겨지며 바람에 날린다.
그 두건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한바퀴 돌아 어느 마른 나뭇가지에 얹혀진다.
그 두건을 집어내는 손. 최영이다. 부들부들 떨고 있다.
두건을 움켜쥐는 손. 황폐한 얼굴.
약원소리 : 다시 발작입니다.
#12. 장빈 치료실
협탁 위에 얹혀 있는 최영의 검. 검손잡이 부분에 묶여 있는 끈이 제대로 보인다.
매희의 두건을 꼬아 만든 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그 옆에 분주한 움직임. 최영의 침상 옆에 은수와 장빈. 약원이 둘러 있다.
혼절 상태의 최영이 다시 발작 증세를 보이며 투둑투둑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복부의 처치는 끝난 상태. 붕대가 감겨있다)
장빈이 재빨리 최영을 안아 옆으로 누이며 혀를 깨물지 않게 입에 나무 가지를 물린다.
최영의 발작이 심해지며 침상에서 떨어지려 하자 장빈과 약원이 달려들어 잡는다.
옆으로 한걸음 물러난 은수가 울컥하며.
은수 : 진짜 이해가 안되네. 이건 뭐.. 도대체 왜..
장빈이 돌아본다. 은수가 울화를 참지 못하여 밖으로 나간다.
#13. 약초원
약초를 돌보던 더기가 얼른 숨는다.
그 약초원으로 들어서는 은수. 분을 이기지 못해서 이리저리 오락가락한다.
성질을 못 이겨 옆의 화분 하나를 발로 찬다.
더기가 벌컥해서 나서려다가 다시 숨는다.
들어서는 장빈. 자기 앞으로 굴러오는 화분을 잡아 세워놓는다.
은수 : (장빈을 보자마자 쏟아붓는) 그 사이코 말이에요. 밤새도록 농 다 빼내고. 주위 조직에 혈액도 돌기 시작했고.
혈압도 정상 범위. 열도 내렸는데. 왜 아직 정신이 안 돌아오냐구요 응? 왜.
장빈 : 대장이 검상을 입은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내공이 깊은 분이라 별 약재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새살이 돋곤 했지요.
은수 : 그래요? 대단히 잘났네. 근데 이번엔 왜 저러는데.
장빈 : 중의의인. 하의의병.
은수 : (뭐래는거야. 노려보는)
장빈 : 하급의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급의 의사는 사람을 고친다 하였습니다.
의선께서 대장의 병은 고쳤으나 그 사람은 아직 고치지 못한 것이지요.
은수 : (알아들었다. 김이 새서) 학부 때 교수님이 맨날 하던 말이네요.
의사가 처치, 수술 암만 완벽하게 해도. 환자 본인이 살려는 의지가 없으면 힘들다. 못 살린다.
장빈 : (미소) 하늘에도 살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지요.
은수 : 근데 나 그거 못해요. 내가 왜 외과에서 성형외과로 옮긴 줄 아세요?
장빈 : (뭔소리인지 모름)
은수 : 내가 수술은 잘해요. 봤죠? 나 수술하는 거. 내가 흉부외과 쪽에서 전문의 땄는데요.
우리 과장님이 대한민국 최고의 폐암 전문의였거든. 수술시간이 남보다 1.5배 빠르신 걸루 유명했죠.
나? 1.2배까지 따라갔었다구요. (열심히 말하다 보면)
장빈 :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로 보고 있다)
은수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하면.. 난 수술은 잘해요. 좋아했구. 근데. 환자는 싫었어요.
장빈 : 환자가 싫은 의원이라..
은수 : 그래서 성형외과 간 거에요. 그 중에서도 미.용.성형.
장빈 : 성형.. 미용..?
은수 : 사람 몸 속 말고 겉을 다루는 거요. 눈 이쁘게 해주고 주름 당겨주고. 일단 외과보다 돈 엄청 더 벌잖아요.
외과란 거 말이죠. 이건 리스크만 크고 돈이 안된다구.
쌍꺼풀 수술. 이 간단한 거 한건 해주면 그 자리에서 오십에서 백만원 들어오거든요.
근데. 가슴 열구 몇시간씩 수술해야 하는 외과 쪽. 한 껀 끝나면 다리 후들거려서 서있기두 힘든 그런 수술들.
껀수 하나당 얼마 받는지 아세요? (뭔가 더 얘기하려다 멈춘다. 머뭇거리다가) 그니까..
(문득 멈췄다가) 무슨 말인지 감도 안오는 거죠?
장빈 : 안 옵니다.
은수 끄덕이고 맥 빠져서 입구 쪽으로 가는데.
장빈 : (온화하게 묻는) 환자를 죽여본 적이 있습니까?
은수 : (멈칫했다가 돌아선다. 억지로 웃으며) 없어요. 드라마 써요?
내가 무슨 환자 하나 죽여놓구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뭐 그런.. 어이구 진짜.
내가 수술했던, 내 담당. 내 책임 환자 중에는 죽은 사람, 하나두 없네요.
장빈 : 그럼 죽일까봐 무서운 것이군요.
은수 : ...
장빈 : 대장 최영이 죽게 되면 의선이 처음으로 죽인 환자가 되는 겁니까?
숨어있던 더기가 고개를 스윽 빼서 은수를 본다.
은수는 대답을 못하고 장빈을 노려보고 있다.
#14. 최영의 꿈 / 호수
이제 최영이 혼자 얼음 위에 앉아있다. 옆에 부친은 없다.
얼음 구멍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최영은 완전히 얼어있다.
머리칼에도 감겨진 눈 주위에도 얼음이 덮여 있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옆의 장작불 자리도 살얼음에 덮여 있다. 바람이 휘릭 지나쳐가며 서리를 날린다.
#15. 기철의 집 전경
기철의 사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화려한 기철의 집.
그 위로 들리는 양사의 소리.
양사소리 : 말짱 헛소리입니다.
#16. 기철의 치료방
약항아리 속에 들어가 앉은 기철. 김이 오르는 약탕 속에서 눈을 감고 있다.
(기철은 빙공을 익힌 사람입니다.
빙공이란 것이 연마를 할 때마다 반복되는 냉기로 피부의 모세혈관이 수축.
피부건조가 심해지면서 균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되는 피부치료가 필요하다는 설정)
그 옆 저만치에서 양사와 기원이 말다툼하는 중.
양사 : 지금 조정 안팎이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아십니까. 새로운 왕을 보우하려 하늘에서 보내준 의선이라. 하!
기원 : 솔직히 눈 앞에서 그 여인이 말하는데 좀 섬찟하더라고. 우리 형님 알기를 저 아랫것 취급을 하지 않나.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원나라 망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 뿐인가.
기철. 눈을 감고 있지만 다 듣고 있다.
기원소리 : 우리 형님 죽을 날까지 알고 있다잖은가.
기철의 눈썹이 꿈틀한다. 엄청 신경이 쓰이고 있다.
양사소리 : 헛소리라고 몇백번을 말씀드립니까.
기원소리 : 그 주문 거는 것도 들었지?
기철.. 흠칫한다.
#17. 플래쉬컷 / 5부 #1. 선인전(편전 내부)
은수가 기철의 코앞에서 말하고 있다.
은수 : (기철을 노려보며) 헤이 유. 에프 유 씨 케이. 고 투 헬.
#18. 기철의 치료방
기철의 눈이 번쩍 뜨여진다.
기원소리 : 그 자리서 보고 들은 사람들이 다 그랬잖은가. 그게 바로 죽음을 부르는 주문이라고.
기철. 벌떡 일어선다. 알몸에 약재가 덕지덕지 붙은 채.
양사와 기원이 놀라 돌아본다.
기철 : 그 요물을 다시 봐야겠다.
양사가 달려가 드러난 몸에 약탕물을 끼얹어주며 몸을 식히지 않으려고 바쁘고.
기원 : 그게 안그래도 델구 올라고 했는데요 형님. 우달치 부대가 겹겹이 막아서서는
주상전하의 명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러구 있어서 말입니다.
기철 : 우달치 부대란 것이 최영 그 자의 것이 아닌가. 그 자를 데려 오라 했지. 진작에 내가 갖는다 했지.
양사 : 그게 좀 수상쩍습니다.
기철 : (휙 노려보는)
양사 : 우달치 부대가 워낙에 군기가 엄해서 안에 말을 빼듣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소인이 이리저리..
기철 : 요점만!
양사 : 최영이 저주에 걸렸다 합니다.
기철 : 저주.
양사 : 그 의선이 병영까지 찾아왔었답니다. 그 때에 뭔가 최영이 의선의 심기를 거스른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의선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도 있고.
하여간 시름시름하다가 시방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기원 : 주문 부리는 거 맞네.
양사 : 글쎄 그것이 다 헛소리..
기철이 손을 뻗는다. 한쪽에 걸려있던 가운이 그 손으로 빨려 들어가나 싶더니
기철이 항아리에서 몸을 날려 빼며 동시에 가운을 휘둘러 감싼다. 빠르게 입구로 가며.
기철 : 왕을 만나야겠다.
기원이 급해서 문 앞을 막으며.
기원 : 생각을 먼저..
기철 : 생각?
기원 : 지금 중신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때에 형님께서 조석으로 전하를 알현하신다면..
그게 초조해하는 걸로 보일 것이고..
기철이 한손을 기원의 어깨에 짚는다.
기원이 헉..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기원의 어깨 부근의 옷깃이 금방 얼어붙고 있다.
기철이 기원을 옆으로 밀어제치고 문을 열고 나간다.
기원이 상처 입은 어깨를 감싸며 무너져 앉는다.
#19. 궁 내 회랑 / 밤
기둥마다 걸려 있는 등불. 그 빛 아래 안도치의 안내를 받아 기철이 걸어오고 있다.
시선만으로 주위를 살펴본다. 요소요소에 우달치 부대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그 부대원들 하나하나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철을 노려보며 경계하고 있다.
#20. 강안전 (공민왕 집무실) / 밤
공민이 고개를 들어 본다.
환관들이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서는 기철. 공민을 보더니 미소 짓는다.
공민, 표정없이 기다린다.
기철, 순간 방안을 살핀다. 구석구석을 지키고 서있는 우달치의 부하들.
공민의 뒤쪽에는 충석이 우뚝 서있다. 모두 기철을 주시하고 있다.
기철이 미소 띤 얼굴로 양 소매를 털고 한무릎을 꿇고 한 손을 바닥에 짚어 예를 올린다.
(원나라 식으로?. 기철은 늘 원나라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철 : 덕성부원군 기철, 전하를 뵈옵니다.
공민이 표정없이 보면서 일어나라는 말은 안한다.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 기철이 기다린다.
공민은 말이 없다. 옆에서 보는 안도치가 안절부절못해진다.
기철이 꿈틀하는 느낌인데.
공민 : 아.. 뜻밖의 예를 받으니 과인이 놀라서 절을 너무 오래 받았구려. 일어나세요.
기철이 일어선다.
공민 : (미소 짓고 있다) 야심한 시각에 급히 찾아온 이유가?
기철이 품에 손을 넣다가 멈춘다.
기철의 손짓에 방안 구석구석에서 지키던 충석과 우달치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에 손을 얹으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검의 안전장치를 빼는 소리들이 일제히 절그럭 요란했다.
충석은 이미 공민의 바로 옆으로 다가와 섰다. 금방이라도 공민을 감쌀 수 있게.
기철이 천천히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기철 : 일전에 전하께서 보내오신 밀지의 사본. 그 뜻을 들고 왔습니다.
공민 :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아아. 스물네명 중신들이 한날 한시에 독살을 당했다는 선혜정, 거기서 나왔다는 그것.
맞아요. 내가 사본을 보냈었지요.
안도치가 다가와 기철에게서 종이를 받아 공민에게 가져간다.
공민이 펼쳐본다. (종이는 원래의 밀지를 베낀 것으로 열 개 글자.
두 줄의 시에 기철이 부분부분 줄을 그어 놓았다.
강릉 자 옆에 줄. 저 자에는 동그라미를 그어놓고. 구일립 옆에 줄. 대의 옆에 줄.)
기철 : 강릉위망저. 구일립대의.
공민 : 그래서?
기철 : 강릉위망저. 강과 언덕이 자리를 잡으면 해가 기울어 망할 것이다. 여기서 강릉은..
공민 : 강릉대군이었던 과인을 이름이겠지요. 그리고?
기철 : 구일립대의. 해를 구하여 대의를 세워달라. 이 뜻은..
공민 : (종이에서 동그라미가 그려진. 저 자를 가리키며) 여기서 저. 이 글자는 선왕이신 경창군의 이름이기도 한데..
기철 : (빙긋) 그리 놓고 해석을 해올려도 될른지요.
공민 : 듣고 있어요.
기철 : (똑바로 공민을 보아 살피며) 강릉대군이 왕위에 오르면 나 경창군은 죽을 것이다.
뜻있는 신하들이여. 나를 구해달라.
공민, 탁자 옆에 놓여있던 서합의 뚜껑을 연다. 그 안에는 선혜정 밀지의 원본과 그 옆에 작은 합이 들어있다.
공민이 밀지 원본을 집어내어 탁자에 얹어놓는다.
공민 : 이것이 그 밀지의 원본입니다. 밀지에 묻어있는 피.
#21. 플래쉬컷 / 4부 #26. 장빈 치료실
공민이 밀지에 묻어있는 피를 본다.
최영 : 허나 장어의가 시험해본 결과 그것은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합니다.
#22. 강안전 (공민왕 집무실)
공민 : 그날 선혜정에 모였던 자들은 이 밀지를 받고, 선왕, 경창군을 구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기철 : 그 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유배지에 있는 경창군이 아니시면 그 누가 그런 밀지를 쓰겠습니까.
#23. 플래쉬컷 / 4부 #26. 장빈 치료실
공민 : 그럼 이것이 어찌 무엇의 증거가 되는거요.
최영 : 기다리시면 됩니다.
공민 : 기다리라...
최영 : 그 자가 제발로 걸어올 것입니다.
#24. 강안전 (공민왕 집무실)
공민이 빤히 기철을 본다. 기철은 부드러운 얼굴로 마주보고 있다.
공민 : 그럼 이 밀지를 받고 모인 자들을 모두 죽인 자는 누구일까요.
기철 : (공민을 보는)
공민 : 누구요.
기철 : 신이 그리하였습니다.
공민 : .. 경이.
기철 : 예 전하.
공민 : 나를 위해서.
기철 : 전하를 위해서. 그리고 이 나라 고려를 위해서지요.
기철이 공민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공민왕의 시선이 상자 안으로 간다. 거기 작은 합 위에 손을 얹는다. 뚜껑을 조금 연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지네들.. 합을 집어낼 것인가 망설이고 있다.
#25. 플래쉬컷 / 4부 #26. 장빈 치료실
공민 : 그럼 나는 (밀지에 모여든 지네들을 가리키며) 이것을 보여주며 거짓을 밝히면 됩니까.
최영 : 그리하시든가. 아니면 모른 척 넘어가시든가. 전하께서 정하실 문제입니다.
#26. 강안전 (공민왕 집무실)
공민 : 부원군.
기철 : 말씀하십시오.
공민 : 만약에...
기철 : (보는)
공민 : 이 밀지가 그날 죽은 자들이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독살한 이후에 심어놓은 가짜라면 어찌 됩니까?
기철 : (빤히 공민을 살피더니) 누가.. 어째서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둘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공민이 먼저 웃는다. 상자에 걸쳐놓았던 손을 들어 뚜껑을 밀어 닫는다. 지네 상자의 뚜껑이 다시 덮여진다.
공민 : 그렇군요. 누가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공민이 웃고. 기철도 웃는다.
공민 : 이건 이렇게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지.
과인을 위해 은밀히 반역도들을 처리해준 경에게 큰 상을 내려야 할 일이 아닌가.
기철 : 상을 내려주시겠습니까?
공민 : 말해보아요. 난 아직 무슨 상이 이런 공에 걸맞는지 알지를 못해요.
기철 : 그렇다면 감히 청을 올리겠습니다.
공민 : 하세요.
기철 : 저희 집에 화타가 아니면 고치지 못한다는 병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공민 : (웃음기가 가신다)
기철 : 하여.. 의선을 모셔갈 수 있게 윤허하여 주십시오.
그 여인이 과연 하늘에서 오신 의선이라면 당연히 그 병을 고치겠지요.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하다면, 신, 주상전하를 위해 그 요물 또한 은밀히 처리하겠습니다. (미소 짓고 있다)
#27. 약초원 / 밤
은수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나름 치료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손에 잡히는대로 약초 잎을 따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그 잎을 입에 넣고 씹다가 으웩 뱉고 퉤퉤 거리며 돌아서다가 헉 놀란다.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더기. 심각한 얼굴이다.
은수 : 아니 저기. 미안해요. 난 그냥..
더듬대는데 더기가 무조건 다가와 은수의 옷깃을 움켜쥐더니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한다.
#28. 장빈 치료실
더기에게 밀려 들어 서는 은수.
최영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대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은수를 본다.
대만 : 대장 몸이 너무 찹니다. (최영의 손목맥을 짚고 있다) 맥두 잘 안 잡히구요. (울기 직전)
은수가 급히 다가서 최영의 목에 경정맥을 짚어보며.
은수 : 한의 선생은 어디 가셨는데..
대만 : 다른 환자들 보러가신지 오래 됐습니다.
은수는 최영의 눈을 열어 보고.. 그리고 더 할 게 없다.
대만 : (다급하다) 뭐 안합니까?
은수 : (보는)
대만 : 그냥 가만 서 계심 어뜩해요. 약을 더 쓰든가. 침을 놓든가.
도구 갖고 올까요? 하란대로 소독이란 것도 해놓았습니다.
은수 : 심전도가 있음 좋겠는데. 펄스 옥시미터나 벤틸레이터나..
- 자막 펄스 옥시미터(pulse oximeter) 산소 포화도 측정기 벤틸레이터 (ventilator) 인공호흡기
대만 : 뭐래는 겁니까.
은수 : 내가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에요.
대만 : 의선이래면서요.
은수 : 그거야 댁들이 그렇게 부르는 거지. 내가 언제 부탁이라도 했냐고.
대만. 에이씨 해서 달려 나간다. 장빈을 찾아볼 생각.
은수 혼자 남아 최영을 본다.
호롱불만 있는 방안. 의자를 질질 발로 차고 끌어서 침상 옆에 놓고 앉는다. 한숨부터 나온다.
혼수상태인 최영을 힐끗 보고 뭔가 말하려다 어색해서 관둔다.
그랬다가 다시 목을 가다듬고.
은수 : 저기요. 댁하구 왕이 얘기하는 거. 내가 좀 엿들었거든요.
정말 개같은 세상에 엿같이 살아온 거.. 이해하겠는데요.
그래서 지금 댁이 그렇게 사이코가 된 것도 알겠는데요.
근데요. 당신만 그런 거 아니거든. 그래두 다 살아. 다들 악착같이 죽자구 산다고. 왜냐면.. 왜냐면..
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돌아본다. 최영의 코에 손을 대본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급히 덮어놓았던 이불을 걷어 치우고 가슴에 손을 대본다. 흉부의 움직임이 없다.
은수 :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어레스트! (Arrest)
은수, 반사적으로 침상 위로 뛰어 올라가 CPR을 시작한다.
두 손을 모아 가슴 압박, 심장 마사지를 하기 시작한다.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노련한 의사답게 거의 반사적으로 숙련된 반응을 하는 것)
은수 : (리듬을 맞추며) 원 투 트리 훠.. 원 투..
// 문이 벌컥 열리며 장빈과 대만이 들어서다 본다.
은수가 최영의 머리를 뒤로 젖히며 코를 잡아 입에 숨결을 불어넣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둘 다 굳어서 본다.
은수가 다시 가슴 압박을 한다.
장빈이 달려와 최영의 맥을 잡는다. 장빈은 맥을 느낄 수가 없다. 팔목을 놓고.
뒤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대만을 돌아본다. 장빈이 대만에게 고개를 저어 보인다.
대만 폭발할 것 같은데. 그러며 은수를 본다.
은수가 쉬임없이 계속 심장 마사지를 하고 있다. 그 이마에서 주룩 땀이 떨어진다.
은수 : 원 투 트리 훠..
장빈이 은수의 어깨를 잡는다. 은수가 마사지를 하며 장빈을 돌아본다.
장빈 : 숨이 멈췄습니다. 이 사람. 이만..
은수, 장빈의 손길을 떨치며 아랑곳없이 심장 압박을 계속하며 필사적으로.
은수 : 이봐요. 이러면 안되지. 가긴 어딜 가. 이런 그지같은 데 나만 냅두고. 그것두 내 칼에 맞아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다) 이럼 안된다구.. 이럴 수가 없다구.
다시 최영의 머리 쪽으로 이동하며.
은수 : 나한테 그랬잖아요. 옆에 딱 붙어있으래매. 그럼 지켜준대매. 그래서 여까지 따라왔는데.
은수가 다시 입에 숨을 불어넣으려 고개를 기울이는데
은수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최영의 볼에 떨어진다.
#29. 최영의 꿈 / 호수
얼어붙은 채 앉아있는 최영. 얼어붙은 최영의 볼에 물 한방울이 떨어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
은수소리 : 나.. 지켜준대매..
그 물 한방울이 얼굴을 따라 흐르며 얼굴에 덮인 얼음에 금이 간다.
투둑 얼굴을 덮었던 얼음의 한부분이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30. 장빈 치료실
마악 최영의 입에 숨을 불어넣고 상체를 일으키던 은수가 멈춘다. 최영의 얼굴을 다시 내려다본다.
장빈이 어..해서 최영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시체처럼 눈을 감고 있던 최영. 후우.. 가는 숨을 내쉰다.
장빈이 급히 최영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댄다.
은수가 심장 마사지를 하며 긴장해서 본다.
장빈이 최영의 경정맥을 짚는다. 은수를 돌아보더니 놀란 얼굴로..
장빈 : 숨이.. 돌아왔습니다.
#31. 궁 내 회랑
노국공주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최상궁과 무각시들이 급하게 노국을 호위하며 함께 걷는다.
최상궁은 노국을 멈추게 하려 애쓰나 노국이 워낙 기세등등 빠르다.
#32. 강안전(공민왕 침전)앞 복도
안도치가 놀라서 고개를 숙이며.
안도치 : 왕비마마.
바람같이 다가온 노국이 안도치를 지나쳐 문 쪽으로 간다.
옆에 보초를 서는 우달치 부대들도 어쩌지를 못해서 본다.
안도치가 감히 막지도 못하고 쩔쩔매며 따라 붙는다.
최상궁이 마악 노국을 막으려는데 그보다 먼저 양손으로 문을 벌컥 여는 노국.
#33. 강안전 (공민왕 침전)
잠자리 옷 차림의 공민이 돌아본다. 빠르게 들어서는 노국.
노국 : 전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공민 : (뚱하니) 안된다하면 그냥 가실 겁니까.
노국 : 의선을 내주신다 하셨습니까. 기철이 그 자에게 준다 하셨습니까.
공민 : 여기는 궁입니다. 이름만 달랑 부르지 마시고 덕성부원군이라 하세요.
노국 : 의선은 우달치 최영을 치료해서 살려야 합니다.
공민 : 압니다.
노국 : 아니 모르십니다.
공민이 난감해서 노국의 뒤를 본다.
최상궁을 비롯한 시녀들. 안도치 등이 모두 시선을 피하며 난처해하고 있다.
공민 : 명색이 공주로 자라신 분이 예법 따윈 배우지 못하셨습니까?
노국 : 하잘 것 없는 저의 예법 따위보단 이 나라의 왕. 전하의 예법이 더 먼저이고. 더 중하지 않습니까?
나 하나 살겠다고 내 사람을 하나하나 적에게 내어주는 것은 대체 뭐하는 예법입니까?
공민 울컥해서 한소리 치려다가 멈춘다. 애써 참고는 돌아본다.
공민의 시선을 받은 최상궁이 재빨리 안의 사람들을 몰아 나간다. 문이 닫힌다.
공민이 노국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분노를 겨우겨우 참으며 낮게.
공민 : 내가 누구요.
노국 : (그저 노려보는)
공민 : (더 낮게) 내가.. 누구요.
#34. 강안전(공민왕 침전)앞 복도
안도치가 안의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문에 점점 귀를 대다가 움찔. 최상궁이 노려보고 있다.
안도치 다시 바로 서긴 하는데 안이 너무 궁금하고 걱정된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다.
#35. 강안전(공민왕 침소)
거의 붙다시피 바싹 마주 서 있는 공민과 노국.
공민은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다. 둘 다 밖에는 들리지 않게 낮게. 그러나 살벌하게 대화하는 중.
공민 : 공주, 그대의 품성이 워낙에 이리 막되먹은 것이오.
아니면 그대는 원의 공주이고. 나는 힘없는 고려의 쭉정이 왕이라 이리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이오.
노국 : 모르시겠습니까?
공민 : 몰라서 묻는 것이니 대답을 하라지 않습니까.
노국 : 사냥꾼에 쫓기는 꿩은 풀섶에 머리 하나 박아 숨기고는 세상이 다 자기를 못 보는 줄 압니다.
전하가 들판에 꿩이십니까?
공민 : 허어..
노국 : 누가 전하의 편이고. 누구를 지켜야 전하가 살 수 있는지 정녕 모르십니까?
의선을 내어주고. 우달치 최영이 죽게 되면 대체 전하 옆에 누가 남겠습니까.
공민 : (잠시 보다가) 그래서 지금 공주는 내가 염려되어 달려왔다는 겁니까?
일전에 공주의 처소에 최영을 은밀히 불러들였다더니.
노국 : (멈칫하는)
공민 : 그 또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잠시 둘 사이에 긴장과 침묵이 흐르고.
노국 : 저에게 그리 관심이 많으신 줄 몰랐습니다.
공민 : 대답하기 난처한 우리 말은 알아듣지 못합니까?
공주의 처소로 최영을 불러들인 것은 누구를 걱정해서냐 묻지 않습니까.
노국 : 전하가 넘어지면 저도 넘어지고, 전하가 밟히면 저도 밟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전하가 걱정됩니다.
방안에 가만히 주저앉아 걱정만 하지 못하고. 이렇게 달려와버렸고.
예법을 차리지도 못하고 떠들어댔습니다.
성이 나서 말하는데 노국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해지다가 주룩 흐른다.
그 바람에 공민이 다시 맞받아칠 타이밍을 놓쳤다.
노국 : 잘못 찾아와 잘못 물었습니다. 다시는.. 찾지도 묻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공민 진짜로 할 말을 잃었다.
노국이 휘릭 등을 보이며 돌아선다.
#36. 전의시 입구 길 / 밤
의생들이 놀라서 길을 비킨다.
거친 기세로 들어서는 기원과 기철의 사병들.
#37. 장빈 치료실
대만이 제일 먼저 긴장을 한다. 밖의 기척을 듣더니 튀어나간다.
은수가 무슨 일인가하여 장빈을 본다. 장빈도 귀기울인다.
이제 들리는 어지러운 발소리.
기원소리 : 의선은 어디 계신가.
#38. 장빈 치료실 앞 마당 / 밤
대여섯명의 우달치 대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며 검을 빼어 길을 막는다.
그 가운데는 주석. 그 앞에는 기원이 사병들을 데리고 들이닥치고 있다.
기원 : 물러서라.
주석 : 이곳 전의시에 약초원은 왕명으로 봉인되었소이다. 감히 누가 사병을 이끌고 들이닥치는가.
기원 : 어명이다.
주석 멈칫한다.
기원 : 어명에 따라 의선을 모시러 왔다. 안에 계시는가.
기원이 소매를 떨치며 들어서려는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대만이 앞을 가로막는다. 팔을 떨치는데 그 팔목에서 튀어나오는 손칼.
기원 : 이건 또 뭐야.
대만은 대답 대신 몸을 웅크려 언제라도 도약할 자세를 취한다.
기원 : 이것들이 감히 앞을 막아. 다 치워.
사병들이 일제히 검을 빼어드는데.
안에서 달려나온 장빈이 앞으로 나서며.
장빈 : 기다리시오. 의선께서는 지금 환자를 돌보는 중입니다. 그러니.
기원 : 어명이라지 않는가.
장빈 : 어명의 증표를 보이십시오.
기원 : 뭐가 어째.
주석 : (옳다 해서) 그렇지. 어명은 우리도 받았어. 증표를 보이기 전에는 아무도 못 들인다.
기원 : 이것들이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사병들에게) 뭐하구 있어. 막는 것들은 죄다 베어 치우라지 않는가.
사병들이 달려들고, 우달치의 무사들이 와르르 달려 나오며 사병들을 막는다.
대만이 튀어오르며 맨 앞의 사병이 휘두르는 칼을 손칼로 휘감아 날려버린다.
안으로 튀어 들어가려는 사병 하나를. 장빈이 부채를 뻗어 저지시키고, 혈을 찔러 퇴각시킨다.
#39. 장빈 치료실
은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 옆의 침상에는 최영. 아직 의식이 없고.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무기 부딪히는 소리.
은수, 도망쳐볼까 해서 창문 쪽으로 가 열어보다가 탁자 밑으로 숨으려고 기어 들어가는데.
누군가 칼에 맞았는지 비명소리가 들린다.
은수가 깜짝 놀라 문을 돌아본다.
#40. 장빈 치료실 앞 마당
기원이 칼을 휘두르며 진료실 쪽으로 전진하다가 문득 앞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으어.. 해서 뒤로 물러선다.
거기 안에서 나오고 있는 은수.
잔뜩 긴장한 은수의 얼굴이 기원이 보기에는 무섭다.
기원을 따라 주위에서도 칼싸움이 잦아든다.
대만과 장빈이 재빨리 달려와 은수의 앞을 막아서며 기원네를 경계하며.
장빈 :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은수가 장빈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어 정원을 본다.
거기 사병 복장의 두명은 이미 칼을 맞아 쓰러져 있고.
한쪽 옆으로 비켜선 우달치 무사 하나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감싸쥐고 버티고 있다.
대치하고 있는 상태로 정적 속에서 모두 은수를 보고 있다.
은수가 얼이 빠진 얼굴로 다시 마당을 보는데 거기 쓰러져 있던 사병 중 하나가 꿈틀한다.
은수 : (장빈에게 속삭여) 저 사람. 살아있어요.
은수가 저도 모르게 장빈의 뒤에서 앞으로 나온다.
장빈이 얼른 은수의 팔소매를 잡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서는 은수.
기원과 사병들이 저도 모르게 두어걸음씩 뒤로 물러선다. (은수의 주술에 대한 소문을 다 듣고 있다)
은수 : (한 손을 들며) 잠깐 타임.
은수의 말에 모두가 한발씩 물러서는 바람에 은수가 어라.. 싶지만. 좀 더 용기가 나서.
은수 : 제가 지금부터 저기 다친 분을 좀 봐주려고 하는데요.
기원 : (용기내어 앞으로 나서며) 그대. 의선이라 칭하는 자는 내 말을 들으시라.
은수 : 그니까 그 말은 좀 있다 듣고. 저분부터 좀 볼게요. 원래 응급 환자는 시간이 생명이거든요.
쭈뼛거리며 쓰러진 사병 쪽으로 가며. 눈치를 보며.
은수 : 나 의사인 거 아시죠? 의사는 전쟁터에서도 안 죽이는 거잖아요. 적십자. 레드크로스.
은수가 모르는 소리를 하며 다가오자 기원이 저도 모르게 옆으로 피한다.
주춤주춤 쓰러진 사병 쪽으로 다가서 옆에 쭈그려 앉는다.
사병을 끄응 뒤집어 상세를 본다. 가슴 쪽으로 길게 베었다. 상처에서는 피가 꿀럭꿀럭 스며 나오고 있다.
목의 맥을 잡아본다. 살아있다.
은수, 더 생각할 것 없이 사병의 옷을 찢어 벗긴다.
은수 : (장빈을 돌아본다. 아직 겁에 질려있어서 떨리는 목소리) 이쪽은 출혈부터 막아야겠어요.
그 옆에 환자 좀 봐주실래요.
장빈이 아무 말없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그 옆의 다른 쓰러진 사병을 돌보느라 주저앉는데. 그 목에 들어오는 칼.
은수가 놀라서 본다.
기원이 장빈의 목에 칼을 댄 채 은수에게.
기원 : 지금 바로 같이 가야겠소. 일어서시오.
은수 : (말도 잘 안 나온다) 아니 그럼.. 내가 안 일어서면..
기원의 칼에 힘이 들어간다. 장빈의 목에 핏줄기가 주륵 흐른다.
은수가 놀라서 힘이 빠진다.
대만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려는데 그 목덜미를 잡아 멈추게 하는 주석.
주석이 보는 곳. 거기 언제 왔는지 충석이 버티고 서있다.
상황을 한눈에 스윽 살피더니 기원을 노려본다. 기원이 마주 노려본다.
충석이 우달치 부하들에게.
충석 : 칼을 거둬. 어명이다.
대만이 분노해서 앞으로 나가려는데 그 목덜미를 굳세게 잡고 있는 주석.
다른 우달치들은 검을 내린다.
충석이 은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여보이고.
충석 : (은수에게) 의선, 가셔야겠습니다.
기원 : (장빈을 겨누었던 칼을 스윽 거두며) 끌고 가자.
사병들이 우르르 은수에게 달려들어 에워싼다.
은수, 공포에 질리며 사병들 사이로 장빈을 찾는다.
장빈. 한걸음 앞으로 나서지만 어쩌지 못하고 멈춘다.
#41. 장빈 치료실
침상에 누운 최영. 그 시체같이 굳어있는 모습. 그런데.. 늘어져 있던 최영의 손이 꿈틀한다.
잠시 후. 한번 더 움직인다. 좀 더 큰 움직임이다.
#42. 약초원 / 낮
이제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 아침.
햇살이 내려앉는 약초들.
#43. 노국공주 정원
노국이 햇볕 아래 서있다. 언제나처럼 새초롬한 얼굴로.
옆에서 최상궁이 주위를 둘러본다. 좀 거리를 두고 호위를 하고 있는 무각시들.
최상궁 : 의선께서는 간밤에 끌려가셨다 합니다.
노국 : 모시고 간 게 아니고. 끌려갔다.
최상궁 : 분위기가 그리하였다 들었습니다.
노국 : .... 죽일까.
최상궁 : 혹시 이용가치가 있다 생각되면 잠시는 살려두지 않을까...
노국 : 이용가치.. 없으면.. 죽일까.
최상궁 : ..
노국 : 그럼 최영. 그 자도 죽나?
그 말에 최상궁이 슬쩍 노국의 기색을 살핀다.
노국은 그저 앞의 공간만 노려보고 있다.
#44. 강안전(공민왕 집무실)
공민은 열려진 창문 밖으로 밖의 햇살을 보고 있다.
그 뒤에 엎드린 일신이 비통하여 떠들고 있는 것은 거의 듣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일신 : 전하 어명만 내려주시옵소서. 전하의 명이라면 신. 목숨을 내어놓고, 혼령이라도 일어서 거행할 것 입니다.
개경 거리를 피로 물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전하의 의선을 당장 되찾아오겠습니다아..
신에게 용호와 응양. 이군과 우달치군을 넘겨주십시오. 신이 할 수 있습니다. 전하아..
공민이 고개를 돌려 옆의 동경을 본다.
햇살 아래 드러난 자신의 얼굴이 동경에 일그러져 비춰 보인다.
#45. 장빈 치료실
대만이 창문을 연다. 햇살이 들어온다. 돌아서다가 굳어 선다.
최영의 손이 올라가더니 햇살에 비치는 눈을 가린다.
대만 : 대장.
대만이 떨며 침상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선다.
대만 : 대장?
최영의 한손으로 눈을 가린 채. 잠기고 마른 목소리로.
최영 : 눈이.. 부시다.
대만. 왈칵 눈물이 솟으며 움직여 햇살을 가린다.
다시 그늘이 진 최영의 얼굴. 최영이 손을 내린다. 그리고 최영이 감았던 눈을 뜬다.
#46. 약초원 마당
장빈이 달려온다. 그 앞을 달리고 있는 대만.
장빈 : 그래서 얘기를 다 했는가? 의선이 끌려간 이야기까지?
대만 : 그럼 물어보는데 대답 안합니까? 대장이 물어보는데..
장빈이 마음이 급해서 대만을 지나쳐 빠르게 이동한다.
#47. 장빈 치료실
최영이 의복을 갖춰 입고 있다. 허리띠를 동여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장빈. 옷을 입고 있는 최영을 보고 찌푸리지만 잠자코 달려들어 손목의 맥을 짚는다.
장빈 : 하루 꼬박 혼절해있었습니다. 명줄이 한번 넘어 갔었구요.
의선이 아니었으면 지금 살아있는 목숨이 아닐 것입니다.
말없이 손목을 내어주고 있던 최영, 손을 슬그머니 빼서 옆에 놓인 검을 집어든다.
장빈 : 맥이 아직 미약합니다. 절대안정을 해야 하는데..
최영 : (검집을 차며)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까? 의선이 끌려 가는 거.
장빈 : 어명이었습니다.
최영 : 의선한테 침을 꼽든가. 한 대 패든가. 기절을 시켜버릴 수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움직일 수 없다. 핑계를 대든가..
장빈 :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싶은)
최영 : (옆에 놓인 전경 방패를 집어 들어 등에 멘다)
장빈 : (문 앞을 막아선다) 왕을 지키는 우달치가 왕명을 거역할 셈입니까?
최영 : 안그래도 나. 힘이 모자라요. 아까운 힘 쓰게 하지 말고. 좀 비킵시다.
장빈 : (품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주며) 보원단입니다. 딱 세알 남은 거지요.
하루 정도는 얼만큼 맥을 지켜줄 겁니다.
최영 : (받아들어 바로 먹는)
장빈 : 되도록 내기는 쓰지 마세요. 단전이 금방 고갈될 겁니다.
자칫 다시는 내공을 쓰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최영 : 그 참 대단히 힘이 되는 말만 해주는 의원일세.
최영, 장빈을 지나쳐 가려는데. 장빈이 그 팔을 잡는다. 돌아보면.
장빈 : 지금 덕성부원군은 명분을 찾고 있습니다. 의선을 혹세무민하는 요물이라 단정할 명분.
최영 : 그래서.
장빈 : 그래서 공개적으로 처형시키려 합니다. 대장은 그 요물을 조종한 장본인이구요.
무슨 계책이라도 있습니까?
최영 : (물끄러미 보다가 끄덕인다)
장빈 : 어떤 계책인데요.
최영 : (무뚝뚝한 얼굴로) 정면 돌파.
#48. 기철의 집 앞
대문을 지키던 사병 몇이 어어.. 해서 본다.
저 앞길로 말 한필이 다가오고 있다. 최영이다. 단신. 혼자 몸.
기우뚱하니 말에 올라탄 채 슬렁슬렁 말을 몰고 있다.
그렇게 말을 모는 최영의 위로.
최영소리 : 돌아가. 이건 어명을 어기는 일이야. 너까지 묻어갈 필요없다.
최영, 눈을 들어 옆의 담 위를 본다.
거기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 고양이처럼 이동하고 있는 대만. 최영이 이동하는만큼 나란히 움직이고 있다.
대만소리 : 따라 가겠습니다.
최영소리 : 반항하냐. 돌아가.
대만소리 : 따라 가겠습니다.
대만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최영이 혼자 웃는다.
그러는 사이 최영, 기철의 집 대문 앞에 도달했다.
대문을 지키던 사병들이 우르르 나서며 길을 막고 있다.
최영이 끄응. 천천히 말에서 내린다.
최영 : 본관 철원, 최씨 집안의 영이 덕성부원군을 뵈러왔다.
#49. 기철의 서재
기철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본다.
기철 : 최영이라면 그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며.
양사 : (당황하여) 그리 들었습니다만..
기철 : 들었는데?
양사 : 그것이 의선이 다시 살려내었다는..
기철 : 그 의선이란 여인. 양사의 말대로라면 헛소리만 하는 가짜라며.
그런데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맘대로 하는가.
양사 : (대꾸를 못하는)
기철 : (갸웃) 혹시 참말일까. 하늘에서 왔다는 것도. 의선이란 것도. 혹.. 화타의 제자란 것도.
양사 : 글쎄 그게 그럴 리가 없다고 제가..
말하려다가 기철의 차가운 시선에 얼어붙는다.
기철이 방의 다른 쪽을 돌아본다. 거기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천음자가 시선을 받는다.
기철 : 혼자 왔다 했나. 최영 그 자.
천음자 : 예.
기철 : 작금 고려 천지에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너 몇 살이냐. 네가 언제 죽을지 내가 안다.
이리 말할 여인네가 또 있을까.
양사 : 아이구 나으리 그건 그 년이 돈 년이라..
기철 : 작금 고려 천지에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이라. 이리 말할 자가 또 있을까?
지금. 그 두 아이가 다 내 집에 있다.
양사가 조심스레 기철의 눈치를 본다.
기철은 미소짓고 있다. 재미있다는 듯.
양사 : 최영. 그 놈을 이리 데려올까요? 아니면 일단 잡아 가둘까요?
기철 : (놀랐다는 듯 양사를 돌아본다) 왜?
양사 : 아니 그야..
기철 : 어째서 그래야 해. 그럼 아무 재미도 없지 않은가.
#50. 기철의 집 대문 안 쪽
최영이 담에 기대 앉아 기다리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졸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눈을 뜬다.
저 앞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천음자.
#51. 기철 집 중앙 마당
천음자가 최영을 안내하고 있다.
천음자의 뒤를 따르며 최영은 날카롭게 시선을 움직여 사방을 살핀다.
오가는 하인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사병들의 모습.
지금 몸상태로는 어찌 해볼 수 없을만큼 많은 수이다.
그러다 저만치 어느 여인이 치맛자락을 날리며 움직이자 최영의 시선이 멈칫한다. 은수가 아니다.
천음자가 뒤따라 오는 최영을 돌아보아 확인하고는 중문을 열어 그 안으로 안내한다.
#52. 기철 집 정원
천음자를 따라 들어서는 최영. 여전히 주위를 살피던 시선이 한곳을 지나쳐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저만치 보이는 누각. 그 누각 위로 보이는 중앙에 돌아앉아있는 여인의 모습. 흰 옷이.. 은수의 옷과 같다.
최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천음자가 뒤돌아보고 자신도 걸음을 멈춘다.
최영이 보는 곳. 누각을 둘러싸고 지키는 사병들.
최영,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최영의 모습을 지켜보는 천음자.
올라가는 계단 맨 아래쪽을 지키던 사병 둘이 달려 나오며 막아선다.
그러나 최영이 양 손으로 한꺼번에 둘을 밀어 쳐서 넘어지게 한다.
계단으로 달려 올라간다. 계단을 지키던 사병들이 달려든다.
아직 칼도 빼들지 않은 최영이 맨 주먹과 발길질, 혹은 방패를 이용하여
하나하나 그들을 격퇴하며 누각 위로 오른다.
#53. 기철 집 정원 누각 위
누각 위에도 지키던 자들이 있어 최영을 맞는다.
그들 또한 격퇴하여 더러는 누각 아래로 떨어뜨리며 최영이 살펴 보는 곳.
거기 누각 정 중앙에 놓인 둥근 테이블. 그 앞의 의자에 등을 보이며 약간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
밧줄로 의자에 묶여있다. 뒤만 봐서는 은수와 같다.
최영, 등의 방패를 풀어내며 방패로 찍고 휘둘러 패서 마지막 사병을 물리친다.
그리고는 그 여세로 중앙의 여인에게로 달려간다.
순간. 그 몸을 감고 있던 밧줄이 스르르 풀리며 그 손에서 날아오는 불덩이.
그러나 최영은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듯. 방패로 막아내고. 계속되는 여세로 여인을 몰아붙인다.
여인은 화수인이었다. 급히 뒤로 물러서 최영의 공세를 겨우 피하며 생글생글 웃으며.
화수인 : 아우. 이걸 어쩌나. 속아주질 않네.
최영 : (공격하며) 속을 뻔 했는데.
화수인 : (피하고 반격하며) 그대가 찾는 여인하고 나. 비슷하지 않았어?
최영 : 내가 아는 그 분은 그렇게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분이 아니거든.
누각 위로 사병들이 우루루 몰려 올라온다.
최영이 화수인을 몰아붙여 틈을 내고는 누각 아래로 뛰어 내린다.
#54. 기철 집 정원 누각 아래
누각에서 날아 내린 최영. 그러나 멈칫.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천음자.
누각 위에서는 화수인이 난간에 올라앉아 금방이라도 날아 내릴 듯, 미소 짓고 있고.
사병들이 누각을 돌아 달려오고 있다.
최영, 천천히 검을 빼들며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 이만치 지붕 위에서 그런 최영의 상황을 보는 시선. 대만이다.
잠시 그쪽으로 달려들고 싶어서 꿈틀하지만 조용히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지붕과 지붕을 타고. 고양이처럼.
#55. 강안전(공민왕 집무실)
공민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옆의 안도치가 은밀히 아뢰는 중.
안도치 : 우달치 최영이 덕성부원군 댁으로 찾아갔다 합니다.
공민 : 몸상태는 어떻다 하든가.
안도치 : 어의 말로는 제 발로 일어서 걷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합니다.
공민 : 그런 자가 단신으로 부원군을 찾아갔다.
안도치 : 계책이 있느냐 물었더니.. 정면돌파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공민 : (쓸쓸이 웃는) 과인을 비웃는구나. 이리저리 잔꾀를 부리고 권모에 술수를 쓰느라
노심초사하는 과인을 비웃고 있어. 정면돌파라..
안도치 : 의선을 부원군 댁으로 보내라 한 것은 어명이었습니다.
그런 의선을 도로 데려오겠노라 찾아갔다면 우달치 최영은 어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대로 두고 보실 것이온지.
하다가 멈칫해서 본다. 공민이 들고 있는 붓에서 먹물이 뚝 뚝 떨어져 그리던 그림 위에 물들고 있다.
공민은 그대로 붓을 든 채 혼잣말처럼.
공민 : 나는 저를 믿었는데. 저 하나만 믿고 있다 말도 해주었는데. 저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
안도치 : 전하.
공민 : 공주는 나를 믿지 못해 달려와 소리 높혀 비난하고.
최영 그 자는 나를 믿지 못해 저 혼자 죽을 각오로 가버렸어.
내겐 한마디 항의조차 안했다. (눈물이 글썽해지는)
안도치 : (무릎을 꿇어 울먹거리며) 전하. 옥체를 생각하시어 부디 어지러운 심기를 가라앉히시옵소서.
공민 : (다시 붓에 듬뿍 먹물을 묻히더니 거칠게 그림을 그려나가며) 항의해봐야 소용없다 여긴 거겠지.
왕이란 자가 워낙에 비겁하고 무능하고 염치가 없는 위인인데 무얼 더 기대하겠는가.
이런 왕이 의선을 내어주며 나름 대책을 세워 놓았다하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지. 아니 그런가.
안도치 : (울며) 전하.
공민, 붓질을 멈춘다. 종이 위에는 거칠게 흩뿌려진 그림.
공민 : 도치야.
안도치 : 예 전하.
공민 : 내가 앉은 이 자리 말이다. 왕이라 이름하는 이 자리.
나를 믿고 나에게 기대는 이 하나 없을 때는 무엇으로 낙을 삼아 버텨야 하는 거지?
#56. 기철 집 후원
최영은 집요하게 천음자를 공격하며
최영의 주위를 에워싸며 공격을 해오는 다른 사병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다.
아직 천음자는 날씬한 검으로 최영과 싸우는 중.
그들 뒤에는 호심탐탐 공격의 틈을 노리는 화수인.
최영의 호흡은 이미 거칠어져 있고,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그런데 최영이 갑자기 뒤 쪽의 화수인을 공격하는 척 하여 상대의 대열을 흩트리더니
그 틈에 중문을 지나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이만치 떨어진 곳에서 기철과 양사가 보고 있다.
자기들도 재빨리 이쪽 문을 지나 다음 마당으로 이동하며 싸우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며..
기철 : (아이가 재미있는 놀이를 구경하듯 흥미진진해서) 저 아이. 내공을 쓴다 하지 않았는가.
양사 : 적월대였으니까요. 당연히..
기철 : 그런데 봐라. 그저 외공 검술만 쓰고 있지 않나.
양사 :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몸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
기철 : 천음자에게 음공을 시켜보아.
양사 : (놀라서) 그것은..
기철 : (조바심내며) 어서.
양사 : 나으리. 그건 좀 곤란합니다. 천음자 근처의 새나 고양이들이 죽어나가는 거 보셨잖습니까.
천음자가 아직 목표한 상대만 가려서 음공을 펼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요. 매일 수련을 하긴 하는데..
기철이 참지 못하고 양사가 들고 있던 약저를 빼앗더니 난간을 두들겨댄다.
// 천음자가 돌아본다. 화수인과 싸우던 최영도 재빨리 기철 쪽을 봤다.
기철이 피리 부는 흉내를 내고 있다.
천음자가 당황해서 앞을 본다. 거기 최영을 상대하던 화수인이 순식간에 뒤로 날라 물러서서 도망친다.
최영이 옆의 사병을 물리치며 뒤를 본다.
천음자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검을 넣고. 피리를 꺼낸다. 피리를 입에 댄다.
최영이 천음자에게 달려들려는데. 그 가운데를 막아서는 사병.
그들을 처리하는 사이. 천음자가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리는 나지 않는다..
바로 그 사병이 괴로운 듯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그의 귀에서 피가 주룩 흐른다.
최영이 비틀.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한쪽 귀를 막으며 앞을 본다.
사병들이 비틀거리며 하나씩 쓰러지고 있다. 그 중에 몇은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린다.
// 양사가 양 귀를 틀어막은 채 미친 듯이 도망친다.
그 자리에 선 기철이 양 손을 떨치며 진기를 끌어올린다.
그 손에서부터 사르르 서리가 덮여가며 방어막이 형성된다.
기철은 흥미진진, 최영을 보고 있다.
// 최영이 천음자를 향해 달려가려다가 다시 비틀. 귀에서 주룩 피가 흐른다.
천음자는 빤히 최영을 보며 피리를 불고 있다.
최영이 와락 방패를 들어 앞을 막는다.
방패로 막으며 한걸음씩 천음자를 향해 나가는데 방패가 음공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방패의 플라스틱 부분이 지직지직 금이 가기 시작한다. 주변에는 쓰러져 뒹구는 사병들이 늘어간다.
순간. 방패의 투명 플라스틱 창 부분이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진다.
최영이 결심하고는 우뚝 선다. 검과 방패를 잡은 두 손을 늘어뜨린다.
그러더니 진기를 일으킨다. 고통에 잠시 멈춘다. 최영의 코에서 주룩 흐르는 피.
최영이 다시 진기를 일으킨다. 양 손에서 전기가 일어난다.
그 전기가 양 쪽의 검과 방패를 타고 흘러나가고. 일부는 팔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진다.
천음자가 놀라서 본다.
// 기철이 놀라서 본다. 기쁨에 얼굴이 환해진다.
기철 : 뇌공이다. 저 아이. 뇌공을 써.
// 최영의 팔을 타고 오른 전기가 머리 주변까지 감싼다. 실드 형성.
순간. 최영이 천음자를 향해 달려간다. 최영의 전기가 감도는 검이 천음자의 피리를 공격해 들어간다.
천음자가 피리를 불며 뒤로 옆으로 물러서지만. 최영의 검은 집요하게 피리를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도저히 더 피리를 계속 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순간. 최영의 검이 피리를 쳐서 날린다. 천음자가 몸을 날려 피하며 재빨리 검을 다시 빼든다.
그러나 최영은 천음자를 공격하는 대신 옆의 중문을 지나 다른 쪽으로 달린다.
최영이 달려가는 쪽에 저만치에서 들려오는 호각 소리.
#57. 기철 집안 별채 마당
별채 지붕 위에 우뚝 선 대만이 호각을 불고 있다.
지붕 아래에 별채를 지키던 사병 서넛이 놀라서 달려 나오며 지붕 위를 올려다 본다.
뭐야. 저거. 저놈 누구야. 사병들이 외치는 가운데.
대만이 앞 쪽을 본다. 거기 바로 옆 마당으로 최영이 달려오고 있다.
대만 두 팔을 떨쳐 손칼을 꺼낸다. 마당의 사병 하나를 겨냥하여 그대로 날아내리며 덮친다.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우고 다음 놈을 향해 달려든다.
대만이 사병을 상대하며 외친다.
대만 : 이쪽입니다.
중문을 통해 마당으로 뛰어드는 최영.
대만 : (싸우며) 저 안에 계십니다.
최영이 별채를 본다. 별채의 문 앞에는 큼직한 자물쇠가 달려있다.
별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공격해오는 사병 하나를 해치우고. 또 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춰 뒤를 돌아본다.
거기 담을 넘어 떨어져 내리는 화수인. 다른 쪽에서는 다시 피리를 주워든 천음자가 떨어져 내려 선다.
그리고 중문으로 들어서는 기철. 기쁘다는 듯 웃으며 최영을 본다.
사병들을 처리한 대만이 재빨리 최영의 뒤에 와 지킨다.
최영이 기철네를 노려보며 검을 치켜드는가 싶더니 내려 갈기는 검은 별채의 자물쇠를 끊어버린다.
철겅.. 두동강이 나서 떨어지는 자물쇠.
천음자가 나서려는 것을 기철이 손을 들어 말린다. 재미있어 보고 있다.
최영은 손을 들어 옷소매로 남아있는 코피를 닦고, 귀의 피도 닦아 매무새를 단정히 하더니
양손을 들어 별채의 문을 벌컥 연다.
#58. 기철 집안 별채
최영이 들어선다. 어두컴컴한 별채 내부가 열린 문으로 환해진다.
그 내부 저 안. 눈이 부셔서 눈을 가리던 은수가 손을 내리며 이쪽을 본다.
거기 최영이 서있다. 물끄러미 자기를 보고 있는 최영.
은수가 믿기지 않아 보다가 그만 왈칵 눈물이 솟으며.
은수 : 사이코.
최영이 가까이 다가서더니 두어발 앞에 서서.
최영 : 좀 늦었습니다.
하며, 은수를 온화하게 본다.